1982

교회와 국가

by 삶의언어 posted Jun 03,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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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4-25
오늘의 성구 로마서 13장 1절로 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aoQ2RUipab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교회와 국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나라에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 유대인들은 어찌하든지 예수님과 로마 정부와 대결되게 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고 계시는데 원수들이 예수께 나와서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우리들이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로마사람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로마는 유대민족들에게 무서운 세금을 물리면서 빼앗아 갔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이 이 로마 사람들에게 원한에 사무쳐있었습니다. 이러므로 유대인 애국자들은 로마인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암암리에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유대인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앞에 "로마 사람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옳지 않은 일입니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하면 즉시로 로마 관원에 고발해서 이는 로마 정부를 비방하고 반대하는 운동을 한다고 예수님을 체포해서 사형 당하게 하려고 하는 짓이요 세금을 내라고 하면 이는 유대민족의 배반자다 유대 민족의 메시아로 와서 로마의 주군 노릇을 하니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 이렇게 올무에 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해도 잡히고 저렇게 해도 잡힐 수밖에 없도록 올무를 놓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동전이 있거든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내놓으니까 예수님께서 그 동전을 보여 주면서 이 화상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이샤의 화상이라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러면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드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예수님을 올무에 넣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만 망연자실해서 무엇을 질문할지 모르고 말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국가에 드릴 것은 국가에 드리고 하나님께 드릴 것은 하나님께 드려서 국가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분리시켜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삼년 반 동안 복음을 증거할 동안에 그는 군중들을 선동해서 로마정부를 대적하는 그러한 결사를 한 적도 없고 사회에서 밀란을 일으킨 적도 없으며 사람들에게 불평과 불만을 심어준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늘나라의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죄인을 용서해주며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며 불안과 절망에 처한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주님은 다가올 하늘나라에 관해서 복음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로마정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조금도 위협적인 인물이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유대인 종교가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예수님을 포박해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주어 사형하려고 했지마는 빌라도는 도무지 예수에게서 조금도 위험성을 발견할 수가 없고 예수를 죽일만한 죄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를 놓아주려고 군중에게 나가서 세 번이나 발버둥을 치고 애를 쓴 사항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러므로 로마 정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하늘나라의 복된 소식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 세상 정치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소요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우리에게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에 저는 국가와 교회간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직자의 양심과 국민적인 양심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요사이 심심찮게 매스컴을 통해서 성직자의 양심과 국민의 양심에 관한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국가에 반역한 죄를 짓든지 살인죄를 짓고 방화죄를 지은 사람이 성당이나 교회에 뛰어와서 은신처를 구한다면 성직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떤 성직자는 성직자의 양심에 따라서 국가의 반역죄를 짓든지 살인죄를 짓더라도 교회에서는 이 사람을 감추어 주고 숨기어 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이 국가에 반역죄를 짓고 살인죄를 짓고 방화죄를 지었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국가에 범죄한 이상 성직자도 이 사람은 국가의 공평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 사직 당국에 내 줘야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토의상황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성직자의 야심과 국가의 국민적인 양심.... 이 두 갈래 길에서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저는 이것에 대해서 제 개인의 소신을 여러분에게 말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성직자는 성직자의 양심이 있습니다. 성직자의 양심이란 불의와 죄를 책망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불의와 죄를 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두둔하고 감추어준다면 이것은 성직자로서의 양심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는 죄와 불의 속에 있는 사람을 회개시켜야 될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떠한 범법자가 성당이나 교회에 찾아 온다해도 성직자는 그 사람을 데리고 기도해 주고 말씀을 증거해서 그 양심에 거리끼는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변해서 그 영혼의 죄와 그 행위의 죄를 용서해 주고 나아가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서 용기를 가지고서 인생을 새 출발하게 만들어 주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범죄자가 진실로 마음속에 참회하고 개과천선해서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앞에 사랑과 용서를 받고 그리고 자비와 긍휼을 받았으면 그는 반드시 이제는 그 회개의 열매로서 자기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그 고백행위야 말로 국가에 죄를 지었으면 국가 사직당국에 나가서 자기 죄를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행위로 나타나지 않은 고백은 진실한 고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직자는 영적인 직분으로서 범죄자에게 죄와 불의를 깨닫게 해서 회개시키고 하나님을 대변해서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주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서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지마는 그 사람이 개과천선했으면 그 회개한 열매로서 그가 나아가서 국법을 어겼으면 국가 사직당국에 살인했으면 살인한 죄, 방화를 했으면 방화한 죄를 국가 앞에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는 국민적인 직분도 시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국과 민족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민족에 착취와 지배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한 성직자일뿐 아니라 나아가 한 국민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마는 기독교인이나 성직자는 국가가 있고 민족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직자가 그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자기의 양심법대로 해서 모든 범죄자들을 성당이나 교회에 다 숨겨주고 전부 보호해주면 교회당이라는 곳은 범죄자의 도피성이 될 것이요 교회는 범죄자의 소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살인자, 간음자, 방탕자, 모든 범법자들이 교회에 와서 숨어 있어서 그 아지트로 삼고 교회에서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서 범법행위를 하고 난 다음 뛰어 들어와서 교회를 아지트로 알고 들어온 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범법자를 회개시키고 자복시키고 변화된 인간을 만들어서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무리를 일으킨 것을 그 나라와 민족 앞에서 세운 통치권 앞에 정당한 심판을 받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직자와 교회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직자는 영적 직분과 함께 국민적인 직분을 가지고 있으며 성직자의 영적인 양심과 함께 국민적인 양심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혼돈해서 교회를 범법자의 도피성과 아지트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외국 민족의 압박아래 있어서 애국하고 민족주의자가 그 이방 민족에게 쫓겨서 교회로 온다면 그는 끝까지 우리 민족으로서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아니고 우리 조국과 민족이 자주독립국가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그 국민 대다수의 유익과 그 국가의 안녕과 복지와 질서를 위해서 성직자라도 국가법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기고 난 다음에 우리가 성직자로서의 마땅한 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목사와 신부는 성직자로서 모든 죄인들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환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이 불법과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도록 해야 하고 그들을 용서하시는 만군의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용서를 소개하고 그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서 스스로 걸어나가서 국가와 민족 앞에 지은 죄는 달게 그 벌을 받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교회요 성직자의 국민 된 양심이라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둘째로, 국가 권세와 신자에 관해서 우리는 또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국가에 살고 있으며 한 정부의 통치권 하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두 나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속해 살고 있으면서 지상 나라에 속해 있고 하늘나라 정권에 속해 있으면서 지상나라 정권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두 나라에 두 정권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태도로서 살아야 할 것인가? 국가 권세와 신자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우리가 분명히 분별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까요. 성경에는 그 문제를 조금도 서슴지 않고 밝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13;1-2절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우주의 대 주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주적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작과 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그 주권자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며 그 주권자를 보좌에서 내려오게도 하고 나라를 망하게도 하는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악한 자는 악한 때에 적당하게 만들어 놓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악간에 이 세상을 주장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지마는 그러나 최후의 주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할 때에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나를 절대 주권자가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을 때도 있고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권자에게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나라를 세우시고 정부를 세우신 것은 주님께서 허락해야 그 국가와 권세자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하기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이 유대민족이나 이방민족들에게 이 글을 쓸 당시의 사도바울 선생의 정황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그 당시는 로마의 가혹한 착취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의 속박과 식민지 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선생은 로마 정부의 국가 권세에 굴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섭리하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물며 로마 정권 하에 있는 사람들까지라도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주 독립국가로서 자기의 조국과 민족이 이것을 다스리는 정권과 권세에 관해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 신자들에게 명령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가서 우리는 국민으로서 의무를 준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7절에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하였으며 또 베드로전서 2;13-14절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를 보낸 방백에게 하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기에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부과되는 의무를 착실히 준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교육의 의무를 다 하지 아니한다. 혹은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다. 병력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다.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우리는 의무를 다할 필요 없다. 우리는 곧 천당 갈 것이니까 천국의 시민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할 필요 없다."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위험이 우리로 하여금 국민적인 의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마땅히 준행하라는 것입니다. 존경할 자는 존경해서 왕을 존경하고 대통령을 존경하고 방백들을 존경하여 세금 낼 것은 세금 내고 관세 낼 것은 내고 이렇게 해서 국가의 법을 준수하고 의무를 다하라는 것을 여기 신자들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라고 해서 그 나라에 무리하게 행동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서 또 우리 신자들에게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무거운 임무를 부과한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다스리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저는 우리 교회에서 반드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대통령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 저는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제가 누구보다 애국자가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요 친 정부인사가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우리 주님께서 나보고 이 땅에 사는 이상 이 나라의 지배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 나라 정부를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므로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제가 그렇게 하고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무조건하고 다 순복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받치라고 했는데 정부가 정부의 권한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 일에 대해서 저항하고 순종 안합니다. 만일 우리 대한민국 정부도 정부가 하는 일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데 하나님의 일에 간섭해서 이것을 저지하면 저는 목숨을 바치고 그 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순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국가 권세에 불복종할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4;18-20에 보면 사도들이 그 당시에 국가 권력에 잡혀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지 못하도록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정부가 개입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와 예배를 방해 할 때 베드로와 요한은 단호하게 이 일에 관해서는 타협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지 그 당시 정부권력에 대해서는 순복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하나님의 일에 관여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전도를 못하게 할 때 그때는 사생결단하고 우리는 순종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또 정부가 범죄 행위를 강요할 때 순복할 수 없습니다. 일제 36년 동안에 일본의 태양신 아미데라스 오미가미를 섬기게 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목숨을 걸고 일어나서 태양신에게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정부가 신사참배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북 공산주의 사회에서 김일성을 전지전능한 하나님처럼 섬기라고 할 때 이럴 때는 절대로 반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이외 섬기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정부가 범죄행위에 우리를 가담시키려 할 때는 우리는 목숨을 바치고 그것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야 하는데 정부가 그 권한 속에 있는 것을 행하려고 할 때 우리는 절대로 복종하고 우리의 의무를 준행하고 정부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정부가 하나님의 것에 관여해서 교회에 대해서 전도나 예배에 대해 방해하고 범죄행위를 우리에게 강요할 때는 교회는 일어나서 순교하고 목숨을 받쳐서라도 절대로 추호도 양보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교회와 사회 참여에 관해서 저는 말씀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종종 교회는 사회에 참여해서 정치적으로 억압된 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당한 자, 가난한 자, 헐벗은 자, 굶주린 자를 위해서 사회개혁과 혁명에 폭력을 행해서라도 일선에 나서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교회가 할 사명일까요? 이것이 사회, 정치단체가 할 일이 아니고 성직자와 교회가 그 거룩한 성직의 직분을 뛰어넘어서 사회 일선에 혁명적인 그러한 정치운동에 참여해야 될까요?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복음 증거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된다고 증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점점 전쟁과 전쟁 소문이 나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나고 악이 성해져서 사랑이 식어지고 종국에 가서는 이 세상이 멸망할 세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과 이 나라에 우리는 소망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고 있는 나라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와서 세우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소속한 나라에 우리는 소망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점점 살기 좋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위배되고 거짓된 소리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세우실 천년 왕국 때야 이 세상에 지상평화와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교회는 영혼구원에 주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큰 자나 작은 자할 것 없이 모두다 회개하고 주를 믿도록 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고 우리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사이에 화목을 가져오게 하는데 전심전력을 해야 되면 나아가서 우리는 구제 사업에 전심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20-21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화목케하는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하고 그리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서 우리는 구제활동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증거하시고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먹여 주시는 영적인 구제사업을 하셨고 정치, 사회개혁운동에 참여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순복음중앙교회도 우리는 개인 영혼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과 세상 사람과 화목을 이루는 이 복음의 역사를 계속하고 그리고 일어나서 구제활동에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다방면에 구제활동을 해왔지마는 앞으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데로 적극적으로 국가와 민족에 기여할 수 있는 거대한 구제활동에 참여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발표하거니와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데로 우리 한국에서 처음 있는 성인병 환자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병원을 설립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이 드셔서 성인이 되면은 대게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같이 치료할 수 없는 성인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성인병을 전문으로 하는 가장 초현대식 최고의 좋은 병원을 시설하기로 우리 당회에서 결정을 내리고 이미 우리는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제활동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소이 말하는 해방신학은 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18-19절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나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을 선언하시고 난 다음 친히 이 복음 선언을 시행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가난한 자에게 주님께서 가난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속 할 것을 약속하셨고 주님은 가는 곳마다 죄와 마귀에 눌린 자를 놓아 주셨고 죄의 눈이 어두운 자는 영의 눈을 띄워주셨고 육신의 눈도 기적으로 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눌린 자, 병에 눌려서 고생하는 사람을 놓아주셨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한 복음 선언은 영적인 사역을 말하는데 오늘날 이것을 육신적으로 해석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막스 레닌주의적으로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또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개혁과 혁명을 해야 된다. 이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육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해방신학이니, 정치신학이니, 혁명신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가 할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직분은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에게 하나님과 화평을 가져오게 하며 구제를 하는 영적인 직분이 교회에 주워진 것이요 교회가 세상 모든 직분을 도맡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개인의 인경에 심어줌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인격이 변화되고 그리고 이 변화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되면 변화된 사람이 변화된 가정을 가져오고 변화된 가정이 변화된 사회를 가져오고 이 변화된 사회인들이 모여 가지고서 진실로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자유가 넘치고 정의가 충만하여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나아가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격을 양성하는 자리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교회는 여당도 참석할 수 있고 야당도 참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무식한 자도 참석할 수 있고 유식한 자도 참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 가계 각층의 인사가 참여하여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을 얻고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변화된 인격이 되어서 나아가 이 사람들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다방면에 참여할 때 변화된 그 사상을 가지고서 그들이 참 자유와 정의와 평등과 복지가 넘치는 아름답고 축복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근원적인 사명에 충실해야 되고 일선에 나가서 정치와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이와 같은 일에 뛰어 들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가는 길을 자멸로 이끌어가고 말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멸망의 세상 가운데 교회를 둔 것은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죽음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불러내어 다가올 천국에 참여시키는 것이 우리 교회가 세상의 사명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난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덜 태우게 할까 그것이 아니라 지금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는 속수무책인 집에 있는 사람들을 빨리 끌어내어 구출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옵니다. 아버지, 우리는 이 세상이 불타고 있는 것을 압니다. 역사가 불타고 있습니다. 온 지구가 멸망으로 향하여 굴러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한사람이라도 신속히 예수의 복음으로 구출하는 것이 우리의 중대 의무이옵나이다. 복음으로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과 화목케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구제를 하고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이 교회의 본 사명인즉 아버지여, 교회는 이 사명을 저버리고 세상의 쟁투 속에 들어가서 교회의 본연의 사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