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by 삶의언어 posted Jun 09,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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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8-01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10장 37절로 3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lIPf1ykf4g8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삶의 영원한 근원과 자원으로 삼고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무슨 독백을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막연한 종교의식으로 사는 것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당연하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나의 생명의 근원으로 나의 삶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이고 무한한 자원으로 삼고 사는 생활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불신자들은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 가소롭게 들리고 마치 정신이상자같이 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엇이든지 이성으로 증명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실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중생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을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노동력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지성을 개발해서 지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예수를 믿고 중생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의인이 된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성경에 주님께서 강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여러분은 오늘날 모두다 값없이 의롭다 함을 입은 사람들이요 여러분과 나는 노동력으로 육체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지성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무한한 삶의 자원으로 삼고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의 발생과 그 성장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회개할 때 성령께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초자연적으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넣어주십니다. 이 믿음이란 우리 인간의 사고 속에서 산출해 낼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란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식을 통해서 얻을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오로지 하나님 성령께서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초자연적인 성품을 넣어 주어서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는 다는 것 자체는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의 심오한 기적인 것입니다. 이 기적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이 주어지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란 것은 무엇이든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 아담의 후예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영이 죽어 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믿음의 세계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곳에는 아무리 인간이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성령의 기적이요 여러분께서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성령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령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구원받을 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이제 개발되고 성장합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을 일고 묵상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믿음이 자라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자라는 것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주어진 믿음이 여러분 속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거나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은 결코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믿음은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성령이 주신 그 믿음에다가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지만 그 자란 믿음이 더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점점 경험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헤이, 갓'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포글리오라는 가족이 하나님을 체험한 놀라운 체험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체험담 중에 아주 재미있는 체험담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정이 가난해서 남편이 철도 회사에서 노무자로 일하기 때문에 별로 벌어오는 돈이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시골 낡은 집에서 자녀 다섯과 부모 일곱 식구가 사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많이 먹습니다. 국수를 많이 먹고사는데 그날 따라 국수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한 주먹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섯 자식과 부부간에 먹고 그날 자기도 힘든데 그 남편이 친구 넷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남편을 살림에 대해서 도무지 관심이 없고 남편을 불신자입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성령을 받은 뜨거운 신자요 자녀들과 함께 열심히 주를 믿는데 그 아들이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가 네 친구를 데리고 와서 집에 들어오면서"여보, 오늘 스파게티를 좀 많이 장만해 주세요. 하루종일 일을 하고 우리가 굶주려서 속이 출출하니 좀 많이 먹겠어요." 어머니 얼굴이 새파래집니다. 왜냐하면 가진 것이라고는 국수 한 주먹밖에 없는데 이걸 가지고서 온 가족 일곱 식구에다가 네 사람의 새 식구가 보태어져서 열 한 명이 먹어야 되니 이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갑자기 방으로 뛰어 올라가더랍니다. 왜 올라가나 보니까 한참만에 방에서 성경책을 가지고 내려오시더래요. 오더니만 우동 한 주먹을 머리에 이고 성경도 같이 머리에 이고 "하나님 아버지 보시옵소서. 우리 남편에 네 친구를 데리고 와서 스파게티를 만들라고 하는데 스파게티는 한줌밖에 없습니다.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안 내놓으면 벼락이 떨어질 것인데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줄 압니다. 광야에 나가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는데 주여 이것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하더니만 그 어머니가 성경책을 부뚜막에 두고서 스파게티를 솥에 물을 잔뜩 붓고 난 다음에 물을 부글부글 끓여서 한줌 되는 우동을 넣으니까 물 속에 사라지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아들이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찬송을 부르면서 그것을 저어서 그 다음에는 그릇을 열 한 개를 내 놓는데 그것도 적은 그릇이 아닌 큼직큼직한 그릇을 열 한 개를 내놓더랍니다. 저 열 한 그릇에 어떻게 스파게티가 차는가 하고 보니까 어머니가 국수를 떠내어서 그릇에 담는데 한 그릇 담아 놓고 제쳐놓고 또 한 그릇 담아도 남아 있고 또 담아 있고 열 한 그릇을 가득히 담아서 그 날 저녁에 열 한 식구들이 모두 포식하고 남아서 그 이튿날 아침까지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헤이 갓'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거기에 자기는 어머니의 그 단순한 믿음에 그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믿음의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믿음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갔고 찬미도 했고 또 그런 것이 하나님 말씀에 기록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가정 생활에 능력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에 대한 요동할 수 없는 위대한 믿음으로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글을 기록한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이것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체험될 때 여러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특별할 때 성령의 믿음의 은사를 주어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의 믿음이 오면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이 마음속에 생겨서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이 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충만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아침에도 점심때도 저녁때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 있어야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충만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이 필요한가요? 우리 믿음을 통하여 이 세상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불안과 공포의 세상인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가정이 불안하고 직장이 불안하고 정치가 불안하고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불안하고 세계의 정세가 불안합니다. 어느 곳에 가나 불안과 초조가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으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서 일어날 때 불안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낙심과 좌절감에 부딪치지 않습니까? 내가 낙심될 때 나의 희망이 산산조각 나고 좌절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므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부정적이 마음이 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며 심한 고난과 환난이 다가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도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환난 가운데서 위대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를 의지하므로 말미암아 환난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승리와 치료와 축복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이 있는데 이 약속들은 믿음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생활 속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복 주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금세와 내세 약속을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역시 세상을 따라 산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나 말하는 것이나 우리의 삶이 세상적인 레벨에서 살지 아니하고 이제는 영적인 레벨에서 살며 믿음의 레벨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말씀과 믿음을 통하여 사는 신자의 삶을 개발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아무리 믿음으로 살려고 해도 마음속에 의심이 자꾸 생기고 이 의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서 잇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잠시동안 날개를 치고 영적인 세계, 말씀과 믿음의 세계에 들어갔는가 하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냄새맡아지고 맛보아지고 손을 느껴지고 환경에서 압박되어 오는 현실의 모든 압력이 믿음을 산산조각을 깨쳐버리는 것입니다. 왜 나는 힘차고 굳센 믿음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둘째 제목으로 여러분에게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이 아무리 마음속에 성령으로 주어지고 말씀으로 개발되고 체험으로 강해지고 또 기도를 통해서 충만해져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활동하는 것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활동합니다. 성경에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믿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사랑이 활활 불타고 있을 때 그때 믿음이 역사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이 식어져버리면 믿음은 역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내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활발하게 살아서 활동적이 되지 않거든 내가 내 마음속에 사랑으로서 살고 있는가 이 사실을 여러분이 질문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말씀하기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와 같은 계명이 있습니다. 이 계명을 우리가 지킬 때 우리의 가슴속에 주어진 믿음이 살아서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요. 무엇이 내가 부족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하루종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나요?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올 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 제단이 이루어져있나요? 그렇지 않으면 주일 한 번 교회에 와서 그냥 간단히 예배보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사나요? 물론 주일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려야지요. 그러나 우리 생활 자체가 내 가슴속에 예배당이 있어야 되고 우리의 가정에 예배당이 있어야 되고 우리의 생활 자체가 늘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예배의 모습이 되어 있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물질과 하나님, 환경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질에 대해서 심각하게 말씀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도 선악과를 바라보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반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환경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여러분이 하나님과 물질을 동등한 레벨에 놓길 원치 않으십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수입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이 주장하셨기 때문에 물질의 십일조, 여기에 하나님의 권위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소유주가 되시고 우리는 겸허한 인생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내 인생의 관리자요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단순하게 관리자로서 인생을 살고 내 사업도 하나님의 것인데 나는 단순히 관리자로서 내 사업을 한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열심히 같이 일을 해서 수입 중에 십분지 일은 하나님께 드리고 십분지 구를 가지고 운영하고 살아간다. 이와 같은 겸허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도적질하고 난 다음에 그러고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전도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수 안 믿는 체하고 사람들이 예수 믿느냐고 하면 오히려 안 믿는다고 하는 이와 같은 생활로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생활 태도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로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으니 네 몸을 사랑하듯이 내 부모, 부부, 형제, 자매, 친척, 동료, 이웃을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사랑하도록 애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오늘날 세상과 같이 몰인정의 세계, 무관심의 세계, 나는 나고 너는 너니까 너는 살든지 죽든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은 태도로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사랑을 주므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온전하게 되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려고 결심을 해도 마음속에 사랑이 생겨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 번째로, 사랑을 막는 것은 바로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죄를 통하여 사랑을 막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9절로 21절에 보면 사랑을 막는 육체의 죄에 관해서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면 사랑이 거침없이 우리 마음속에 흘러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죄일까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죄 중의 하나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인 것입니다. 주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이 세상을 멸하신 것도 음란 때문에 멸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주께서 불러서 심판한 것도 그들이 음란과 호색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임하여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 같이 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 신자의 생활 속에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이와 같은 세속적인 이 모든 것을 쫓아 내야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저는 신문 광고 같은 것을 보면 영화 광고란에 너무나 노골적으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선전하고 점점 그런 방향으로 잡지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마음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말세에 이런 일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의 사랑을 빼앗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는 미워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처참하게 70년 동안 고생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여러분 성경에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도 그 무엇이든지 그 탐욕을 가지고 섬기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이상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내 개인이나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명예, 지위, 권세, 무엇이라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면 그것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넘쳐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 사람들은 내적 감정적인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적 감정적인 죄악 가운데 오늘날 묶여 삽니다. 그것은 미움이고 원수를 맺는 것이고 분쟁하는 것이고 시기하는 것이고 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깥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개인의 가슴속에서 끓어올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가슴속에 미움이 있으면 미음을 다 회개하고 청산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맺은 것이 있으면 풀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분쟁이 있으면 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기가 있으면 포기해야 됩니다. 분냄이 있으면 이것을 전부다 회개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려놓고 예배드리려고 하다가 형제와 원수 맺은 것이 있거든 제물을 그대로 두고 가서 화해하고 나서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사람의 내적 감정적인 죄 이것을 그대로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러한 죄들을 우리는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내적 행동적인 죄를 우리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이 세상에 너무나 술취함과 방탕함과 도적질과 마약 중독과 살인과 눈에 보이는 이 현저한 죄들이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와 같은 죄들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철저하게 회개하고 이 죄들과 완전히 담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간증을 들었는데 이 사람은 아주 술을 많이 먹고 담배 중독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의 몸은 나의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다. 내 성전을 술독으로나 굴뚝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그래서 결심을 하고 강제적으로 술은 끊었는데 담배는 죽어라고 못 끊겠더랍니다. 그래서 하루는 자기가 일하는데 어떤 분이 와서 하시는 말씀이 "야, 오늘 우리 마누라가 득남을 했다. 참 기쁘다." 그러면서 아주 좋은 시갈을 한 사람씩 나누어주더랍니다. 그래서 그 담배를 받아서 포켓에 넣은 다음 일을 하다가 마귀가 와서 하는 말이 '그 담배 한번 냄새 맡아봐라. 냄새 맡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래서 냄새를 맡아보니까 참 향기롭고 좋더래요. 그러자 마귀가 하는 말이 '불은 붙이지 말고 입에 갖다 대고 빨아 봐라. 참 좋을 것이다. 그건 죄가 아니다.' 그래서 입에 넣어 보니까 세상에 그렇게 맛이 좋을 수 없더랍니다. 밥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좋더랍니다. 그러고 난 다음 또 일이 바빠서 포켓에 넣어놓고 부지런히 일하다가 잊어버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마구간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좀 하는데 마귀가 또 하는 말이 '너 포켓에 담배 넣어놓은 것 있지? 그거 입에 한번 물고 불 한번 붙여봐라. 한 번만 붙여서 불 당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래서 담뱃불을 붙여서 한 두서너 번 당기니까 어찌나 맛이 좋은지 정신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 연기 가운데서 갑자기 하늘에서 흰 손이 내려오더니만 흰 손이 담배하고 합쳐서 입을 때려버리는데 그만 저쪽으로 나뒹굴어졌답니다. 온 입이 데고 넘어져서 바지가 다 찢어지고 그렇게 와서 뛰어 안방으로 들어와서 '아이구 하나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죄를 회개합니다.' 이래서 자기를 정결케 했다는 간증을 제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술취함과 방탕함과 도적질과 마약중독과 살인 같은 눈에 보이는 이러한 죄들을 회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 가슴속에 사랑이 불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사랑은 의와 거룩함을 좇을 때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하지 않고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믿음, 사랑, 거룩함 이것은 삼위일체로서 이것이 없이는 믿음의 생활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참여할 때 우리는 회개하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이 삼위일체가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고 사랑은 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어야 우리의 가슴속에 성령으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 거룩함은 삼위일체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으로 오늘 우리 모든 각자를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과연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느냐? 질문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믿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사랑 가운데 있느냐 알아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사랑이 생겨나지 않으면 내 마음속에 회개치 못한 죄가 있지 않느냐 생각해 보게 하여 주옵소서. 음행과 더러운 죄, 우상숭배, 내적 감정적인 죄, 내적 행동적인 죄들을 다 오늘 청산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