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by 삶의언어 posted Jun 12,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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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9-05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8rmn-0KQ-M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금년에는 우리 한국에 영남과 호남에 극심한 한해로 말미암아 대단히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농부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당국에서도 관정을 하는데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마침 때가 늦지 않게 비가 내려서 올해는 풍년을 구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과연 이와 같은 영적인 한발이 다가와 있지 않은가 이것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모여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도 그 교회가 가뭄이 들어서 영적인 은혜가 메말라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사라져버린지 오래되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성령의 단비가 내게는 내리지 않을까요? 왜 우리 교회는 아무리 예배를 봐도 마음을 깨뜨리고 큼울하게 하는 영적인 하나님의 은총과 임재하심이 내려오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해서 오늘 대답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보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라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의 생활 속에 화평함을 쫓아서 화평의 영 성령께서 임하시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에는 어느 곳에 가나 사랑과 화평이 운행을 합니다. 그러나 독한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미움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악령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는데 혹시 이것이 악령이 아닌지 분별을 해주십시오. 그 분별하는 것 아주 대단히 간단합니다. 왜? 하나님의 성령은 사랑과 화평의 영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마음에 화평의 역사가 일어나서 평안이 넘치면 이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마음에 독한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미움이 회오리바람처럼 쳐오고 마음속에 불안과 초조하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면 이것은 성령이 아니라 마귀가 그를 붙잡은 것입니다. 이르므로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 지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난 열매를 보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산지 악령의 역산지를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화평을 쫓아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여러분 화평이란 것은 가만히 내버려둔다 해서 화평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저주받은 세상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는 미움과 분노와 질투와 시기 살상이 마치 잡초처럼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잡초를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제초하지 아니하면 화평의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화평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준비해야될 조건들이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가슴속에 화평을 가져오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대하게 가정에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화평을 가져와야 돼요. 또 교회에 성도들이 모일 때 교회 안에 화평이 와야되고 우리의 직장에서 이웃과 화평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화평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리 개인 개인의 생활 속에서 최대 이해를 가지고 살려고 노력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탐심대로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삽니다. 두세 사람이 함께 우리가 사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인생은 혼자 살지는 않습니다. 한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 우리 집입니다. 교회도 우리 교횝니다. 나라도 우리 나랍니다. 하나님도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 개인의 의사대로만 내 욕심대로만 내 생각대로만 살겠다고 한다면은 이 사람은 어느곳에가나 분쟁을 일으키고 하루도 평안한 날을 가져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최대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해를 하려면 어떻게 요? 상대방을 알아야 이해를 하지 상대방을 알지 못하고 내 인간적으로 생각만 하고서 평론하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상당히 우리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소문에 저 사람은 나쁘다고 하더라. 소문에 이 사람은 나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많은 소문을 듣고 난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인상을 잔뜩 가지고 난 다음에 내가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이해를 할려면은 소문만 듣지 말고 언제나 이해는 상대방을 정확하게 알아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와 만나서 대화를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나서 대화를 해서 상대방을 올바르게 알 때 상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를 최대한도로 이해를 해야 화평을 가져올 수 있지 이것은 서로 이해도 못하고 서로 알지도 못하고 대화도 안하고 뜬소문만 가지고서 심판을 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 화평을 가져올 날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여러분 우리가 상대방을 알고 그리고 난 다음 이해를 하면 우리의 생활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동정을 할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동정이란 상대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느끼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위치를 느끼고 살아갈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 힘이 드는 것입니다만 이래야 화평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화평이란 것은 인내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은 인내의 주초 위에 서지 조그만 내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그만 성을 내고 심판하고 주먹을 휘두르면 절대로 화평은 가져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수많은 가정이 불화한 이유는 이와 같은 조건들을 구비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의 위치를 아내는 남편을 최대로 이해할려는 것입니다. 요사이 가장 중대한 문제는 부부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나서 서로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남편은 밤늦게 들어와서 자고 아침에 일찍이 나가버리고 부인은 혼자 집에 있게되거나 또 직장에 나가게되고 이래서 점점 가정이 하숙방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살면서도 상대를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를 모르고 아내가 남편을 모릅니다. 부모도 자식을 모르고 자식도 부모를 모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젭니다.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세계 속에서 너무나 사람들은 바삐 돌아가기 때문에 한 가정에 부부간 부모 자식간에 서로 상대를 알 수도 없고 서로 만나서 대화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서로 모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이해가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서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서로 만나서 서로 대화하므로 서로를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느껴볼수 있도록 서로 입장을 달리해서 늘 생각해야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내지 말고 오래 참고 견뎌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우리 나이를 먹은 세대를 향해서 세대차이가 있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 먹은 사람하고 같이 있을 수 없다고 반역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너무 바쁘기 때문에 나이 먹은 세대가 젊은 세대와 서로 만나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여러분 여러분께서 자녀들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학교만 보낸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과 자녀들은 구만리 장천으로 멀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녀들과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가 누군지 자식이 누군지 알아야만 서로 이해할 수가 있고 그리고 또 젊은이들의 입장에 서서 젊은이들의 기분을 이해해줘야 되고 젊은이는 나이 먹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되고 동정해 줘야 되고 서로서로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화평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닙니다. 여러분 불화를 가져오는 요소 중에 하나가 원수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악령이 들어가매 그 사위인 다윗을 죽일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군대를 동원하여 바로 자기 친딸의 남편인 자기의 사위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산으로 들로 굴로 따라 댕긴 것입니다. 악령이 임하기만 하면 사울 왕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져서 화평대신에 살기로 등등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오늘날도 악령이 들어오면 우리의 개인속에 가정에 교회에 불화를 가져오고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예배드리고 이 악령을 묶어버려야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불화를 가져오는 원수 귀신을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 환경에서 내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불화를 가져오는 악령은 물러갈찌어다 하고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화평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우리는 기도를 해야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점령하시고 성령은 우리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할 때 주님 직접 역사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응답하겠고 네게 크고 비밀한 일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화평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되었었을 때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할 수밖에 없을 때 그가 친히 화평의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가져온 장본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가져오고 우리의 양심에 화평을 가져오고 우리와 우리 이웃에 화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만유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화평이 다가오도록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에는 거룩함을 쫓아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화평을 쫓아서 화평 가운데 있으면 화평의 영인 성령이 우리와 같이 있지만은 또 우리는 거룩함을 쫓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93편 5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증거 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다시 말하면 주의 집은 바로 거룩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함이 있는 것에 주님께서 와서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이 필요할까요? 그 자격은 시편 15편 1절로 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며 주의 성찬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하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 장막에 나아가려면 이와 같은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도모한 우리들은 이제는 거룩함을 얻기 위해서 주의 장막과 성산에 올라가는 계단을 한계단 두계단 우리 밟아서 올라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첫째 계단을 우리 올라가십시다. 첫째 계단은 정직과 공의와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고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갈 수가 없고 거룩함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입었은 것입니다. 그는 법적으로 의롭다함을 입었었으나 실제로 우리 생활이 거룩케 되는 것은 ***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노력하고 애써서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지만은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의 상급을 받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거룩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따라서 여러분의 영광이 하늘에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장막과 성산에 올라가는 첫째 계단으로서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정직은 신용의 근본입니다. 정직을 잃어버리면 신용을 잃어버리고 신용을 잃어버리면 인격적인 파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얼마나 중요하면은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정직해서 신용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인격적인 파탄이 되고 사람들로부터 경원을 당합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신용을 잃어버리면 부인이 남편에게 신용을 잃어버리면 가정적인 파탄을 가져옵니다. 혹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용을 잃어버리면 부모가 무슨 말을 해도 자녀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오늘 세상 경쟁 사회 속에서 무엇이든지 우리 정직하지 아니하고 남을 속여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기피 인물이 되어서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나 국민으로서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데도 정직을 결여하면 그 사람은 기피인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도 신용하지 않습니다. 그를 신용하지 않으니깐 그 사람이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나요? 오늘날 사회는 신용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이 사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정직하게 행하여야 하나님이 우리를 신용해 주셔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하나님이 우리를 신용할 수 없으면 우리는 그때로부터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공의를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의라는 것은 평등사회의 기초인 것입니다. 이 사람을 두둔해주고 저 사람은 멸시하고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공의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가정에서 야곱이 이삭의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그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편애로 말미암아 공의가 가정에 행하여지지 아니하매 에서가 그 동생을 죽일려고 해서 바로 이삭의 가정에 크나큰 파탄이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부모가 자식들을 공의로 다스리지 아니하고 편애하면 그 가정에 크나큰 파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부자나 가난한자나 권력있는자나 권력이 없는 자나 잘난자나 못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 두지 말고 그들의 위치를 따라서 공의로 판단하고 공의로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다같이 모여서 다같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므로 교회에서 엄격하게 공의를 행하면서 예배를 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여기에 진실을 말해야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어찌나 거짓말이 많은지 좌우간 누가 무슨말을해도 저게 진실한 말인지 거짓말인지 우리가 언제나 깊이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여러분 이 진실이 오랜세월동안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어도 우리가 물건살 때 이게 가짜요 진짜요를 반드시 묻습니다. 진실이 없어지는 사회 속에는 여러분 이 세상에 무엇이든지 의심을 하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진리이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진실을 말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장막과 그 성산에 올라가는 첫째 계단은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며 진실을 말하므로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둘째 계단에 우리 올라가십시다.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가는 둘째 계단은 상소하지 아니하며 그 이웃에 행악하지 아니하고 훼방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너무나 많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왜 나는 성령이 충만하지 못할까? 왜 나는 기도가 안나올까? 왜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는 없을까? 그런 질문 할 때 여러분 가장 우리에게 흔한 죄가 바로 참소하고 행악하고 훼방하는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소란 것은 간악한 말로 남을 헐뜯어 없는 죄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윗사람에게 고해바치는 것을 참소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참소하는죄가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있는 것을 말하면 좋은데 있지도 않는 것을 거짓말로 만들어 가지고서 남을 헐뜯어 가지고서 어찌하든지 파탄에 이르게 하는 이 참소 이것은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욥을 참소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에도 말하기를 우리 형제를 밤낮 참소하는자가 마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있는 것을 말해서 이것을 수정하는 것은 좋지만은 남을 파괴하기 위해서 간악한 말로 헐뜯어서 없는 죄도 있게 만들어 가지고서 이것을 윗사람에게 고해서 파탄을 가져올려고 할 때 이것은 참소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죄를 우리가 철저히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악을 없애야 됩니다. 남을 망하게 할려고 이웃에게 행악을 행하는 것은 어쩌든지 이웃에 올무를 놓고 함정을 파서 이웃이 성공하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하도록 행악을 행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지 않습니까! 경쟁사회 속에서 어쩌든지 남보다 내가 나아지기 위해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아니하고 행악을 행하여 이웃을 파멸시키려는 이러한 일은 우리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훼방을 져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남이 잘해나가려는 것 어찌하던지 말로서 그렇지 않으면 행동으로서 방해해서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면 하늘나라가 확장되는 것으로 즐거워해 될 것인데 그만 시기와 분노가 가득해서 그 교회를 헐뜯고 교회를 훼방하고 교회가 망하도록 앞에다가 걸림돌을 갖다놓는일을 기독 교회 가운데서도 이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들 가운데서 오늘날 교회가 가장 하나님께 회개해야 될 것은 교회 교인들끼리 교회끼리 교파끼리 참소하고 행악하고 훼방하는 자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이 죄요 교인들 속에서 가장 뿌리를 박고있는 악마의 죄가 참소와 행악과 훼방의 죄인 것입니다. 이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아니하고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에 활발하게 일어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계단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고 서원을 변치 않는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셋째계단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망령된 자란 것은 언행이 비정상적이고 사고가 흐린 것입니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그런 생각과 그런 말과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 오십 육십이 되가지고서 가족을 버리고 이혼한다고 야단법석을 하는 망령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어제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그 자매가 울면서 그 편지를 써서 내게 그러했습니다. 우리 자식들이 하나는 장가를 들어서 살고 하나는 대학 졸업반에 있고 이제는 나이가 육십이 들었는데 우리 영감이 마음이 변해 가지고서 젊은 여자와 이혼을 나하고 하고 살려고 그럽니다. 맏아들이 와서 말리고 둘째 아들이 와서 말리고 내가 와서 아무리 사정을 해도 그는 이제 완전히 우리 가정을 떠나고 이혼할려고 그럽니다. 목사님 기도해서 이 마귀 좀 쫓아 주십시오. 그런 편지가 왔습니다. 육십에 망령을 했습니다. 망령을 해도 보통 망령을 한게 아냐.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영 비정상적인 생각을 할 때 이게 바로 망령인 것입니다. 이런 망령된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서 우리가 잘한다고 한다면 큰일납니다.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이 망령된 자가 망령을 못하도록 하는 것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는 것 하나님을 범사에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과 같이하고 이런 사람과 친구를 사귀며 또 나아가서 서원한 것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내게 손해가 갈지라도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렵고 다급할 때 쉽게 하나님께 서약해놓고 난 다음에 문제가 다 해결되고 편안하게 되면 하나님과 서약한걸 언제 했는 듯이 다 잊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차라리 서약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과 서약 해놓고 난 다음에 그 서약을 어기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신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어떠한 기도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 서약을 했으면 그 서약을 절대로 변함시키지 말아야 됩니다. 저는 이 교회를 지을 때 한참 어려울 때 그저 교회가 사는냐 죽느냐 할 때 매일같이 이 가운데 나와서 밤에 별들을 바라보고 저가 하나님께 서약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순복음 중앙교회를 세워주면 이 순복음 중앙교회는 전력을 기울여 세계 선교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얻어먹기만 했는데 이 순복음교회를 통해서 전세계 오대양 육대주에 영적인 양식을 나누어주는 선교를 하겠으니 이 교회 이룩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교회를 지어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교회 이 강단에 조용기가 목사로 서있는 이상 교회 의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께 서약한대로 선교하는 교회로 계속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서약한 것을 변화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넷째 계단을 올라가면 이제 하나님 보좌에 올라가는데 넷째 계단은 변리로 대금치 않고 뇌물을 받고 무죄 자를 해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변리로 대금치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변리란 말은 영어론 usury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아주 폭리 고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여러분 돈을 빌려주고 거기에 이식을 취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은행에도 돈을 빌려주고 우리가 이식을 취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사람에게는 한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달란트 주었는데 그들이 주인에게 와서 보고할 때 두달란트는 네달란트를 다섯달란트는 열달란트를 만들었었을 때 한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는 것 그대로 가져오니 주인이 말하기를 왜 이 돈을 이자 늘이는데 맡겨서 이자라도 받아서 가져오지 않았느냐! 이 악한 종을 내어쫓아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돈을 정당하게 빌려주고 정당한 가격으로 이자를 받는 것은 그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가난한 것을 약점으로 잡아서 고리로 폭리로 변리할 때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뇌물을 받고 판단을 굽힌다는 것은 이건 말할 필요없지요. 정당하게 판단을 해야 되는데 강한 자에게 뇌물을 받고 무지한 약한 자를 죄있다고 해서 그를 곤욕을 줄 때 이것은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흐리하고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모독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주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가로막힌 담 즉 다시 말하면 화평치 못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죄를 모두다 회개하고 청산하고 나면 그 다음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이 터져 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이 봇물처럼 넘쳐 나서 여러분 개인 영혼과 가정과 교회에 가득 차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므로 말미암아 주안에서 다가오는 그 놀라운 믿음 소망 사랑 기쁨 평안으로 가득찬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사옵나이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행하는 자들이 되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그렇게 홍수처럼 밀어올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불화가 있고 우리에게 거룩함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참예해서 우리 죄사함과 우리의 가난과 실패 질병과 저주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 위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먹고 마셔들이고 이 기초 위에 설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 속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겨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화평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거룩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말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참소하는 것을 회개하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며 훼방한 죄를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망령든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서약한 자는 손해가 나도 이루게 하여 주시옵시고 폭리 나아가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변리로 대금치 말고 뇌물을 받고 판단을 굽히는 일을 하지 않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에 올라가는 우리 자격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