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권세 있는 신앙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권세 있는 사람과 힘이 센 사람은 다릅니다. 권세는 지위에 따라 오는 것이고 힘은 체력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본다면 교통순경은 육체적으로는 연약해서 힘이 없지만 정부가 주는 교통순경이 갖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덤프트럭은 힘은 굉장히 세지만 아주 체력이 약한 교통순경이 호루라기를 불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정지해야 합니다. 이는 힘은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권세와 힘은 똑같은 능력이지만 권세는 힘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 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계신데 이탈리아의 백부장, 요즘으로 말하면 대위정도 되는 사람이 주님께 나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구했습니다. '내 종이 중풍으로 심히 앓고 고생하오니 와서 도와주소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리라"그러자 백부장은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 지붕 밑에 오시는 것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 한 마디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나도 로마 시저 황제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이요 그 권세에 의지하여 나도 권세가 있으므로 나 밑의 병졸에게 이리로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며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감탄하셨습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이방인처럼 권세에 대한 이해를 갖고 믿음을 가진 자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인간의 믿음이란 것은 그 배후에 권세가 있어야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권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면 믿음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우주를 다스리고 변화시키시는 절대 권세가 있으므로 그 권세자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 성도들이 권세를 잘 이해하면 위대한 신앙생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첫째로 권세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권세의 근원은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고 지금도 그 하나님의 손위에 온 세계와 만유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도 하나님의 권세 밖에서는 움직여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한 원수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동등 되려고 하다가 쫓겨나 루시퍼를 따르는 사자들과 함께 마귀와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동등 되고자 하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 하나님을 반역했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서 타락한 그 후손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세에서 벗어나 인본주의, 인간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귀도 사람도 하나님의 권세에서 벗어낫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정기간동안 그들 마음대로 자행자족 하도록 허락해 놓으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기한이 차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 권세로 처참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귀와 그 사자는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 버림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심판을 받아 영원히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께 출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절로 2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니함이 없나니 이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권세는 올바르든 그르든 간에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의지할 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는 권세뿐 아니라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악한 권세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악의 권세가 우리를 멸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4장 17절에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 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 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 던져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나라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신 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요 이 세상 모든 권세와 권세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주장하셔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권세의 자리에 앉게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시며 지극히 천한 자를 일으켜 권세 있는 자리에 앉게도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권세라고 말하는 것의 모든 근원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선한 권세도 악한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면 우리 크리스천의 권세는 무엇일까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을까요?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자마자 권세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조용기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조용기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제 아들 희재, 사무엘 형제가 우리 집에서 제가 다스리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듯이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총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태어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누릴 수 있는 권세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권세 있는 위치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하신 큰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순복음 중앙교회 제 2부 예배와 와서 앉아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볼 때 우리는 이미 하늘로 승천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엣 그 보좌 우편에 예수님과 함께 앉아있는 자리에 있으니 우리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 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위는 마귀의 그것 보다 높으며 모든 천군과 천사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자녀로서 하나님의 생명이요 성품이신 영생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고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을 우리 속에 모시고있어서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권세 있는 자리에 앉아있지만 그러나 이 권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리하사는 차원에서 주신 것입니다. 이 권세는 우리 속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권세가 아니라 권리자의 신분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부장의 고백을 귀기울여 잘 들어봐야 합니다. 그는 '저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남의 수하에 있어서 로마 시저황제의 권세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 권세를 이어받아 그 권세를 활용할 수 있어서 내 밑에 있는 병졸보고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하에 있는 권세입니다. 우리의 권세는 자생적으로 생겨서 우리 맘대로 쓸 수 있는 권세가 아닙니다. 내가 절대 주권자이신 우리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 목숨을 다하여 절대 순종하고 의지하고 믿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고 자행자적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려고 해봤자 이 사람은 권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성경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스케바의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대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라가'하고 외치니 그 사람 속에 있던 귀신이 외쳐 말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지만 도대체 너는 누구냐'하고는 덤벼들어서 그들의 옷을 찢고 할켜 상처를 입히니 그들이 혼비백산하여 벌거벗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주권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순복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행자, 관리자로서 권세를 가지고 있었고 마귀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예수도 구주로 믿지 않은 스케바의 대제사장의 아들들은 권세 있는 체 행동했지만 마귀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그 권세를 능력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의 불순종을 모두 자백한 후 영과 마음과 몸을 다해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중심으로 살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뜻을 집행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당당히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세를 어떻게 사용할까요? 권세는 위엄 있게 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권세를 사용하신 모습을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에 파도가 일어서 배가 물 속으로 완전히 침몰될 위기에 있었을 때 제자들이 깨우니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권세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 파도야 잠잠하라" 그 권세 있는 말에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그 명령을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합니까?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무덤의 문을 옮겨놓자 예수님은 그 썩은 냄새가 나는 무덤 앞에서 권세 있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가 온 몸에 수의를 감은 채 걸어나왔습니다.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건에 쳐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세 있게 명령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권세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간구하고 빌고 우는 신앙밖에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일에도 늘 울고 빌었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은 그렇게 빌고 울지 않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권세를 안 후에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권세 있는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권세 있는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할 때는 원수 마귀를 향해서도 당당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병을 향해서도 '내가 네게 명하노니 예수이름으로 이 몸에서 떠나가라'고 권세 있게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권세를 우리는 사용해야 합니다. 이 권세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기 생활 가운데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승리와 풍요와 부요의 삶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신자들이 권세를 상실하고 자신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조차 찾아 누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위대한 권세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크리스천이 행사할 수 있는 권세의 한계를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절대 주권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세 앞에 순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한해 주신 그 범위 안에서 우리의 권세를 사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권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심으로 갚을 주고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구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주신 그 내에서 우리는 권세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골랐을 때 부모님이 그 물건값을 지불해 주시면 우리는 권세 있고 당당하게 그 물건을 가지고 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대속해 주신 그 한도 내에서 우리는 단단한 권세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주님께서는 주셨을까요?
먼저 주님은 죄를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 창세기 4장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가 너무 강해서 저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리고 죄가 너를 사로잡으려고 간절히 소원할 것이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원래부터 죄를 다스리고 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플러스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과를 다 도말 하셨을 뿐 아니라 죄의 권세를 당신의 몸으로 격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녀들로서 죄를 다스린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가 다스림을 받는 사람 앞에서 '제발 명령 좀 들어줘요, 빕니다'라고 한다면 그는 권세자가 아니라 거지입니다. 우리가 권세자이면 강하고 담대하게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탐욕이 죄야 물러가라, 음란의 죄야 내게서 떠나가라, 방종의 죄야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우리가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 앞에서 벌벌 떨고만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로 19절에 보면 "70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데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원수 마귀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막강한 천사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으론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에게 '나가주세요'하고 사정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귀신아 묶음을 받아라, 떠나가라'하고 단호히 권세 있게 명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는 또 병을 고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다 청산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병을 보고 무릎을 꿇어 쩔쩔 맬 필요가 없습니다.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이미 나음을 입었다,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되어 버렸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병은 내 몸에서 묶음을 놓아라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라'하고 권세 있게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 하에서 순종하며 살고 있는 이상 권세 있게 병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 나아가서 우리는 저주를 물리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셔서 아담과 하와가 초래한 가시와 엉겅퀴를 피를 흘려 청산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모든 저주로부터 우리를 대가를 지불하고 속량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값으로 산 바 되었으며 저주의 세계에서 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안 이상 저주가 우리에게 폭풍우처럼 밀려올 때 숙명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그것에 복종하여 벌벌 떨지 말고 저주를 향해 정면으로 나가서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저주는 묶음을 받으라 우리 가족, 사업체에서 묶음을 받으라 너희 모든 저주는 이 시간에 모두 물러가고 떠나갈지어다' 하고 단호히 저주를 물리치는 권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을 속량해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사망이 와도 겁나지 않습니다. 바울 선생은 '사망아 너의 속이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를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올 테면 와 보라'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권세 있게 사망에 대처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다가와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을 헐어버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권세 있게 죽음을 향하여 '내가 나간다. 길을 비켜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간다. 사망아, 음부야, 무덤아 길을 비켜라'하며 큰소리치며 눈을 감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죽음이 다가올 때 죽음 앞에서 벌벌 기고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씩은 죽음을 맞이할 터인즉 가슴을 펴고 죽음을 향해 '올 테면 와 보라 길을 비켜라 나는 천국으로 간다'고 외치는 권세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나아가서 성경에 있는 그 많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은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고 말씀을 듣고 연구하고 공부해서 나를 위해서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약 7 천여 가지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고 있는데 이는 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가 권세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내가 확실히 알았으면 말씀에 서서 우리는 권세 있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며 우리의 위치가 어떠한 가는 당당한 권세를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에 주님은 감탄하셨습니다. 믿음은 권세를 통해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까요? 그리스도 안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한정지어주신 범위에서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권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 진실로 순종하고 믿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 중심으로 살고 주님과 함께 서면 그러면 예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것과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권세를 알고 활용하게 될 때 이로써 영혼이 잘되게 됩니다. 저주를 제해 버리고 범사가 잘되게 됩니다. 마귀의 권세, 질병을 묶어 쫓아버리고 강건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 있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권세를 사용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의 빛과 영광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예수 안에서 우리는 권세 있는 자들이니 권세 있는 신앙생활, 권세 있는 기도, 권세 있는 말,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든 성도들이 자기의 위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깨닫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권세와 능력을 갖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