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꿈과 승리의 생활

by 삶의언어 posted Jun 27,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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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6-27
오늘의 성구 마태뵥음 14장 22절로 3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DXGe_HCWvbA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꿈과 성공적인 생활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광야에 나가셔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난 다음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배불리 먹게 하시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다음 곧장 주님께서는 군중을 해산해서 보내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신속히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도록 독촉하시고 난 다음에 주님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어두워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힘차게 노를 저어서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왔을 때에 바람이 점점 거칠어집니다. 하늘의 별들이 구름에 가려지고 칠흑 같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슬려서 파도가 치므로 배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서 자꾸만 파도에 밀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래서 제자들은 대단히 마음도 괴롭고 몸도 괴로웠습니다. 그러자 이제 밤 사경쯤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안과 초조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희미하게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어오는 물체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자말자 그만 기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친 바다에 파도가 치는데 바다 위에 유령이 걸어오는 것을 보게 되면 그 배는 파산한다는 것을 동서고금을 통해서 배를 타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 배는 들림 없이 파산한다. 죽음의 사자가 우리를 데리러 온다." 그래서 부르짖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말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분명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 말을 듣자말자 말했습니다. "주시어든 나로 물 위로 오라 하게 하소서." 예수께서 오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오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힘껏 바라보았습니다. 그 얼굴과 그 모습 전체를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바라보면서 정신 없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그 마음에 생각도 예수님으로 꽉 점령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마음을 점령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잠시동안에 바다도 잊어버리고 바람도 잊어버렸습니다. 파도도 잊었습니다. 그냥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으로 마음속이 꽉 들어차고 믿음도 예수님으로 들어차고 그냥 배에서 일어나서 행동으로 옮기어 배에서 나가서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진 광풍이 힘차게 불어와서 베드로를 치니 베드로가 그만 휘청했습니다. 그리고 물보라가 온 몸을 덮어씌우고 눈엔 짠물이 들어갔습니다. 온 몸 전체가 물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속에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갈릴리의 바람과 파도가 그의 생각을 점령하자 그만 불안과 공포가 마치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이 그 심령을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금이 저려오고 온 간담이 저려오고 "나는 이제 빠져 죽는구나!" 생각 하자말자 그는 물 속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 속에 몸이 푹 빠져 들어갈 때 "주여, 나를 살리소서. 내가 죽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번개같이 오셔서 베드로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똑같은 갈릴리 바다 위에 똑같은 칠흑 같은 밤, 똑같은 풍랑 이는 곳에 똑같은 베드로가 잠시 전에는 물 위로 유유히 걷더니만 잠시 후에는 그가 물에 빠졌다. 그것은 베드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파도가 달리 친 것도 아니고 바다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시간이 달라진 것도 아닌 것입니다. 똑같은 갈릴리 바다에 똑같은 풍랑이 이는 곳에 똑같은 베드로인데 무엇이 달라져서 조금 전엔 물 위로 걷다가 조금 후엔 물 속에 빠지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의 생애속에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게도 하고 물 속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인생의 파도 위를 걸어 갈 수 있게도 하고 인생의 파도에 빠지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여기에서 바라봄의 법칙이 있습니다. 꿈의 법칙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안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물과 파도와 바람과 칠흑 같이 어두운 밤바다만 바라보고 그들의 그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차고 그래서 한 사람도 배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베드로보고 오라고 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힘껏 바라보자 그의 온 생각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보던지 그 바라보는 대상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 버립니다. 여러분께서 힘차게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의 생각은 그 바라보는 대상이 생각을 점령해 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예수님으로 그 생각이 꽉 점령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과 함께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점령되어 버렸습니다. 행동도 그를 따라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그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인격을 점령한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바라보는 대상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믿음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실패를 바라보고 있으면 실패의 생각으로 꽉 들어차게 되고 실패한다는 불안과 공포로 채워지고 그리고 행동도 실패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을 힘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생각이 성공으로 점령되고 그 다음은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도 생겨나고 그 발걸음도 성공을 향하여 옮겨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힘차게 바라보는 그 대상이 여러분을 점령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있을 동안에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거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속에서 능력이 나왔습니다. 예수님 쪽에서 능력이 나와서 베드로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베드로의 손을 잡고 걸음마 시키는 어머니같이 베드로를 붙잡아 주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힘으로 걸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 속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와서 베드로를 붙잡아 물 위로 걷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라보고 있으면 그 바라보는 대상으로 능력이 나와서 그곳으로 끌려갑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끌고 갑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은 놀랍고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여러분이 위대한 인생을 살수도 있고 처참한 낭패와 실망을 다하는 인생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무엇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느냐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능력을 내어 주어서 여러분을 붙잡고 그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로부터 성령의 능력이 나와서 베드로를 붙잡아 주어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꿈과 환상은 성령님의 팔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팔을 본적이 있습니까? 성령님의 팔을 본적이 없지요? 그러나 젊은이에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겠다고 하신 성령께서는 여러분께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과 환상은 바로 성령님의 팔이 그 꿈과 환상을 통해서 여러분을 붙잡아서 능력으로 그 꿈과 환상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보자 말자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져서 그의 생각이 불안과 공포로 마음에 꽉 들어차고 그리고 행동으로 오금이 저려오고 불안과 초조가 온 몸 전체를 꽉 잡자 그는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바람과 파도와 물에 빨질 것을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마귀의 능력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물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든지 그 바라보는 것이 종국적으로 여러분의 운명을 귀착시키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선악과가 그 생각을 꽉 점령하고 그 마음속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와서 선악과를 행동으로 옮겨 따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고 있을 동안에 선악과에서 악마의 신이 나왔습니다. 잘못된 꿈과 환상속에는 악마의 신이 나옵니다. 악마의 신이 나와서 아담과 하와를 부여잡고서 선악과로 잡아당긴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이 선악과로 끌려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은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돌아보지 말고 도망을 치라고 했는데 롯의 아내는 고개를 돌려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소돔과 고모라 성은 롯의 아내 속의 생각을 점령하고 그 마음에 소원을 점령했고 그 행동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그 몸에 담고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이 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힘이 나와서 그를 끌어 당겨 가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나왔을 지라도 다른 곳에 가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하셔서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신 것입니다. 오늘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바라보는가 그 바라봄을 통해서 인생을 실패하고 낭패하기도 하고 인생을 위대하게 성공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 이 바라봄의 법칙이란 놀라운 법칙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절망과 질병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을 우리가 바라보고 살 것이냐? 여러분께서 오랫동안 교회에 왔다갔다하면서 교회 뜰을 발로 차고 다닌다고 해서 그러한 의식과 형식이 위대한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파도 이는 바다를 걸어오시는데 예수 믿는 제자들이라고 해서 물에 안 빠진다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칙을 사용할 때만 물 위를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서 능력이 나와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인생을 살까요?
첫째로, 우리는 용서의 주님을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창을 받아 옆구리가 찢어지고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여러분과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힘차게 바라보고 있는 이상 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우리의 생각을 점령하고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으셨다는 믿음이 채워지고 그 다음 행동으로 우리가 나와서 회개하게 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힘차게 바라보고 있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용서와 우리를 의롭게 하는 능력이 십자가에서 나와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점점 십자가로 가까이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능으로 의롭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용서와 의와 거룩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우리가 바라보아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예수님으로 꽉 들어차게 되고 계속 바라보게 되면 그 속에서 능력이 나옵니다. 바라보는 대상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와서 우리를 예수께 이끌어주고 거룩과 성결로 살수 있게 해주어 날로 날로 그 방향과 목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용서의 주를 바라보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유의 주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사람들이 심신에 얼마나 많은 병이 들어있습니까? 나는 이번에 좋은 간증을 하나 들었습니다. 내가 저번에 교도에 갔을 때 암으로 죽어 가는 부인 한 분이 와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었는데 목사님께서 간증하시기를 그 부인이 암에서 깨끗이 나았고 그 다음에 주야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는지 작년 한해동안에 열 명을 주께로 인도했다. 일본에서 평신도가 열 명을 주께로 인도했다는 것은 여러분, 개벽할 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아주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는 주님으로서 그는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며 그의 채찍에 맞은 등허리는 지금까지 아직 그대로 채찍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담당하시고 짊어지신 그 예수님으로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채찍에 맞고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짊어지고 가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바라보면 치료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우리의 심령속에 치료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행동으로 건강함을 가져오는 행동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가 치료자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꿈을 꾸고 있으면 그 꿈에서 성령의 신이 나옵니다. 나와서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줍니다. 이 질병과 연약이 많은 세상에서 질병과 연약의 물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매일 매일 건강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내가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그 대상은 반드시 신이 나와서 그 대상이 여러분과 나를 잡아 그 대상으로 이끌어주는 신비하고 기이한 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건강하고 병 낫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그 모습을 항상 마음속에 힘차게 바라보십시오. 그 대상에서 건강을 주는 힘이 나오고 건강으로 걸어가는 힘이 나와서 건강으로 승리의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무엇을 바라봐야 될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사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신 주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낭패와 실망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너무나 많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안 믿는 세계는 말할 필요가 없고 믿는 세계에서도 그 많은 사람들이 가시와 엉겅퀴에 허덕이는 것을 볼 때 탄식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시관을 그 머리에 쓰시고 우리의 저주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인처럼 신앙이 연약해서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교인들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분명히 네 눈에 보이거든 너희가 어찌하여 또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했는데 예수께서 분명히 우리 저주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왜 우리가 인생의 가시 채와 엉겅퀴에 휘감기어 그 길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매일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나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신 것을 바라보고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나의 가시와 엉겅퀴를 짊어지고 가셨다. 나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셨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내 마음속에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신념이 생기고 나의 행동 자체가 저주에서 짓눌린 비열하고 열등의식이 꽉 들어차고 좌절된 행동을 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고 씩씩한 발걸음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와 함께 내가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게 되면 그 예수님 속에서 축복의 손길이 나와서 우리를 붙잡아서 저주와 낭패의 세계 위에서 걸어서 건너오게 만들어 주시고 점점 축복의 목표로 끌어 당겨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바라봐야 될 것은 부활의 주를 바라봐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무덤을 철폐하시고 부활하셔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부활의 주를 우리가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생각도 부활의 생각으로 꽉 들어차고 우리의 믿음도 죽음 저 건너편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믿음으로 꽉 들어차며 우리의 행동도 세상의 것으로 탐닉하지 아니하고 주를 향하여 걸어갈 수 있게 되며 그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동적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능력이 나와서 죽음의 공포를 다 이기고 죽음 위로 걸어오게 만들어 주시며 천국을 향해서 유유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여러분께서 여러 가지 그 대속의 면에서 힘차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바라보는 모습대로 예수님의 능력이 나와서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가나안을 하락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아 고개를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너 바라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동서남북을 바라볼 때 그 땅이 그 생각을 점령하고 그 마음속에 그 땅을 소유할 믿음이 생겨나고 그 땅을 얻으려고 행동이 나오고 그 다음 그 땅을 항상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꿈과 환상을 통하여서 성령의 능력인 팔이 나타나서 아브라함을 붙잡아 가나안 땅으로 점점 소유하도록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가나안 땅은 성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이 땅에 내어 던져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하나님께서 당연한 상속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손에 들고 있는 이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은 여러분과 나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요. 이것은 우리의 가나안인 것입니다. 이 가나안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동서남북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땅. 우리의 가나안에 하나님의 어떠한 약속이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이 약속을 성경에서 알아서 그래서 이 약속을 꿈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모습을 우리가 기도하면서 힘차게 바라보고 그러고 그 약속 얻기를 간절히 뜨거운 마음으로 소원하면서 내 뱃속에서 요동치 않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나아가면 꿈과 환상은 반드시 여러분의 생각을 점령하고 믿음을 점령하고 행동을 점령할 뿐만 아니라 꿈과 환상속에서는 눈에 안보이는 위대한 능력이 반드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구가 아무 끈에 묶여있지 않으면서도 이 우주 공간에 둥실 떠있는 것처럼 눈에 안보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묶여있는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우리가 꿈과 환상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소원하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있으면 꿈과 환상에서 능력이 나타나서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서 도저히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으로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 주시고 희한하게 자꾸만 그 꿈과 환상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 길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꿈과 환상은 성령님의 팔이라고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꿈과 환상입니다.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은 바로 그 꿈과 환상이 성령의 팔이기 때문에 그 꿈과 환상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아 가지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는 항상 내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꿈과 환상이란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이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를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엄청난 꿈과 환상을 주이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도 없었습니다. 기선도 비행기도 없었습니다. 라디오도 TV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직 꿈과 환상을 넣어주고 가셨습니다. 땅 끝까지 꿈꾸어라. 너희 동네만 꿈꾸지 말라. 예루살렘만 꿈꾸면 안된다. 유대만 꿈꾸면 안된다. 사마리아만 꿈꾸면 안된다. 세계 끝까지 꿈꾸고 있으라 너희가 할 수 있든 없든 꿈을 꾸어라. 꿈을 꾸면 꿈에서 팔이 나와서 그 사람으로 할 수 있는 힘으로 이끌어주고 그 꿈을 향해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땅 끝까지를 꿈을 꾸었고 복음은 땅 끝까지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중앙교회도 우리 한국과 우리 동북 동남아와 세계를 복음화 하겠다고 꿈을 꾸고 있는데 꿈에서 팔이 나와서 우리를 초인 적인 능력으로 점점 이끌어 갑니다. 온 한국 땅으로 온 일본으로 동북 동남아로 북남미로 구라파로 세계로 그 꿈에서 힘이 나와서 우리를 붙잡아 점점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무엇을 할 수 없을 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발 앞에 무릎꿇고 주님을 믿고서 꿈을 꿀 수는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이라면 글 사람은 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 말씀을 읽어봄으로 말미암아 말씀 안에서 귀하고 위대한 약속을 통해서 우리의 더 나은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속에 믿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꿈을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꾸십시오. 아름다운 꿈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이것을 뜨거운 소원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서 이것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집중적으로 꿈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분 생애속에 꿈이 와서 여러분을 점령해 버리고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시켜 버리고 믿음을 변화시켜 버리고 행동을 변화시켜 버리고 이 꿈이 여러분을 점령해서 여러분을 붙잡고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꿈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기적적으로 이끌어 주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역사가 나타나서 결국에는 내 꿈이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이 세상에 새로운 세계와 상조를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다 새로운 꿈을 꾸시게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꿈과 환상을 저버린 사람은 인생을 버린 사람입니다. 꿈과 환상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산출해 내고 새로운 창조를 생산해 내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꿈과 환상은 우리가 꿈을 가진 것이 아니라 꿈과 환상이 우리를 점령해 버리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믿음과 행동을 변화시켜 버리고 꿈과 환상이 우리를 붙잡아서 이끌어 주고 꿈과 환상의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위대한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올바른 꿈과 환상은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고 잘못된 꿈과 환상은 마귀에게 이끌어 줍니다. 올바른 꿈과 환상은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주고 나쁜 꿈과 환상은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마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원하옵고 기도하오니 우리 성도님 모두다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용서의 꿈과 환상을 신유의 꿈과 환상을 저주를 청산하는 꿈과 환상을 부활하신 주를 바라보고 영생을 얻는 꿈과 환상을 얻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경 속에 주옥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위대한 승리의 꿈과 환상이 가슴에 부풀어 오른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