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보훈의 전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복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여기 5부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중에도 복받기를 마다하고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좀 잘못된 사람일 것입니다. 강단에서는 저 자신도 실제로 복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결사적으로 몇 번씩 예배를 보는 것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복을 더 주실까 생각하는 믿음에서 더 기를 쓰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 치고 복을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복이란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구비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지 아무에게나 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복된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복된 환경을 찾아가지만은 복된 환경에 들어가 앉혀놓아도 복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그곳에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쫓겨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 보십시오. 사백 삼십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서 소위 성경에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지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복을 누리고 살았나요? 가나안의 복지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과 사신을 섬기고 신앙에서 떨어지는 복없는 무자격자가 되자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바벨론 사람을 보내어서 포로로 잡아가서 처참하게 종살이 하고 말은 것입니다. 복을 누리지 못했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에 들어가서도 복을 못 누린 것입니다. 복이란 것은 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은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있는 환경이 아니고 복있는 나라가 아니고 복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면은 그 사람 어느 곳에 갔다 놓아도 복은 그 사람을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환경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면 그 환경은 어느곳에가나 복받게 됩니다. 이것은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에 기록한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복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마다 어떻게 그 환경이 변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듣고 내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의 떡과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그러므로 이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 되어서 이 사람이 움직이는 곳마다 복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복지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이 복인이 되십시오. 어떻게 내가 복인이 될수있느냐 그 길을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팔복을 통하여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되면 그 자격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어 있는 사실을 주님께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금새와 내세 복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데 이 중에 네 가지를 오늘 이 시간에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말했는데 천국이 여러분 가슴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생활에 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천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는데 여러분 생활 속에 의가 있고 평강이 있고 희락이 있으며 성령 안에서 천국이 임하면 죄가 용서함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고침 받고 저주가 물러가고 생명으로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와 같이 천국이 임하기를 원하는데 그 조건이 심령이 가난해야 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릇에도 물이 가득하면 더 이상 다른 물을 부어줄수 없습니다. 그 물을 부어내고 다른 물을 부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에 쓸데없는 쓰레기 더미로 꽉 들어차 있으면 우리 마음에 다른 것을 부어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을 받을 수 없는 쓰레기로 형언할 수 없을만침 곽 들어차 있습니다. 이 쓰레기를 제끼기 전에는 마음이 가난한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 쓰레기는 뭐냐? 그 쓰레기의 가장 처음이 인본주의 사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인간중심의 문화를 형성합니다. 특별히 중세 문예부흥 이후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던져 내어버리고 인간중심의 세계를 만들었었습니다. 인간을 신격화하는 그래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들어오자 인간은 이제는 예배란 없고 믿음도 없고 인간의 이성과 자유만 가지고서 살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세기 20세기 오늘날 우리 시대에 와서는 사람들은 이제 과학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로 떨어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물질만 있으면 무신론적인 인본주의 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이제는 사람 중심으로 과학과 물질만 가지고 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사람의 실상이 어떤지 압니까? 이런 쓰레기로 꽉 들어찬 세상 사람들은 실존적인 절망에 처해있습니다. 실존의 절망이란 자책과 정죄에 부딪혀 해결방책이 없고 허무와 무의미에 허우적이면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고 죽음과 절대 무로서 박살이 나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건너편에 문제를 해결하수없는 절망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이 세대를 일컬어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인본주의적인 무신론의 쓰레기를 가슴속에 꽉 들어 채워놓고 난 다음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이 능히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귀를 기울여 보면 전쟁과 전쟁 소문이 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미움과 좌절감과 살상과 절망이 꽉 들어찬 세상 속에서 인간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인본주의 적인 잘못된 사상을 다 회개해서 쏟아 내어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들이고 하나님 아버지 중심으로 신본주의로 들어오기 전에는 그 심령이 절대로 가난하게 되지를 않습니다. 그 다음 또 쓰레기 더미가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자만심입니다. 자기의 과대평가입니다. 자기가 잘나지도 못했는데 자기 이상으로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별로 알지도 못하는데 자기 이상으로 더 많이 아는 줄로 자기를 과대평가 합니다. 자기를 과대평가 하는 교만자가 되면은 그 다음 권위에 대한 도전을 합니다. 교만한 자녀는 부모에게 도전하고 교만한 사회인들은 자기의 상사들을 도전하고 국가에 도전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사탄이 된 것은 바로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원래 루시퍼는 하나님이 지은 천사장중의 하나였는데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루시퍼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 악대를 주장하는 그와 같은 높은 지위의 천사였었습니다. 그러나 이 천사가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아름다움에 도취되어서 자기를 과대평가해서 자기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마귀가 되어서 처참하게 내어 쫓겼었습니다. 그 사실이 이사야서 14장 12절로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요 즉 루시퍼요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 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성경은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한 마음은 멸망의 앞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 사람이 벌써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그로 말미암아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벌써 멸망을 자초하고 있으며 넘어짐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만한 것을 깨뜨려서 산산조각을 내고 주님의 그발앞에 엎드려야 마음이 가난한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쓰레기 더미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음란과 방탕과 육체적인 향락을 정신없이 추구하며 이 쓰레기로 마음속에 가득 채워 놓은 사람 안목의 정욕으로 세상의 화려한 것 세상의 명예로운 것만 찾는 사람 이 세상 자랑으로 권력의 눈이 어두워서 정치적 권력만 얻기 위해서 정신이 없이 빠져있는 사람들 이와 같은 것은 여러분 마음속에 쓰레기로 점령을 하고 세속적인 탐심이 꽉 들어차면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요한1서 2장 16절로 17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 이 세상과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했는데 마음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있는 것을 토해내야 되겠는데 인본주의적인 그러한 잘못된 삶을 토해내야 되고 자기의 교만을 토해내야 되고 세속적인 탐심과 정욕을 토해내야 되고 이것을 다 토해내고 마음이 텅 비어서 가난하게 될 때 그 자리에 예수께서 구주로 들어오시고 성령이 들어오시면 거기에 하나님의 천국이 임하여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국이 들어온 증거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들어오면 죄가 사라지고 마귀의 흑암이 떠나갑니다. 질병이 고치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저주가 물러가고 삶에 위대한 성공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천국을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시길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회개란 속에 있는 찌꺼기를 다 토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가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될 때 천국은 우리에게 임하게 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그 마음이 깨어져서 겸허하면 겸허할수록 그는 더깊이 천국을 심화시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깨드린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의 교만을 인본주의 교만 세속적인 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아무 천국의 역사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혹은 주님께서 큰 풍파를 통해서 시련을 통해서 혹은 질고를 통해서 사람을 깨뜨려서 회개하고 마음이 가난하게 되게 만들어서 주님께서 천국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애통할까요? 여러분 사람들은 벌써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중에서 잉태되고 죄악으로 태어나고 죄를 먹고 마시고 머리털같이 많은 죄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죄를 애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죄를 타당화 하고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을 굳히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고 자복하면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으며 영생과 성령의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교회는 왜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느냐? 너희 교회는 전부 죄인들만 모였느냐? 여러분 죄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성경말씀에 보면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회개하게 될 때 용서와 구원과 성령 충만의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애통함이 없는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는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적이고 의식적이고 형식적이고 철학적이고 지식적인 신앙을 아무리 가지고 교회 왔다 갔다 해도 그 마음속에 하늘나라의 위대한 위로는 오지 않습니다. 위대한 위로란 애통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 마음을 애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세속을 쫓아 사는 것을 애통하고 통탄히 여기고 이것을 자복하고 이것을 던져버리고 주님 앞에 나올 때 그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평강과 위로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을 애통하게 여겨야 발전합니다. 자기의 무지를 애통해 합니다. 나는 요사이 젊은 청년 학생들을 향해 볼 때 내 마음이 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젊고 좋은 시절에 오늘날만큼 여러분 환경이 좋은 때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옛날에 벌써 중학교 시절부터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학교 교실이란 구경하지 못하고 춘하추동 사시절 소나무 밑에서 진흙 창에 이리 쫓겨가고 저리 쫓겨가면서 거기에서 공부했으니 무슨 공부가 됩니까! 그런데 요사이 이렇게 시설도 좋고 환경도 좋은데 내가 좀더 배우고 연구하고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애통한 마음이 있어 나의 ** 애통함이 있어 주야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될 것인데 요사이 신문 보면 데모하기에 바빠요. 학교에서 데모해서 뭐합니까? 지금 데모해서 대안이 뭡니까? 우리 국민들 전체가 안정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지금 안정이 깨어지면 우리 국민 전체의 경제가 산산조각이 나고 그러고 나면은 월남사태가 나고 맙니다. 우리 국가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아주 중병을 앓은 사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겨우 목숨을 끊은 사람을 멱살을 잡고 이렇게 흔들어 버리면 죽어 버립니다. 오늘날 여러분 학생이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내가 더나은 조국과 민족을 건설하겠다면은 지금 이 시간에 불철주야로 연구하고 공부하여서 자기 스스로가 아는 사람 실력자가 되어야 되겠는데 그것을 제껴놓고난 다음에 삐라나 뿌리고 데모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다방대학이나 하고 정말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우리는 청년시절에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배가고파서요. 이리 저리 밤낮으로 일하고 댕기면서도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했다가는 돌대가리 되면은 안되겠으니깐 무엇이든지 배워야 되겠다. 그래서 그저 밤이나 낮이나 책을 옆에 끼는 것을 잊지 않았고 머리맡에 책을 안 두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밥먹을때도 책을 옆에 두고서 먹지 않으면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건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가 애통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장차 소망이 없고 그 사람은 버림받았습니다. 소년은 *** 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년은 자기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신속히 늙어지고 학문이란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가 않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시산한 고통을 통해서 인고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젊은 시절에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서 애쓰고 힘쓰지 아니하면 언제 실력을 쌓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또 사람이 자기의 인격적인 부정을 애통하지 않을 때 그 사람 발전이 없습니다. 술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사기 치고 세속으로 있으면서 마음에 애통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이대로가 좋으니 이대로 살겠다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요 지옥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 가운데 있으면서도 애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요 내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오랜 세월 전엡니다. 내게 찾아왔어요. 신앙 상담하러 왔는데 너무 화장을 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앞에 와서 말이 목사님 나는 창녀입니다. 나는 밤마다 낮마다 몸을 팔고 사는 창년데 여의도에 놀러왔다가 하도 사람들이 많이 이 교회로 들어가기에 거 뭐 구경거리가 있는가 따라왔다가 나는 목사님이 말씀에 가슴이 천근의 매로서 때림 같이 해서 부서졌습니다. 나는 그날 울고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서 그 길로도 돌아간 곳이 창녀 굴입니다. 나는 갈데가 없습니다. 나는 창녀굴을 떠나면 살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밤낮으로 웁니다. 몸을 팔면서도 나는 웁니다 목사님 아침에도 울고 저녁에도 웁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언제 나를 창녀의 굴에서 끌어내어 주시옵소서. 언제 내 몸을 팔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주야로 통곡을 하고 울고있습니다. 목사님 나를 살려주십시오. 날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몸을 팔고 사는 창녀이지만은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해 주었었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위로함 받을 처소가 생깁니다. 점점 그가 돈을 있는 돈을 모아 기지고서 자기의 몸값을 다 지불하고 난 다음에 창녀굴에서 나왔었습니다. 내가 주선을 해 가지고서 모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해주었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부인이 돼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목사 부인이 돼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전혀 과거를 모릅니다. 나는 알고 있지요. 그는 애통하면서 울었습니다. 그 애통함이 하나님께서 결과적으로 위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오늘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현재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이고 파괴적인 삶을 살더라도 마음에 애통함이 있어서 부르짖고 있으면은 하나님께서 그 철문을 깨뜨리고 그 철고랑을 끊고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와 거룩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삶의 궁핍을 애통할 때 그가 발전이 있습니다. 판자집에 거적대기를 깔고도 뭐 이것이 좋사오니 하면 그 팔자 그대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의 환경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근검절약하고 정직 성실 근면 충성으로 말미암아 열심히 일합니다. 애통하면서 일합니다. 애통하면서 좀더 나은 삶을 향하여 열심히 전진하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축복해 주어서 나중에 큰 위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회 성장인 안된다고요? 저는 교회성장에 관한 강의를 늘 하고있지만은 왜 교회 성장이 안됩니까? 죄인이 있는 곳에 왜 교회 성장이 안된단말이 무슨 말입니까? 교회 성장이 안 되는 이유는 그 교회 목사나 교인들이 심령구원을 위한 애통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말 죄인을 주께로 인도해서 구원하고 한사람이라도 천국의 숫자를 많게 하겠다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으면 목사가 하나님 제단에서 애통할 것이요 거기에 장로 집사들이 애통할 것이요 교인들이 애통해서 하나님께 금식하며 철야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교회가 왜 부흥이 안되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겠다" 했는데 금식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몇 년전인가? 우리 교회 여기를 처음 개척했었을 때 켄터키의 루이벨에 있는 라저스 목사님이 부부간에 우리 교회 성장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 교회 성장을 배우러 왔을 때 저는 그때 교회 개척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거의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도 없어 식사만 한번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최자실 목사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그 부부가 찾아가서 최목사님 어떻게 하면은 교회 성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하니깐 우리 최목사님이 뭐 영어를 알아야 대답을 해주지. 그래 가지고 그분이 아주 손발을 다 저어서 How church grow grow grow how? how? 그러니깐 최목사님이 있다가 손을 내밀어 가지고서 배를 툭툭 치면서 fast fast fast pray pray pray 그랬습니다. 금식하고 금식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기도하라. 그래서 외국사람이 나는 교회 성장에 대한 비결을 물었지 누구한테 금식기도 할라 그랬냐해서 또 이해를 잘못했나 해서 또 물었습니다. How church grow how? 하니깐엔 또 최목사님이 배를 툭툭 치면서 fast fast fast pray pray pray 그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래 그는 루이빌로 돌아가 가지고서 그때 교인 이백명 이었는데 하! 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자기하고 성도들이 모여서 철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혼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주님께 부르짖어 철야기도 하기 시작하자 일년내 이백명의 교인이 이천명으로 변화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천명의 교인을 얻고 난 다음에 야 금식좀 해보자 그래서 교회 재직들이 모여 가지고서 교회성장을 하면서 금식을 하면서 부르짖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칠주간만에 사천명의 교인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만 여명의 교인을 가진 교회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때 우리 교회올 때 교인 이백명 데리고 왔습니다. 이백명 목회 목사로서 왔었더랬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며 마음속에 애통함이 없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어느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애통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발전을 그치고 그 결과 결실의 위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한평생 이렇게 잘살아 보자. 잘살지도 못하고 위로도 없습니다. 애통하는 그 사람이 매일같이 매일같이 발전했습니다.
그 다음 셋째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여기에 하늘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 안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천당만 가는 복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했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틀립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여러분 이 세상에 온유한 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강퍅하고 사기 잘 치고 권모 술수 잘하고 반항적이고 반역적인 사람이 잘사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여기에 도대체 성경에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는데 온유하다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잘 길들임을 받은 마음을 말하는데 이거 사실일까요? 진짜로 이것일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지식이요 판단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 39절로 41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가라" 도대체 오늘날 세상에 이처럼 살아 가지고서 살 사람이 누구요? 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진짜로 온유한 사람 이 세상에서 땅을 기업으로 소유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역사와 자연의 가르침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연에도 보십시다. 이 세상의 잡초는 아주 무성하지만은 그러나 잡초는 쉬 시듭니다. 이 세상에 정말 돌보아 주어서 잘자라는 것은 곡물입니다. 곡물은 사람이 그 뒤에서 두는데 곡물은 대개 온유한 식물이고 그리고 잡초는 무성하게 막 자라지만은 이거는 온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돌봄을 받느냐? 온유한 곡식을 생산하는 식물들이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여러분 짐승도 보십시오. 범이나 사자나 이리나 사나운 짐승은 대낮에는 댕기지 못하고 어두운 밤길에 그것도 칭칭 절벽이나 깊은 계곡 사나운 산에서 살지 낮은 들이나 평지에는 살지 못합니다. 자기의 성격이 사나울수록 그거는 사는 처소도 사나운 산과 계곡에서 삽니다. 그러나 온유한 짐승인 집토끼나 그렇지 않으면 저 너구리나 뭐 이 노루나 이런 것을 보면 야산에서 삽니다. 그리고 평지에서 삽니다. 더구나 여러분 어린 양같은 것 보십시오. 양은 뿔도 없고 뜯을 이빨도 없고 할퀼 발톱도 없고 어느 짐승이 와도 그대로 들어먹을 수밖에 없는데 양은 제일 안전합니다. 왜? 양이 가장 온유하기 때문에 양은 바로 사람이 돌보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뒤에서 돌보아주는 자가 있지만은 사나운 자는 뒤에서 돌보아주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온유한 사람은 이 세상 사람 보기에 부끄러 아주 불쌍한 사람같이 보이지만은 그 사람은 뒤에서 돕는 자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놓으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는데 여호와께서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어요? 사나운 사람은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온유한 사람 뒤에는 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줄줄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결국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이 도움으로 그 사람이 결국 이 땅을 상속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37편 7절로 11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게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따라 말씀하세요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즐기리로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화평을 가지고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 주먹으로 살아야 된다. 악으로 살아야 된다. 반항으로 살아야 된다. 반역을 하고 살아야 된다. 이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자기에게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드럽고 따뜻하며 마음을 잘 길들인 삶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같이 하여 주셔서 마치 그 사람은 해가 동녘에서 떠서 점점 점점 높아 중천에 떠오는 것처럼 매일같이 그 앞길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잠언서에 보면은 마음이 겸비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보응은 물질의 축복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의로움이 없는 일체의 인간생활은 행복이 없습니다. 재산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부정 축재하여 의로움이 없는 부정축재에는 그 재산에 배부름이 없습니다. 재산 많이 모아 왔지만은 자기에게 배부르지 않아요. 불안 초조 절망 나중에 그로 말미암아 패망이 다가옵니다. 의가 없는 부정한 권력을 얻어 놓아도 그 부정한 권력 때문에 그가 행복하지 못하는 것은 나중에 그 권력으로 자기가 파멸되고 맙니다. 의가 없는 부정의 방법의 생활로서 쾌락을 얻으면 일시적으로 쾌락이 있는 것 같으니 그 뒤에는 무서운 파멸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의란 것은 소금과 같아요. 음식에 소금 쳐야 맛있지요. 소금을 쳐야 썩지 않지요. 의가 없는 재물은 아무 맛도 없으며 부패하고 의가 없는 권력도 부패하고 의가 없는 생활도 부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 여러분 사람이 살 때 의로움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그런 소리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여러분 이 세상에 의로움을 동반하지 않은 가정도 행복하지 못하고 의로움이 없는 재산도 여러분 포기 안됩니다. 의로움이 없는 권력도 절대로 그것이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의가 동반해야 그것이 자기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아니면 배가 안 불러집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져도 늘 목마르고 늘 허기증이 납니다. 당뇨병 환자와 갔습니다. 당뇨병 환자 자꾸 먹어도 자꾸 먹어도 당이 다 오줌으로 나가기 때문에 자꾸 헛배만 부르고 늘 먹고 싶습니다. 당뇨병 환자같이 오늘날 이 세상 사람이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목숨을 바치고 추구해도 마음에 배부르지 않아 늘 마음에 허기증과 공허증에 빠져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왜 자살했나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상을 타고 그리고 명예와 지위가 있는데 왜 사냥총으로 자살했나요? 허기증에 걸렸기 때문에 육체파 여배우라고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마릴린 먼로가 왜 자살했나요? 사람들 보기에 육체파 여배우로 그렇게 존안과 숭앙을 받았지만은 그 마음속에 허기증에 걸렸기 때문에 더 살수가 없어서 자살한 것입니다. 여러분 수가성 우물가에 여자가 남자를 다섯이나 갈아제꼈으니 보통 여자 아닙니다. 보통 남자가 여자를 다섯씩 갈아제꼈다면 그럴싸한데 이건 여자가 남자를 다섯씩 갈아제꼈으니깐 굉장히 미모가 있었을 것이고 굉장히 돈도 있었을 것이고 가문도 굉장했기에 남자를 마음대로 왔다가 발길로 차버리고 또 얻었다가 또 차버리고 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있었지 그 수가성 여인 보통 여자 아닙니다. 그런데 그 수가성 여자가 여러분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제꼈으니 밥그릇을 다섯 번 갈아제껴 그 우물물을 다섯 번 갈아제껴 마셨으니 그만하면 행복이 올 것 같은데 다섯 번째 갈아제끼고 여섯 번째 남편하고 살아도 그에게는 행복이 없었습니다. 허기증이 들어있었습니다. 절망에 처해있었습니다. 사람보기가 싫었습니다. 대낮에 물동이 들고 우물가에 물 길러 왔을 때 예수께서 만나서 말했습니다. 네가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니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셔야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의가 없는 의가 없는 모든 것은 아무리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에 여러분 율법으로서 의롭다함을 입을 육체가 없습니다. 모두다 율법 앞에 죄인이기 때문에 의가 없어요. 그 때문에 이 세상에 행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만족이 없어요. 의가 없는 곳에 만족이 있을 수가 있어요?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돌봐주기 위해서 이젠 율법이 아닌 다른 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모두 다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흘려 청산하고 말은 것입니다. 나의 죄 너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다 갚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악을 다 사하고 용서를 통해서 이젠 믿는 자에게 의로움을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행위로서 얻지 못하는 의를 이제는 예수를 통해서 용서로서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의로움을 얻으면 비로서 배가 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비로서 학문을해도 배가 부르고 돈을 벌어도 배가 부르고 정치를 해도 배가 부르고 생활을 해도 배가 부르고 다시 말하면 인생의 만족함이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삶에는 만족함이 없어요. 땅끝까지 가도 만족함이 없어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의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으로 만족을 얻을려고 남편을 다섯씩 갈아제껴도 만족하지 못하더니 나중에 예수를 만나자 말자 물동이 내버려 두고 사마리아 시내로 들어가서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면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의가 있고 의가 배부르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여기 말한 것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 비로서 내 영혼에 허기증이 사라지고 영혼에 기갈이 사라지고 영혼이 배불러진다. 예수 믿으면 삶의 만족이 온다. 예수 없이 아무리 허덕이고 방황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나는 이십오년 목회생활에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돈 많은 사람 없는 사람 어디 누구 안만나본 사람 있나요? 예수 없이 허기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 내가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 없이 돈은 더 많은 돈을 모을려고 하고 권력은 더 많은 권력을 얻을려고 하고 쾌락은 더 많은 쾌락을 얻을려고 하고 눈은 보아 다함이 없고 귀는 들어 다함이 없고 물질과 권력을 소유해서 다함이 없습니다. 늘 허기증에 걸려요. 당뇨병 환자와 같아요. 나중엔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되면은 배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냥 배가 불러요. 그냥 어떤 환경에도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보신 곳이 하늘나라 돼요. 이래서 적으나 크나 복을 받게 돼요. 행복해져요. 사람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행복이 가장 위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많이 가져도 행복하지 못한데 적은 것으로서도 행복하니 그 사람이 인생을 멋있게 성공하고 살은 것입니다. 행복은 우연이나 미신적인 복술로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인간이 마음가짐이 정당할 때 당연히 다가오는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다스려져서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처지가 되어야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의를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조건만 우리가 다 이루어도 우리의 생활에 형언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본주의 교만 그리고 모든 탐욕을 다 내리 쏟아 버리고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천국을 받아들이십시다. 이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실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될 때 그럴 때 우리 속에 천국이 임하게 하십시다. 우리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고 우리의 무지를 애통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인격적인 부족을 애통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못사는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고 우리 교회의 부흥되게 하는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고 주님께 부르짖어 애통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힘썼으면 주께서 거기에 응답해서 위로를 해주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온유하여 부드럽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마음에 길들임을 잘해서 믿음과 순종으로 나가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으면 바보같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짓밟힐 것 같지만은 그러나 그러한 사람의 뒤에는 빽이 있어 온유한 사람 뒤에는 세상도 빽이 있지만은 하나님의 빽이 있어 하나님이 돌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고 화평을 누리게 돼요.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의를 찾다가 의의 장본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믿게되고 모시게 되고 의지하게 되면 예수께서 우리 의가 되어 우리 속에 와 있으면 배가 부르게 돼요. 잘먹어도 못 먹어도 잘입어도 못 입어도 높아도 낮아도 남녀노유 빈부귀천에 어느 곳에 처해도 배가 불러요.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일체의 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왜? 의를 얻으면 배가 부르게 돼요. 이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저의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부합니다. 왜? 나는 이 성경말씀대로 이와 같은 자격을 말씀을 구비하고 나니깐 행복하게 돼요. 이 세상에 부귀영화 공명 명예 이것은 분토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파도와 같아서 올 때 몰려왔다가 갈 때는 일시에 몰려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은 나중에 바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영원한 삶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회개하고 빈 마음이 되고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참여하십시다. 이것은 이십세기 현장에서 예수를 체험합니다. 혈루병 앓은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았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와 바울의 앞치마도 귀신이 쫓겨나갔었습니다. 예수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현장에서 체험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천국의 역사와 영광이 나타나지 아니할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하여 죄가 물러가고 질병이 물러가고 사탄의 끈이 부러지고 저주가 무너지고 지옥이 닫혀버리고 천국이 열리는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받는 사람의 자격을 가르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교회 왔다 갔다만 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시고 말씀을 한 귀로 듣고 잃어버리는 자 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오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구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난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아버지 회개하고 깨어져 가난한 마음 주시옵소서. 온유한 마음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애통하는 마음 주시옵소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서는 마음 주시옵소서. 그래서 복인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