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가정

by 삶의언어 posted Jun 11,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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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절기
예배드린 날 1984-05-13
오늘의 성구 에베소서 5장 22절로 3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eRQkPlzVZjU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가정"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이혼이라는 말을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가끔 이혼한 사람을 보면 무슨 중대한 죄를 범한 못난이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가정을 파괴하는 보통으로 알게 되고 이혼한 사람조차도 이혼한 사실을 그저 감기정도 앓고 난 사람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젊은이들 사이에도 이혼을 죄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사회 속에 세우신 가장 오래된 제도이며 인류 생존과 번영과 행복의 복음자리가 된 것입니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 없이 개인의 행복이나 마음의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또한 집요하게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정을 파괴하면 하나님이 교회에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수록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원만하고 행복하며 하나님 영광으로 넘치는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가정은 부부의 만남으로 시작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의 심리적으로 다르고 육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격이 한 집에서 서로 만나 한 지붕 밑에서 같은 식사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조화 있고 행동한 삶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서로 대단한 노력의 결과로써 이 만남이 행복한 가정으로써 결론을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부부의 만남을 유난하게 기름쳐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수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인격적인 자존심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남편과 아내로써 일평생을 같이 살자고 언약을 맺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은 남편으로써 인격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아내로써 자기 인격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마지막 포로로써 가장 귀한 것이 자기 자존심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불구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끼치면 그 관계가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그렇게 긴밀하다고 하더라도 부모 자식 사이라도 자존심에 상처가 가게되면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남남끼리 모인 부부가운데서 자존심을 짓밟고 상처를 입히면 그 부부 관계는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부부관계는 서로 상호간에 자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열등의식의 아픈 곳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열등의식, 신체가 혹은 병이 들어 있으면 거기에 대한 열등의식, 미모에 대한 열등의식, 가정에 대한 열등의식,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최근에 기울어지게 결혼한 가정이 처참한 전경에 이른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상당한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했습니다. 부인은 우리 한국에서 소히 말하는 제 이류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들이 서로 처음에는 육정에 끌려서 결혼을 했지만 가정생활에서 그 부인의 마음속에 기울어진 결혼을 했다는 열등의식이 그 심정을 정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래서 어린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고, 셋 날 때까지 그 부인은 영혼 속에 열등의식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고통 당하다가 갑자기 결혼한지 십년만에 미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완전히 정신이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남편을 못살게 괴롭게 합니다. 당신은 그래 인류대학을 나오고 외국까지 유학을 했다. 잘났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무시해. 그렇다고 해서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사는 것을 불행하게 여기지. 부끄럽게 여기지. 남편이 저에게 와서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사랑하고 위로하고 나는 학위 같은 것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가슴속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열등의식이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속에 교육이나 신체나 미모나 가정이나 사회적인 위치 중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열등의식에 손가락을 대어서 상처를 입히면 그는 인격에 거대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자존심이 상해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부부 사이에는 금이 가고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할 때 너무 기울어진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너무 기울어진 결혼을 해 놓으면 반드시 그 뒤에 열등의식이 늘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비록 그렇게 결혼을 했다고 할지라도 부부간에 서로 격려하고 자신을 갔게 해 주어야지 결단코 그 열등의식 상처 입은 못난 처소에 손을 데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좋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서로 의견이 충돌되고 싸움이 일어나면 반드시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상호간에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 약점을 들추게 되면 인격적이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심이 깨어지면 원수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다시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깊은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감정이나 무관심하다는 느낌을 마음 속에 품게 되면 마음이 삐뚤어지게 되고 매사에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소외된다고 생각할 때 그 마음속에 우울한 인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이한 가정에 살면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은 상호간에 무시를 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내가 무시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무시했다고 느낄만한 그런 징조를 보여서는 안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올 때라도 부인이 아무리 바쁜 일 하더라도 빨리 나가서 여보 이제 오십니까. 아무리 중요한 전화를 받고 있더라도 전화를 내려 놓고 남편에게 이제 오십니까 하고 윗옷이라도 받아 주던가. 그것 십 년, 이십 년, 살아가면서 무엇 때문에 그런가 그것은 남편에게 무시당한 감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같이 살면서 나를 혹시 무시하지 않느냐. 나를 등한시 아니하느냐. 거기에 대한 날카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 내가 등한시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은 그때로부터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상하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절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한다는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도 언제나 남편에게 정성스럽게 그런 무시되는 감정이 등한시되는 감정이 되는 감정이 없도록 해야겠고, 남편도 아내에게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하고서 서로서로 돌봐주면 소외된 우울한 인격이 되지 않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 명랑한 기분이 사라지고 서로 서먹서먹해지고 우울하게 되는 것은 서로 무시하고 멸시되었다는 감정이 생겨날 때 이와 같은 상처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 상처 입었을 때 깊은 애정으로 감싸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생활에서 좌절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좌절되면 그때는 자악을 합니다. 나 같은 사람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래서 늦게도 자고 일찍 일어기도 하고 또는 해가 뜰 때까지 잘 때도 있고 혹은 밥을 먹다가 안 먹다가 안 믿는 사람은 술 취하고 그래서 심한 자악을 합니다. 부인들은 화장도 하지 않고 몸을 간수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좌절감으로써 자악증에 빠졌을 때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부부간의 관계는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 때 버림받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때는 깊은 애정과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조건 감싸주고 사랑으로 붙들어 주는 이것이 부부인 것입니다. 남이야 우리가 좌절당하고 버림받은 심정을 당했을 때 그 몸을 밟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부부로써 같이 한 가정에 산다는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좌절되고 낙심되고 버림받은 감정으로 자악증에 빠져서 몸부림 칠 때 그때 무한한 애정과 동정과 사랑으로 품어주는 이것이 부부관계가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이 있어야 부부의 만남이 성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그 부부간에 얼마나 이런 일에 관해서 깊이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서 애를 쓰느냐. 안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로 우연히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상대방의 성격을 최대한대로 용납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수많은 가정이 성격 차이를 극복 못하고 파괴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격은 순화는 되어도 근본적으로 변화는 안됩니다. 일단 여러분 결혼을 했으면 이제는 성격이 어떻게 되었든 수 성격을 순화시켜서 살아야지 그 성격 전체를 뿌리 채 변화되기를 저 사람의 성격을 내 구미에 맞도록 남편은 아내를 구박해서 남편성격에 맞도록 하려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압력을 가해서 그 성격이 아내 성격으로 맞도록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내실 때 벌써 사람에게 다양 다종의 성격을 허락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그릇을 사람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더러운 성격을 그리스도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순화시킬 수 있지만 성격의 근본 바탕은 변화지 않아 성격이 급한 사람, 성격이 느릿느릿한 사람, 꼼꼼한 사람, 대범한 사람, 이런 성격 자체는 절대로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서로 만나서 조화 있게 살기 위해서는 이해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은 나와 같이 않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저 사람은 저 사람으로써의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저렇게 살수밖에 없다는 이해를 마음속에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심이 없이 살면은 언제나 충돌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동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인생을 같이 살면서 서로서로 불쌍히 여기지 않고는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남편이 아내에 성격에 맞지 않고 아내가 남편의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이것을 결혼하고 살면은 자기의 십자가라고 받아드리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십자가다. 그러므로 내가 일단 결혼했으니 내 아내가 나의 십자가다. 남편이 나의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벗으려고 하지말고 매달려서 죽어야 하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여러분 100%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천당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를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이 100%로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습니다. 학교 공부에도 아쉬움이 있고 부모님에게도 아쉬움이 있고 자식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말할 필요도 없이 남남끼리 모인 부부간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더 사랑해주지 않느냐. 좀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느냐. 좀더 돌봐주지 않느냐. 좀더 잘나고 유능했으면 좋겠다. 이런 아쉬움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아쉬움이 없으면 곧 죽을 줄 아십시오. 왜냐하면 부부간에 아쉬움이 없이 너무 찰싹 맞는 부부는 얼마 있지 않아서 그 중 한 사람이 죽더라구요. 그러므로 서로 아쉬움이 있는 것이 안 죽고 서로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이 있으니까 감사하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부부간에 같이 살면은 감사하는 삶을 늘 마음속에 가져야 됩니다. 못난 것은 눈을 지그시 감아버리고 잘난 것을 보고서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대해서도 가정의 못난 것 제겨놓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을 헤아려 보면서 감사를 해야 됩니다. 자식들 간에도 감사하고 남편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도 감사해야 됩니다. 못난 것을 일일이 들추어내면은 어느 누구든지 불행해지지 아니 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난 것 감사할 일을 생각해서 언제나 감사하고 살면은 아쉬움이 있는 가운데도 서로서로 이해하고 동정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성경에 제시한 부부의 룰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경기를 할 때도 한 팀이 아무리 경기를 잘한다고 해도 룰을 어겨버리면 그 경기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법을 따라 경기해야지 법을 버리고서 아무리 경기를 잘해봤자 그 경기는 무효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특출하게 잘나서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세워 놓은 성경의 룰을 어기면 안됩니다. 왜 우주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가정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인생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룰은 하나님이 법칙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법대로 따라서 하면 너희가 행복하겠다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문명이 발달되었다고 인권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그 법을 짓밟아버리고 무시하고 나가려고 할 때 벌써 하나님의 법을 어기므로 말미암아 축복에서 떨어져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은 가정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성경에 말씀하기를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굉장히 엄한 명령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것은 마치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것과 동등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룰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은 남존여비의 사상이다. 요사이 같이 과학이 발달되고 인권이 신장된 가운데서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렇게 말하고 싶거든 자기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나 이 룰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가정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난 다음 해를 주시고 비를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난 다음 행복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내들이 언제나 알아야 할 것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는 아내로써의 돕는 배필로써의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뒤에서 남편에게 잘 말로써 지혜를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판단력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뒤에서 남편을 도와준 다음에는 뒤에서 부인이 복종할 것입니다. 마침 주님 말씀을 듣고 복종하듯이 남편을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고 했으니 신체가 머리를 복종하지 않으면 중풍병 환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오늘날 중풍병환자가 된 집이 많아요. 가정이 절룸발이 된 이런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것은 왜냐.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머리되는 남편을 제켜버리고 부인이 앞섰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보다 탁월하게 머리도 좋고 판단력이 잘났다고 하더라도 룰은 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어길 수가 없어요. 제가 아무리 장거리 잘 뛴다고 해서 마라톤을 하는데 여기에서 부산으로 뛴다고 할 때 나는 부산으로 안 뛰고 평양으로 뛴다고 하면 평양에 가서 포로로 잡히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부인이 아무리 잘났다고 할지라도 한가정의 룰은 룰입니다. 남편이 못난 남편도 그 가정에 머리입니다. 잘났으면 뒤에서 운전을 잘해주면 됩니다. 머리가 잘 움직이도록 손발이 도와서 머리를 잘 움직이도록 잘 도와주고 난 다음에 그 머리 받들어서 살아야지 머리 나쁘다고 해서 잘라버리면 몸통도 같이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난 머리는 수족이 합쳐서 잘 받들어 주고 잘난 머리는 수족이 안 받들어 줘도 수족을 잘 명령해서 잘 이끌어가서 좋고 여하간 남편이 한 가정의 머리 된 것은 여러분 육체의 머리가 몸 전체를 지배한 것과 같기 때문에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룰은 어기고 나면은 가정이 불행합니다. 나는 수많은 가정을 보았습니다. 부인이 수장이 된 가정을 보니까 남편이 좌절감에 빠져서 술 먹고 방탕하고 자식들은 순종하지 않고 가정이 콩가루된 집안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의 머리로써 룰에 서게 되면 또 아내가 남편의 머리를 받들면 자녀들도 순종하고 가정의 질서가 서고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경은 또 말하기를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으며 거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해가 많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그 책임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므로 그 피로써 교회를 정하게 하신 것 같이 이런 헌신적인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처럼 오늘날 남편들이 그 헌신적인 사람으로 그 아내들의 그 약점과 결점을 모두 다 자기 것으로 알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너는 왜 이런 결점이 있나. 너는 왜 나쁘나. 하지말고 그 결점과 약점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머리이니까 몸에 상처 나면 머리가 가서 전부 치료해 줘야 합니다. 이러므로 부인의 못난 것을 나의 책임으로 짊어지고 난 다음에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워하게 되면 나도 불행하게 되고 상대방도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일단 결혼하고 나면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 결혼하기 전에 눈을 크게 뜨고 좋은 사람을 찾아서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눈을 크게 떠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지그시 감고 결점이 보이지 않도록 해서 여러분이 살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좋은 점만 자꾸 찾고 미운 점을 찾지 말아야 되고 그러고 난 다음 아내를 양육해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려야지요. 자기 아내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머리 노릇하려면 머리는 그 몸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살려야 됩니다. 그것은 있는 힘을 다해서 그렇다고 해서 호화찬란하게 사치를 시키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편은 있는 힘을 다해서 해야지 자기 아내도 돌보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서 술이나 먹고 방탕해서 자기 스스로 사치하고 음란한 이러한 남편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머리 중에도 암이 걸린 머리입니다. 이러므로 그 처자를 잘 양육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압박에서 위험에서 여러 가지 고난에서 보호하고 영광스러운 아내로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동기간 앞에서나 사회 앞에서 자랑스럽게 영광스러운 아내를 만들어 주라. 멸시하고 구박하고 천대해 가지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아주 비참할 정도의 아내로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가정에 풍파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광스럽게 만들어 놓으면 여러분 영광이 임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정말로 영광스러움을 느끼고 그 마음 속에 그 영광을 느끼게 되면 그 남편과 하나가 되고 함께 한 팀이 되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 하나님이 제시한 룰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4절에 보면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 가정에 있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 의무인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 어머니 살아있을 동안 순종해야 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가끔 말하는 것을 반발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희는 아버지가 벌어준 돈으로 밥 먹고 교육을 받고 아버지 집에서 사는 동안 순종할 의무가 있다. 너희들이 나중에 시집, 장가 나가서 독립된 가정을 가지면 그 때는 네가 아버지이니까 그때는 내 명령을 순종할 필요는 없지만 이 가정에서는 내가 머리다. 내가 가장이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내 명령에 순종하라. 제가 그런 말을 늘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이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일본에 가서 보니까 텔레비전을 말미암아 아들은 이것을 보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저것을 보려고 한다. 그러자 아들이 야구방망이로 아버지 머리를 때려 죽여버렸습니다. 세상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려고 하다가 아들이 야구 방망이로 아버지를 쳐 죽여버리고 학교 선생들을 학생들이 때려서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그래서야 선생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칩니까. 이러한 젊은이의 폭행이 우리 한국사회에도 오늘날 점점 성해져 가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성경 적인 교훈이 가정에 잘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저 한탕으로 돈 잘 벌어라. 일확천금을 하라. 돈이나 많이 벌면 이것이 성공이다. 이래서 물질 만능주의 황금 만능주의 쾌락 만능주의 교육이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들에게 교양과 훈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물이 돌을 파헤치듯이 부모들이 계속해서 가르쳐준 교훈이 자녀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가지 위해서는 항상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상호간에 매력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시들어진 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모두다 활짝 피고 싱싱한 꽃들을 좋아하지 시들어 져서 축 늘어진 꽃을 좋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심리적으로 병이 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가정과 결혼생활이 항상 싱싱하고 새로워야지 가정이 시들어져 버리면 그때로부터 남편이나 아내가 가정생활에 취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한 부인이 호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지 삼년만에 남편이 이혼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왜 이러냐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자매님 반드시 사람이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권태기가 다가온다. 처음에는 육정으로 끌려서 결혼을 하면 그 다음에는 인정이 생겨야 하고 인정이 지나고 나서 나이가 들고나면 그 다음 동정으로 살아야 한다. 육정이 지나면 인정이 오고 인정이 지나면 동정이 오는데 이제는 육정은 끝나고 한 삼년 살았으니 인정으로 살아야 하는데 당신이 환경을 새롭게 하지 않고 결혼하고 이미 호적에 넣었으니 이대로 있어도 되겠지 하면 권태가 다가와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남자가 권태가 생겼으니 이혼하자고 하는 것은 보통 남자들이 다반사로 한번씩 말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당신의 가정을 늘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영적으로 시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뭐 예수 잘 믿지 않아도 좋다. 교회 안가도 좋고 성경도 안 일고 하나님께도 신령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좋다. 신앙이 타락하면 벌써 신앙적으로 타락하고 그리고 권태가 다가옵니다. 이러므로 더 열심히 해서 교회도 출석하고 성경도 읽고 구역예배도 출석하고 그리고 영적으로 성실해서 언제나 가정의 하나님의 불의가 충만하여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 정신적으로 늘 발전해야 된다. 늘 마음속에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교육도 받고 세미나에도 가고 그래서 이 세상의 발전과 함께 정신적으로 늘 보조를 같이 함으로 말미암아 남편과 아내와의 대화 속에 늘 새로움이 넘쳐야 된다. 이런 새로움이 있어야 매력을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고 난 다음 환경적 육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비록 늙어가지만 늙어 갈수록 머리도 더 만지고 화장도 더 깨끗이 하고 옷도 더 찬란하고 색깔 있는 것을 입어라. 이래서 육체적으로 늘 매력을 느끼고 신선하도록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오랫동안 자꾸 집에서 저녁 일찍 들어오지 아니하고 친구들과 이리 저리 늘 늦게 있다가 밤늦게 들어온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어떻게 하면 환경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 집에 벽난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집에 벽난로를 만들어서 장작을 가지고 와서 장작을 쌓아 놓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 놓고 난 다음 그 앞에 의자를 두고 커피를 끓어 놓고 로맨틱하게 만들어 놓으니까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남편이 일찍 들어와서 그 벽난로 앞에서 그 장작을 때고 난 다음에 팔짱을 끼고서 책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가 있어서 회사만 끝마치면 집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부인이 집에 새롭게 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낡은 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워져야 합니다.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하고 정신적으로 새로워져야 하고 육체와 환경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은 부부간에 서로 애를 쓰고 힘을 써서 새롭게 하지 않고 그대로 먼지 묻고 때묻은 대로 내버려 놓으면 권태에 빠지고 사람들은 서로 서로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방황하게 되므로 가정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어느 한 사람 노력으로 인해서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히 행복이 굴러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부부 상호간에 이와 같이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써 아름다운 열매를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 속에 한 사람도 불행한 가정을 만들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불안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삽니다. 불안전한 남자 불안전한 여자들이 모여서 세운 가정은 불안전한 가정인 것입니다. 이 불안전한 가정을 안전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그리스도밖엔 없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변화여 포도주로 변화게 하여서 불안전한 결혼식이 완전한 결혼식이 되게 해 주신 것은 예수님이시옵나이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에 들어오셔서 우리 불안전한 가정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부부가 서로 서로 마음에 결심을 하고 애를 쓰고 힘을 써서 좋은 가정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할 때 가정에서 아름다운 행복의 꽃이 핀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