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성도와 삶의 참된 순서

by 삶의언어 posted Jun 16,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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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4-08-19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33장 3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Q7MioO6vJV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성도와 삶의 참된 순서"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같은 일생을 살아가면서도 그 살아가는 방향, 선택에 따라서 그 삶의 과정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져 버리고 맙니다. 성경 중에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다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지역도 같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로 살았고 다른 사람은 거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오직 세속적인 방향으로만 살았고 거지는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연락하며 살았고 거지는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이 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서 불꽃 가운데서 번민하게 되었고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서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진실로 올바른 삶의 방향과 순서를 따라서 살아야만 합니다. 저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 속에서 세 가지 형태의 삶의 방향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삶의 방향을 여러분과 함께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수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면 수평이 있는가 하면 수직적인 것이 있습니다. 오직 수직적인 삶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직적인 삶이란 많은 종교인들이 택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만 올바르게 가지면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내 자신만 구원을 받고 나만 축복 받으면 되었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삶의 자세 이 수직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종교인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중세의 수도원운동이나 오늘날 한국의 극단적인 기도원운동이 그 부류에 속합니다. 남이야 죽든 살든 내가 상관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인 관계 하나만 잘 가지면 된다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자기 유익만 고합니다. 내게 유익만 되면 되었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비참한 손실이 되어도 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또한 독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길만이 옳고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을 저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이웃의 죄인,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비참하게 살아도 이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관심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100주년을 맞이해서 이와 같은 함정 속에 빠질 깊은 위험 속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교회만 잘되면 우리는 된다. 내 교파만 잘되면 된다. 우리 자신만 축복 받고 잘 살면 될 일이지 우리 이웃의 가난하고 병들고 죄짓고 소외되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일본 1억 2천만 일본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더라도 그들에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아프리카에 한발이 다가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려서 죽어갈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축복을 받고 우리만 잘살면 된다는 수직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해서 승천하고 난 다음에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나가게 하고 유대에 나가면 사마리아로 나가게 하고 사마리아에 나가면 땅끝까지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나만 예수를 잘 믿고 나만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나만 잘먹고 잘입고 잘살면 이것으로써 신앙이 끝장났다는 이기주의적인 이와 같은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탈피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가인을 불렀습니다. "가인아, 가인아 너의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럴 때 가인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무슨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러면 왜 너의 동생의 피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느냐."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가인같이 내가 누구기에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죄짓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까? 네가 무슨 그 사람 지키는 자니이까?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하늘 보좌에서 이 땅으로 내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의 영광과 부귀를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며 버림을 당한 인생들을 생각하셔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어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개인의 혼자 관심만 가지고 나만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었지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 무슨 관심을 가질 것이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자기의 죄로 알고 십자가에 매달렸으며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자기의 질병으로 알고 감당하여 채찍에 맞으셨으며 여러분과 나의 저주와 가난을 자기의 것으로 알고 십자가에 매달려 저주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저주에서 여러분과 나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혼자의 수직적인 관심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뿐 아니라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만 예수 믿고 우리만 하나님께 축복 받아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웃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한 지체인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다 한 지체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만 아무리 잘 산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체 일부분이 고통 속에 있으면 우리가 마음속에 즐거움을 갖고 살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 머리가 아무리 상쾌해도 팔이 아프면 가서 팔을 도와주어야 우리 몸 전체가 편합니다. 몸 상체가 다 편할지라도 하체가 병들어서 아프면 몸 전체가 가서 하체를 도와줘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다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고 한 지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이웃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며 이웃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이며 이웃의 헐벗음이 나의 헐벗음인 줄 알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 사랑하며 우리가 함께 짐을 나누어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제는 100살이 되었으니 성숙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내 개인의 신앙 내 교회만 잘된다면 된다는 이러한 신앙을 버리고 우리는 4천만을 책임지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이요, 온 동북 동남아의 영혼들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이요, 세계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근대판 수도원을 지어서 우리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세상 것 다 잊어버리고 우리만 잘 믿으면 된다는 그런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여러분과 나 한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구원받고 내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데로 이 축복을 온 천하 만민에게 나누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해서 남의 영혼을 구원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병든 자와 함께 울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헐벗은 자들에게 우리의 옷을 나누어주고 우리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해야 되는 것입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러분과 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령한가 그것은 내 자신이 얼마나 기도를 잘하는가 내가 얼마나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운가 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가지고서 얼마나 이웃사람하고 나눌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얼마나 신령한가를 증명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수직적인 삶만 살고 나만 잘 믿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수평적인 삶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직적인 관계는 버리고 수평적인 삶만 삽니다. 수평적인 삶이란 불신자들의 삶입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위로 향한 하나님의 것은 전혀 찾지도 않고 오직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인본주의적인 삶인 것입니다. 인본주의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삶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자기가 잘났을지라도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 한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능력이 끝이 없이 많지 않습니다. 끝없는 한계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비극은 그들은 죄책과 정죄의 절망의 벽에 부딪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쌓여지는 것은 죄요 정죄 의식입니다. 아무리 해도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는 사람에게는 이 죄와 정죄감을 벗을 도리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죄책만 마음속에 쌓여지는 것입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부딪쳐서 삽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들은 방황하면서 삽니다. 버림받은 인생을 삽니다. 아무리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많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죽음과 무의 절망의 벽에 부딪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살다 7-80년 후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원한 무의 세계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의 부귀 영화 공명을 가지고 그 죽음 저 건너편에 한치의 땅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본주의적인 삶 수평적인 삶만 사는 사람들에게는 죄책과 정죄의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무의 절망에 부딪쳐 박살이 나고 말 것인 것입니다. 또한 수평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정욕주의 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육신의 정욕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먹는 것,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것, 이 세상의 쾌락주의를 따라 사는 육신의 정욕을 쫓아서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안목의 정욕을 쫓아서 삽니다. 명예욕을 얻기 위해서 사치를 하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안목의 정욕에 잡힌 육신의 사람인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이 생의 자랑을 쫓아 삽니다. 권력을 얻고 출세를 해서 사람들 앞에서 다스리며 어깨를 펴고 살아보겠다는 권력주의, 출세주의 이것도 수평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삶은 일시적이고 무의미하고 변화무쌍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위에 것을 찾지 못하고 오직 수평적인 세속적인 세상 적인 삶만 사는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요 정욕주의 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죽음과 심판의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에 보면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 너희가 그 가운데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름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적으로 사는 사람은 일시적인 환락과 쾌락을 느끼는지 모르지만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그 위에 임하고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리고 난 다음에 버림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불길이 넘실거리는 곳에서 부자가 체험한 것처럼 고통을 당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 믿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다 없어지고 사라는 것뿐이지 뭘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자기 스스로 맘대로 죽을 수도 없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천국을 없다고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심판의 지옥을 없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모두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서서 우릴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심판과 사망에서 옮겨져서 생명으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배반해버리고 난 다음에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서서 일생으로 살아온 그 죄를 심판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버림을 당하든지 둘 중에 하나의 길을 인생은 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평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70년 내지 80년 인생을 인본주의적으로 정욕 적으로 살고 난 다음에는 영원한 절망과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까요?
수직적인 삶도 살아서는 안되겠고 말할 필요 없이 수평적인 삶만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도 맺어 놓아야 될 것이고 또 우리는 세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수평적인 삶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참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이 서로 만난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늘의 길과 당의 길을 조화시킨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의 삶을 어떻게 살까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살 것은 수직적인 나의 개인의 삶을 우리는 힘차게 추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는 생활 전체가 하늘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이 있습니다. 이 순서를 바꾸어 놓으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러분과 내가 인생을 살면서 수직적인 삶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올바르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그 나라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 사는 전체의 목적이 하늘나라를 이루는 삶을 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살아가는 목적이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얻기 위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 맞고 지식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혹은 우리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할지라도 또 우리가 세상에서 출세하여 부귀와 영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다 가지고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끔 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는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받들고 하는 이와 같은 하늘나라 일을 하는 것을 여러분과 내가 우리 중심에 목적으로 삼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의를 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란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요 계명을 지키는 삶인 것입니다. 계명이란 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그리스도의 신앙에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신앙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남보다 욕도 더 많이 하고 사기도 더 잘 치고 사람 괴롭히는 일도 더 잘하고 그러면서도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굉장히 많아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시장 터에서 가장 욕 잘하고 싸움 잘하고 남의 돈 잘 떼먹고 하는 사람이 주일날에는 성경책 들고서 찬송합시다 하고 교회 나갑니다. 이 사람을 보고 난 다음 전 시장 사람들이 모두다 저 사람이 예수 믿고 천당 갈 것 같으면 우리는 그런 천당에는 안가겠다고 말하는 것을 저는 들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신앙의 윤리와 도덕성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 생활 속에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내 아버지의 사랑을 베풀어주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우리 자신을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같으면 우리의 전체적인 삶의 처음 목적이 어찌하든지 이 땅에 하늘나라 천국이 임하도록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받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요 또 우리의 생활이 의로써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윤리와 도덕성을 가진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직적인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는 수평적인 인생의 삶을 버려야 되느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교수는 강단에서 가르쳐야 되고 그리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일을 해야 되고 또 사업가는 사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생활 가운데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의 죄를 한 몸에 다 짊어지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청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가 무력하고 힘이 없을 때 여러분과 나를 성령께서 도와주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예수 믿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위대한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연약과 병을 대신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근원적으로 여러분과 내가 건강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걸머지고 모든 저주를 다 청산해버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음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버리고 말았다고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또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저주에서 해방을 얻은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 권세 철폐하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삶이란 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내가 의의 삶을 살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수평적인 삶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열매를 우리가 담대한 믿음으로 수평적인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으로 살지마는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하셨으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평적인 삶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의 대속의 열매를 가지고 살지라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사람과 부딪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수평적인 삶만 사는데 우리는 가는 곳마다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때문에 언제나 세상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서 살아야 될까요? 우리는 언제나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부딪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이 땅에 있는 것은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서로 심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도 서로 심판하지 말아야 됩니다.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서리 집사님, 조장, 구역장, 부 구역장, 아동 구역장, 우리 성도 여러분 서로 비평하면 여러분께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평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살고 서로서로 치료해주면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삶이란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해도 회개치도 않고 완악하고 반대하고 그리고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 만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끝까지 안내해야 됩니다. 왜? 이 사람들은 이 수평적인 세상 삶밖에 모르지마는 우리는 하늘나라를 안 이상 몰라서 저러는 것이므로 끝가지 참아야 됩니다. 남편도 참고 아내도 참아야 돼요. 옛날에는 예수 믿는다고 해서 심히 얻어맞고 남편에게 박대를 받고 부인이 오면 제가 화가 나서 다짜고짜 하는 말이 뭐냐하면 "까짓 거 이혼해 버려라. 뭐 그런 것 데리고 살 필요가 뭐냐. 밤낮 쥐어박고 때리는데 얻어맞고 살 필요 뭐냐. 그만 두어라." 그것은 제가 이십대 삼십대 목회자로 있을 때 아직까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소리 잘했습니다. 내 말 듣고 이혼한 사람도 여러명 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하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볼 때는 우리가 하늘나라와 우리의 수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상 수평적인 인생을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몰라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끝가지 우리가 참고 견뎌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수평적인 삶이란 핍박을 받는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 믿고 사는 사람 치고 핍박을 당치 않고 사는 삶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살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핍박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여러분이 핍박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수평생활 속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삶은 수직 일면도의 삶이 아니요 또 수평적인 삶은 물론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그 다음에는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올바르게 되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수평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인내를 하며 핍박을 참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하나님 관계를 올바르게 맺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을 저버리면 안됩니다. 여러분과 나는 일생 이 세상에 살라고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그 대속의 오중 복음을 누리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을 베풀고 오래 참아 인내를 베풀어 전도하며 핍박을 참고 축복해주며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서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시간에 어떤 사람은 자기 혼자 신령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등져 버리고, 버리고 나만 잘 믿으면 된다. 나만 축복 받으면 된다. 내 개인, 내 교회, 내 교단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중세 수도원이나 극단적인 기도원 주의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그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요, 수직 일면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신자의 삶이 아닌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수직적인 삶은 전혀 알지 못하고 수평적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쫓아 인본주의로만 사는 사람들은 종국적으로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짐을 받을 것이니 이것도 지극히 위험한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수직적인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대속의 은혜로 믿음으로 수평적인 인생생활을 살면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으며 살뿐 아니라 이세상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수직적인 삶, 그리스도를 전도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을 베풀고 인내하며 핍박을 받으며 나를 부인하면서까지 라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십자가 없는 크리스천이 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맺고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늘 맺고서 살아가는 십자가 성도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