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

by 삶의언어 posted Jul 14,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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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1986-01-26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11장 11절로 12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okNvqiXNBb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삶의 계곡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좌절에 부딪치면 삶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해서 앞날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천지간에 설 곳도 빠져나갈 곳도 다 없어지고 황량한 절망이 휩쓸어간 가슴속에 오직 남은 것은 버림받은 심정과 처절한 깨어지는 고독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가 삶의 위기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위기가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고 혹은 위대한 새 삶을 얻는 하나의 동기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와 같은 인생의 크고 작은 좌절감을 반드시 맛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크고 작은 좌절감을 반드시 맛보게 할까요? 나는 여기에 대한 그 이유를 여러분과 함께 오늘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섭리한 그 섭리대로 오늘 여러분과 저도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섭게 시련과 좌절을 겪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할 때는 찬란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언약입니까! 75세 된 아브라함의 피를 끊게 하는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창대케 하여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하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고 너를 복 주는 자는 내가 복을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은 의기양양하여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출발했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말자 무서운 좌절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는 온 줄 알았는데 가나안 땅에 와 보니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뜨거운 바람이 휩쓸어간 곳에 메마른 사막과 같이 되어서 나무와 풀은 다 말라죽었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다가와서 물 한 방울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끌고 간 짐승들은 다 굶어죽고 데리고 간 종들은 뿔뿔이 다 헤어져 도망치고 남은 것은 자기와 자기 아내와 밥 달라고 부르짖는 자기 조카밖에 남지 않았었습니다. 무서운 좌절감에 부딪치고 말은 것입니다. 하늘이 새카맣고 눈앞이 캄캄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큰 축복의 말씀을 주시고 난 다음 이렇게 처절한 절망에 나를 이끌 수가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계시를 잘못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좌절감에 처하게 될 때는 여러 가지 의혹이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꺾지 않을 수가 없었을까요?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다고 했지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는 불순물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갔다 하지만 네 부모, 전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그는 믿고 순종은 했지만 불순물이 꽉 들어찼었습니다. 부모, 전토,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 부모에게 속한 조카를 데리고 전토에서 얻은 재물 다 가지고 그곳에 있는 모든 종들을 다 거느리고 떠났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불 신앙이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가나안에 갔다가 하나님이 안 돌보아주시면 먹고 살 궁리를 해야지. 그래서 재산 다 처리해서 재산 가지고 갔으며 부모와 친척을 떠나라고 했지만 인정상 혈연관계에 있는 조카를 버릴 수가 있느냐 조카도 데리고 그리고 하란에서 얻은 모든 사람들을 다 거느리고 그가 출발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란 불순물투성이였었습니다. 이 불순물투성이를 하나님께서 제거하기 위해서는 좌절감에 부딪쳐서 꺾지 아니하고는 불순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쉽게 꺾이는 사람이 아니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와서 종들은 다 잃어버렸었습니다. 재산은 다 잃어버렸었습니다. 짐승들 다 잃어버렸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자기 아내와 조카가 남아 있는데 아브라함은 완전히 꺾여서 순수하게 하나님 믿고 순종했으면 좋은데 그는 꺾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조카와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살라고 지시도 아니한 애굽 땅으로 내려가면서 거짓말을 만들어 내었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보고 이제부터는 나를 남편으로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라. 너는 나의 동생이다. 그리고 조카를 데리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그 아내의 아리따움을 바로의 궁전에서 보고 곧장 사람을 보내서 아브라함의 동생이라고 하니까 바로가 취해서 아내를 삼았었습니다.
자기의 아내를 바로의 아내로 주고 조카와 함께 바로 궁에서 주는 녹을 받아서 먹고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당한 아브라함의 좌절감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자기 아내를 자기 동생이라고 해서 바로에게 시집을 보내고 그 은덕으로 먹고사는 자기의 처지가 얼마나 처참하고 처절하겠습니까? 여기에서 한없는 좌절감에 부딪쳐서 이것이 인생을 사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할 것인가? 철저히 아브라함은 거기서 깨어졌습니다. 그는 좌절하고 깨어졌습니다. 이제는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소용이 없구나 부모나 형제나 혈연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직 내가 믿고 살길은 하나님밖에 없다.
그는 완전히 그 마음이 변화를 받아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서자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다시 아내를 바로에게서 돌려주고 그는 애굽 땅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올라오매 이 때는 가나안에 가뭄이 있지 않았었습니다. 비가 와서 산천초목이 푸르고 우물에는 물이 가득가득 하고 살만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된 아브라함을 취하여서 비로소 가나안에 들어와서 부활의 영광스러운 축복에 참여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이삭의 시련을 보십시다. 이삭은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인 것입니다. 부모와 이웃의 한없는 사랑과 귀여움 속에서 태어나고, 태어나니 아버지가 벌써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라 은과 금과 짐승이 풍부했기 때문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꿈같은 세월 속에서 그는 유년기를 지나고 소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서운 좌절감을 이삭을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가 소년기에 있을 때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외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데리고 모리아산에 와서 그 아들을 제물로 드려라' 이제 아브라함은 완전히 순수한 신앙과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그는 좌절감을 겪고 꺾였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불순물을 섞지 않습니다. 두말 하지 않고 그는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장작을 걸머지게 하고 불을 손에 들게 하고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산까지 왔었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여, 여기에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하나님께 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어린양은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모리산에 올라가서 아들과 함께 제단을 준비하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갑자기 이삭을 잡아서 그를 묶고 제단 위에 얹어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이삭에게 좌절감이 다가왔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자기를 사랑하고 아버지 어머니도 자기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달려들어서 자기를 묶어서 제단에 얹어놓고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고 사는 경계선에 서 있을 때 가장 인생의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꿈이 사라졌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대를 이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 방대한 재산을 상속으로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축복 중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한없는 희망에 벅차 있었는데 이제 아버지가 달려들어서 하나님이 너를 죽여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면서 칼을 들어 치려고 하니 여기에서 이삭은 하나님에게도 버림받고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고 이 외로운 산장에서 어머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처절하게 죽어 가는 자기 자신의 무서운 좌절감을 느끼고 꺾여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는 눈을 감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 하늘에서 천사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외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이야말로 구사일생입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잃어버린 가운데서 도로 찾은 그런 체험입니다. 이삭은 단번에 깨어졌습니다. 이 구사일생의 세계를 통해서 이삭은 이제 남은 여생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제2의 생명을 사는 것이다. 나는 모리아 산에서 죽은 인생이다. 내 이제 사는 것은 제2의 인생이니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만 위해서 살겠다는 그러한 무서운 각오가 마음속에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시련을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기주의적이고 꾀가 많고 교활했었습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을 배가 고픈 형에게 줌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으며 아버지가 눈이 어두운 것을 기화로 형에게 주어야 될 장자의 축복을 자기가 가서 기도를 다 받고 빼앗았습니다.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매 외아저씨 집으로 도망을 가서 20여 년의 세월동안 외아저씨 집에 붙어서 머슴살이를 하며 외아저씨를 속이기도 하고 자기가 속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처자를 거느리고 방대한 재산을 가지고서 외아저씨 있는 곳을 도망쳐 나왔으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외아저씨의 군대에게 잡혔습니다.
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사람을 보내 형님에게 내가 돌아온다고 말하니까 당장 형님이 20년 동안 분도 막심해서 칼을 갈았던 그 원수갚은 기회가 왔다고 해서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질풍같이 뛰어옵니다. 야곱에게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형님이 환영을 하기는커녕 400인의 군대를 가지고 당신을 죽이려고 옵니다. 야곱은 간장이 녹았었습니다. 뒤에는 외아저씨가 다시 건너오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는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니 이제는 풍비박산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얍복 나루터에서 짐승들을 한 떼, 두 떼, 세 떼로 나누어서 미리 건너보내고 그리고 자기의 처자들을 미리 강을 다 건너보내고 자기 혼자 얍복 나루터 이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이 정말 죽일 의사를 가져서 짐승을 빼앗고 처자들을 치면 자기는 마지막 남은 튼튼한 두 다리로 도망을 칠 작정을 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와 같이 처자들을 다 희생하더라도 자기는 살겠다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갑자기 앉았는데 자기에게 어떤 사람이 덤벼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덤벼들은 것입니다.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는데 야곱은 이 사람에게 지면 죽을 것을 알고 끝까지 버텨 싸웠었습니다. 아침이 되매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들어 그 환도뼈를 치매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 야곱에게 최후로 도망치겠다는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고 야곱의 일생에 가장 깊은 좌절감을 느꼈었습니다. 뒤에는 외아저씨가 죽이려고 하지 앞에는 형의 400인의 군대가 오는데 밤새도록 또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하고 난 다음에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도망조차 칠 수 없는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가장 처절한 좌절감과 절망 속에서 야곱은 꺾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 내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교활한 수단도 이제는 다 사라졌다.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는 아침에 얍복 나루터를 절뚝절뚝 절면서 건넜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때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오늘날 우리의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그러한 좌절감을 맛보고 꺾이더라도 우리가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와서 나아가면 우리의 인생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그렇게 처자들을 앞장서서 나가니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오던 형의 마음이 달라져서 오히려 그 동생을 만나자 목을 어긋맞기고 통곡을 하며 울고 동생을 환영하고 그를 죽이려던 군대는 그를 호위하는 군대로 변화되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깨어지고 우리가 변화 받아서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변화시키셔서 우리를 보호하는 자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왜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좌절감을 당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왜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크고 작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했을 때 아담을 찾은 이유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와서 불렀었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숨었는지 몰라서 물었겠습니까? 아담의 실체가 어떻게 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물으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어디 있었습니까? 아담은 불 신앙 속에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 신앙해서 불순종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불 신앙 속에 있었으며 아담은 불순종 속에 있었습니다. 아담은 탐욕 속에 있었습니다. 아담은 인본주의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내어 쫓아버리셨습니다. 저주받은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태어난 20세기의 아담의 후손들인 우리들은 부패한 아담의 성품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꺾이지 아니하고는 이 불 신앙과 불순종과 이 탐욕과 이 인본주의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종교의식을 통해서나 학교에서 공부를 통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꺾여야 됩니다. 반드시 좌절감에 부딪쳐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가 되는 좌절감을 체험해야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좌절감을 통해서 변화를 받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호의 호식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사람은 외면적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지극히 얄팍한 인생을 살고 결코 인생의 깊이를 알지 못하므로 성장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 중에서 대학 시험에 낙방한 자녀를 가진 부모도 있을 것이요 또 대학 시험에 낙방해서 처참한 좌절감을 느끼는 젊은 자매 형제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이란 그렇게 짧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대학에 입학하고 낙방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를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큰 학교가 마음에 좌절감을 느끼고 꺾여서 인격적으로 장성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체험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인격적으로 장성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속 사람이 자라난 남자, 속 사람이 자라난 여자, 속 사람이 자라난 부부, 속 사람이 자라난 사회인들이 오늘날 세계를 어깨에 걸머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고 하면 조만간 크게 꺾여야 하는데 나이 먹어 꺾이는 것보다는 젊어서 꺾이는 것이 좋습니다. 옛말에도 젊어서 체험하는 고생은 돈주고도 못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에게 좌절감이 다가오고 꺾여서 환도뼈가 어그러지며 피눈물을 흘리게 될 때 모든 것이 절망으로 보이지만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아담의 부패한 성품을 제하고 순수한 순종과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며 여러분의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장성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그릇을 크게 만들어서 훗날에 주께서 거기에 축복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절의 때는 삶의 위기의 때인 것입니다. 여러분 좌절했을 때 신앙을 버리고 타락할 것이냐 좌절했을 때 깨어져서 더 순수하게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할 때마다 하나님을 반역했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좌절이 다가올 때 그 때야말로 기도할 때인 것입니다. 회개할 때인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오고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와서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오늘 읽은 성경말씀 가운데 사라의 눈물과 기쁨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라는 그 몸이 죽은 것 같았는데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으로부터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모래와 같이 왕성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라는 좌절감을 맛본 사람입니다. 남편이 85세, 자기의 나이가 75세가 되어도 아들을 낳지 못했었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 여인이 그 가문에 들어와서 아들을 낳아서 혈통을 이어주지 못하면 저주받은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저주를 받습니다. 사라는 얼굴을 들고 살수가 없었습니다. 75세가 될 때까지 한번 숨도 크게 쉬어보지 못했었습니다. 얼굴을 들고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수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이 가문의 후손을 이어주어야 되겠으므로 자기의 여종 하갈을 취해서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었습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어가서 어린 아이가 생긴 것을 알자 말자 의시대기 시작합니다. 주인인 사라를 무시하고 명령을 듣지 않고 의시대어서 사라의 가슴속에 피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막 압력을 가하고 학대를 하니까 하갈이 또 도망을 쳤습니다. 만삭이 된 하갈이 도망을 쳤다가 그 다음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갈이 어린아이를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아서 달덩이같은 아들을 안고, 업고, 어르고있으니 이제는 사라로서는 절망이었습니다.
그 나이 75세에 첩을 취해주어서 아들을 낳게 한 다음 그 나이가 90이 될 때까지 장장 15년의 세월 동안 사라는 죽었었습니다. 그는 이제는 영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좌절과 꺾임 가운데 눈물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하갈은 당당해졌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으니 이스마엘이 장성하면 장성할수록 모든 사람들이 하갈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아준 그 첩 하갈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이제는 사라로서는 가장 처절한 절망에 부딪치고 이제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90이 되어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이 끝장이 났을 때 오직 사라가 의지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라를 권고하사 그 몸을 다시 젊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를 잉태하게 하사 낳게 하시니 적자 이삭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격려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허다한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이 왕성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거 없이 처절한 절망에 이르는 뼈아픈 좌절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참된 신앙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오면 때가 이르면 인간으로는 절대적인 절망에서도 사라와 같은 위대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좌절처럼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피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좌절의 체험이 다가오는 것은 여러분의 육신의 인간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아담의 성품을 여러분들 속에서 다 죽여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꺾으시는 것입니다. 꺾이면 꺾일수록 좌절의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순수한 세계와 순종의 세계가 여러분의 앞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신앙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가슴은 넓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은 넓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은 더 커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찬란해집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우리가 입을 넓게 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앞에 피눈물나는 좌절의 꺾이는 체험을 통해서 순수한 순종과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믿고 입을 열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입에 채워서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좌절이 없는 인생은 버림받은 인생입니다. 꺾임이 없는 인생은 자라나지 않는 인생입니다.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 웃으면서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오늘날 인생을 살면서 많은 좌절의 계곡을 지나게 됩니다. 더구나 입학시즌에 합격된 사람은 좋지만은 불합격된 부모와 자녀들은 무서운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쓰디쓴 감정을 가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삶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볼까 포기해 버릴까 모든 것을 다 내어 던져버리고 말까 이런 마음속의 고통도 다가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반드시 위대한 부활이 있기 전에는 좌절의 눈물계곡을 지난다는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걸머지고 하늘에게 버림당하고 땅에서 버림당하고 제자들에게까지 버림당하고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셨던 그 때가 인류의 가장 무서운 좌절감을 체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좌절이후에 예수님의 영광스럽고 찬란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의 부활이 다가오게 되었사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성도들 가운데 꺾여있는 사람, 꺾이는 사람,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 버림받은 심정에서 낙심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부르실 때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게 도와주옵시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도와주옵시고 좌절을 통하여 변화 받게 도와주옵시고 우리의 인격이 성장하게 도와주옵시고 모든 먼지 티끌이 사라지고 순수하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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