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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by 삶의언어 posted Jul 29,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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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08-04-13
오늘의 성구 열왕기하 6장 14절로 1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mbqhpjOxB3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열왕기하 6장 14∼17절

 

사방으로 우겨싸여 죄 가운데 있는 인생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꿈·믿음·소망 가지고 승리의 삶 살게 돼


 열왕기하 6장 14∼17절에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점령하려고 무수히 애를 쓴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 작전을 짜고 난 다음에 보면 꼭 출정할 곳에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매복해 있어서 실패하곤 했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탄을 했습니다. 간부 회의에 모여서 “우리가 작전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이스라엘 왕이 먼저 알아서 군대를 파견하여 매복시키니 이게 왠일인가.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들 장관 중 한 사람이 “왕이여,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왕이 침상에서 혼자 생각하는 것조차 다 알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를 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왕이 “그러면 엘리사를 잡아라!”고 명령했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들어와서 하루 밤을 지낸다는 말을 듣자 전군을 동원해서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와보니 온 천지가 아람군대의 깃발과 창검이라 그는 혼비백산 했습니다. 그는 급히 방안에 들어가서 “엘리사 선생이여, 큰일났습니다. 아람 군대가 온 산에 첩첩이 둘러 쌓여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저들보다 많다”고 말하고 엘리사가 기도한 뒤 젊은 시종이 눈이 떠서 보니 아람군대와 엘리사 선지자 사이에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가 장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감히 아람의 군대가 한사람도 엘리사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첩첩이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가 둘러 쌓였습니다. 그 결과 엘리사는 아람군대를 모두다 포로로 잡아 다시는 벤하닷이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한 교훈을 줍니다.

 

 1. 사방에서 우겨 싸는 죄의 유혹

 우리는 사방에서 우겨 싸여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평안하게 살려고 해도 우리 주위에 영적인 아람군대가 첩첩이 둘러 싸서 우리를 포위, 공격하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죄는 마음에 유혹을 가져와서 우리를 포위하고 우리를 끌어냅니다. 에덴 동산에서 조차도 죄가 아담을 포위한 것입니다. 에덴에 있었던 유혹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내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마귀가 진을 치고 둘러 싸서 아담과 하와를 꾀였습니다. 그들은 유혹에 둘러 쌓여서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혹의 포로가 되어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혹에 둘러 쌓였습니다. 사십주 사십야 금식하시고 나오실 때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유혹, 명예적인 유혹, 부귀 권력적인 유혹을 예수님께 가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유혹으로는 마태복음 4장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배가 고프니까 만사를 제쳐 놓고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든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다 식욕을 더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4절에 기록되었듯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며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명예욕으로 또 다시 유혹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5절로 6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고 사뿐히 내리면 만인이 박수를 치고 네가 명예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남보다 내가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높아 지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짓밟고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서 자기 영광을 삼으라는 유혹에 떨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7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명예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부귀, 권력으로 그를 유혹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8절로 9절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를 얻고 부를 얻고 공명 얻기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모두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부귀, 영화, 공명은 독약이 되고 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장 마태복음 4장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둘러싼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면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일 답답하게 하는 것이 가정 부부의 갈등인 것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난 4월 5일자 어떤 인터넷 신문에는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서 이혼자 2200명을 대상으로 이혼사유와 결혼기간을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결혼 초 4년 이내에는 가족의 갈등이 부부 이혼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집 식구들과의 갈등이 이혼의 중요 원인이었고, 결혼생활 어느 정도 한 이후에 약 8년 이상은 배우자의 부정이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 ‘60년대는 간통 이혼, 2000년대는 경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우자의 경제적인 무능력이나 무절제한 소비생활 등으로 이혼하는 부부가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월간지인 ‘아버지와 가족’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에서 40대의 기혼 남녀 204명을 대상으로 부부갈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부부의 75%가 의견충돌로 결혼생활에 위기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양보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세웁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 고집만 세워서 그 갈등이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갈등 원인으로 성격차이가 가장 높았는데 남자는 68%, 여자는 58% 그 다음 남편은 자녀교육 문제로 48%, 부인은 32%가 시부모 문제를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매우 높습니다. 자녀교육이나 경제적 문제, 부부갈등의 문제는 우리를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알아야 할 일

 우리는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사방으로 죄가 우겨싸고 세상 문제가 가슴을 눌러 답답하고 핍박을 당하고 혹은 죽임을 당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열왕기하 6장 16절이 그 일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원수가 끊임없이 둘러 진치고 원수의 창검과 깃발이 휘날리지만 엘리사가 기도한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상대편 용사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넉넉히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안에 옛날에는 반역의 영, 원수 마귀가 들어와 있었지만 예수믿고 난 다음 우리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계시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아버지가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성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눈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우리 마음속으로 돌려서 우리속에 누가 계신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가면 우리가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속에 같이 계셔서 동행하고 동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면 우리는 자살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염려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의사인 W. C. 알바레즈는 위장 장애의 80%는 염려와 두려움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염려하고 두려워하면 거의 위장병이 생깁니다. 심장도 뛰고 머리도 아프고 잠도 안옵니다. 염려는 영어로 ‘워리’(Worry)라고 말하는데, 독일어로는 ‘워겐’(Wyrgan)이라는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워겐이란 말은 ‘목을 졸라 죽인다’라는 뜻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한 염려는 목을 조이듯이 다가와 우리의 시각을 흐리게 만들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두려움과 염려는 삶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는 영적 무력증을 일으켜서 영적 감각을 잃게 하여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음으로 확신해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적인 눈도 떠이고 눈 앞의 적병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우리 마음속에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속에 계시기 때문에 세상 것으로 우리를 우겨쌀 수가 없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그 능력으로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는 것은 세상이 우리를 핍박해도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품에 품고 계시니 우리가 버림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핍박 당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시고 더 품어 주시고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꾸러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망하려고 해도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이 우리 성도입니다. 죽은 자도 부활시키는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과 사업을 더 낫게 부활시키시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살아갈 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갈 길은 영적인 실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므로 우리가 담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선교사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불신의 종족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하루는 밤중에 믿지 않는 불신의 종족들이 횃불을 들고 손에 몽둥이와 창검을 들고 이 집을 불태우고 선교사 부부를 죽이러 왔습니다. 군중들이 모여오는 것을 보고 부부가 엎드려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단둘인데 저 부족들은 많고 횃불을 들고 창검을 들고 오니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지켜 주소서”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깥에서 고함을 치고 꽹과리를 치고 발을 구르고 야단법석을 하면서도 그들은 집에 불을 붙이지 않고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거리를 두고 야단법석을 하더니만 일제히 돌아서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 후 감히 선교사들을 해하거나 욕하지 아니하고 친절히 대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그 추장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선교사 집에 와서는 자꾸 두리번 거리며 무엇을 찾았습니다. 선교사가 무엇을 찾는지 물어보니 1년 여기 왔을 때 이 집을 둘러싸고 있던 그 군병들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울타리에 수많은 군인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묻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스파이를 보내서 아무리 찾아봐도 온데간데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대답하길 “육신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우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천사들이 엘리사를 보호한 것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끊임없이 보호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를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 사자들을 보내어서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감사하고 좋으나 궂으나 감사함을 넘치게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해수면이 바다보다 400미터나 낮지만 물이 계속 증발되어 소금 호수가 되었습니다. 물이 짜니 생물이 살지 못하여 죽음의 바다 ‘사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요르단과의 국경에 걸쳐있어 반은 이스라엘에 속하고 반은 요르단 국가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스라엘은 사해라고 하지 않고 ‘염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쪽의 사해는 활발하게 개발되어 그 죽음의 바다가 치료 휴양지로 조성되었습니다. 사해에는 소금 외에 몸에 좋은 무기질이 녹아 있어 각종 피부병 치료에 특효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안락한 호텔과 휴양지가 조성되어 피부병을 치료하려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사해 남쪽에는 비누 공장, 진흙 팩 공장 등 온갖 화학 공장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플라스틱 원료는 세계 인구가 100년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또 농약이나 페인트의 원료도 전 세계 소비량의 4분의 1이 사해에서 생산됩니다. 이제 사해는 세계 최고의 자연 병원, 세계 최대의 화학 공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더 이상 죽음의 바다가 아닙니다. 축복의 바다입니다.

 그러나 요르단 쪽은 방치해 놓고 있어서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똑같은 사해인데 이스라엘 쪽은 번영의 처소가 되고 요르단 쪽은 문자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해를 받아 들였을 때 ‘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였으니 이것도 결국은 ‘사해’가 아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곳에 젖과 꿀을 찾아내자’ 죽음의 바다에서 젖과 꿀을 찾아내니 온갖 치료약이 다 나왔으며 온갖 비누공장, 비료공장이 다 나왔으며, 온갖 휴양지가 다 나왔고, 온갖 유용한 물질이 다 나오게 된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인줄 알았는데 들어가서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들여다 보니 복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정을 만들수도 있고 죽음의 가정으로 만들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만들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믿고 어떻게 감사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나는 저주받았다. 패배한다’ 그렇게 하면 어느곳에 가나 일어서나 앉으나 죽음의 땅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감사하면 사해도 축복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확실하면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주시고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신데 왜 두려워 합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무서워 말라. 내가 너와 같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데 두려워하고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의 눈을 뜨고 아람군대를 바라보고 그 병기와 그 깃발을 휘날리는 것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꿈과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고 승리의 깃발을 날릴 수가 있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살때 우리들은 끊임없이 죄악에 우겨싸이고 염려와 근심에 마음이 갈라지고 핍박으로 고통 당하고 낙심과 절망으로 거꾸러지고 망할때도 많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특별한 사람으로 환경으로 인하여 살지 않고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삽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질그릇 속에 와 계시고 이 하나님과 연결해서 꿈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나갈 때 언제나 마지막으로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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