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태도

by 삶의언어 posted Aug 02,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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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그리스도인
예배드린 날 1985-10-13
오늘의 성구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1CSBxSlyzk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태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는 그의 생활, 행복, 이름이 성공을 좌우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인생을 태어나는데 혹은 운명이다 팔자다 해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같은 시대에 같은 장소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은 성공으로 가고 다른 사람은 실패로 가고 한 사람은 행복하고 다른 사람은 불행한 것은 그 어떤 운명이나 환경보다도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태도에 절대적으로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 돛단배 둥실둥실 떠서 한 배가 동으로 가고 다른 배는 서로 가는 이유는 바다 물이 그들을 밀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바람이 그 방향으로 밀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높이 달아 펄럭이는 그 돛대를 따라서 그 돛의 방향을 따라 한 배는 동으로 가고 다른 배는 서로 갑니다. 여러분과 나의 인생의 태도라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인생을 항해해 가는 이 인생 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 돛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방향을 어떻게 다는가에 따라서 여러분과 내가 성공으로도 가고 실패로도 가고 행복도 해질 수 있고 불행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 말씀에는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느 외지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곳에서 큰 성전을 짓고 있었는데 세 사람의 벽돌공이 벽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태양은 내려 쪼이고 날씨는 무덥고 모든 사람들이 지쳐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벽돌공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왜 이곳에서 벽돌을 쌓고 있습니까?" 이 사람이 지친 듯이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여보시오. 처자를 먹여 살리려고 하니 이 고생을 합니다. 처자가 썩은 새끼에 목매인 것 같아서 내가 이 고생을 하기 싫지만 할 수 없이 해야지요." 이 사람의 생활 태도는 될 수 있으면 적게 일하고 월급은 많이 받기를 원하고 적당하게 사람만 안보이면 공사를 해치우기 원하며 일을 자기 희생으로 생각하여 처자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다고 공투사를 늘어놓은 재미가 없으니 인생이 지치고 그 일에 발전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인생에 있어서의 슬픈 태도를 취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벽돌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이곳에서 일을 합니까?" 이 사람은 아주 심술궂은 눈길을 하며 하는 말이 "누가 일 하고 싶어해요? 죽지 못해 일하지." 이 사람은 완전한 패배자인 것입니다. 똑같은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이 사람은 자기 인생도 패하고 그 성전을 짓는 것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망칠 수 있는 충분한 위험이 있습니다. 세 번째 벽돌공에게 가서 "당신은 왜 이곳에서 벽돌을 쌓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이 사람 만면의 웃음을 띠고 아주 흥분된 마음의 태도로써 얼굴에 홍조를 가지고 말합니다. "이 성전을 한 번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져 갑니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태도가 아주 자랑스럽게 보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일에 긍지를 느끼고 그 마음속에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비록 자기는 벽돌만 쌓고 있지만 그러나 이 거창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데 중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그러한 긍지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여 성취의 기쁨을 가지고 행복해지며 그 일에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삶에 대하여 여러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성공과 패배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어떠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믿음의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은 모두다 불안과 공포와 초조의 종이 되어서 살고 잇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버리고 불안과 공포와 절망을 다 제껴버리고 믿음의 태도로써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 이러한 사람은 행복한 삶을 건설할 수 있고 이러한 사람에게 어떠한 일을 맡겨 놓아도 능히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번은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많이 간구하여 말하기를 "내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사오니 주께서 오셔서 손만 얹으면 낫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회당장 야이로가 가는데 수많은 사람이 따라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 근처에 왔을 때 호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종이 뛰어나오면서 먼지를 머리에 날리고 옷을 찢어 펄럭이면서 자기 주인 앞에 나와서 "주인님, 이제 예수님을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딸이 죽었나이다." 흐느껴 웁니다. 그에게는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집안에서 호곡 하는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이 죽으면 전문적으로 울어주는 사람을 돈주고 사옵니다. 이 사람들은 와서 피리를 불고 통곡을 하고 울어 줍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 와서 울어 주는 사람이 통곡을 하며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기에 회당장은 그만 무릎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회당장은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아이구, 내 딸아, 내 외동딸아, 날 버리고 어딜 가느냐"고 통고하고 울며 절망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태도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와 함께 모든 짐을 주께 맡기고 믿음의 행진을 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야말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은 막연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도 아닙니다. 미신을 가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오.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분이시므로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은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모든 짐을 그에게 맡겨 버리면 마음속에 평화를 가지고 주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회당장은 예수를 믿기로 결정을 하고 믿음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집에 들어가니 호곡하는 사람이 울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며 모두 비웃었을 때 예수님은 이 부정적인 사람을 모두다 쫓아 버리셨습니다. 하나 없이 다 쫓아 내 버리고 난 다음에야 가장 믿음이 강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그 부모를 데리고 들어가셔서 그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딸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매 즉시로 살아서 일어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을 모두다 집에서 좇아 내시고 난 다음에야 주님께서 들어가셔서 기적을 행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부정적인 태도가 꽉 들어차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절망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불안, 공포, 절망으로 꽉 들어차 있으면 예수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내 가운데 오셔서 일을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것을 마음에서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태도를 말끔히 씻어 내어버리고 여러분께서 주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나와 동행하여 주셔서 우리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역사를 베풀어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며 그 가운데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 가운데는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려면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태양이 찬란하게 비취는 대낮에도 그늘을 찾으면 얼마든지 그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아 버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홀트 고아원에 신체장애자 모인 곳을 방문한 것이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신체장애자들이 있었습니다. 뇌성마비가 걸린 사람, 또 신체 장애가 걸린 사람이 있어서 대단히 신체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사진을 찍는데 내 앞에 신체장애자 소녀가 있었는데 가장 극심한 신체장애였습니다. 목은 목대로 돌아가고 입은 입대로 돌아가고 팔과 다리가 다 돌아가고 온 전신을 비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와서 설교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까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참 내 마음이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눈물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 이 애는 신체장애자로서 목은 목대로 팔은 팔대로 몸은 몸대로 돌아갑니다. 성한 곳은 왼쪽 발가락 두 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외쪽 발가락 두 개를 가지고 이렇게 이 애는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왼쪽 발가락 두 개 성한 것을 가지고 밥을 떠먹고 연필을 꽂아서 글을 쓰고 그 발가락으로 보릿짚으로 모자를 엮습니다. 발가락 두 개로 피나는 노력을 해서 모자를 엮어서 이 신체장애자들이 살아가는데 생활에 보탬이 됩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사지가 멀쩡하면서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원망, 불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이 신체장애자는 발가락 두 개 살아있는 이것만 가지고도 자기 생활을 영위하면서 이렇게 할렐루야 감사를 하는데 나는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사지가 성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산 죄가 마음속에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몰랐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내가 신체장애자가 되지 않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 평생토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려고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얼마든지 있지만 원망과 불평을 하려고 하면 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감사를 택하고 원망과 불평을 택하지 않는 이런 태도를 취할 때 여러분 자신이 성공적인 삶을 살 뿐 아니라 여러분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또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기쁨이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데 성경에는 기쁨이란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명령할 턱이 없습니다.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것은 내가 안 기뻐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슬픔을 선택할 수도 있고 기쁨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떠한 흑암의 환경을 지날지라도 우리가 슬픔을 택하지 않고 기뻐하기로 마음에 결정을 하고 택하면 우리는 마음속에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슬퍼하면 온 전신에 힘이 빠져 버리고 맙니다. 정신적인 힘도 빠져 버리고 육체적인 힘도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미음 속에 기쁨을 택해서 억지로라도 기뻐하기로 결심을 하고 기쁨을 가지면 마음속에 정신적인 힘과 육체적인 힘이 솟아나서 여러분께서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태도 안에서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과 함께 동행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는 모든 것으로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꿈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꿈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의 내일은 절망입니다. 현실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환경의 불안과 고통과 괴로움만 바라보고 그것에 치우쳐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탁월하게 다른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현실에 억압되자 아니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은 지금보다 월등하게 나아지는 향상된 것을 마음속에 꿈으로 품고 환상으로 품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그 꿈이 여러분과 나의 내일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미국에 권투 시합이 있었는데 잭 댄신라는 사람과 짐 토니라는 사람 사이에 권투 시합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그래서 미국의 라디오, TV, 신문들이 굉장히 흥분해서 떠드는데 그 신문들이 여출일구로 하는 말이 "잭 댄신이 토니의 목을 부러뜨릴 것이다." 그래서 그 신문을 늘 읽어보고 그 TV를 보고 그 뉴스를 듣고 있던 토니가 그만 마음 속에 자기의 목이 떨어지는 꿈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었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진땀을 흘리고 고함을 치고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꿈에 권투 시합을 하는데 적인 댄신이 자기의 목을 때리자 목이 떨어져서 저 군중들한테 데굴데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진땀을 흘리고 고함을 치고 일어났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들어차고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이대로는 도저히 권투 시합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음에 자기 목이 떨어지는 꿈을 꾸지 않고 그는 기도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서 권투 시합에 가서 차분히 성적을 올려 자기가 이기는 새로운 꿈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자기가 권투 시합에서 유능하게 이기는 꿈을 마음속에 그리고 이것을 마음에 품고 기뻐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안정을 가졌습니다. 권투 시합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짐 토니가 박살이 날 줄 알았는데 권투 시합한 결과에 그가 평안하고 안정된 꿈을 품고서 나가서 싸운 결과에 짐 토니가 잭 댄신을 때려눕히고 이기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짐 토니가 나중에 한 말이 뭐냐면 만일 자기가 계속 자기의 목이 날아가서 군중들 앞에 나뒹구는 그러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는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꿈을 바꾸어서 승리하는 꿈으로 마음속을 채웠기 때문에 이길 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내 마음에 꿈은 여러분과 내가 그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꿈을 그려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내 마음에 소망찬 꿈을 가져야 되는 것이요 또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패배자다." 라고 부정적인 꿈을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은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일은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꿈을 품는가 이것이 내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에는 금년보다 상상하는 세계로 이끌어 가 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우리 하나님 앞에 나오면 아름다운 꿈을 그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넝마 같은 인생이라도 십자가를 쳐다보고 그 흐르는 보혈로 여러분 마음속에 아름다운 꿈을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죄인도 십자가 밑에 나와서 죄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 자기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약한 자도 십자가 밑에 나와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므로 성령 안에서 강한 자가 될 모습을 그릴 수 있고 꿈꿀 수 있습니다. 어떠한 병자도 십자가 밑에 나와서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병을 고쳐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자기의 모습을 꿈꿀 수가 있으며 어떻게 낭패와 실망을 당한 자도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예수께서 못 박혀 달려 있는 것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에 참예하고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며, 어떠한 사람도 십자가 밑에서 자기가 죽어 관속에 들어가 땅에 파묻혀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영광스러운 자기 모습을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여러분께서 새 사람이 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꿈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와 같은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이 꿈이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을 이끌어가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결과 여러분 마음속에 꿈으로 품은 그것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소망으로 꽉 들어차서 꿈이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개인이나 가정, 한 사회나 집단이나 국가도 꿈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집단은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에 억압되면 안됩니다. 이것을 초월해서 우리는 세계 으뜸이 가는 민족이 되는 꿈을 가지고 우리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를 도와줄지라도 구걸하지 않는 그러한 꿈을 가지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민족이 되어 5대양 6대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휘향찬란한 꿈을 가슴속에 이 민족이 품고 있을 때 이 민족을 결코 패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소망찬 삶의 태도를 취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사랑의 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부패하고 말며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도 부패하고 지위와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로 말미암아 부패해서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날로 새로워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비취게 되면 모든 피조물이 아름다워 보이고 삶이 피곤치 않게 되고 만물의 오묘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부형님의 간증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목사님, 나는 열심히 일을 해서 집도 사고 처자들도 다 편안하고 애들도 잘 자라며 사업도 꽤 됩니다. 그러나 지쳐 버렸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집에 와도 낡은 부인의 얼굴 쳐다보고 늘 있는 그 자녀들,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먹는 밥도 매일 먹어서 지칩니다. 일도 이젠 피곤하고 무엇인지 모르게 인생이 피곤하고 발걸음이 무거운데 나에게 거대한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내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 갑자기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비치자말자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오묘한지요. 하늘을 보아도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만든 나무나 풀이나 흐르는 물이나 철썩이는 바다 파도나 울부짖는 새소리나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신기하고 기이하고 묘하고 그렇게 아름다워서 요사이는 사는 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우리 집사람 얼굴을 쳐다봐도 묘하고 희한하고 아름답고 애들도 보니 그렇게 묘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이렇게 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저는 요사이 하나님 만드신 세계를 바라보는 이 재미로 살아갑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실상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비취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울면서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가 땅과 이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주께서 지은 세계가 아름다워 보이지 아니할 때는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에 부은 바되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마음속에 기뻐지는 것입니다. "주의 사람비췰 때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타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 왜 이혼을 했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누군지 몰라서 이혼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40이 될 때까지 남편만 따라서 살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시키는 대로 남편 따라만 살았는데 이제 나이 40이 되고 보니 내게 의혹이 들어왔습니다. 남편을 따라 살 만한 그러한 기둥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자식들이 다 커서 내 품을 떠나간다. 나는 허공 중에 빠졌다. 내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남편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그러면 이제 당신 자신을 찾았냐고 하니까 아직 찾지 못하고 아직도 찾으려고 애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기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때 내가 누구냐고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를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찾으려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나와야 우리가 누군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께 용납 받고 사랑 받는 존재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상속으로 받아 영원히 살자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으며 현재 내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며 장차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을 분명히 알아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요 그렇게 될 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존경하는 자존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들어와야 비로소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자존심을 가지게 되고 행복하게 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치고 행복한 사람 보았습니까? 자기를 무시하고 자학하는 사람이 여러분 행복한 사람 보았습니까? 자기를 자학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멸시하고 자존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쓰레기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고 자기를 존경하게 되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게 되고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떠한 것 을 알고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이 사람의 마음속에 행복과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그 부인은 남편과 자식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헐뜯고 못 살게 굴고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불행하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다른 사람도 할큅니다.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멸시합니다. 자학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용납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존경하는 사람은 타인을 살리고 성공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축복하고 잘되게 하려고 노력하면 이것이 마치 산울림과 같이 되어서 내게도 그러한 반응이 올라오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행복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사랑의 태도를 취하여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될 때 우리들은 진실로 참된 행복의 삶을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얻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에 잡혀 부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갖고 다른 사람 언제나 이웃 사람을 미워하고 어두움만 바라보고 탄식하며 절망하고 사람들과 대결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면 그 사람은 어디가나 파괴되고 절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밝은 태도를 가지고 인생을 대면할 때 인생도 우리를 향하여 활짝 웃어주며 두 손을 활짝 내밀어 여러분과 나를 품에 품어 주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과 여러분의 생활의 행복은 운명도 팔자도 아닙니다. 주어진 여러분의 삶과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여러분이 어떠한 삶의 태도를 취하는가 이것이 여러분께서 어떤 열매를 맺는가의 결과인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태도는 바로 여러분의 인생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태도를 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현재와 내일의 열매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예수 이름으로 촉구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태도를 취하고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절망의 태도를 취하지 말며 믿음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택하고 절망을 택하지 마십시오. 절망을 택하려면 얼마든지 택할 수 있지만 가장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소망을 택할 수 잇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꿈을 마음에 품고 꿈을 안으면 여러분께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꿈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지만 꿈을 품으면 꿈은 내일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태도를 취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힘쓰십시오. 사랑 가운데서 오직 기쁨이 다가오고 행복이 다가오고 그 결과로 여러분의 삶이 성공으로 이끌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참으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믿음, 소망, 사랑의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에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팔자로 말미암아 된다고 생각하고 운명이라고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기를 원하며 한 사람도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원하며 한 사람도 패배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한두 사람 위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신 예수님, 그 앞에 나와서 만인이 올바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고 패배적이고 어둡고 절망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의 바다 위에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우리의 돛을 높이 달 때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의 돛을 달아 올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바람 따라 그 돛의 방향 따라 우리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방향으로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보혜사 성령이여,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펴 주옵시고 잘못된 태도는 낡은 옷처럼 벗어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믿음의 태도, 소망의 태도, 사랑의 태도로 갈아입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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