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구제와 은혜

by 삶의언어 posted Aug 04,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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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축복
예배드린 날 1986-05-18
오늘의 성구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1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wB6FOHMIrZI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구제와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사회는 그 어떠한 제도하에 살든지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또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성공과 축복을 주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구제하도록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이유는 바로 구제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또 구제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풍성한 축복의 은혜를 우리가 담대하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일이 잘 되는 사회는 평안하고 질서가 있고 축복 받은 사회가 됩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꾸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하게 되고 빈부의 격차가 떨어져 나가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기를 싫어하면 그러한 사회는 불안한 사회가 되고 혼돈하게 되고 고통과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고 풍성한 축복을 주셔서 우리 믿는 자들이 모두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구제와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교훈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주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 대신에 구제를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주는 대신에 자기가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붙잡아 주는 대신에 붙잡아 달라고 손을 내밀게 된다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부하고 막강하게 넘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 삶의 자원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서 입을 넓게 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아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생활 환경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와 같은 성도들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문제에 대해서 오늘 이 성경말씀은 대단히 상세하게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그 무궁하신 자원에서 넘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알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바쁜 농사철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농부들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농부라도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당신이 왜 심습니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여보십시오. 심지 아니하고 거둘 수가 있나요? 그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농부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자연법칙인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갈아서 거름주고 심어야만 됩니다. 벼농사도 못자리를 만들고 모를 심어야만 가을에 벼를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연의 법칙과 영적인 법칙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법칙이 자연법칙과 동일하지 않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자연의 법칙에 심고 거두는 것처럼 영적인 법칙에도 반드시 심어야 우리가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연의 법칙에도 옥토에 심어야 거둡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를 '한 사람이 나가서 씨를 뿌릴 때 어떤 씨는 길바닥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어떤 씨는 돌, 자갈밭에 떨어지매 싹이 나나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여 햇빛이 나면 말라 죽어버리고, 어떠한 씨는 가시넝쿨에 떨어지매 숨이 막혀서 죽어버리고, 또 어떠한 씨는 옥토에 뿌려지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그 밭을 잘 갈아서 씨가 날 수 있도록 옥토를 만들어 뿌리지 아무 산이나 들에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의 씨앗을 뿌릴 때도 우리의 생활 속에 마음의 바탕을 정비하고 뿌려야 비로소 우리 믿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쁜 마음의 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씨를 뿌린다든지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린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적을 일으켜 주지 않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연보 드릴 때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때 마음이 인색해서 고통을 가지고 도와주고 난 다음에 늘 마음에 괴로움을 가진다면 이것은 인색한 마음에 씨를 뿌린 것으로 그 씨는 무효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혹은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자기는 하기 싫은데 주의 종이 강요하기 때문에 이웃에서 강제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고 억지로 씨를 뿌려 놓은 것은 그 씨는 옥토에 뿌려진 씨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나쁜 마음의 밭이란 인색한 마음의 밭과 억지로 하는 마음의 밭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씨를 뿌려봤자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마음의 밭이란 성경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릴 때 이것은 좋은 마음의 밭, 옥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내 마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스스로 우러나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심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나는 믿음의 씨앗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지 않나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인색한 마음으로 심고 억지로 심어놓고 난 다음에 마음에 원망 불평을 가지고서 기다리면 잡초만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진실로 심을 때 내 마음에 즐거운 마음이 있어서 심었느냐? 내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심었느냐? 이 사실을 단단히 살펴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적게 내고도 굉장히 인색한 마음이 생기고 억지로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는 믿음의 그릇이 적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내고도 마음이 즐거움으로 넘치고 더 내고 싶은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이는 믿음의 그릇이 큰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쫓아서 축복을 해 주시를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수확의 양은 이 성경에 분명히 말하기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농부들을 보고 물어보십시오. 적게 심어놓고 난 다음에 굉장히 많이 거둘 것을 기대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적어도 최소한으로 거두는 것이 30배를 거두고, 그 다음은 60배를 거두고, 많이 거두면 100배를 거둔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이 한 해 농사를 지어서 그 해 100배를 거두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를 믿는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은 성서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남에게 꾸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주셨는데 왜 우리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겠습니까? 문전옥답을 가지고서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게을러서 심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게으른 것이요, 이러한 사람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땅마지기가 없어서 심을 곳이 없어서 헐벗고 굶주려야 동정을 하지 이와 같이 우리가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축복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고 거두는 법칙을 가르쳐 준 이상 왜 우리가 심어서 거두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다 심어서 30배, 60배, 100배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수확을 거두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오늘 읽은 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축복은 은혜냐? 저주이냐?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기를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고 성공을 받으면 그것은 일종의 죄를 짓는 것같이 공격을 했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마음에 오히려 복 받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지 못 하고 하나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설교를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저주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부요와 성공은 저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믿지 않고 물질을 많이 가지고 크게 성공해서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어라'고 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불과 80인데 그 동안에 이 육신의 장막 속에 살다가 이 장막이 무너질 때 우리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없이 부귀영화 공명을 누려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다는 것은 그 부귀영화 공명이 가장 처참한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면서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시편 103편 1-3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저가 내 모든 죄를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고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에서 은택의 비가 임하면 메마른 땅이 다 살아나고 모든 생물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비는 하늘에서 은택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은택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를 모두 용서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용서해 준다고 하니까 무조건하고 용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죄는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셨음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해 주시지 회개를 안 하는 사람을 무조건하고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님이 내게 편지를 해 왔어요. 그는 예수를 잘 믿는 자매님인데 이웃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빌려달라고 해서 자기 돈과 남의 돈까지 빚을 빌려서 주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빚 갚은 때가 되니까 뻔뻔하게 나오고 빚을 갚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쟁이가 무슨 빚을 자꾸 달라고 하나' 오히려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그만 그 이웃이 미운 생각이 나서 아무리 용서하려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 목사님 나는 이래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편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답장을 했습니다. 용서해 줄 필요 없습니다. 밉거든 미워하십시오. 성경에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해 주라고 했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말은 없습니다. 하루에 7번씩 70번이라도 죄를 짓고 잘못했다고 오거들랑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 안 하는데 왜 용서를 해요? 그러나 미워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워하면은 내 속이 상하니까 자꾸 축복을 해 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도 복을 받아서 빚을 갚고 마음이 깨어져서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기도를 해 주지 일방적으로 용서를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해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크고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영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내 모든 병을 고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크고 작은 병을 고쳐주시겠다고 이미 성경은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인간의 힘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러므로 건강할 때 주님을 잘 섬기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크고 작은 모든 병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이상 우리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매달릴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기도할 때 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통하여 병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쁜 것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을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야말로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요한3서 2절에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택을 우리보고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우리들이 이것을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고 못 살게 구는 하나님이라고 잘못 전도하고 또 잘못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일에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넉넉함은 죄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해야 우리가 남을 도와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오랜 세월동안 교회는 성공과 축복을 세속적이고 죄악시 해왔습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가난한 것이 도덕적이요 신령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마귀가 교회를 파멸시키려고 전도 못하게 하고 사랑의 실천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또 그 가운에 낙심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것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개인이 자기의 만족적 경건은 교만이요 악입니다.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지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산다. 과부들이 굶주리고 고아들이 길거리에 쏘다녀도 내가 상관할 것이 없다. 나 혼자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살아 천국 간다. 이러한 것은 교만이요 악인 것입니다. 내가 뼈빠지게 일을 해서라도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과부를 돌보아 주고 고아를 도와주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참된 경건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말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된 경건이란 야고보서의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 가운데 도와주는 것 이것이 참된 경건이지 남에게 도와 주기는 커녕 늘 달라고 손이나 내밀고 자기 잘난 체 하고 사람들 비난이나 공격이나 하고 자기 혼자 거룩, 거룩하면 이것은 죄악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참된 하나님의 은혜란 여러분이 축복을 받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 한국사회를 보십시오. 여러분 한국사회 지금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든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몸부림을 우리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한 자는 많이 부해지고 가난한 자는 지극히 가난하고 중산층이 대단히 얇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가 진실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한 자가 더 많이 가난한 자와 나누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이 사회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한 자는 자꾸 부하게만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하게 되면 이 사회는 나중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의 사이에 서서 어찌하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전할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동으로 나아가서 가나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직접으로 우리가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주고 예수 사랑 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의 사랑을 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 배불러라 너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서 많은 연보를 드리고 많은 헌금을 해서 그 돈으로 우리 사회에 저변층이 있는 소외당하고 버림받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도와주고 협조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축복은 죄가 아니고 미덕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15절로 보면 축복을 받은 미덕에 관해서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를 축복을 통해야 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112편 9절에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여러분 흩어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무엇이 있어야 나누어주지 내게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흩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까? 옷이 두 벌 있어야 한 벌 나누어 줄 수 있고, 쌀도 두 되 있어야 한 되 나누어 줄 수 있지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나누어줍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축복의 미덕이란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 가지고 있음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서 하나님의 의를 넘치게 하기 때문에 축복은 이와 같이 할 때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하기를 많은 연보로 타인에게 덕을 끼쳐 하나님께 감사하게 함으로 미덕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많은 연보를 드려서 하나님 사업을 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의 신앙에 감동이 되고 그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모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부족함을 우리가 보충해 줄 수 있게 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되고 풍성하게 쓸 때 이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이것으로써 성도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수술해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농어촌에나 가난한 성도들이 자식은 심장병에 걸려서 울어 앉아 죽어가고 있는데 도저히 그를 수술할 돈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연보를 많이 드림으로 일년에 100명이상의 심장병환자를 수술해 줍니다. 내가 요번에 청주에서 집회를 하는데 거기에서 강도사 한 사람이 신학교를 나와서 이제 거기에 교회를 개척하는데 그 집 아이가 심장병에 걸려서 숨을 잘 못 쉬고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아무리해도 그 집 돈으로써는 그 아이를 수술할 수 있는 자원이 없습니다. 개척해서 밥도 겨우 먹는데 어떻게 합니까? 주야로 하나님이여 우리 아이를 고쳐달라고 부르짖었는데 마침 우리가 청주에 가서 대집회를 하게 되어서 그 소식을 듣고 당장 병원에 입원시켜서 심장병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온 청주에 있는 교역자들이 기뻐하고 온 성도들이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복을 받았기에 그리 할 수 있지 우리가 아무 것도 없으면 어떻게 도와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성도들이 축복을 받아야 이것으로써 남을 도와줄 수 있음으로 아름다운 미덕이 되지 않습니까? 나누어 갖기 운동으로 가난한 사람과 나누어 가질 수 있고, 지교회에 건축을 도울 수 있고, 방송해외 선교를 도와서 많은 성도들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믿지 않는 사람을 구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만큼 축복해 주셨음으로 이제는 여러분이 드리는 그 헌금을 통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사회의 저변층에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도와주는 것을 열심히 할 작정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미 부랑자들, 청소년들을 모아서 그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서 사회의 건전한 인물로 기르는 청소년센타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있어서 우리 교회에서 오늘날 공단에서 일하는 불쌍한 우리 청소년들이 시골에서 올라와서 일년에 10만원 이하의 매달 월급을 받고 어려운 가운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있을 곳이 없어서 하숙집이라고는 방 한 평에 거기에 3교대로 먹고 잡니다. 4시간 자고 난 다음에 그 방을 비워야 합니다. 이렇게 뼈저린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제1차로 이런 청소년들을 위해서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말로만 예수를 전하지 말고 우리가 참으로 사랑해서 저들에게 있을 곳을 제공해 주고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할 때 이것이 참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한국 저 저변층에서 박봉을 받고 헐벗고 굶주리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나가서 자비의 손길을 베풀고 그들을 실제로 도와줘야 진실로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교회의 소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쳤을 때 너희가 와 보았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받아 주었으며 내가 굶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시우고 헐벗었을 때 입혔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이 그러한 것을 보고 그렇게 했습니까? 하니까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소자들 중에 지극히 적은 자를 위해서 해 준 것이 곧 나를 위해서 해 준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교회가 좋은 건물만 짓고 화려하게 내부나 장식하고 장엄한 예배만 본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는 처소가 있으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과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다방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전념으로 도울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성도들에게 축복을 부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축복은 이런 미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 이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림으로 그리스도 복음을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증거가 된다고 성경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의 진실함은 하나님께 드림으로 표시가 되는 것이요, 또 타인을 섬기는 연보가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게 되어서 교회간에 유대가 돈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은 인간을 깨뜨리고 순종케 하며 신앙이 자라게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 선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늘 문을 열고 축복을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남에게 나누어주고 꾸어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축복을 받는 것은 풍성한 구제를 하기 위해서 축복을 받는 것이요 우리가 축복을 받기를 원할 때 하나님이여! 내가 풍성하게 연보를 드리고 구제를 하기 원하니 주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서 우리 가정에 짐이 되고 이웃에 짐이 되고 나라에 짐이 되는 수치스런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부유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우리는 사용하고 올바른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복을 받아 남에게 꾸어주고 나누어주고 도와주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알고 올바른 태도에 서서 올바른 신앙으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남에게 부담에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성경에는 저희가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었은즉 그 의의가 영원히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는 우리 성도들 한 사람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서 남에게 신세지는 사람 없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하나님 아버지시여,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도와주는 자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수확을 거두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경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 마음에 믿음의 분량대로 자원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심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의 수확을 거두어서 내 아버지 하나님 가난한 자, 헐벗은 자, 굶주린 자, 병든 자들에게 진실로 도움을 베풀고 구제를 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구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구제 받는 교인, 구제 받는 교회가 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그래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 인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의가 넘치는 사회와 국가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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