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1∼26절
누구든지 예수님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 얻어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사람 돼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해야
종교 창설자마다 자기가 가는 길을 따라오면 영생 낙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게 하려면 그가 직접 죽었다가 살아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죽음으로 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죄의 감옥인 죽음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의 부활을 크게 기념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만이 죽었다가 3일간 무덤에 계시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죽음이란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대신지시고 감옥인 죽음에 들어가셨다가 3일 만에 인류의 죄를 다 갚으신 증거로 죄의 감옥인 죽음에서 문을 열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영원한 죄인인데 예수님은 죄없이 잉태되었습니다. 아담의 피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죄 없이 잉태된 분이므로 죽음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혈통으로 죄와 사망의 종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죄를 지은 적도 없고 아담의 죄를 이어 내려온 사람도 아니고 성령으로 직접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고 죄 중에서 나를 낳았습니다. 아버지가 있어 부정모혈로 태어난 사람은 다 죄의 유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유전하는 아버지의 유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쓰고 오셨으므로 영원한 죄와 상관이 없는 구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한 것은 우리들, 곧 나를 위해 고난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에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2.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셔서 자기가 부활할 것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악한 자의 손에 팔렸으나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에서 한 오리쯤 되는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와 그 가정을 예수님이 굉장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만 낫겠지 싶어서 기다렸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병이 들어서 생명이 위독하니까 마르다가 빨리 사람을 보내서 그가 건너편에 예수님께 가서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하고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도 그 자리에 더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이미 예루살렘의 동구 밖인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왜 3일 동안 무덤에 있고 난 다음 나흘 째 가서 일으켜 세웠느냐면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한 사흘 동안은 죽은 몸 곁에 어른거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로 18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목숨을 내가 스스로 버리고 그 다음 서로 사흘 만에 죄의 빚을 다 갚고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은 스스로 우리 죄를 갚으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살아나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의롭게 되지 않아요.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이 사흘만에 갚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살아나시므로 확실하게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은 증거입니다. 확실하게 세상과 마귀에게 해방된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확실히 우리의 병이 치료받은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저주에서 허덕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세력은 박살이 났습니다. 마귀가 우리 죄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포로로 잡고 있었는데 죄가 없어지자 마귀는 우리를 잡고 있을 아무런 권한이 없어졌습니다. 마귀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렇게 멀리 있던 천국이 우리 가슴속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늘문을 열고 우리에게 성령을 비와같이 부어주시는데 성령이 바로 천국의 영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는 것은 성령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수양과 도덕으로써 의롭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허물 투성이요, 죄 투성이입니다. 죄없다하면 거짓말 하나 더 보태는 것이니 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한 분만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이 진리를 알고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마귀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 다시 사신 예수님
예수님의 원수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혹시 유언비어가 돼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이 온 사회에 퍼지면 자기들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에 무덤을 지키기로 작정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고 원수들은 말합니다. 그들은 기절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기절을 한 것을 나중에 시체를 돌려주니까 도로 살아났다” 기절했다가 깨어났지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도난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가서 예수님 시신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부활했다고 말합니다. 또 환상설은 “예수님을 열렬히 따른 사람이 예수님이 죽고 난 다음에 환상을 보았다. 예수님이 살아있는 환상을 보았지 실제로 살아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화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것은 옛날 종교들이 다 가지고 있는 신화다” 그러나 온갖 이론을 다 말했지만 예수님이 살아난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로마 군인들로 무덤을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4절로 66절에 보면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로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확실히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것을 보았는데 그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한 후 사십일 동안 살아계신 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빈 무덤 앞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빈 무덤에서 돌아가서는 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나타나셨고, 두 번째 주일에 제자들이 모였을 때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셨고,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고,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감람산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시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사십일 동안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주신 성령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예수님 오시기까지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와 마귀를 이기고 난 다음에 하늘문을 열어 성령이 비와같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가장 큰 증거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로 11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은혜가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히 오시면 우리에게 하늘나라가 밝히 알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책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은 우리 죄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안믿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갚아 주었는데 갚은 것 안 믿으니까 지옥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죄로 지옥 가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것은 바로 주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을 알게 되고 심판에 대하여 하는 것은 이 세상 임금 노릇하는 마귀가 완전히 권력을 다 빼앗기고 신발조차 벗어버리고 도망친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자기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그 대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된 것을 기회로 마음대로 인간을 부렸습니다. 인간들에게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그 죄가 다 용서함을 받자 마귀는 더 이상 사기칠 수 없습니다. 더이상 하나님 일을 훼방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히 권력을 다 빼앗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왔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은 아버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셨고 신약 초기에는 예수님이 33년 동안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사도행전 1장 3절로 5절에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있었는데 그들조차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아무리 배웠어도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열흘 동안 기다렸다가 성령 충만을 받자 천하만국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증인이 됩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나에게 확실하게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확실히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의 시대는 성령시대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난 이런 일이 있어야 신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50년 전에 출발했을 때 많은 핍박을 받은 것은 성령을 증거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귀가 성령에 대해서 증거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사적으로 성령을 받았고 또 받기를 원했고 성령님과 같이 역사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다른 교단 교회들도 우리의 성령운동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더 창창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이영훈 목사가 목회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이 증거하는 영이요, 성령이 충만해야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 백성된 것이 증거가 되고 이웃 사람에게 예수 믿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부산 동래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중학교를 가려면 부산진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동래역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산진역에 기차를 타러 가보면 화차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짐을 잔뜩 실은 화차들이 철로에 꿈쩍도 안하고 있습니다. 어떤 화차들은 일주일, 어떤 때는 보름, 한달 짐을 잔뜩 싣고 꼼짝도 안합니다. 그러나 기관차가 오면 기관차에 연결을 하고 움직이면 화차가 다 끌려가게 됩니다. 그 무거운 화차가 다 끌려갑니다. 그러나 기관차에서 떨어지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로 화차입니다. 성령님이 기관차입니다. 화차에 여러 가지 화물을 싣고 값나가는 화물이 많은데 성령님께 연결이 안되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부름을 받은 사람치고 보배가 아닌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야 보배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성령이 끌어주셔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 반 동안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 숙식을 같이 하고 공부를 한 제자들도 성령받기 전에는 예루살렘 떠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마귀의 종이던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영원히 죄에서 용서하시고 영원히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영원히 하나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부활하지 않았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종교를 가르치고 좋은 철학과 학문을 가르쳐도 그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살아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여기 계십니다. 부활하신 영광의 모습으로 성령 안에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서 중한 죄 짐을 짊어지고 고난당하신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이요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하여 중한 죄짐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죄 짐을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생의 근본이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의 예수님, 나의 구주, 나와 함께 계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속에 승리로운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