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by 삶의언어 posted Aug 28, 2024 Views 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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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5-11-10
오늘의 성구 베드로후서 3장 8절로 1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MXupnL2v0MA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가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 모양이냐. 나는 예수 믿는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또한 우리 믿는 자들 자신도 어떻게 해야 이 마지막 때에 정말 좀 잘 믿어볼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어느 때보다도 이제 우리가 사는 이 시점이 마지막 때라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과거 20년 동안 세계 각각 곳에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 했었습니다만 오늘날과 같이 긴박감을 느낄 때는 없었어요. 성경 말씀그대로 세상에 처처에 전쟁과 전쟁소문이 그치질 않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들이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 평화 회담을 계속 하고 있지만 그러나 마음속에 미움과 불신이 꽉 들어차 있는데 아무리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뒤에서는 살생무기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벌써 세계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가지고도 지구를 40번 이상 멸망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 군축을 한다고 해서 무기를 아무리 줄여 봤자 반을 줄여도 지구를 20번이나 더 멸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벌써 역사적으로 멸망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처처에 기근이 있지요. 지진이 있지요. 어느 곳에 가나 스산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눈앞에 마지막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허리띠를 묶으고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이 마지막 오실 이날에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믿을 수가 있을까? 이 마지막 때는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점에 관해서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올라가서 살 수 있는 나라는 의의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의가 거하는 곳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오늘 마지막 때에 의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립종교인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선을 많이 행하고 도덕을 쌓아서 죄사함을 받고 극락에 이르겠다, 혹은 천당에 이르겠다, 하는 그러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독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우리는 전적으로 타협종교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쓴다고 해도 자기 죄사함을 받을 만큼 공로를 세울 수도 없고 의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성경에는 우리사람들은 벌써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그러므로 우리의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는 것을 압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2천년 전에 보내신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완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30년을 침묵을 지키시고 3년 반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아버지의 뜻을 펼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태어날 때부터 죄 없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어난 예수께서 죄 없이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원수들 조차도 예수님을 심판할 죄목을 발견하지 못했었습니다. 이 예수께서 바로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주님께서 자원하셔서 올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으로써 우리 과거의 죄, 현재의 죄, 우리 미래의 죄악을 당신이 친히 한 몸에 걸머지시고 몸 찢고 피를 쏟아서 우리 죄를 대속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600 년 전에 벌써 이 사실을 미리 알고서 밝히 바라보고 적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그러니 하여 각기 어린양같이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것은 일생에 한번도 죄를 안 지은 것처럼 하나님이 인정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살면서 여러분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일생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하나님이 인정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수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을 줄 수 없는 그런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로나 적선으로써는 이와 같은 위치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단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이와 같은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모두다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믿어서 하나님 앞에 법적으로 이렇게 의롭게 되었은 즉 우리의 삶이 의로운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소를 받고 기독교회가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교회 와서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우리 사생활이나 가정이나 우리의 사회 생활에서 의를 던져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와 타협하고 불의를 스스로 행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에 빛도 되지 못하고 소금도 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조롱이 되고 하나님 마음에 염려를 끼치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활이 의롭다함을 얻었으면 우리는 진실로 의를 가지고 살아야 돼요. 사람들은 내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가지고서 행동을 판단합니다. 우리의 집단과 단체,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따라서 우리는 판단을 하지,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냐 불의한 것이냐 이 척도로써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마땅하게 내게 손해가 갈지라도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면 그것을 행해야지 우리 집단에 유익이 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의가 그러면 하나님의 의를 실천해야지 하나님의 의를 짓밟아버리고 난 다음에 우리가 신앙 생활한다고 아무리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늘나라와 하늘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우리가 주여, 주여 하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생활 속에 내가 정말 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내가 의롭게 살고 있는가, 불의와 타협하고 불의를 좇아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생각하고 이 불의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할 때 그 기도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그러한 사람의 마음에는 평강이 있고 고요함이 있고 확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가 사라지면 마음에 평안도 사라지고 확신도 사라지고 고요함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가 있고 의를 행할 때 언제나 우리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생활에 평안과 질서와 고요함이 있고 확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의롭게 살도록 노력하고 애를 쓰십시다. 말세가 될수록 불의가 이 세상에 장렬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불의와 타협하고서 교회에 와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찬송을 부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었으면 의생활 자체가 그 의를 좇아 살아야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래야 의에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는 마지막에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그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교회는 사랑이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가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대개 사랑이시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그 사랑 가운데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미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와서 마귀는 미움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마음을 빼앗아 버리고 하나님을 오히려 의심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게 만들어서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오게 만든 것은 마귀가 내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부부간에 서로 미워해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게 만들었고 자식을 낳으니까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미워해서 돌로 쳐서 죽여 버리는 미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에 처처에 어느 곳이거나 미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움의 열매로써 불안, 초조, 절망, 공포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실로 미움이 온 대지를 꽉 들어 채우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인데 그 가장 근본이 미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천년, 만년 살겠다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도 곧 결혼 생활가운데 미움이 들어와서 아기와 같이 다투면서 법정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 얼마나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속에 미움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의 경고를 주고 싶은 것은 예수 안 믿는 사회에만 가정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회에서 가정이 너무 많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직자인 목사들의 가정조차 파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원수마귀는 택한 자라도 삼키려고 날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겨 나가려면 마음속에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랑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사랑이란 이 마음속에 넘쳐 나오는 향기입니다. 사람이 인조의 꽃을 만들 수 있지마는 향기를 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요번에 캘리포니아에 가서 우리 한국교회를 위해서 성회를 이틀동안 인도하는데 내게 꽃을 하나 꽂아 줬는데 유별나게 향기가 많이 나요. '참 그 꽃 굉장한 꽃이다. 꽃도 미국 꽃은 더 좋구나.' 그래서 내가 그 꽃을 가지고서 앞에 있는 장로님에게 장로님 보라고 한국의 꽃은 향기가 그렇게 안 나는데 이건 이렇게 향기가 많이 난다니까 "목사님, 한국 꽃이나 미국 꽃이나 다를 것이 있나요 어디, 주십시오 한번 조사해 볼께요." 그 꽃을 주니까 조사를 하니까 꽃 안에다가 향수병을 딱 집어넣어 놨어요. 유별나게 향기가 난다고 했더니만 향수병을 넣어놨어요. 그런 인조 적인 것은 여러분 오래가지 못해요. 진실로 자연적으로 발생한 꽃은 생명력이 있고 향기가 나지 않습니까? 사랑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내게 이익을 줄 때 인조 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일시인 것이지마는 항구적으로 그 속에 사랑이 솟아올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 그 사랑의 원동력이 그 속에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원동력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지 않고는 여러분 사랑이 마음속에 솟아오를 수 없어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목숨을 다해 주를 사랑합니까? 예수님이 그 따르던 제자들도 한 시간 주님과 함께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조차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하고 도망을 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는 모두다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순교하는 자리까지 들어간 이유는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순절 날 그들이 다 한자리에 모여 한 열흘동안 기도하고 난 다음 갑자기 하늘로써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떨어지니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성령에 말하게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체험을 하고 난 다음부터 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불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불탔던지 그들은 개인의 재산이나 명예나 생명을 다 제껴놓고 주를 위해서 헌신했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요한 한 사람 내놓고 난 다음에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해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진실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끓어오르지 아니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함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도 그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형식적으로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자기도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이 와서 그래서 부모가 말리고 형제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어놓고 난 다음 나는 이 남자 아니면 못살겠다. 나는 이 여자 아니면 못 살겠다고 하는 것은 그 마음속에 사랑이란 희한한 눈에 안 보이는 향기가 그를 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도 자기의 이성을 초월해서 생각을 초월해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사랑이 하나님께 올라가서 하나님께 잡혀야 돼요. 그렇지 않고 부모가 교회가 자니까 할 수없이 끌려가고 자식이 가자니까 할 수없이 가고 남편에게 끌려서 아내에게 끌려서 이래서 잡혀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 마음속에 괴롭기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주일날만 오면 "아이구 벌써 주일날이야, 왜 이렇게 주일날은 빨리 오느냐"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자연발생적으로 사랑이 넘쳐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지옥을 가지고 협박, 공갈을 해도 그것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형편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으니까 우리가 성령의 있음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이 마지막 때일수록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성령으로 충만함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마다 성령이 속에 와 계시지만 그런 정도로써 충만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요. 기와 믿을 바에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에 잡혀서 믿는 것이 좋지 억지로 믿어서 어떻게 끝까지 그 신앙을 견뎌내겠습니까? 이러므로 진실로 오늘날 이 마지막 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사는 그러한 삶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면서 상대를 슬프게 하고 괴롭히면서 사랑한 사랑이 있을 수가 있어요?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 기쁘신 일을 해요. 그래서 주일날 모든 것을 제껴놓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물질 드려, 십일조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전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모두다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 이웃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소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 해를 안 끼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이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아내가 해주고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남편이 해주고 부모가 기뻐할 일을 자식이 해주고 자식이 좋아하게 주님 은혜 속에서 부모가 자식을 돌보아 주고 이렇게 할 때 그게 사랑이 넘쳐나지 않는 것입니까?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미워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한들 그것이 통과 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이런 운동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원동력인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세에는 성령을 비와 같이 부어주겠다는 마지막 사랑운동을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네가 사는 세계는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이제는 역사의 마지막 순간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비 성령을 주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온 천하에 나가서 씨를 뿌리게 했는데 이제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서 온 천하에 다니면서 거두어들이게 하는 역사가 지금 오늘 이 시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모두다 성령을 받고 이제는 불타는 사랑으로 나아가서 이웃을 전도하여 예수께로 인도하고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이런 일에 마지막 여생을 내어 맡기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잘 먹고 잘 입고 부귀 영화 공명을 가지고 잘 산다 한들 그것은 얼마나 갑니까? 그것이 어떻게 여러분에게 위대한 삶의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환경이 여러분에게 큰 생활에 기쁨을 갖다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때 그리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고 삶의 의의와 가치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때가 악하다고 성령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이 때가 악하다고 말한 이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때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가, 지혜란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배워서 얻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다 같은 자녀를 낳아보아도 어떤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지혜롭고 총명하고 어떤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지혜가 없고 우둔하게 태어난 자녀가 있습니다. 지혜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혜란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이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많이 들으면 이 말씀을 따라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은 진실로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까요? 지혜롭게 사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를 두려워하면서 사는 자식은 발걸음도 조심하고 말소리도 조심하고 몸 행동가지를 조심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그의 언어, 심사, 행동에 조심해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슬프지 않게 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며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생활에 관여해서 우리의 갈 길을 이끌어주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인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지 아니하면 강제로 와서 하나님은 인도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 아버지 이일은 하나님께 내어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손잡아 이끌어 주옵소서. 하나님께 내어 맡길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생활에 관여해서 여러분과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것이지 내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지혜와 총명으로 모든 일을 해 나가다가 올무에 걸리면 다시 일어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 내가 알던지 모르던지 그때부터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끌어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올무에 걸리더라도 하나님을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일을 내어 맡기고 나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여호수아 1장 8절에 있는 말씀같이 "이 율법 책을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데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인생을 살면서 평탄하게 살고 형통하게 살기 원치 않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자기가 형통하고 자기 자식들이 형통하고 생활에 형통하기를 다 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을 하고 내 있는 힘을 다해서 말씀에 기록한대로 행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내 앞길을 평탄하게 만들고 네가 형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여러분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부흥사가 TV방송에서 방송하는 것을 들었었습니다. 그는 그 방송에서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셨으니 우리는 전부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야 된다. 참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 된다. 고난 당하지 않고 사는 신앙생활은 신앙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 부흥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은총을 너무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는 우리가 죄악으로 고난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용서를 받고 심판을 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없애주시고 성령을 주어서 우리를 강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우리를 질병과 저주에서 속량 시켜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병없이 살고 저주와 낭패하지 않고 살고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 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 위해서 대신해서 고난받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오늘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주님께서 내 길을 평탄하게 만들고 내게 형통함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지혜롭게 사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상고하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힘과 용기를 얻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게 될 때 이러한 사람이 참으로 지혜롭게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야고보서 1장 5절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영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말하고 판단하고 행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리석고 미련하게 사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자기 스스로가 낭패될 일만 하고 있지마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문제가 다가올 때 그 지혜로 말미암아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향상하고 발전하는 삶을 도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지혜를 얻도록 돼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지혜가 부족하면 언제고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면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말세에 마귀가 끝없이 우리를 올무에 집어넣으려고 할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인생을 지혜롭게 승리롭게 살아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정의가 행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며 하나님의 지혜로움으로 어리석음을 이기고 살게되는 이것이 최상의 삶이 되고 위대한 성공을 가져오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이제 이 최후 마지막 때에 마귀가 택한 자라도 미혹하여 멸망시키려고 발버둥 하는 이 때에 한 사람도 낙오하지 말고 모두다 영광스러운 천국까지 승리하여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제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당이 열렬한 불에 녹아지는 시대에 마지막 심판의 입구에 와 있습니다. 의에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벌써 마음속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성회에 출석한 성도들 마음에 손을 얹어보고 진실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모시고 있는지 살펴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있는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는 자들은 더욱 의롭게 되었은 즉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살고 불의를 따라 살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버지여 항상 지혜를 얻어서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써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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