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이 시간에 깊은 곳에 가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일생에 배운 것이 고기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뼈가 야들야들한 어린 때부터 시작해서 뼈가 굵어진 장년이 될 때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배 젓고 나가서 그물을 던지고 고기 잡는 것이 그가 배운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물을 던져봐도 그 당시 고기 잡는 시설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구복을 채우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면할 길이 없고 늘 생활에 허덕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또 그물을 어깨에 걸머지고 나가서 그물을 배에 얹어놓고 노를 저어 호수로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물이 너무 맑아서 낮에는 고기를 못 잡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내려오는 것이 환하게 보이기 때문에 고기들이 다 도망치고 한 마리도 안 걸립니다. 밤에 그물을 던져야 고기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연고인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댕기고해도 새벽이 될 때까지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안았습니다. 그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벌써 날이 환하게 새고 그물이 물에 비치자 물고기들은 다 도망을 치고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래서 허기진 배를 안고 호수가로 나오는데 갑자기 그는 인생에 지쳤습니다. 허탈한 마음과 어떻게 살아갈까 막연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가난을 피할 길이 없고 그래서 자기의 인간적인 꿈이 산산조각으로 파도처럼 깨어지고 이제 자기의 무능력, 자기의 무력이 뼛속까지 사무쳐 들어왔습니다. 이제 살길이 막연합니다. 배운 것이라고는 고기 자는 것밖에는 없는데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고기는 잡히지 아니하니 집에 가면 장모는 병들어 있어 약값을 지불해야지요. 마누라, 자식들은 밥 달라고 기다리고 있지요. 이러니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끝장이 나는 것 같고 이제는 인생으로서 살아갈 길이 막연하고 절망인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서있는 땅이 흔들리고 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배를 호숫가에 대어놓고 그는 찢어진 그물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예수님께서 군중들 앞에 서서 마치 군중들에게 쫓기듯이 걸어오셔서 베드로의 배에 성큼 올라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배를 좀 떨어지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배를 저어 떨어지게 하니까 예수님이 앉으셔서 군중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도 베드로에게는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집에 병든 장모, 처자들 그의 살아갈 길. 이런 것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말미암아 두 귀가 꽉 막혀버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등을 툭툭 치셨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이 "배를 빌려줘서 고맙네. 이제 내가 갚을 때가 되었네. 자. 깊은 데로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베드로가 "예? 아니, 이 대낮에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니요.... 호수라면 내가 잘 아는데 선생께서 무슨...." 그러다가 그만 말을 딱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그 눈빛이 자기를 꿰뚫어 보는데 그 권세가 베드로를 압도했습니다. 그래서 "예! 내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으되 선생께서 그물을 던지라 하니 그 말을 의지해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보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속으로 반신반의하면서 배를 저어 깊은 대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낮이요 또 낮에는 물고기가 물밑으로 들어가지 깊은 곳에 가면 물 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물을 던져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깊은 곳에 가서 예수님이 시키는 데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잡아당기니 그물이 무거워 찢어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물을 잡아당겨 보니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부지런히 자기 배에 담고 그래도 남아서 야고보와 요한의 배를 불러 가지고 그들의 배에도 가득히 담았습니다. 그때 갑자가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분은 보통 분이 아니구나. 이분은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이라고 깨닫자말자 그 마음속에 죄책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마음의 조가 드러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럴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얕은 인생을 살 때 낭패와 실망을 당했다가 깊은 곳에 들어가서 비로소 그는 인생의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위대한 성공적인 삶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도 얕은 인생의 물가에서 여러분의 힘을 다하여 삶의 그물을 던졌다가 잡아당기고 던졌다가 잡아당겨 봐도 늘 빈 그물밖에 없고 인생이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되었습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듣고 베드로와 같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그 길로 한번 발을 옮겨 놓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환란과 풍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대게 모든 사람들은 다 얕은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얕은 곳은 전통적이고 습관적이고 안전하고 편안하고 변화가 없는 삶입니다. 가정도 변화가 없고 사업에도 변화가 없고 그저 생활에도 변화가 없이 편안한 생활 속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정도나 염려하고 하나님이나 영혼이나 사후세계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살다가 그만 취생몽사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일반 사람의 통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영생의 백성으로서 영원한 깊은 성공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깊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갑자기 시험과 환란을 보내 가지고 여러분과 내가 사는 곳에 지진이 일어나서 흔들리고 흔들려서 깨어지고 깨어져서 내가 설 곳을 잃어버리는 이러한 처지를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과 환란을 통하지 아니하면 하나도 안 깨어지거든요. 답답한 전통적이며 습관적인 현실의 껍데기에 들어앉아서 자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활에 지진이 일어나고 흔들리고 깨어지고 시험과 환란이 와서 부딪쳐서 이제는 도저히 현실 생활을 내가 유지할 수 없을 때 이와 같이 절망이 될 때 그때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성큼 타오르시는 분이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좋을 때, 등 따습고 배부를 때에는 많이 전도를 받아도 관심이 안 가집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다 흘려보내고 관심을 안 가집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시험과 환란을 당하여 나의 현실의 껍질이 깨어지고 나의 현실의 생활이 뒤흔들리고 내 선 곳이 다 깨어질 때 내가 현실에 설 수 없는 그러한 현실이 다가올 때 여러분은 마음 문을 열고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깊은 데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이 시험과 환란이 서서히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충격적으로 갑자기 닥쳐와서 박살을 낼 때도 있습니다. 저는 27년 전에는 아주 편안하게 내 마음속의 현실에 안주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18살에 가정교사로 일할 때 하루는 목에 무언가 가득히 올라왔습니다. 놀라서 방에서 바깥으로 나가서 입을 벌리니까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막 피가 쏟아져 나오는데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나는 외과의사가 되어서 돈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이러한 평범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내게 닥쳐온 그 충격의 지진은 나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깨어놓고 말았습니다. 나의 설 곳이 없어지고 나의 희망도 깨어지고 나의 갈 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절망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조사해보니 내 오른편 폐는 다 썩고 왼편은 고름이 가득 차고 찢어져 의사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이제는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무슨 하나님이니 영생이니 지옥이니 천국이니 내게는 아랑곳없고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현실의 세계가 산산조각이 나고 깨어지니까 그때는 내게 설 곳이 없고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 예수님께서 전도를 통해 조용기라는 인생의 배에 성큼 타고 들어왔고 나는 그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딱딱한 인생의 껍질이 깨어지고 난 다음 깨어진 그 속에 예수님께서 깊은 세계로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 날부터 오늘까지 27년의 세월동안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생애속에서 같이 살고 같이 더불어 먹고 같이 행하면서 깊은 세계속에서 얻는 한없는 그리스도의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는데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깊은 평안, 깊은 기쁨, 깊은 믿음, 깊은 사랑, 깊은 축복, 깊은 성공,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같이 예수를 믿어도 얕게 믿는 사람이 있고 깊이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게 깨어진 사람은 얕게 믿습니다. 많이 깨어진 사람은 깊이 믿습니다. 똑같이 "주여!" 하더라도 깊이 부르는 사람이 있고 얕게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서 깨어지나요? 사람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격심한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살아갈 희망이 없어질 만큼 부딪쳐서 시험과 환란이 다가올 때 그럴 때 사람은 깊이 깊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시험과 환란을 기뻐할 사람은 없지마는 그러나 시험과 환란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깊은 곳을 향하여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저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과 환난으로 깨어져야 우리는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고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도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한없는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깨어질 대로 깨어지고 인생이 얻어맞을 대로 얻어맞고 난 다음 완전히 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호렙산 가시덤불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즉시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벌써 깨어진 사람이라 깊은 세계로 인도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이 다가오거든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더 깊은 세계로 이끌어 주시려고 할 때는 반드시 여러분의 현실, 얕은 곳에서 깨어져야 들어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험과 환란을 보내서 얕은 곳에서 깨며 저 깊은 세계로 들어오도록 여분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기가 잘 잡히고 배에 고기가 가득하고 그물에 고기가 꽉 차있으면 절대로 예수님을 모시지 안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아도 고기는 잡히지 않고 그물은 찢어지고 배는 텅 비고 집안식구는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현실이 절망에 처하여 베드로가 깨어졌을 때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들어와서 베드로를 구원하시고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깊은 세계는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를 깊은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불을 통과하게 하시고 물을 통과하게 할 때 원망하고 낙심하지 말고 시험 당할 때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라고 한 것입니다. 시험과 환란을 당하면 깨어지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더 주님안에 깊이 깊이 들어가십시오. 깊이 들어가면 깊은 곳에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얕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깊은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반드시 깨어진 사람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깊은 곳에서 만나서 얕은 곳에서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깊은 가운데 이루어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 말씀은 깊은 곳에서 나온 말씀인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인간의 이성으로 준 말씀도 아니요. 인간의 경험으로 나온 말씀도 아닌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깊은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얻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성경은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얕은 인간의 경험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성경은 오직 깊은 체험을 한사람 깊은 세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만이 이 성경을 이해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말씀에는 로고스라는 것이 있고 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창세기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로고스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다 공평하게 준 말씀이 바로 로고스인 것입니다. 이 로고스는 우리가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로고스의 말씀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이 자랍니다. 그런데 레마는 무엇이냐.... 레마는 단순히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내게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는 말씀은 레마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로고스는 언제나 기록 된 말씀으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레마는 성령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레마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다가 혹은 설교를 듣다가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초를 켜는 불처럼 바위를 치는 방망이같이 부딪쳐 와서 "이것은 너를 보고하는 말이다. 너에게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다." 이렇게 부딪쳐 올 때 로고스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변하여서 레마가 됩니다. 머릿속에 깨닫는 지식이 마음에 말씀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레마를 받으면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바로 레마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기록 된 말씀을 읽고 난 다음에 배를 타고 가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직접말씀하신 것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라. 레마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똑같은 성경 말씀.... 늘 지식으로 읽다가 갑자기 성령께서 그 말씀이 내게 부딪쳐오게 합니다. 그건 레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말씀은 모두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며 우리를 위해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식인데 이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여러분과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르쳐 주실 때 이것은 레마가 되고 이 말에 서서 나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며칠 전에 내게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캐나다의 어떤 자매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조목사님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조목사님을 압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까 "조목사님이 캐나다에 와서 성회를 할 때 참석을 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고혈압에다가 신장염이 생겨서 괴로운데 병원에서는 의사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나는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이 성경에 보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했으며 성경에는 주께서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친히 짊어지고 가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제가 말씀을 믿고 의지할까요? 병원에 입원을 할까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국제전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내가 "자매님!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매님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천하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자매님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말씀을 마음속에 불타게 주셔서 머릿속에 지식이 아니라 마음속에 이 말씀은 나에게 준 말씀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런 확신이 오면 그것은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입니다. 그런 마음에 확신이 오거든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입원을 하지 안아도 하나님이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아무런 확신도 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도 아니하시는데 그저 머릿속에 아는 지식을 가지고서 생각하는 것은 로고스를 가지고 나가는 것임으로 이것은 큰일납니다. 그러니 자매님 마음에 레마가 안 오거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세요. 좋은 공기, 좋은 음식, 간호원, 약, 의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고쳐주십니다." 그랬더니 그 자매님이 하는 말이 "목사님. 지금 찬송음악을 틀어놓으셨지요?" 물어보기에 "무슨 음악이요?" 하고 물으니까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능치 못함이 없겠네.... 그 음악이 내 전화기에 크게 들리는데요? 목사님 책상에 테이프를 틀어 놓았습니까?" "아니요. 안 틀어놓았는데요!" "아이고, 목사님. 안 틀어놓았는데 국제전화에서 목사님 음성과 함께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능치 못함이 없겠네. 믿기만 하라. 이렇게 자꾸 들리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계시는 구나. 그 부인은 내 입에서 말하고 있는 동시에 그것이 자꾸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님, 그게 바로 레마요. 바로 자매님이 그 질문에 하는데 지금 대답을 조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고 있고. 나는 오직 믿음. 능치 못함이 없겠네 라는 음악은 틀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제 전화를 통해서 내 귀에는 안 들리는데 당신 귀에 들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레마를 주시는 것이요 그러므로 당신은 믿으면 나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뭐, 약 안 먹어도 낳아요." 그리고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레마는 이런 것입니다. 레마라는 것은 내 마음속에 성령께서 혹은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기도를 하다가 마음속에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라 내 마음의 변화로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가슴에 넘쳐오고 파도가 쳐오고 심령으로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배를 저어간 것은 레마를 듣고 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 머리로 읽어본 것이 아니라 주께서 직접 가슴에 부딪치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믿음이다. 할 때에 지식이냐 심령을 뒤흔드는 말씀이냐 이것을 분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다가는 낭패를 봅니다. 미국의 어떤 부모님들이 굉장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이 당뇨병으로 죽어 가는데 당뇨병은 인슐린을 늘 맞아야 삽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어떤 부흥집회에 갔다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하니까 그러면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아들에게 안수하고 난 다음에 인슐린을 뽑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보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고 고함을 치고 인슐린을 안 놓았습니다. 그러다 그 아들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가 우리는 믿었는데 왜 역사를 안하나 큰 문제가 되어 신문에 대서특필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믿는 것은 로고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로고스만 믿었지 하나님이 직접 너보고 하는 말이 너는 아들에게 주사를 놓지 말고 이제 믿어라. 이 음성을 듣지는 안았습니다. 믿음은 레마에서 오지 로고스에서 오지 않습니다. 로고스로 여러분께서 신앙의 지식은 얻지마는 레마는 여러분 가슴속에 뜨거운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지식을 가진 신앙은 좋습니다. 신앙에 지식이 없으면 여러분께서 튼튼한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믿음을 가지고서 현실에 기적을 바라고 홍해수를 가르고 요단강을 가르고 물위로 걸어가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고 이러한 기적은 현재 직접 하나님 음성이 들려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혹은 기도할 때 머릿속에 지식이 아닌 가슴에 부딪쳐서 확신이 다가올 때 가슴에 불타는 것이 마치 돌로서 무엇을 깨뜨리듯이 내 가슴속에 부딪쳐 와서 이것은 나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고 확신이 들어올 때 이것을 레마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가지고 나가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 깊은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레마를 주실 때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맹목적으로 믿는 다고 하는데 맹목적이 아닙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얻었으니 이제는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두려워 허지 않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성령으로 부딪쳐 왔으므로 나는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물을 통하고 불을 통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레마가 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레마가 올 때까지 기도하고 혹은 철야하고 혹은 금식하십시오. 마음에 말씀이 부딪쳐오면 그때로서 끝장이 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오면 그 말씀이 여러분께서 믿음을 가지고 모험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가 충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계의 사람들이 레마가 와도 그 레마를 자고 난 다음에 믿고 실천할 것이냐, 두려워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이성주의자나 경험주의자들이 저 사람 미쳤다. 저 사람 돌았다 합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잡지 못하더니 이제는 물고기가 대낮이라 그물을 보고 다 달아나는데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지러 간다하니 모든 이성주의자들은 베드로가 미쳤다. 저 사람 왜 저러냐....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로 레마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레마를 받았기 때문에 이성주의자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경험주의자들이 미쳤다고 하더라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그 마음속에 레마가 왔기 때문에 레마를 따라서 그는 깊은 데로 들어가서 기적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파도는 치고 바람은 불고 노를 저어도 배는 전진해 나가지 않고 두려움이 꽉 들어찬 곳에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니 유령인 줄 알고 모두다 유령이라고 고함을 치고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시어든 나로 오라 하소서. 레마를 구했습니다. 베드로가 모세도 홍수를 갈랐으니 나도 거기가 보자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주께서 오라 하시매 그 말씀이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물위를 걸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라는 주의 말씀이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서 그는 일어나서 밤바다를 향하여 걸어 들어가려고 합니다. 아마 다른 제자들이 볼 때 저 사람이 돌았다. 저 사람이 절단 났다. 이성주의자가 볼 때 경험주의자가 볼 때 이제 베드로는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그는 레마를 받았습니다. 주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배에서 나가서 물위로 걸어가자 물 위로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생애속에도, 여러분이 얕은 세계속에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다, 살다 안 되는 것이라도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깊은 곳에 들어와서 주님의 말씀. 레마를 구하고 레마를 믿고 나면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그 말씀대로 전진해 나가면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기에 기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는 그저 훌륭한 종교가요. 철학가요. 선생이요. 사회개혁자이지 우리 같이 고기 잡는 사람. 우리같이 노동벌이 하는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는데 레마를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과 함께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보니 이제 예수님께서 종교가도 철학가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같이 직접 고기잡이를 합니다. 그물을 함께 던지고 함께 잡아 당겨보니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는데 이제 예수님 손에 고기가 잡혀 비린내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레마를 받아서 살아갈 때에 주님은 함께 역사하사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구멍가게에서 여러분의 회사에서 여러분의 공장에서 기름냄새를 풍기면서 여러분의 농장에서 함께 비지땀을 흘리면서 주님은 현실 생활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이 교회의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일상 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의 눈물과 피와 땀의 생활 속에서 주님이 소매를 걷고 같이한 어부에게는 같이 어부가 되고 직장인은 함께 직장인이 되고 정치인은 함께 정치인이 되고 군인과 함께 군인이 되어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으셨을 때 베드로 배만 채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기 때문에 나만 잘 살고 나만 잘 먹고 나만 평안한 것은 주의 나라에 통과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축복할 때 여러분의 이웃을 생각합니다. 베드로에게 고기를 가득히 잡게 하실 때 밤새도록 같이 그물을 던졌으나 빈배만 있는 야고보와 요한을 기억하시고 그물에 두 배에 가득 차도록 잡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베드로의 배에 채우고 난 다음에 야고보와 요한의 배도 채우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축복할 때에는 잔이 넘치게 해서 나만 마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것을 나누어주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께서 깊은 세계속에 들어가서 축복을 받을 때 나만 채우지 말고 이웃도 대우는 그런 역사를 주님께서 베풀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한 증거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천당만 보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현실 생활 속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이 현실 속의 생활문제를 거뜬히 해결해 주는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베드로는 얕은 곳에서 그물을 던지다가 실패한 후 위대한 승리를 주신 주님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다 그들 속에 물질적인 얕은 세계가 아니 깊은 영원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다 예수가 들어와 계신 이상 여러분은 이제 얕은 데 있지 않고 깊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깊은 곳에는 말씀과 믿음으로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러한 세계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기이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의 백성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했으며 성경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말씀과 믿음으로 산다고 하니 세상 사람 보기에는 기이하게 보이나 그러나 여러분은 깊은 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나아가자 빈배가 가득해진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깊은 곳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될 때 비로소 주의 능력이 여러분과 같이 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실한 의미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빈배를 가지고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텅 빈 가정의 배, 건강이 없는 텅 빈배, 생활에 모진 고통과 가난해서 텅 빈배를 가지고서 찢어진 그물을 가지고서 해변 가에서 탄식을 하는 이러한 삶을 주께서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얕은 곳에 주님 없이 그물을 던진 사람에게 있을 일이지 여러분께서 그 얕은 곳을 떠나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내가 깨어지고 그 다음에 말씀의 깊은 곳에 들어가고 믿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사는 생활 속에는 오늘날도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그 배 똑같은 그 그물에 오늘날도 넘치는 수확, 축복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으로 여러분 곁에 여러분과 함께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같이 타고 인생을 동업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그 위대한 말씀과 깊은 믿음 속에 들어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게 될 때 하나님은 위대한 은총과 축복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성주의자요. 경험주의자요. 얕은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배가 비고 그물이 찢어질 때가 얼마나 많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제 4부 예배 출석한 성도 가운데도 텅 빈 가정, 텅 빈 건강, 텅 빈 생활, 텅 빈 사업체, 여러 가지 빈 것으로 말미암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얕은 곳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깊은 곳을 들어가게 하여 w시옵소서. 나사렛 예수가 우리 속에 계시면 우리는 깊은 곳에 들어온 사람이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믿음으로 기도로 살아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내 배도 채우고 남의 배도 채워주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고 기도 드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