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정 주간 동안 부모와 자녀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부모와 자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봅시다.
부모와 자녀는 이 세상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인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천래적이고 무조건적이고 그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맺어진 이 사랑의 줄을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묶음 이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 슬하에 있으면서 성장하는 동안에 또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도와주는 동안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끝임 없는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사랑과 미움이 교차되고 환희와 실망이 함께 하며 답답함과 자랑스러움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거느리고 기르는 어버이로서 또 우리 위에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들로서 어떻게 해야 참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관해서 한번 마음을 열어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자녀는 부모라는 막대한 영향력 하에서 자라나면서 그의 사람됨이 이루어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동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어린아이들이 자랄 때 1살에서 6살까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1살에서 6살까지는 자기가 충분히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만한 그러한 지력도 없고 언어구사력도 부족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 밑에서 형제가운데서 막대한 영향력을 받습니다. 1살에서 6살까지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하고 상대방이 부어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1살에서 6살까지가 인격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이 때에 부모님들이 뜨거운 사랑으로 자녀들을 돌보아 주고 그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밝고 맑고 환한 인생관을 가지도록 도와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짓밟히고 소외되고 멸시를 당하면 일평생에 마음이 삐뚤어지고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6살부터 12살까지가 중요합니다. 이제는 충분히 자기 의사도 발휘할 수 있고 언어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늘 질문을 하고 어머니에게도 질문을 합니다. 주위환경의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부모님께서는 이 자녀들하고는 친밀한 대화를 계속 가져주어야 하고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부모에 대해서 인상깊게 기억되는 것은 6살에서 12살 사이의 있었던 일들인 것입니다. 이럴 때 부모님이 자녀와 함께 많이 대화하고 놀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중대한 잘못은 직장인들이 너무 많이 직장에 시달리기 때문에 밤늦게 돌아와서 지쳐서 견딜 수가 없고 어린 자녀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녀와 부모와의 대화가 부족합니다. 또 공휴일에는 부모들은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 버리고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내버려 놓습니다. 이러므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 남남이 되어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자녀들이 자랐을 때 부모에 대한 인상이 나쁩니다. 부모와의 친밀감이 없어지고 부모에 대한 대적적인 감정이 생겨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 다음 12살에서 18살까지는 이제는 반항기입니다. 자기의 인격이 충분히 자랐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게 보였던 부모들이 별로 위대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끝임 없이 반항하고 좌충우돌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모님들은 단호하게 그 자녀들을 교훈하고 조언해 주며 지도해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2살부터 18살까지는 자기들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는 시기이지만 그러나 이 세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발을 잘못 디뎌서 중대한 과오를 범할 그러한 위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고 잘못된 환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러한 기간에 비록 부모에게 반발하지만 부모는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서 자녀들을 교훈하고 조언하며 지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교육만 잘 시키면 부모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이것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 자녀를 받아서 우리는 잘 길러서 국가와 사회에게 돌려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잘 교육할 수 있을까요? 이 점에 관해서 우리 부모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교육을 튼튼히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씀하기를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서는 제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도하고 복음 이외에 다른 설교는 하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왜 중요하냐면 사회도 일시적입니다. 국가도 일시적입니다. 세계도 일시적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하나의 역사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영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의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어느 사회나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마땅히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 구원에 치중해야 할 것은 그 영혼은 한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와 국가는 끝임 없이 변천하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영원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 슬하에 있을 동안에 그 영혼을 부모는 구원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가정에 있을 동안에 가정의 분위기에 푹 젖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따라서 그들의 인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인격도 그와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보면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라고 사도 바울 선생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디모데의 그 헌신적이고 뜨거운 신앙이 원래는 외할머니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외할머니 로이스가 뜨거운 신앙을 갖더니 그 신앙의 영향력으로 그 어머니 유니게가 열렬한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디모데는 위대한 사도로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녀들은 집에 있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력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앙적인 분위기를 자녀들에게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작년에 우리 성도 한 분이 하나님 앞에 큰 헌금을 드리면서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내 생각에 연보를 드리면 드리지 왜 자녀들을 데리고 왔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아버님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고 내가 마음에 크게 감동을 느꼈습니다. 목사님 내가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거 그냥 목사님께 가지고 와서 기도 받고 드려도 될 것이지만 아이들을 데려온 것은 아버지가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린다는 것을 아이들의 눈으로 확인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아버지 어머니는 늙어서 천당 가더라도 내가 하나님께 물질로서 제사 드리는 것을 자녀들이 보게 함으로 평생동안 잊지 않고 자기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굉장한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그 자녀들은 평생에 아버지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물질로서 하나님을 공경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따라갈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십일조 드리기 전에 자녀들과 함께 그 십일조 봉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드리면은 자녀들이 그를 통해서 직접 배우고 영향력을 미쳐서 평생에 하나님 섬기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등한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언제나 성수주일 하십시오. 주일이 되면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십시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사람이 해야될 일이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몸소 부모가 실천하면 평생에 자녀들은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어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언제나 저녁이나 아침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시더라 좋을 때는 찬미하고 어려울 때는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더라. 이것이 마음속에 깊이 인상되어서 저들도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고 나갈 때 그들도 성경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 품에 있을 동안에 확실히 예수를 구주로 믿도록 여러분 자녀하고 신앙 문제를 토의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자세히 가르쳐 주고 중생을 확실히 하도록 부모님께서 도와주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교육에서 부모가 취해야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도덕적인 기초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장성하여 사회인이 된 후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은 도덕적인 기준을 가정에서 배운 그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저도 저의 생애를 살펴볼 때 제가 지금 이 세상에서 50을 넘어 살면서도 저의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인 모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물론 섰지만은 그 무엇보다도 제가 자랄 때 저의 아버지, 어머님께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던 것이 마음속에서 벗을래야 벗을 수 없이 옷 입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모님께서 가정에서 올바른 도덕적인 기초를 자녀들에게 닦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해도 일확천금만 하면 되고 권력만 얻으면 된다는 것을 늘 주입시키고 가르치면 나중에 자녀들은 그렇게 되어서 자기 일생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을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치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원하는 것은 이 십계명이다. 너희가 예수 믿고 구원은 받지만 이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을 유지할 수가 있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수가 있다. 그러므로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이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 기본적인 계명을 자녀들에게 굳세게 가르치십시오. 그래서 그들의 평생동안 양심을 통해서 그 계명이 소리치게 만들어 놓으십시오. 자녀들이 자라면서 이 세상에서 그 발걸음이 빗나가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이 빗나갈지라도 그 양심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이 소리치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갔더라도 곧장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더라도 정의롭게 사는 것이 불의로 잘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그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십시오. 요번 범양사건에 한사장의 어머니가 한 말을 나는 마음에 주의 깊게 읽어보았습니다. '내가 공부만 잘해라, 잘해라 한 것이 한탄스럽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 부모들은 자녀보고 공부 잘하라고 합니까? 아버지가 저녁 늦게 들어와서도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너 오늘 공부 잘했니? 그럽니다. 아침에 떠나기 전에 아이들이 인사할 때도 너 오늘 공부 잘해라 그럽니다. 어머니도 아이들을 만나면 너 공부 잘해라 그럽니다. 얘들이 이제 공부 소리에 몸살을 앓습니다. 그렇게 공부만 잘하라고 하고 머릿속에 무엇을 넣어주려고만 했지 인격을 배양하는데는 등한히 했습니다. 한사장 같은 사람 공부를 많이 해서 지혜가 있고 두뇌회전이 빨랐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와 두뇌회전이 빠른 것을 가지고서 거액의 회사 돈을 부정으로 빼돌려서 사치하는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결국에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그 일평생이 파멸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내가 공부만 잘해라, 잘해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격을 배양시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정의롭게 살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참으로 개인이나 가정이나 부모나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정의에 의한 사랑을 베푸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장차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느냐 살지 않느냐는 것은 그가 자랄 때 부모의 슬하에서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가 이것이 결정적인 관건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잘못 살았으면서 자식들보고는 잘 살라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어리석은 교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로, 우리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소질을 살려주는 것을 중점으로 해서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교육제도 뿐 아니라 한국의 부모들은 무조건 내가 되지 못한 것을 자녀들에게 요구합니다. 내가 판사가 못 되었으니 너는 판사가 되어라 내가 변호사가 못 되었으니 네가 변호사가 되어라. 너는 나의 소원대로 교수가 되어라. 이렇게 해서 자녀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녀들은 혹시 부모들의 기대에 어긋날까 싶어서 겪는 그 마음속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소질에 따라 교육시키는 것을 부모들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각인에게 하나님은 소질을 주셨으니 소질에 맞는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그 부모의 소원과 자녀의 소질이 맞지 아니하면 자녀의 소질을 따라 교육을 시켜 주십시오.
반드시 여러분께서 다 교육을 시키되 대학까지 보내야 될 일은 없습니다. 일류 대학만 보내야 되는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정말 머리가 좋아서 얘는 잘 기르면 판사도 될 수 있고 검사도 될 수 있고 교수도 될 수 있고 과학자도 될 수 있다. 그러면 대학교육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은 애를 자기의 소질대로 개발하지 않고 반드시 대학공부를 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4년 동안 학교에 보내며 그 많은 재산을 소모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자기의 소질을 따라서 전문적인 소질을 개발하기 위해서 전문학교나 기술학교에 보내서 평생을 잘 먹고 살도록 그렇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는 내 세 놈을 기르지만은 어떤 애들한테도 대학에 강제로 합격하라고 구박하지 않습니다. 나는 네 소질대로 해라. 대학을 가도 좋다. 대학을 가면 내가 뒤를 돌보아 주겠다. 그러나 반드시 대학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가 고등학교 공부를 해보고 난 다음 너희가 가장 소질 있는 것으로 나가라. 너희가 머리가 좋아서 정말 전문직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받을 만하면 대학을 가라. 그렇지 않으면 전문학교를 가라. 기술을 연마해라. 그래서 인생을 살되 먹고 입고 마시고 살면 된다. 인생이란 그렇게 위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 일만 잘한다면 그 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저는 늘 말합니다.
옛날에 제가 자랄 때에 우리 아버님께서 제게 늘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나는 그때 우리 가정이 가난했고 우리 아버님께서 우리 친구들처럼 저를 자유롭게 교육을 시켜주지 못해서 늘 마음에 이렇게 응어리진 불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 당시 하신 말씀이 저보고 '용기야, 인생이란 별 뜻이 아니다' '그럼 뭡니까?' '인생이란 밥 먹고사는 것이다' 그 말이 그렇게 마음속에 듣기가 싫었어요. 인생이 왜 밥 먹고사는 것이냐, 인생이란 뭐 위대한 일이 있는 것이지 아버님께서 인생을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변명하느라고 나에게 저렇게 말하지 뭐 저런 말씀을 하시냐. 그러나 요사이 제가 내 아들 세 놈을 불러다 놓고 하는 말이 인생이란 위대한 것이 아니다. 밥 먹고사는 것이다.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잘 섬기고 그저 밥 먹고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고통 당하지 마라. 대학 갈만하면 가고 못 갈만하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 얻어서 그저 밥 먹고살면 된다.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 그러면 피시시 하고 웃습니다. 아마 날 보고 비웃을 것입니다. 자기들도 내 나이가 되면 자기 자식 두고 또 이 말을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소질을 살려주는 교육을 하고 너무 자녀들에게 부모의 기대를 부담으로 억압하지 않도록 그렇게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길러야 됩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자라난 세계는 6.25사변을 통해서 혹은 일정 36년을 통해서 너무 가난하고 헐벗고 짓밟혔기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져 있습니다. 자식만은 잘 입고 잘 먹고 교육시키고 잘 살게 해 주어야 하겠다. 이런 응어리가 져 있기 때문에 요사이 우리 자녀들을 기를 때 자녀들을 너무 포식시킵니다. 너무 과보호하고 무책임한 사랑으로 인하여서 허약하고 의뢰심 많고 고난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사이 아이들은 조그마한 고난도 참지 못하고 부모에게 꾸중듣고도 자살해 버리고 개가 죽었다고 해서 나가서 자살해 버리고 부모가 술 주정한다고 비료병으로 머리를 때려 죽여서 토막을 내어 가지고 한강에 갖다 내버리고 하는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교육에 중대한 잘못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들이 책임감 있는 강인한 인격으로 자녀들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꾸짖고 또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자기의 의무와 책임은 반드시 다하도록 하고 과보호하고 무조건 사랑하는 이러한 교육은 지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부모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하면은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부모로서 훌륭한 부모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녀와 부모에 관한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에서 3절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면은 네가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되려고 일류교육을 시키고 그리고 여러 가지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병 안 들고 장수하려고 요사이는 특별히 식이요법도 하고 영양 있는 음식도 먹고 운동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잘 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처방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처방은 버려놓고 인간의 힘으로 잘되고 장수해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잘되게 하고 장수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처방보다 더 좋은 처방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정말 세상에서 잘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 정말 장수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간단하게 여러분이 할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강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가슴을 펴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모를 공경합니다. 또 부모를 잘 공경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내가 병들지 않고 장수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에 굳게 섰습니다. 주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셨으니 이 하나님의 처방을 우리는 받아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 있어서 제일 첫째 중요한 것은 부모님을 예수께로 인도해서 구원을 받게 하고 부모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아무리 공양을 잘한다 하더라도 부모가 주를 믿지 않고 그 영혼을 잃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면 자녀로서 어떻게 올바른 자녀의 도리를 했다고 할 것입니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전도하고 그리고 기도해서 부모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도록 해드리는 것 이것이 자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첫째 되는 효도인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가 부모에게 해드려야 할 것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리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서 나이가 늙어도 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지불하므로 먹고 살수 있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가난하고 그리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지 않으므로 부모가 늙어서 기력이 쇠하면 경제력이 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의지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늙어서 자녀에게 의지할 때 그때 마음에 굉장한 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남에게 손을 내밀어서 도움을 받을 때만큼 마음에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느낄 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장차 늙어질 것을 생각하고 부모가 나이가 많을 때 의식주 문제를 기꺼이 해결해 드리는 자녀가 되어야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하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자녀는 해결해 드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녀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자랄 때 부모가 잘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부모를 잘해주어야 하느냐?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과거에 부모가 잘해주었거든 네가 도와주고 잘못해주었거든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잘했든 못했든 상관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리더라도 부모가 자녀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부모는 자녀하고 운명적으로 사랑의 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잘못되면 부모의 마음속에 걱정을 합니다.
내가 작년에 신문을 보니까 어떤 한 가정에 아버지가 중풍이 걸려서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있으니까 그만 귀찮아져서 부모를 큰 포대기에 싸서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름과 생년월일은 적어놓고 돈 얼마 넣어서 내버렸습니다. 경찰에서 그를 발견했습니다. 똑똑해서 말도 다 잘 하는데 다른 묻는 말은 다 대답하면서도 당신 아들 집 주소가 어디고 당신 아들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만은 잊어버렸다고 머리를 흔들고 대답을 안 한답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마음에 느낀 점이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기를 버린 그 자식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왜? 자식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면 반드시 벌받을 테니까. 자기를 버린 자식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않습니다.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어찌할 수 없이 운명적으로 이렇게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자식이 방탕하거나 가정을 파괴하거나 범법행위를 하거나 하면 부모의 마음속에 끝없는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속에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이 효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길러주신 은혜에 우리는 보답하는 것으로 언제나 좋은 것을 부모에게 나누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대접해 드리고 철철이 옷도 해 드리고 또 돈도 드려서 부모님이 즐겁게 잡수시고 싶은 것 사 잡수시고 여행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해서 부모를 도와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엔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치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고 옛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곧장 부모가 떠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살아있을 때 우리가 정성을 다하고 나면 부모가 떠나고 난 다음에도 마음속에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이와 같은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이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입니다. 저는 30년 목회 동안에 추운 겨울날 이른 새벽에 교회에 나가보면 담요 하나 덮어쓰고 밤새도록 교회에서 떨면서 기도하는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떨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면 자식 때문에. 도박하는 자식, 술 취한 자식, 방탕 하는 자식들 때문에 다른 자식들이 잘 살고 그 집에 가서 대우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추운데 그 교회에 나와서 밤새도록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자신이 부부간에 인정 있고 부모 자식간에 인정 있어서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살면 부모에게 특별히 다른 것 안 해드려도 그걸 보고 늘 마음이 만족한 것입니다.
그 다음 여섯째로, 우리들은 착한 행실로 세상에서 칭찬을 받아 부모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 큰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 아무개 아들 보아라 아무개 딸 보아라' 이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때 부모는 자녀 기른 보람이 생깁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에 세상에서 칭찬 받을 수는 없더라도 동네에서라도 칭찬 받을 수 있는 이런 행실을 함으로 부모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 드리면 이것은 크나큰 부모에 대한 효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음미해 보십시오. 부모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부모고 부모가 되어보면 자기 자식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건강하기를 주야로 원하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로 이것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부모의 부모가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이 아버지께서 여러분과 나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여러분과 나를 구하기 위해서 그 외아들 예수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을 다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가게 하시고 저주를 청산하고 사망을 폐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린 고난을 통해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향하여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심정이 아니고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란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왔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아버지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섬기고 그 아버지의 그림자인 우리의 부모에게 효도해야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는 않는 하늘의 부모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섬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동정하고 효도하며 그 다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우리가 지성으로 받들어 섬겨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어버이 주간에 특별히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나는 참으로 올바른 어버이 노릇을 했는가? 내가 정말 효성스러운 자녀 노릇을 했는가? 깊이 반성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남이 다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산다고 하지말고 정말 참된 아버지 되었느냐? 참으로 좋은 어머니 노릇했느냐? 정말 참 좋은 자식노릇 하고 있느냐? 이것을 우리 한번 깊이 뼈저리게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난 다음 오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좋은 어버이 좋은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십시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어버이 주간에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도 한때는 자녀였고 또 이제는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우리에게 맡겨준 자녀들을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 길러서 사회와 국가와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진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해서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진실로 공경하고 효도를 다하는 자녀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일을 잘못했으면 우리가 크게 뉘우치고 회개하고 훌륭한 어버이 훌륭한 효도하는 자녀들로 변화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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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부모와 자녀
by 삶의언어 posted Oct 03, 2024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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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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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7-05-10 |
오늘의 성구 | 에베소서 6장 1절로 4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Nl_FdxY8F9o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