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우리의 가나안 땅은 어디인가

by 삶의언어 posted Oct 28, 2024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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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십자가의 능력
예배드린 날 1988-05-01
오늘의 성구 여호수아 1장 1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kvio_9WVDxc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가나안 땅은 어디에 있는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30년 동안 애굽 땅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종 모세는 기막힌 기쁜 소식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 받았지마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오자마자 반항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불 신앙한 일을 해서 결국에는 처음 나온 일세대가 한사람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림을 받고, 광야에 40년 방황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그 후세대가 가나안땅에 들어갔으나 그들은 타협하고, 적군을 쫓아내지도 아니하고, 결국에는 적의 모든 신상을 섬기다가 하나님 앞에 쫓겨나서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명령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완전히 점령하지 않은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셔서 성경 사사기 2장 1절에서 5절에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불성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처럼 꾸짖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 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하면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부김이라 한지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약속해 주셨지마는 그 땅을 침략해 들어가서 빼앗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하는데 믿음과 순종으로 그것을 행하지 않아서 결국 주어진 땅도 점령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살지 못하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천년 전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가나안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악에 종이 되어 죄악에 애굽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우리의 구주, 예수를 보내주셔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20세기 가나안땅으로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 주기로 약속하셨는데,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절로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지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 즉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우리도 복음을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들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순종과 믿음을 화합치 아니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가나안땅에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가나안땅은 어디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예비한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건강을 누리고 살 수 있었는데, 그들이 그만 하나님이 되겠다는 오만불손한 생각으로 마귀에 꾀임을 받아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고, 반역하고, 그들 영혼이 죽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그 길로 그들은 마귀에게 점령을 당하여 마귀의 종이 되고, 그들의 환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게 되고, 그들의 부부간에 대화도, 부모자식간에 대화도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육신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므로 이제 병들기 시작하고, 육신이 병들어 갖은 고통을 당하고, 육신이 썩어지고, 분해되고, 사람은 죽어갔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죄와 마귀의 종이요, 영이 죽었고, 육신도 질병과 죽음의 종이요, 환경은 저주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애굽의 종살이에서 인간은 모든 생활에서 갖은 치욕과 고통을 당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이 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를 보내셔서 이 죄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의 땅에서 인도해내어 20세기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 가나안땅을 주님께서 만들어 주실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앞에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악에 포로에서 값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깡그리 다 청산하고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께 값을 주고 여러분 죄짓고 저주받은 인류를 사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 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에 가나안땅을 주셨으며, 하나님과 화목 받아서 성령 받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체험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을 주셨으며, 병고침을 받고 치료를 얻어 건강하여 주 앞에 나설 수 있는 치료의 가나안 땅을 주셨으며, 저주에서 해방을 얻어 손으로 하는 일에 하나님 축복을 받아 형통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을 얻었으며, 우리가 주님이 예비한 영생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의 가나안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밑이 오늘날 우리들의 가나안땅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값주고 사신 오중복음이 오늘날 여러분과 나의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우린 우리의 가나안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사주신 가나안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팔레스타인이 가나안 땅인 것처럼, 여러분과 나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밑에 오중복음이 바로 우리의 가나안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되겠는데 어떻게 들어갈까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들어가야 될지 그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가나안땅, 오중복음을 들어가서 소유하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의지하고 살아야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나, 지식이나, 수단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인본주의가 되지 말고, 사람중심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신본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면 우리가 원수를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모세를 따라서 홍해수가에 왔을 때 창일한 홍해수가 가로막았었습니다. 건너갈 배도, 다리도 없는데 뒤에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도로 포로로 잡으러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수와 바로의 군대에게 샌드위치가 되어서 ????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인본주의로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인력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해서 가로되, "애굽의 어디 장지가 없어서 우릴 이곳에 와서 죽게 하느냐"고 고함고함 쳤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야훼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싸우시리니 오늘 너희가 본 저 애굽사람은 다시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기도를 응답하여 주셔서 홍해수가 갈라져서 마른 육지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 건너가고, 그 뒤에 따라오던 애굽사람들은 다 수장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구약 시나 있었고 신약초기나 있었지 요사이는 그저 말씀만 읽고 산다고 그럽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모두 다 하나님 능력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에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믿는 그 믿음을 가져야 여러분과 내가 현실의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원수를 이깁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에 보면,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우린 환경을 이기고,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들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흔들흔들해서 약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사용해서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왜 사람은 약한 마음을 가집니까? 그것은 불안과 공포에 떠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척도로 삼지 않고, 인간의 생각을 자로 가지고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열두 정탐꾼을 보십시오. 가데스 바데아에서 사십주, 사십야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기다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와서 열 사람이 보고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떠는 마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가보니, 가나안땅에는 산은 높고, 골은 깊고,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며 성벽은 하늘 찌를 듯이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네피림에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 스스로 비교해봐도 여치새끼 같더라. 우리가 들어가면 반드시 우리 처자가 잡히고, 우린 다 죽는다. 그러므로 우리 장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완전히 약한 마음과 불안과 공포에 떠는 마음을 가지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마음이 녹아져서 ???같이 되었?? 모두 다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오셔서 열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 광야로 나가서 사십 년 광야에서 방황하며 다 죽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약해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은 주님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같이 갔지만, 돌아와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우리 들어가서 점령하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광야에서 살아나서 나이 팔십에, 사십에 청춘을 가지고 그 후손들을 끌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항상 말씀에 굳세게 서서,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통해서 보아야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보면 환경에 짓눌려서 그만 불안과 공포에 떠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열등의식에 짓눌려서 자기비하를 하고, 노예근성으로 '나는 언제나 종살이 밖에 못한다.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 속에 살면은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은 사지 못해요. 그러므로 우리는 열등의식을 벗어나고, 패배주의를 벗어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사십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너무나 낙심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가서 사십 년 동안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머슴살이했습니다. 나이 팔십이 되자 머리는 백발이 되고, 몸은 늙어 쭈글쭈글하고, 허리는 굽어지고, 이제는 마음의 자신을 잃어버렸었습니다. 이제는 열등의식 속에 꽉 눌렸으며,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이 다 녹슬어서 패배주의로 꽉 들어차서 이제 나 같은 사람은 쓸모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양무리를 끌고 산등성이를 지나가는데 호렙산 등성이에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어 활활 타는데 아무리 타도 나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곁에 가니까 그 나무에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발에서 신을 벗어라." 왜 하나님께서 가시떨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을까요? 거기에 백향나무도 있었으니 장대한 백향나무를 통해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무화과나무를 통해서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인데, 다 버림받은 가시가 앙상하게 남은, 잎사귀는 침엽수가 되어있는 이와 같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 말씀하셨을까요? 모세는 항상 떨기나무를 볼 때 "쯧쯧쯧, 너도 나무라고.. 아휴, 쯧쯧..." 그 가시나무에 하나님이 임하시니 가시나무에 불이 붙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깊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야, 네가 비록 가시나무 떨기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면 하나님의 메신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임하시면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불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기는 못났다고 생각하고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다.' 고 생각하는 자기 열등의식이나, 자기 비하나, 패배주의가 되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예수 믿고, 성령의 불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위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힘을 얻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한 손으로 옮기듯이 인도해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불안, 공포와, 열등의식과, 패배주의에 눌려있는 마음을 털어 버려서 약한 마음을 강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담대해야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 환경에 부정적인 것을 보면, 마음에 담대함을 잃어버립니다. 가정에도 언제나 안 되는 것만 바라보고, 사회도 안 되는 것만 자꾸 지적하고, 정치도 안 되는 것만 자꾸 지적해서 탄식하고, 경제도 자꾸 안 되는 것만 지적해서 무엇을 보더라도 부정적인 것을 보고 마는 사람은 이것도 못한다, 저것도 안 된다, 이것도 할 수 없다, 저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뒤로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것을 보십시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되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되는 것을 찾아서 그곳에서 용기와 힘을 얻고,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밀고 나가며, 불안을 이기고 용감하게 나가는, 담대한 마음을 품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담대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에 배짱을 가지고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용감하게 믿음으로 나가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믿음으로 행할 때,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십시오. 강하고 담대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말씀의 양식으로 힘을 얻은 사람이 가나안땅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도 여러분, 오래 안 먹으면 몸이 죽어버립니다. 또 약합니다. 영적으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그 사람이 영적으로 힘을 얻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나는 목사니까 하나님말씀 부지런히 읽고, 묵상 아내도 괜찮다, 나는 장로니깐, 권사니, 집사니깐, 나는 조장, 구역장이니깐 뭐 말씀 안 읽어도 괜찮다...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중에는 껍데기목사, 껍데기장로, 껍데기권사, 껍데기집사, 성도밖에 안됩니다. 형식만 남아있고 아무런 힘도 없는 엉터리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적인 힘은 말씀을 먹어야 영양분을 얻어서 영적인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우리는 매일같이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설교만 듣고, 그냥 수요일날 설교만 듣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매일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의 영의 양식도 매일같이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지 않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영적으로 살아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유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책방에 가서 마음대로 성경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공산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성경책 사기도 힘들거니와 성경 한 권 살려면 한달 월급을 다 지불해야 됩니다. 어제는 중공에서 내게 우리 교포가 편지를 해 왔는데, "목사님, 성경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싶어도 성경이 없어서 우리는 목사님이 라디오방송을 해주는 그 라디오에 귀를 대는데 그 라디오가 여기는 밤3시에 나옵니다. 밤3시까지 잠을 안자고, 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말씀을 들으려고 우리는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없는 그런 나라에서 말씀을 얼마나 갈급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있는데 이 말씀을 등한히 하고는 우리에게 준 가나안땅을 점령 못합니다. 그것은 신앙이 허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린 말씀을 묵상해야됩니다. 묵상이란 것은 그냥 지나치며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되씹고, 말씀을 되씹고, 그 글자 한자들을 깊이 생각해서 말씀을 맛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씀을 건성으로 읽고 나가는데 그러지말고 말씀을 읽다가 중요한 고비에 들어가면, 그 말씀을 되씹고, 되씹고, 되씹어서 거기에 있는 단맛을 다 빨아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은 말씀은 되씹지 아니하고 억울한 일 당하거나, 원통한 일 당하거나, 미운 사람이 있으면 잠자리에 들어가서 잠도 안자고 되씹고, 또 되씹고, 또 되씹고, 또 되씹고..."두고봐라. 내가 원수 안 갚는가..." 쓸데없는 일만 되씹어요. 잠자리에 들어갈 때 다른 것 다 집어치워버리고 하나님말씀 중요한 것을 머릿속에 가지고서 잠들 때까지 되씹고, 되씹고, 말씀의 단 꿀을 빨고, 영적으로 강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말씀은 입으로 시인해야되요. 말씀을 우리가 되씹고 영양이 될 뿐만 아니라 말씀은 입으로 시인해야 이것이 내게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매일 기도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늘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내게 이레가 되시니,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야훼 이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 라파입니다. 나의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 닛시입니다. 나의 성령의 깃발이 되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 샬롬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평강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은 야훼 라합입니다.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해주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 찌드게누입니다. 나를 의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 삼마입니다. 항상 나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이름 안에서 승리하고, 하나님 이름 안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는 기도할 때마다 입으로 시인합니다. 입으로 시인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영혼 속에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듣는 사람에게도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묵상하고, 입으로 시인해도 실천하지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실천을 우리가 해야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례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말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의 가나안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았었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적과 이사를 의지하고, 하나님 능력이 나타날 것을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에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말씀에서 양분을 얻어서 막 침노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막 침노해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세계에 있는 것을 손으로 움켜쥐고 빼앗아야되요. 침노해서 빼앗는 자가 소유하지,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있는 자에게 누가 줍니까? 성령 받겠다고 기도원으로 막 침노해 들어가서 땅을 치고, 금식을 하고 "주여, 성령주소서" 부르짖어서 막 빼앗는 자에게 하나님 성령 주시는 것이요, 혹은 병들어서 고통 당하는 사람, 금식하고 철야하면서, 혹은 교회나 기도원에 가서 막 침노해 들어가서, "하나님이여, 고치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병아, 물러가라"고 막 달려들어서 질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손에 움켜쥐고, 잡아 땡겨서 소유하는 사람이 천국을 빼앗는 것입니다. 천국은 여러분,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막 침노해 들어가서, 막 빼앗지 아니하고 그들이 늘 원망, 불평, 탄식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빼앗지 아니하고 가나안에 칠족과 타협하고, 그들의 우상을 함께 섬기고, 그들의 신을 함께 섬겼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과 내가 누릴 가나안땅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누릴 가나안땅은 바로 죄사함의 땅이요, 바로 성신 충만의 땅이요, 바로 병고침의 땅이요, 바로 축복의 땅이요, 그 다음 주님 오실 때 천당 올라가는 땅인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가나안땅인 것입니다. 이 가나안을 우리는 이 땅에 살 동안 예수이름으로, 믿음으로 침범해 들어가서 믿음으로 막 빼앗아야되요.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로 칠전팔기하면서 막 밀고 들어가서 이것을 우리가 강제로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성찬은 바로, 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깨어진 살을 먹고, 그 흘리신 피를 마셔서 예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옛날에 구약을 맺었습니다. 옛날언약을 맺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구약을 맺어서 가나안땅에 들어갔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셔서 새로운 언약, 신약을 맺고 난 다음에 우리의 가나안땅, 오중복음과 삼박자구원의 축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언약 맺은 백성이 되고, 이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놓으신 새로운 가나안땅에 들어갈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되시기 바랍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 성찬을 대할 때, 우리의 불순종을 회개하십시다.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하십시다. 우리의 고집을 회개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불신앙을 회개하고,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말씀 읽기를 게을리 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 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 한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설 때 여러분, 금년 한 해 동안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 모두 다 오중복음과 삼박자축복의 가나안땅이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야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성도들이 다 통성으로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이 시간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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