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항상 우리 마음에 속삭입니다. '너는 믿음이 약하다. 너는 믿음이 없다. 너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는다. 너는 교회를 왔다갔다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마귀의 속삭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마귀가 그러한 말을 하면 그 말에 동의해서 '그래, 나는 믿음이 약하고 없는 사람이다. 별 수 없는 사람이다.'하며 자기를 비하시키고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속삭이는 모든 말은 다 거짓에서 나오는 말이지 진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인 그 시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는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량대로 받은 그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이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위대한 능력을 그 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분량대로 믿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 믿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아 놓은 이 믿음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조건 거짓말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무조건 믿을 수 있습니까? 믿음이란 믿을 수 있는 이유와 조건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요, 맹신입니다.
믿음이란 또 감정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감정이 고조될 때는 기쁨이 넘쳐서 천하를 다 얻는 믿음을 가진 것 같지만 감정이 식어 저조해 지면 온 천지가 다 자기를 버린 것 같고 자신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은 것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굴곡이 많기 때문에 감정을 통해 우리가 믿음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섬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로마의 백부장이 유대의 장로들과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습니다. 로마인들은 유대인과 예수님을 무시해서 좀처럼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와 '내 사랑하는 종이 지금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었으니 와서 고쳐주십시오'하고 간청했습니다. 유대인 장로들도 와서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은 분입니다. 정말 도와줄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서 당신의 종을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나도 권세 하에 있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 주께서 어찌 감히 내 집 지붕 밑에 오심을 제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 한 마디만 하옵소서. 그러면 제 종이 낫겠나이다.'하였습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의 조건은 예수님의 말씀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와 능력이 있어서 그 말씀에 순종치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자신이 종에게 하라하는 말에 권세가 있는데 하물며 하늘과 땅을 지으신 예수님의 말 한 마디면 그대로 되는 것이지 주님께서 수고스레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감동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감탄하셔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온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에 동서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나님의 잔칫상에 앉으려니와 이스라엘 민족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욺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시매 그 즉시로 종이 나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기록에서 보아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란 말씀 위에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믿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은 육으로 계시지 않기 때문에 육체로 볼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기록 된 말씀입니다. 물론 기록된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기록 된 이 말씀들 중 깨달아진 말씀입니다. 아무리 말씀이 많다고 하더라고 이 말씀대로 빈다고 축복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가슴에 안고 있다고 축복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씀을 부적처럼 대문에 붙여 놓는다고 해서 귀신이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깨달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회개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며 교회에 참석하게 되며 말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방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 깨달아질 때 마치 숲을 태우는 불같이, 바위를 깨뜨리는 방망이 같이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고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한 백성은 멸망합니다. 깨닫지 못한 말씀으로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역사 하심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이시므로 깨달아진 말씀을 붙잡을 때 이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을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기록된 말씀을 깨달은 말씀으로, 종이 위의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은 과거의, 미래의 믿음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에 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내의 자유진영의 현대주의 신학자들이나 신 신학자들은 이 성경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전부 신화로 여깁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도 전부 신화요,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성서 문학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만 믿고서 그 사상을 따라 가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앙은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신학자들은 이 성경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보수진영 교회의 문제점은 구약과 예수님 시대의 기적을 다 지식적으로 믿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래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도 지식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하나님의 역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는 오직 죄만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이지 병든 그대로, 가난한 그대로, 버림받은 그대로, 절망 가운데 허덕여도 현재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그저 예전에 기록된 것을 믿는 것이지 현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현재의 신앙을 부인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의 그 죄, 마귀, 가난, 질병, 절망, 슬픔은 그대로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현재 보수 신앙은 손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 당하고 찢기고 있어도 이를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계십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을 보십시오. 마리아와 마르다가 의지하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어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을 때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동구 밭에 오셨을 때 마르다가 뛰어나가 그 발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주여 나흘 전에 이 곳에 오쎴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나흘 적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능력은 믿었지만 눈앞에 있는 예수님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절망하시자 그는 놀라 말을 바꾸었습니다. '주님 지금이라도 주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오라버니가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네 오라버니가 장차 부활의 날에 주님 강림하실 때 부활할 것을 믿나이다'하고 믿음을 미래로 미뤄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보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니 이를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을 때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동문 서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실망하셨습니다. 이 마르다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다는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있었습니다. 절망이 칠흑같이 가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나 현재 예수님께서 그 앞에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흘 전의 예수님과 장차 부활의 날의 예수님만 인정하고 현재의 절망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생 마리아가 예수께 와서 현재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해 주기를 바라셨지만 마리아 조차도 '주여 나흘 전에 오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통곡하고 절망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손가락질하며 '장님의 눈을 뜨게 한 자가 나사로의 죽음을 막지 못하였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과 말을 들으시고 통분이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사 우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의 하나님과 미래의 하나님은 믿으면서 현재에 문제를 도와주려고 현재에 와 계시건만 그런 예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역사 하실 수 없으므로 예수님은 이를 탄식하시고 분하게 여기셔서 우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불쌍하여 우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수많은 가정, 교회에서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보시고 탄식하사 울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제로 마리아와 마르다를 무덤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 무덤 문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여,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지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현재 믿는 것입니다. 지금 믿어야 하나님께서 역사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미래에 믿을 것 가지고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언제나 지금, 현재입니다. 지금 믿어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흘 전에 예수님을 믿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활되어 오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믿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지금 믿고 그 무덤 문을 옮겨 놓자마자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셔서 썩은 그가 새사람이 되어 걸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지금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흡사합니다. 농부가 '내가 작년에 씨앗을 심었으니 금년에 거둘 것이다'하고 말합니까? 작년에 심어 작년에 거둔 것은 지금 현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미래에 심을 것도 지금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농부는 지금 씨를 심어야 합니다. 지금 땅을 갈고 씨를 심어 흙을 덮어두면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심겨진 그 씨앗으로부터 장차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꽃이 피며 열매가 생기는 것입니다. 농부가 지금 심는 것이 중요하지 '과거에 우리 할아버지 때, 아버지 때 잘 심었었다. 후에 우리 자손들이 잘 심을 것이다'하며 가만히 있으면 그는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것은 지금 자신이 심어야 합니다. 과거의 선조가 어떻게 믿었다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살고 신앙은 지금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현재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를 믿을 때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는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세 사라는 90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는 어린아이를 못 나았습니다. 장차도 나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아브라함을 깨워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게 하신 후에 그 것이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를 마음에 새기고 지금은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꿈을 믿었습니다. 현재 꿈을 믿은 것입니다. 자손의 선조가 되었다고 믿은 결과로 그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 이삭을 나았습니다.
우리도 오늘 과거, 미래가 아닌 현재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으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꿈꾸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상하고 꿈꿔보고 느껴보고 감사하며 그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지금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2000천년 전의 십자가이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 미래와 상관 있다면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믿는 것은 지금, 내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지금의 십자가 인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깨어진 예수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지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성찬을 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먹는 떡이 예수님의 깨어진 몸이요, 지금 마시는 잔이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지금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을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올 때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지금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리며 달려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십자가를 바라보고 지금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내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나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와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나의 병을 짊어지고 가시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을 통해 나의 병이 나은 것을 받아들입니다. 아직 병이 있고 낫지 않았어도 예수님으로 해서 병이 나은 것을 지금 받아들이고 믿고 상상하고 있으면 그것이 장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속량 해 주셨으므로 나는 낭패와 실망, 저주, 가난과 멸망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축복을 지금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생각하고 느껴보며 감격,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심어진 그 믿음이 앞으로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금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나를 지금 데리러 오시면 지금이라도 하늘 나라에 올라가는 나의 승천의 모습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지라도 나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신앙과 십자가 밑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장차 내가 이렇게 될 것이라 정차 씨를 심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지금 씨를 심어야 장차 얻습니다. 지금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장차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이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지금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입술의 고백을 통해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고백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에는 과거가 없습니다. 미래도 없습니다. 믿음에는 현재밖에 없습니다.
현재 말씀을 통해 받아들이고 현재에 있는 것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믿음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죄지은 것을 자꾸 회개하고 주님께 '이미 믿은 대로 신속히 이루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감사하며 줄기차게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면 아무리 교회에 출석하고 의식와 형식을 행해도 이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좌절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활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는 손과 손을 마주잡고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저 우주를 지으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빛이 1억 년을 가도 끝이 없는 저 방대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저 많은 별들과 그 이름과 궤도를 지으신 하나님, 검푸른 바다, 높은 산, 계곡, 벌판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그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시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마음속에 살아있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믿음의 역사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록된 말씀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아십니까? 이 기록된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달아 질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두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집에 아무리 모셔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달아 질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은 과거의 말씀, 미래의 말씀이 아닌 지금의 말씀이 됩니다. 지금 내가 죄 사함 받고 성령 받은 것을 믿습니다. 지금 병 고침 받은 것은 믿습니다. 지금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믿습니다. 지금 내가 부활 승천할 준비가 된 것을 믿습니다. 지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좋습니다. 내 앞길에 광풍이 불어오고 스산해도 좋습니다. 내 마음속에 지금 믿음으로 심어놓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마음속에 지금 심어놓은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것을 심어놓으면 파괴적인 것이 내일 나타나고 마음에 아무 것도 안 심어놓으면 오직 폭풍우가 내일 다가올 것이고 마음에 믿음으로 심어놓으면 믿음의 역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내일 나이 운명과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셨습니다. 마음에 믿음으로 지금 심어서 내일의 생활에 위대한 성공과 승리와 영광을 거두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귀의 말에 속아 '나는 믿음이 없고 약한 사람이다. 하나님과 그래서 교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 오늘 각자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활용하기 위해서 깨달아지는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전 뜰만 밟지 말고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아 질 때 그 말씀이 나의 말씀, 믿음의 말씀이 됩니다. 말씀이 깨달아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깨달아 질 때 이를 과거나 미래로 미루지 말고 지금 불신앙이 바윗돌을 옮겨 놓고 예수님이 기적을 이루어 주신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의 하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마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마음속에 심어놓고 지금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도와주시고 지금 입으로 시인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에 심은 것은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