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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풍랑과 인생

by 삶의언어 posted Oct 05, 2024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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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예수님
예배드린 날 2011-04-03
오늘의 성구 마가복음 4장 35절로 4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xziC9GtZjxE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장 35∼41절

 

우리 인생은 파도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같아
예수 믿은 후의 고난은 더 큰 믿음을 향한 은혜
오직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면 축복과 형통 임해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배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황급히 예수님을 깨우니 예수님이 깨어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고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예수님을 모시고 인생 바다를 건널 때

 파도없는 인생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장 중 하나였는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다가 쫓겨 났습니다. 마귀는 천사 3분의 2를 데리고 쫓겨났는데 그들이 귀신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을 때 귀신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무릎꿇고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압니다. 나를 무저갱으로 보내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군대귀신을 내어쫓으시니 즉시 돼지떼에게로 들어갔고 돼지떼는 순식간에 호수로 빠져들어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귀신이 사람에게 다가올 때는 몇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단계가 오브세션(Obsession)이라고 해서 붙어 다니는 단계입니다. 마귀가 붙어서 따라 다닙니다. 그 단계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면 둘째는 오프레션(Oppression), 즉 억압을 가합니다. 올라타서 누릅니다. 거기에서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세 번째로 디프레션(Depression),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착잡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버려두면 포제션(Possession), 귀신이 차고 들어와서 주인 노릇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귀신을 많이 쫓아냈습니다. 귀신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들어가고 지식있는 사람에게도 들어가고 부자, 돈많은 사람에게도 들어갑니다. 귀신하고 대적할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갈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권세가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신령한 생활을 한 사람은 권세가 더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유언으로 남긴 말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귀신부터 쫓아냅니다. 밤새 잘 동안에 언제 나에게 붙어 왔을지도 모르니 “더러운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물러가라! 나에게 붙어 다니지 마라! 나를 건드리지 마라!”라고 명령하며 내쫓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방언 기도를 합니다.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 우울증, 괴로움 등 수많은 고통은 눈에 안보이는 귀신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야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간 배에 풍랑을 보내어서 그 배를 침몰시키려고 한 것은 귀신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귀신이 공격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지는 못해도 우리를 훼방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서 오신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귀신은 나쁜 귀신, 흉악한 귀신이고, 예수님은 좋은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쫓겨다녀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면 예수님이 항상 깨어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귀신이 와서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잠들 때 도둑이 오는 것입니다. 귀신은 깨어 기도하면 우리에게 감히 범접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주님이 깨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풍랑에서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고통이 오면 누구든지 다 부르짖게 됩니다. 고통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예배 드리고 깨어 있으면 주님이 늘 같이 계시기 때문에 파도가 일자마자 주님이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건지시는 분이시요, 높이시는 하나님이시며 응답하시며 환난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기 전에 “우리가 함께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는 그 말씀을 잊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믿음을 두지 않고 환경을 바라봤기 때문에 두려움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환경에는 마귀가 있어서 언제나 역풍이 불게 하고 우리에게 공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 저 건너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그냥은 못들어옵니다. 먼저 마음에 두려움을 주어 두려운 생각, 두려운 꿈, 두려운 믿음, 두려운 말을 하도록 해놓고 그것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미국 정신 신체 의학 세미나에서 저명한 내과 의사가 “만성환자의 90%는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병이 없는데 병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통해서 병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기침을 하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위산 과다 현상을 보이고, 늘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면 실제로 병이 든 것이 아니라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두려워하는 사람은 심장의 기능이 약해져서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었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바라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히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에게 고난과 의심을 주는 마귀를 내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귀를 꾸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길에서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 태연하게 꾸짖으며 지나가면 물지 않지만 개를 보고 겁을 집어 먹고 돌멩이를 들고 던지든지 작대기를 들고 흔들면 오히려 개가 얕잡아 보고서 물고 늘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은 그 권세를 믿음과 동시에 주십니다. 우리가 단호하게 마귀를 내쫓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마귀는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네덜란드 속담에 “인간은 고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두려워했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레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한 고난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라게 하기 위해서 시험적으로 주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두려워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허락하는 고난보다도 훨씬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바다를 건널 때 마귀는 크고 작은 일로 우리를 훼방하고 겁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갈 때 마귀는 오히려 쫓겨 나가고 하나님의 은총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시련을 겪나?

 주님은 풍랑을 극복하고 이기게 해주는 분이십니다. 풍랑을 면하게 해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건강을 위해서 근육을 키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근육을 키우려면 역기를 들고 아령을 드는 등 힘을 써야 합니다. 힘이 안들면 근육이 생기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도 같은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는 것은 고난이 있어야 영적으로 근육이 붙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육이 붙어서 믿음에 힘이 생기고 기도에 힘이 생기고 전도에 힘이 생기고 능력있는 신앙이 되는데, 신앙의 근육은 고통을 통해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이게 만들어 놓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들이 와서 우리를 우겨쌉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믿음으로 대항하므로 사방에서 우겨싸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저항해서 이기게 되기 때문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 것은 박해를 할수록 더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흥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긍정적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당하게 해서 거꾸러지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통해서 신앙의 근육이 생기고 경험이 생기고 은혜를 받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면 고난을 이기게 하려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 계십니다. 고난 당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으로 임하여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해 방언도 하고 방언 통역도 나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영광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우리는 오직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만 영이 강해지고, 꿈이 생겨나고, 성공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완전한 절망 속에 빠져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절망의 밑바닥을 한 번씩은 다 경험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디 목사가 눈이 오는 겨울에 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무디가 딸의 손을 잡아주자 딸은 손가락만 잡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디의 손가락만 잡고 가던 딸이 얼마 못가 눈에 미끄러져서 넘어졌습니다. 딸은 울면서 무디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든든히 손을 잡아주니 미끄러지지 않고 산책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체를 잡아주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흑암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질 때 주님께서 손내밀면 우리가 기쁘게 그 손을 잡게 됩니다. 살다보면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시련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련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살아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사람이나 귀신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이 꾸짖으시면 잠잠해집니다.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안보이는 것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로 9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면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진대로 옷입고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씀이 우리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 말씀이 곧 우리의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밧줄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것입니다.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씀을 가지고 매고 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좇아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이 있는 꿈을 꾸십시오. 희망을 꿈꾸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고 믿고 생산적인 말을 하십시오. 복받는 말을 하십시오. 성공적인 말을 하십시오. 그런 말이 우리의 생애를 좌우하는 키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했는데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자체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만물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보이는 말씀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안보이는 것이 보이도록 옷을 입고 나온 것이 만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안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민족을 보면, 그들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나라에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말씀으로 나섰을 때 번창하여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치 시대 때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적인 힘을 믿고 온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휘몰아쳤을 때 망하고 만 것입니다.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할 때 제일 먼저 성경 말씀에 의지하며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때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온 천하에 식민지를 가진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미국은 300년 만에 세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국이 된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만물이 그 배후에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처럼,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신학자 A. 사바티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을 시련으로부터 보호하는 사랑이 아니라 시련 가운데서 우리를 항상 지켜주는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 왜 시련을 받게 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며 말씀을 의지하면,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신앙의 체험을 하게 되고 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신앙의 배를 타고 가도 시련의 파도가 다가옵니다만 그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더 체험하고 알게 되고 굳센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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