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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예수님의 보혈

by 삶의언어 posted Nov 10, 2024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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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8-08-28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9장 1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SdLzpzuDHU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예수님의 보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그의 아내 하와와 에덴에서 쫓겨나 가시와 엉겅퀴 투성이 인 땅을 경작하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그들은 고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고 그 아들들이 장성하매 그들은 각각 독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맏아들 가인은 농부가 되었고 작은아들 아벨은 목축을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아담이 그들에게 항상 가르친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년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며 그 제사를 드릴 때는 단을 쌓고 어린양을 잡아 피를 쏟아 그 기름과 고기를 드려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아들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이 세상에 육신을 쓰고 오셔서 하나님 앞에 어린양의 제물로 피를 흘리고 그 몸을 찢어 제물이 되어 죽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제단을 통해 백성들과 만날 것을 언약해 주신 것입니다. 아벨은 아버지의 교훈을 따라 그대로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셨으나 가인은 제단을 쌓고 자기의 손으로 지은 곡식으로 제물을 드리매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그 제물은 돌보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로부터 시작하여 구약 4천년 동안 족장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왕국시대를 지나면서 기나긴 세월동안 짐승의 피가 강물같이 흘러 넘쳤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1절로 22절에 "또한 이와 같이 피로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쫓아 그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물 같은 짐승의 피 흘림은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고 또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지 않고는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왜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악의 수치를 씻어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은 수치와 무화과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치마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법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렸고 그들의 양심은 수치로 꽉 찼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망쳐 나무 뒤에 숨어 그 수치를 이간의 힘으로 막아보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만 그것은 항구적으로 그들의 수치를 막아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음속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수치심입니다. 죄가 적으면 수치도 덜하지만 큰 죄를 지었을 때는 수치심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지은 후 죄가 발각될까 싶어서 심히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생애 속에 다가오는 큰 수치심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인간의 힘으로는 그 수치심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에덴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쏟고 그 가죽을 벗겨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부끄러움을 면하고 밖으로 나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징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고 가죽을 벗겨서 우리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수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옷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선의 무화과 나뭇잎으로 우리의 양심의 벌거벗은 수치를 덮고 있으나 이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 인간이 방법으로 그 수치를 가리려 해도 하나님 앞에 서면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기 때문에 결코 수치를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진정으로 씻어주고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윤리나, 도덕, 행위로써 옷을 만들어 입고 하나님 앞에 서려 하는 사람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의로운 행동은 마치 넝마와 같이 더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모두 시들은 나뭇잎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무화과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말라버린 것처럼 인간의 모든 선한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수치를 말끔히 씻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입혀주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부끄러움 없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설 수 있는 것이요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아니하면 우리 모든 종교는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주장하지 않건 설교하지 않는 제단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드리는 제물인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하나님의 용납함을 받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의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이신 데 죄는 의를 부인합니다. 의는 빛과 같고 죄는 어둠과 같습니다. 어둠이 오면 빛은 사라져야 하고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죄는 절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죄의 갚은 사망이요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9절에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곧 둘째 사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죄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 죄를 유일하게 씻어주고 죄지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용납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양털에 담아 우슬초로 찍어서 해지기 전에 문인 방과 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밤에 야훼 하나님께서 애굽을 지나가실 때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없는 집마다 들어가셔서 짐승의 처음 난 새끼로부터 모든 장자를 다 쳐서 죽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지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지기 전에 짐승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지만 애굽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야훼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오셔서 심판을 하실 때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들은 다 용납하셔서 지나가시고 피가 없는 집에는 들어가셔서 짐승의 처음 난 새끼로부터 맷돌을 가는 여종의 장자까지 모두 쳐죽이셨습니다. 이 사실을 보아 하나님께서는 피를 보아야 용납하시지 피를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지나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마음의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를 용납하시고 지나가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의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자비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고분고분하게 지나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셔서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듯이 분노로 몸부림치시면서 죄지은 자를 짓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어떤 사람도 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큰소리치지만 하나님의 분노가 불탈 때 그 앞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그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용납을 받지 못할 바에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같이 무서운 심판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으로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십자가의 보혈밖에는 없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십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보혈로 씻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빚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 마땅한 내 자신이 예수의 보혈로 값없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나도 남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하는 마음의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남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큰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의 매일 같이 우리는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은 한 번 받지만 구원받은 후에도 죄는 계속 짓습니다. 계속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연약한 것을 돌보아 주시고 계속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끝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자기의 발은 못 씻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그러면 내 머리까지 씻어 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한 번 씻은 사람은 깨끗하니 머리는 씻을 필요가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한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거듭 구원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 구원받았으면 구원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인 우리의 발은 자꾸 더러워지기 때문에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죄를 회개하고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연약함 것을 이해해 주십니다.
로마서 7장 14절로 24절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악에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의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행함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것을 행하 자가 내가 아니요 이를 행하는 자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선생의 탄식입니다. 이 얼마나 적절한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 속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를 간절히 사모하되 우리 지체 속에는 한 다른 법이 있어 우리의 마음의 것과 싸워서 우리를 죄의 법 아래로 끌고 가는 것을 늘 체험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피투성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늘 죄와 대결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하면 승리할수록 죄의 빈도는 점점 약해집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보혈입니다. 예수의 피는 과거의 잘못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래의 죄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나와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은 한 번 받았지만 죄사함은 끊임없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보혈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내게 자존심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자존심을 파괴하고 수치심으로 좌절케 하며 자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만큼 자존심이 파괴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지은 후에는 큰 소리 치던 것이 다 잠잠해 지고 맙니다. 얼굴을 들 수 없고 자기 존경심이 없어집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은 그 속의 자존심입니다. 인간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을 동안은 행복합니다. 자존심을 잃고 자신의 설 곳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이 흉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이유는 자존심을 잃은 그의 마음에 극단의 불행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자존심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면 아내는 반발합니다. 또 아내가 남편의 자존심을 자꾸 파괴하면 그 남편은 집을 떠나게 되고 가정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최후의 보루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나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존심을 짓밟아버리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인간의 자존심을 처참히 파괴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은 그 많은 죄와 수치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온 세상이 지탄하며 버린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고 나면 성령으로 인을 쳐주셔서 하나님께서 '내 자식'이라고 품어주시고 우주의 대왕 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되므로 어떠한 사람의 자존심이라도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범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착실히 변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자신을 존경하고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 이외에 자존심을 복구하고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범죄인들,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고 자학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증거하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시고 당당히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정죄하는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잘 가리지만 남의 잘못은 파헤칩니다. 자기의 연약은 타당화 시키지만 남의 연약은 이용하여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에 근본적으로 있는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이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십자가의 피가 아무 자격 없는 나를 못난 그대로 용서해 주셨을 때 우리는 남도 그와 같이 이해하고 동정하며 용서해 줘야겠다는 무거운 마음의 빚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 용서함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줘야하겠다는 마음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더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해야 하겠다는 깊은 인식이 그 영혼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 속에 가져오는 위대한 변화의 역사입니다.

여섯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마귀를 이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에게 와서 우리를 정죄합니다. 우리에게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너는 죄인이다' '너는 자격이 없다' '너는 불의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너 같은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하고 우리를 구박하고 짓밟아버립니다. 마귀는 우리를 정죄하나 보혈은 죄악 투성이인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만들어 하나님께 용납 받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정죄하는 곳에 예수님의 보혈이 들어오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의 정죄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보혈이 정죄를 다 씻어버리고 의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억압하나 보혈은 자유케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 초조, 절망 등을 가지고 와 억압하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와서 이것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과 우리 가 교제하도록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든 묶음에서 자유를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너는 자격이 없으므로 절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보혈은 "무자격해도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다 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해 주신다. 그러므로 보혈을 통해 담대히 하나님께 나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혈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사람을 얽매는 곳마다 주님의 보혈을 증거 하면 그 모든 속박은 사라지고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상처를 입히나 보혈은 치료합니다. 마귀는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에게 위대한 치료의 능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치료가 우리의 육체와 마음과 생활에 임하기 때문에 마귀는 보혈 앞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보혈은 이와 같이 마귀를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증거 하는 말로 마귀를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억압되어 있는 이유는 예수의 보혈에 대한 신앙이 탁월하지 못하고 믿고 의지하고 찬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더욱 더 보혈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고 성도들이 보혈에 대한 찬송을 많이 부르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보혈을 더 많이 외쳤더라면 많은 마귀의 상처에서 헤어남을 받고 치료함을 받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를 이기는 위대한 힘은 보혈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이기지만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마귀가 오는 곳 어디에서든지 마귀의 무장을 해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죄의 무장을 용서로 해제하고 억압이 무장을 자유로 해제하며 상처를 치료로 해제해 버립니다. 보혈이 있는 곳에 성령이 역사 하시고 보혈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의 찬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볼 때마다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인류의 죄를 청산하고 구원하는 것인데 이 일은 다른 방법으로는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마리아의 적은 태 속에 잉태되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33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시고 최후의 십자가에 자진하여 올라가시고 죄 없는 그 몸이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찢겨지고 피 흘려짐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하였는지를 아시고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성의 증거가 그 보혈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혈을 증거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혈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인류가 죄를 지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을 예수님의 보혈이 성취해 주는 것입니다. 보혈이 주장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보혈은 하나님의 뜻을 인류 가운데 이루어서 인류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위대한 뜻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보혈을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또 보혈은 천국 백성들의 기쁨의 노래가 됩니다. 이 땅에서만 보혈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나중에 우리가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 올라가서도 내내 찬양할 것은 보혈밖에 없습니다. 다른 찬송은 다 사라질지라도 보혈에 대한 찬미는 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죄악 투성이의 인생이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어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보혈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보다 더 놀랍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와 감사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백성들의 노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종교, 윤리, 도덕, 율법도 인간을 절망적인 죄악의 정죄로부터 자유케 할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를 정죄로부터 영원히 자유케 하고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매일 같이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차게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죄악 투성이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몸을 찢어 피를 흘리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영구히 씻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감히 오늘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드릴 수도 없습니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고 버림받고 심판 앞에서 떨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여주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성령, 기쁨의 성령이 우리의 생애 속에 임하게 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능력인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장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슴의 문설주와 인방을 보혈로 붉게 칠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미하고 치하하며 감사드립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제단으로부터 시작하여 보혈이 강물같이 넘쳐흐르도록 도와주옵시고 우리가 그 보혈에 대한 열렬한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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