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심는대로 거두리라

by 삶의언어 posted Nov 06,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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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심는 대로 거두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월은 이제 봄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저는 저번 주간에 일본 오사카와 동경에서 성회를 했는데 동경에 어찌나 눈이 많이 왔던지 나는 4월이라고 여름옷을 가져갔다가 새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이 하루 낮 하루 밤을 쏟아지는데 동경 시내가 완전히 눈벌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4월에 한국은 꽃이 피고 굉장히 따뜻한데 일본에 눈이 오는 것을 보니까 이제 앞으로 일본에는 눈같이 차겠다.'
여하간 4월은 봄철입니다. 농부들은 여러 가지 종자를 심고 그것을 거둘 것을 기대하고 수고를 시작하는 때인 것입니다. 4월에 밭 갈고 논 갈고 묘판 만들고 씨뿌리지 않는 농부는 아무 것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는 농부가 거둘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재미로 씨를 뿌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도 씨를 뿌려야 신앙의 거둠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것이 옳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모두다 필요한 믿음의 씨앗을 심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해야지 씨앗을 심지 않고 아무리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어 보았자 그 기도는 효과를 발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의 실패와 성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네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 너를 복 주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는 세계 모든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으로 출발을 해야 되는데 믿음은 반드시 씨앗을 심어야 믿음이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씨앗 없이 그냥 '믿습니다'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믿음의 씨앗으로써 하나님이 조건을 제시한 것은 '네 전토를 떠나라, 네 친척을 떠나라, 네 아비 집을 따나라' 이것이 믿음의 씨앗인 것입니다. 실천적인 행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희생적인 믿음의 씨앗을 심고 떠나서야 아브라함은 큰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떠날 때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란에서 얻은 모든 재산을 수레에 다 실었습니다. 친척들을 떼를 지어서 거느리고 자기의 아비 집을 떠나지 않고 조카를 대리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일대 장관을 이루면서 대 부대를 형성해서 그는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른 것 같았지만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토를 떠나라, 친척을 떠나라, 네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았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간 것은 죽은 믿음을 따라 간 것입니다. 가나안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온 천지는 기근으로 새빨갛게 타 버렸습니다. 풀은 다 죽었습니다. 물은 다 말라 버렸습니다. 의지할 것 없었습니다. 짐승들은 가나안에 와서 다 굶어 죽고 종들은 도망치고 친척들도 다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밥 달라고 우는 조카 때문에 별 도리 없이 하나님이 명도 하는 애굽으로 아내를 데리고 가서 온갖 수모를 다 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고 나가는 믿음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난 다음 아브라함은 100살에 90살된 부인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이삭입니다. 이삭이 나이 10대가 되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정말 아브라함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씨앗을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외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내게 번제로 드려라" 이야말로 청천병력입니다. 가슴을 찢는 듯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00살에 낳은 아들을 어떻게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내 손으로 잡아 각을 떠서 장작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립니까? 가혹하리 만치 하나님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경륜을 쌓아 그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믿음이란 행함이 없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장작불을 피워 놓고 아들을 묶어서 그 위에 놓고 칼로써 잡으려 할 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네 아들조차 아끼지 않고 내게 내놓았은즉 이제 내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제 능력이 있는 믿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한 마디 말씀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통해서 일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로 육신을 세워 세상에 오게 하시고 예수께서 우리 인류를 대신해서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흘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심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께서 생명을 씨앗이 되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희생 없이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고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 심어졌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통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이란 그 믿음에 해당하는 씨앗을 심어야 됩니다.

첫째로 구약 시대 믿음의 씨앗을 심은 대표적인 인물인 사렙다의 과부를 우리가 알아봅시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야웨 하나님을 떠나고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한 헤만 한발이 들어도 나라가 망하는데 3년하고도 6달을 한발이 다가오니 그 나라가 성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나라가 피폐해졌습니다. 그럴 때 사렙다의 한 과부는 이제는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과자를 구워서 나누어 먹고 죽으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이 엘리야갸 그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기근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감추어 두시고 까마귀를 보내어서 고기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도랑에 물을 흐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잘 먹었기 때문에 아주 혈색이 좋고 몸이 건장합니다. 이 혈색 좋고 몸이 좋은 엘리야가 갑자기 이 과부에게 나타났습니다. 너무나 못 먹어서 시커멓게 타서 피골만 앙상한 이 과부, 거기에다 단백질 부족으로 배가 남산만큼 불러져서 여위어진 그 아들, 그와 함께 과자를 구워서 마지막 먹고 죽으려고 하는 데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야웨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밀가루와 그 기름으로 과자를 만들어서 물 한 사발과 함께 내게 먼저 가져오면 그 다음 이 기근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사라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가혹한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청년으로서 잘 먹고 아주 혈색도 좋고 혈기 왕성한데 여기에 피골이 앙상한 과부와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게 된 그 아들이 마지막 구워서 먹고 죽으려고 하는 빵 한 조각조차도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 한 사발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는 극히 궁핍한 가운데 있는 그 가정에 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기 전에 믿음의 씨앗을 심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극히 가난한 가운데 믿음의 씨앗을 심을까 심지 않을까 그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일본에 가서 일본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오지 않는 것은 십일조를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성도들은 대개 십일조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분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우리 일본 사람들은 십일조를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50만엔 월급을 받으면 거기에 제세공과금을 다 떼면 손에 들고 오는 것은 30만 엔입니다. 여기에 집세와 여러 가지를 다 내고 나면 한 달에 먹고살기조차 어려운데 어떻게 십일조를 냅니까?" 그래서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극히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거둘 것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종자씨앗까지 다 먹어 버리는 농부는 심을 것이 없기 때문에 거둘 것도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상 절대로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렙다의 과부를 보십시오. 그는 극히 가난해서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과자를 나누어 먹고 죽으려고 할 때 그 과자를 하나님께서 심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부유한 가운데서 심은 것이 아니고 풍부한 가운데서 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가난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믿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여러분 사렙다의 과부가 그 극한 가난 속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고 난 다음에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사라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사라지지 아니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가뭄이 다 끝나고 새로운 곡식이 심어져서 추수를 거둘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가 입술로 주여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한 고난과 가난 중에서 하나님 앞에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여간 결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참다운 믿음인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짖는 것은 헛된 것이요 이것은 자기 기만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속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란 반드시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하나님 성령의 인도를 좇아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신약시대의 기적을 볼까요?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 나가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남자만 오천 명 여자까지 합쳐서 기만 명의 군중이 몰려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종교를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학 강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인의 죄를 용서하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절망에 처한 자에게 소망을 주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실천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사람으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회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하지 아니하고 오늘날 교회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형식적이고 의식적이고 혹은 정치적인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 교회에 살아 계시면 예수님은 옛날 하신 그대로 오늘날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도 능력과 권세로 수많은 사람을 살리신지라 사람들이 너무 거기에 정신이 빨려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지게 될 때 예수님은 말씀을 그치고 병든 자를 다 고쳤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을 들고 보니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울어지고 허기증을 느꼈습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먼 거리입니다. 그래서 부인과 아이들은 그만 허기증에 길거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밥 달라고 울고 큰일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불렀습니다. "빌립아,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그들이 가다가 허기에 쓰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빌립이 생각하니 기가 막히지요. 이곳이 광야이지요. 무리는 수만 명이지요. 떡 살 돈도 없고 돈이 있다 해도 떡 살 곳이 없습니다. 이래서 빌립은 제자들과 모여서 구수회담을 한 결과에 백세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 안된다고 말하자. 이곳이 광야 아니냐. 이곳이 해가 져 가고 있다. 돈도 없다. 떡 살 곳도 없다. 흩어서 자기들 스스로 가게끔 우리가 아뢰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빌립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저히 인간적으로 생각 할 때 불기능한 처사를 하라고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인간의 이성으로만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럴 때 안드레는 나가서 떡과 고기를 구했습니다. 사람들을 찾아가서 "여보시오. 떡과 고기가 있습니까? 떡과 고기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당신 돌았소? 떡과 고기가 있으면 우리가 이렇게 쓰러져 있겠소? 무슨 소리 하는 거요?" 그런데 저 구석에 어린아이 하나가 군중을 피해 돌아앉아서 무엇을 풀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가서 등을 치니 이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얘, 너 뭐하니?" "아저씨, 내 것 빼앗지 마세요. 나는 아침에 일찍 온다고 밥을 못먹고 오니까 어머니가 보리떡 다석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셨는데 예수님 말씀 듣고 병 고치는 데 너무 취해서 못 먹었어요. 이거 먹어야 집에 가요. 안돼요 아저씨." "아니야. 우리 주님께서 이 수많은 사람을 먹이시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만이 역사하신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면 주님은 역사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이란 입술로 믿습니다 하는 것은 공기를 울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고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개를 지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지극히 궁핍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주님께 심으면 주님께서 이를 통해서 위대한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 보리떡 다석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심자." 이 어린아이는 고통 속에 빠졌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이것 먹지 않고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이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단의 순간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하시다면 내가 믿음으로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겠다." 그래서 안드레에게 주었습니다.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께 왔을 때 빌립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의논한 것을 보고 하려고 왔습니다. 빌립은 예수께 나와서 주여, 광야입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돈도 없고 떡 살 곳도 없으니 그냥 흩어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말을 하려고 오는데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달랑달랑 들고 옵니다. 빌립이 보고 기가 막힙니다. "안드레. 자네 뭐한다고 이렇게 오느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믿음의 씨앗을 들고 옵니다. "나는 자네가 평소에 머리가 나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I.Q.가 이렇게 모자란 것은 몰랐다. 그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냐." 그러나 안드레는 서슴치 않고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손에 얹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고 감격하셨습니다. 지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극단적인 궁핍에서 믿음으로 씨앗을 심는 이 소년에 대해서 감동했습니다. 그 믿음에 서서 주님은 하늘을 향해서 축사하고 난 다음에 제자들을 불러서 이 떡을 나누어주라고 떼어 주었습니다. 떡을 떼어 주니 또 도로 원상 복구되고 떼어 주니 도로 생기고 떼어 주니까 도로 생깁니다. 고기도 잘라주고 나니까 도로 생겨 붙고 잘라주니까 또 생겨 붙고 사람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생겼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많은 사람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가난한 환경 가운데서 극단적인 궁핍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은 이 소년의 용기와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주님께서 "네 믿은대로 되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바탕에 서서 우리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 믿음의 씨앗을 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지 믿음의 씨앗을 심지 않고 입술로만 말하는 믿음이란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기 때문에 믿음의 씨앗을 심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종자 씨앗까지 다 먹어 버리고 명년에는 씨도 뿌리지 않고 농사도 안 짓겠습니다."이와 같이 말하는 농부와 같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믿음의 씨앗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 믿음의 씨앗이란 눈에 보이는 증거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외쳐도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란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믿음이지 실질적인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여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병에서 놓여남 받았느니라 주님 축복하셨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역사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씨앗이란 눈에 보이는 증거로써의 믿음이 나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보이는 믿음과 비교해 볼 때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좋은 형편에서 드리는 것이 믿음의 씨앗이 아닙니다. 형편이 극히 어려울 때 그리는 것이 믿음의 씨앗인 것입니다. 좋고 모든 환경이 풍부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 내가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극히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하지 않으면 안될 환경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은 참 용기요 참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씨앗이란 어떤 종류일까요? 믿음의 씨앗이란 물질이 될 수 있고 하나님께 시간 드리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노동을 드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씨앗이란 반드시 물질을 심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씨앗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하는 중에 하늘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물질을 믿음의 씨앗으로 심으라면 물질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려서 어려운 가운데 주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말하면 시간을 드리는 것이 믿음의 씨앗이 됩니다. 혹은 자기의 노동력을 사용해서 하늘나라를 위해서 믿음의 씨앗을 심으라면 이것이 믿음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도르가와 같은 여성은 자기가 열심히 과부로서 바느질해서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옷을 해 입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씨앗이 되어서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시사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서 도르가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이 결실을 한 것입니다. 구제를 많이 한 고넬료도 구제가 믿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고넬료야, 너의 구제와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하나님께 기억함 바 되었으니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서 피장 시몬에 있는 베드로를 구하라. 그가 구원의 말씀을 전해 줄 것이다.' 그는 구제하고 기도한 것이 믿음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데로 여러분이 마음에 정해서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믿음의 씨앗이 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어떻게 심을까요?
성경에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마음에 인색해서 심은 것 억지로 하는 수없이 하면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누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제게 와서 물어요. 왜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헌금 드릴 때 박수를 치느냐고. 그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즐겨 드리는 자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즐거우면 박수 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게 할 때 박수를 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박수를 치고 드린다. 제가 그런 말을 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씨앗을 심고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농부가 씨앗을 심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추수할 것을 기대합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드리고 난 다음 그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가 믿음의 씨앗을 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었으면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로 기도하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 환경은 언제나 긍정적이 될 수 없습니다. 환경은 스산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환경을 바라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이 되어버리면 그 마음에 믿음의 바탕이 흐트러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은 이상 눈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아무 것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밝고 말고 환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 위에 여러분의 믿음이 역사하기 때문에 환경에 좌우되지 말고 믿음으로 굳세게 서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믿음의 씨앗을 심었으면 기다려야 됩니다. 사람들이 기다림이 없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씨앗을 심어 놓고 바로 거두기를 원합니다. 농부도 씨를 심을 때 곧장 거두는 씨앗이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거도 있는 것입니다. 옛날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 부탁해서 시골에서 고구마 발 한 줄기를 얻어서 그곳에 고구마 줄기를 심어 놓고 난 다음에 매일같이 학교에서 와서 벌써 뿌리가 생겼는가 싶어서 고구마 발을 흩으러 본 일이 있습니다. 한 달만에 제가 심은 고구마 줄기는 다 말라죽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심었으면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해요.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의 씨앗을 심었으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므로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도록 내 맡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로써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성령께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에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우리는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날 주여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옛날처럼 믿음에 해당하는 믿음의 씨앗을 심고 확실한 열매맺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하고 원하옵나니 하나님 아버지여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 우리 살지 말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행함이 없는 사랑 한 것 아닙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몸찢고 피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한다 하시고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을 내어 주고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은 참 힘이 있고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믿음의 증거를 내어놓고 믿음의 씨앗을 심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일 가대하는 우리들이 되게 해 주옵시고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바람만 진동하는 입술의 말로만 가지고 믿는다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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