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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아야 할 마음

by 삶의언어 posted Oct 15, 2023 Views 3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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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치료받아야 할 마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여리고에 갔을 때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이 여리고 성은 창으로 좋은 땅인데 물 근원이 나빠서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 떨어집니다. 짐승들도 이 물을 마시며 낙태를 해 버리고 심지어는 부녀들까지도 이 물을 마시면 어린아이를 낙태합니다. 그러므로 이 물 근원이 독이 있은 즉 이 땅이 저주로 가득하니 우리를 도와주소서. 엘리사가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소금을 담아 오매 그것을 가지고 물 근원에 가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물 근원이 치료되었으니 이제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과연 그 때로부터 여리고에 있는 물 근원이 치료를 받아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열매를 맺고 짐승들도 새끼를 낳고 사람들도 낙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가 물 근원에서 넘쳐 나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의 근원을 치료하지 전에는 물 근원에서 사망과 저주가 넘쳐 났는데 물이 치료받고 난 다음에는 생명과 부요가 그 물 근원에서 넘쳐 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마음이 죄에 누룩으로 말미암아 만물보다 부패하고 사망과 저주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게 만든 인간 세계의 문화는 부패와 사망과 저주가 가득찬 문화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고침을 받기 전에는 이 사망과 저주를 벗어 날 도리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 개인들도 마음이 생사화복의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리고성 전체가 샘 근원으로 말미암아 죽고사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선교에는 생명의 근원이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고 강하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부패와 사망을 멸하시고 청산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엘리사가 가지고 샘 근원을 정결케 한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마음의 샘 근원을 치료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사망과 저주가 넘쳐 나온 곳에 생명과 부요가 넘쳐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죄악으로 오염되고 썩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죄악으로 오염되고 썩어 있기 때문에 어떤 교육이나 수양이나 도덕적인 훈련을 통해서도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썩어 있고 부패해있는데 아무리 머리 속에 새로운 교육을 취입하고 도덕적인 훈련을 시켜도 변하지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의 근원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의 근원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죄로 말미암아 썩고 부패해 버리는데... 이것은 오직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와 부패를 대신 걸머지고 청산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이외에는 도저히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장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몸이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옛 마음이 청산되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 이외에는 일어 날 수 없는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탕자와 이교도 신앙인이요, 노예상이었던 존 뉴톤을 보십시오. 그가 지은 찬송이 온 세계에서 얼마나 유명하게 불러 줍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라는 이 찬송을 지은 존 뉴톤은 이교도요! 음란하고 방탕하고 술취하며 아프리카 해양에 가서 노예를 잡아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팔아먹는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그 흉악한 마음은 이로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술에 취하면 산 노예를 끌고 와서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면 따라오던 상어들이 그 산 노예를 머리채 덥석 물고 팔을 반동치면 호통한 웃음으로 웃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파선의 지경에 이르니깐 그때에 죽음의 위협을 느낀 존 뉴턴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하나님, 항상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 우리 어머니의 하나님, 우리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사 나를 한 번만 살려주시면 내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무사히 배가 파선하지 않고 해안에 도착하자 그는 그때로부터 엎드려서 일생을 바쳐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업을 한 위대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흉악한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 어머니의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자 주의 보혈이 그 속에 들어와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힘으로 그를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부패하고 저주로 꽉 들어찬 마음을 변화 시켜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어거스틴 같은 성인도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탕자였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가 눈물로 흘리며 그 아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틴 마음속에 하루 그 마음속에 임하였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자 예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 그 탕자 어거스틴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그로 하여금 역사의 족적을 만기는 위대한 성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여러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볼 때에 우리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변화 될 수 있지 이 그 외에는 어떠한 법으로나 힘으로 변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오염되고 생명의 근원이 죄악을 뿜어내고 있으니깐 모든 사람 속에 저주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근원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역사가 일어나며 완전히 저주가 사라지고 축복으로 넘쳐나고 사랑이 사라지고 생명 샘이 넘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사람의 마음은 세속과 마귀로 오염되고 썩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세속이 꽉 들어 차있습니다. 음란하고 방탕하고 술취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온갖 세속의 부패가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그게 다 마귀가 와서 함께 손을 잡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부 패된 마음을 어떻게 청소를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교훈으로나 교육으로나 법으로나 강제의 힘을 통해서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에 이 부패한 육체의 일에 대해서 열거한 것을 들어보세요 "육체의 일은 현저(顯著)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術數)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異端)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警戒)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세속과 마귀로 오염된 썩은 마음이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도리는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현실 세상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들이 마음에 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아닙니까? 사람들은 뭐 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나님이 내버릴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완전히 상실된 마음인 것입니다. 잃어버린 마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보십시오. 하나님을 저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사는 이 세상에 상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그 처참한 정경을 보십시오. 이러한 상처는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것은 저주와 사망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안됩니다. 여리고 성의 물에 저주와 사망에 있으니깐 곡물들이 다 떨어지고 짐승들이 낙태하고 사람들조차 낙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도적질도하고 죽임도 당하고 멸망당하는 것은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상실된 마음속에 있는 부패와 저주에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9월 27일 뉴스에서 미국에 39세 된 한 부인이 결혼한지 3년이 되어도 어린아이를 못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뚱뚱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나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 이웃에 사는 23살 된 새댁이 임신하여 한 주일만 있으면 어린아이를 해산하는 것을 알고 그를 집에 꾀어 가지고서 총을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갈라가지고서 어린 아이를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아이라고 강포에 쌓아 놓고 파티까지 열었습니다. 이것이 발견되자 경찰이 습격하니깐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그 어린아이를 그 아버지에게 돌렸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악해 질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육체의 마음이나 상처한 마음은 그 거름이 부패하고 독으로 꽉들어 찼기 때문에 무한적으로 흉악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이 어떻게 변화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에 샘 근원이 소금을 뿌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 된 것처럼 이렇게 부패하고 버림받은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임하고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 치료함 받아 생명의 근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7절에 보면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드릴 때에 그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권세가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는 마음을 완전히 치료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세속과 마귀가 쫓겨 나가서 그 자리에 천국과 성령이 들어와서 충만하게 해서 생명의 원천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질병으로 오염되고 썩은 마음입니다. 우리 여러 마음에 육신의 병의 근원은 역시 마음에 있습니다. 염려, 근심, 시기, 질투, 원망, 미움, 불안, 두려움, 분노 등 이와 같은 마음의 스트레스가 오늘 우리 병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바로 병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었으니 병의 근원이 죄에 있기 때문에 먼저 병을 낳으려고만 애를 쓰지 말고 죄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죄로써 부패했으니깐 그것이 우리 육체의 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욥의 고백도 한 가지입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은 그 온 몸에 악창이 나서 죽을병에 걸렸을 때 먼저 그것이 마음에 불안과 공포 속에 있다가 몸을 터져 나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앓는 병들의 원천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입니다. 죄의 원인 때문에 우리 몸에 병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마음에 기쁨은 양약이라고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우리가 기쁨을 가지면 이것이 양약이 되고 약 공장을 동원시켜서 우리 몸에 온 병을 치료해 준다고 했는데 우리의 마음에 기쁨의 샘이 넘쳐 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 영광을 마음속에 받아 드릴 때에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치료의 원인이되지요.
잠언서 18장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사람의 심령은 병을 능히 이깁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치료받으면 병은 능히 이길 수가 있다.
마음의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모든 병은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질병의 70%가 마음에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이야기해서 정식으로 그렇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병든 마음, 이 저주받은 마음, 죽은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들은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걱정의 50%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가지고 있고 40%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걱정하고 사실 10%만이 현재의 겪는 일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50대 남자는 여자보다 3배가 높은 사망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남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여자보다 3배 이상 더 많이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가 우리 사람의 마음에 끼치는 질병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의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미워하고 초조하고 고통을 당하면 그 마음의 온 몸에 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치료 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치료를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서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나고 평화가 넘쳐나며 믿음이 넘쳐 날 때에 육신의 질병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과 능력이 마음에 충만하면 주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통해서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마귀의 눌린 모든 병을 다 고치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고 악해질수록 그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병들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마음속에 안주하고 그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고 믿음 소망 사랑이 들어차면 육신의 모든 병은 할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모든 육신의 질병을 다 도말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 고칠려고 약만 자꾸 의지하지 말고 마음에 병을 고치면 육체의 병이 나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사이 더구나 의약분업 분쟁으로 말미암아 병원이 문을 닫아 놓고 의사들이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이런 일들이 다 마음의 부패에서 온 것이 아닙니까?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인술까지라도 집행하지 못하게 되지 않습니까? 문제는 마음에 치료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정도 살고 사회도 살고 노사분쟁이 해결되고 그리고 인류의 모든 분쟁도 해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안과 미움과 초조와 공포가 꽉 들어찬 이상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리 인간이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해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의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넷째로 저주로 오염된 생명의 근원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는데 저주가 다가오고 하는 일이 다 안되고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사람들은 정 안되면 사주팔자를 보기도 하고 무당을 불러서 굿도 하고 온 산천초목에 가서도 빌기도 하는데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리고성에 열매가 떨어졌는데 무당에 가서 무당하고 우상에게서 절한다고 해서 여리고성 열매가 안 떨어지겠습니까? 여리고성에 열매가 떨어진 것은 여리고에 물 근원이 사망과 독을 꽉들어 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이 안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사망과 독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환경에 가서 빈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킬만한 것 보다 더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함으로 복과 화가 우리 마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통해서 복을 주시고 또 우리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심판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파이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근원은 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저주가 왜 임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저주받기 전에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죄를 지어서 그를 통해서 저주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변화를 받기 전에는 삶의 환경에서의 저주는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어김으로 저주받은 것을 우리는 성경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법을 어기니깐 저주가 그 환경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5절로 24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恐懼)와 견책(譴責)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破滅)케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染病)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傷寒)과 학질과 한재(旱災)와 풍재(風災)와 썩는 재앙(災殃)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殄滅)케 할 것이라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이 어머 어마한 저주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역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짓밟아 버릴 때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주가 왔다고 해서 환경에 변화를 가지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안됩니다. 저주는 마음에서부터 환경으로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고치면 축복이 마음에서부터 환경으로 넘쳐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복받은 사람이 들어가면 들에 복이 임하고 집에 들어오면 집에 복이 임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복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결국 마음이 치료함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으면 바로 복이 마음에서 넘쳐 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律法)의 저주(詛 呪)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바로 이것을 보세요. 저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으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서 저주를 제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모든 이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 나서 환경이 변화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면 우리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변화를 받지 않고는 복이오지 않아요. 마음에 생명의 근원이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물 근원이 치료받듯이 우리 마음의 생명의 근원이 치료를 받으면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지혜와 총명과 몰약과 재능이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일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더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여리고 들판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들판에 여러분 물은 여러분 마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는데 마음의 저주와 물이 넘쳐 나오면 모든 과일들이 다 떨어지고 짐승들이 낙태하고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여리고이지만은 우리의 샘 근원이 달라지면 여리고서 낙토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망으로 오염된 생명의 근원도 여러분 예수의 보혈과 성령으로 치료받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지 않습니다. 왜? 물리적으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여러분 생명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인간 설계도를 그려놓고 보니깐 사람은 육체적으로 안 죽게 되어 있는데 왜 죽음이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발표한 것을 읽어 보셨을 것 입니다. 오늘 과학자들이 오늘의 인간의 육체를 연구해 보니깐 설계가 안 죽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데 사람은 죽습니다. 그것은 왜냐? 사람은 죄 값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았으면 죽지 않아요
죽음이 영적으로 오는 것이지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짓고 죄값으로 말미암아 그 육체가 죽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 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것이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900여세까지 살았습니다. 그토록 인간의 몸은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온 몸을 먹어 들어갑니다. 욥기에 보면 사망의 먼저 나온 것이 온 백체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장자가 백체를 먹는다. 사망의 장자는 영이 아닙니다. 영이 죽으니깐 백체가 다 사망에 먹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를 이 사망에서 건질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육체가 죽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두 번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육체의 사망 이후에 그 영혼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버림받은 둘째 사망은 영원히 사망이요 무지무지하게 두려운 것입니다. 이 첫째 사망도 둘째 사망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죄악에 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이 죄악에서 치료를 어떻게 받습니까? 우리가 수양과 도덕으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까? 인간의 선한 행위로 우리 죄를 어떻게 다 청산합니까?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없는 자로써 십자가의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죄를 청산해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면 사망으로 가득한 마음이 용서를 받고 생명으로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냐고 큰소리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망이 떠나가고 영생으로 충만하면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손으로 예비한 영원한 집,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며 우리는 둘째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배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활의 몸으로 올라가면 이 추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악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죽을 몸이 영생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고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곳에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 치료받으므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마음의 치료는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몸과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생명의 근원이 여러분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를 모를 때는 이 마음에서 사망의 복이 넘쳐 납니다. 우리 집도 여리고요, 우리 직장도 여리고요, 세상도 여리고인데 우리 속에서 독의 샘물이 넘쳐 나니깐 사망과 저주가 꽉 들어차서 집안에도 사망과 저주가 있고 직장에도 사망과 저주가 있고 생활에도 사망과 저주가 있습니다. 오늘날 온 세상에 사망과 저주가 꽉 들어차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여리고 같은 이 세상에 사람, 우리 마음속이 샘의 근원인데 이 샘 근원에 소금을 던져야됩니다. 이 소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입으로 시인하고 의지할 때에 예수님의 보혈이 나의 샘 근원을 고쳐 주시고 성령이 와서 나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물과 생명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는데 성령이 와서 우리를 새롭게 함으로 우리의 샘 근원이 고쳐집니다. 우리마음이 고쳐지면 이 마음속에 용서와 의의 샘이 넘쳐나고 이마음속에 천국과 성령의 샘이 넘쳐 나고 이 마음에서 기쁨과 치료의 샘물이 넘쳐나고 이 마음속에 아브라함의 축복과 번영의 샘이 넘쳐나고 이 마음속에서 영생의 축복이 넘쳐 나게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샘물이 달랍니다. 마음에 샘물이 달라지니 그 샘물을 받아 이루어지는 가정이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사망과 저주가 있어 삶이 축복과 행복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오염되고 썩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새롭게되지 않고는 축복과 결실의 삶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보혈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치료받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엘리사가 샘의 근원을 고치고 난 다음에 열매를 맺고 짐승들은 새끼를 낳고 사람들은 자녀를 건강히 낳아서 길렀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오늘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마음에 보혈과 성령을 의지하는 여러분에게 넘쳐 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성령에는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정, 우리의 사회, 우리의 직장, 우리의 세계 모든 역사는 우리 마음에서 넘쳐 나는 것입니다. 복이 꽉 들어 차 있고 사망과 저주가 넘쳐 나는데 아버지 우리 환경이 변화 될 수가 없습니다. 여리고성에 샘물 근원이 엘리사가 소금을 던져 축복함으로 고침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다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감사를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 생명이 넘쳐 나서 가정과 생활과 사업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열매를 맺게되는 것을 당연한 이치옵니다.
예수를 믿고 주를 찬미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 넘쳐 나는 생명수로 말미암아 열매 맺는 삶을 살게 주님께서 넘치도록 복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