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범죄함으로 영이 죽은 겉사람의 삶
십자가로 인해 속사람이 부활하여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새롭게 돼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셨을 때 속사람인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육신 즉 겉사람을 옷입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 죄 값으로 영의 사람으로서의 속사람이 죽고 육신의 사람인 겉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1. 타락한 인간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통이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아담과 하와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고 이로인해 신령한 지식이나 체험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육이 죽은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냄새 맡지 못하고 맛도 못보고 또한 촉감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사람도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수 없고 성령의 역사하심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신앙을 갖지 못하는 것은 영이 없이 현실적인 감각과 본능에 의해서만 살게 되므로 영적인 세계를 지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이 없는 동물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와 같기 때문에 육체의 일만을 지각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교통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조금도 알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는 진리의 지식이 없으므로 성령님도 모르고 천국과 지옥을 가늠하는 내세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므로 하늘나라에 속한 영적 지식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영이 소생되어야 영의 세계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이 죽으면 부패하여 썩게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게 되면 부패하고 썩어 악취를 내게 됩니다. 흐르지 않는 도랑물은 곧 썩어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살게 되듯이 영적으로 죽게 되면 부패함과 썩어짐을 통하여 온갖 귀신과 악령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우글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처럼 극악한 말과 행동을 하는가”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사람으로 얼굴을 갖고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귀신이 그 썩은 영혼에 들어와서 악마화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부패하고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시편기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이 죽어 겉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죄악과 질병과 고통,그리고 사방이 죽음으로 둘러쌓이게 됩니다. 이런 겉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느 곳에 가나 죄악이 넘쳐나고 질병과 사망으로 둘러쌓여 있는 것입니다. 시편 38편 4절로 6절에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얻으면 기쁘고 즐겁고 이를 통해서 소망이 생길것으로 생각하지만 영이 죽은 상태에서는 온전한 기쁨의 샘은 말라버리게 됩니다.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속에 들어오실 때 기쁨의 샘이 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영혼속에 계셔야 우리의 삶은 진실한 기쁨으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속에 기쁨의 샘이 없으므로 삶속에 늘 슬픔과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낳지 않은 것이 행복인데 이미 낳았으니 빨리 죽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싱글턴 역시 “옳은 것도 없고 적당한 것도 없다.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씨를 뿌리고 먼지 속에서 추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겉사람의 실상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죄악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겉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염려, 근심, 낙심, 절망, 슬픔, 미움, 분노, 시기, 질투 등 온갖 마음의 억압으로 답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 17장 7절에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이 그림자와 같으므로 삶에 희망이 없고 온 천지가 낙심천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겉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인간관계의 갈등, 억압, 소외, 대결 등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계층간, 지역간, 국가간에 분열이 있고 끝없는 갈등과 대결이 있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이러한 분열과 대립과 갈등을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전부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 욕심으로 사니 서로 부딪치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결혼한 부부도 얼마 가지 아니하여 서로 부딪히고 원망하며 갈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 원망, 불평,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겉사람으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8편 11절로 12절에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겉사람이 행하는 일입니다. 겉사람은 자기 상실감을 가지고 희망없이 늙고 병들고 쓸쓸히 죽어 갑니다. 겉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많은 학식을 쌓고 또 세상에서 성공한 삶을 살지라도 겉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자기를 잃어 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으로 쓸쓸히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겉사람의 운명입니다.
2. 예수님의 구원과 속사람의 부활
영이 죽어 겉사람의 삶을 사는 인생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온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33년을 사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빌라도의 뜰에서 말뚝에 묶여 등에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죄를 지은적도 없고 죄를 알지도 못한 하나님의 아들이 무자비한 로마군인들의 채찍에 등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 주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았던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주님은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골고다로 올라갈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6시간 동안 매달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죄로 말미암아 대가를 치루는 것이지만 죄 지은적이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와 절망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열두 명이 더 되는 천사에게 명령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멍에 밑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자유와 해방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어있는 우리의 속사람을 살려 일으키셨습니다. 완전히 죽어서 썩고 부패한 우리의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혈로 씻음받고 성령을 통하여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6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승천하여 이미 영적으로 하늘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의 힘으로는 새것이 될 수 없습니다. 새옷을 입었다고 새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집에 이사갔다고 새사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나서 새것이 되고 새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겉을 아무리 변화시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옛사람, 곧 우리의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속사람을 살려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멍에 밑에 들어가면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인된 옛사람은 사라지고 용서받고 의로워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의인으로 거듭나서 주님과 함께 교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담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아 놓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죄의 담을 헐어 버리고 용서와 의의 옷을 입혀 주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멍에 밑에 들어가면 모든 세속과 더러움이 사라지고 보혈로 말미암아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무리 거룩하게 되고자 하여도 세상과 죄악으로 묶여 있는 한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세상과 죄악에 묶여 있는 사슬을 끊을 수 있습니다. 보혈로 깨끗해진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멍에 밑에 들어가서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면 주님은 그 멍에를 통하여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므로 우리에게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피땀을 흘리는 고통스런 삶이 십자가로 인해 변화되고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주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를 영생복락인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사망을 멸하시고 천국에 대한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새사람이 된 것을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육신의 사람밖에 몰랐지만 이제 거듭난 속사람이 육신의 사람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육신의 사람과 우리안에 있는 속사람은 분쟁과 갈등을 끊임없이 일으키게 됩니다. 겉사람이 속사람을 충동질하고 유혹하므로 넘어 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겉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겉사람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거룩한 삶을 통해서 온전한 속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에 민감한 겉사람은 감각적이고 체험적인 것만을 의지합니다. 또한 우리안에 속사람을 유혹하고 억압하므로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교회에 나가려 하는데 겉사람은 나가지 말라고 충동질 합니다. 또한 술 담배 할 것을 유혹하고 음란과 도둑질과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겉사람을 통해서 일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겉사람을 속사람을 통하여 투쟁하고 씨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전에는 겉사람이 시키는대로 행하고 겉사람이 사는 방식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안에 다시 살아난 속사람의 방식으로 살려고 하므로 겉사람과의 투쟁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해서 속사람이 강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3.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
우리는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또한 성령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겉사람의 삶을 살지 말고 속사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자아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한 우리의 속사람은 의로운 사람이자 거룩한 사람이 되고 또한 치료받고 축복받은 사람으로 영생복락을 얻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속사람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면 될수록 더욱 강하게 일어나 겉사람을 대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겉사람의 공격을 물리치고 겉사람의 삶을 따라 가지 않음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사람을 말씀으로 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속사람은 육신이 주는 감각적인 정보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속사람이 사는 방식입니다. 겉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냄새맡고 맛보는 것, 만져 보는것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감각과 체험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속사람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헛된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믿지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을 믿지 말라고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시기 전에 그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지나 썩은 냄새가 진동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속사람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직 속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사람을 무덤에서 왜 끌어냅니까?”라고 말하므로 겉사람의 사는 방식으로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여,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므로 믿음은 속사람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겉사람은 감각에만 의지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속사람이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겉사람이 저항을 하고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많이 읽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이 강해진 속사람으로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속사람은 성령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 속사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님을 우리안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속사람은 성령님이 도움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사람은 언제나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령님은 우리의 가정교사이자 변호사로서 또한 안내인으로서 우리를 돕는 선생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사람은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겉사람은 기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복음을 증거하고자 한다면 마귀는 겉사람을 통해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속사람에게 기도하지 말고 편안히 쉴 것을 권유하고 당장에 다른 급한 일들에 관심을 갖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사람을 통해서 마귀는 피곤함과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은 기도의 힘을 통해서 마귀에 대항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몇분만에 죽는 것처럼 영적인 호흡과도 같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속사람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앉으나 서나 기도하므로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쳐나도록 쉬지말고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겉사람은 점점 노쇠해지고 무능력해집니다. 왜냐하면 겉사람이 후패하면 모든 것이 둔해지고 쇠패해지고 낡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고 강성해지고 신령한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먹으므로 하나님의 생기로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넘치고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성령님이 동행하는 가운데 천국이 우리안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겉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안고 절망가운데 살아갑니다. 겉사람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슬픔과 탄식과 좌절을 안고 영원히 몸부림치며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살아난 사람은 낡은 겉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며 영광 가운데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다가올 아름다운 본향에 들어갈 때 한사람도 낙오되는 사람이 없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영혼이 죽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같이 죄많은 인생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의 속사람을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고 또한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믿고 속사람이 살아난 자녀들이 다시 겉사람을 따라 살지 않고 매일매일 속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