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깨어진 사람

by 삶의언어 posted Oct 30, 2023 Views 2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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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깨어진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금이 가거나 깨어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실 때 언제나 그 사람이 금이 가고 깨어져야 귀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깨뜨리십니다. 생화의 여러 가지 풍파를 통해서 역경에 부딪치게 하므로 고난에 처하게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깨뜨려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 손에서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장장 25년 동안에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는 깨어졌습니다. 그의 나이 100세 때 되어서는 완전히 깨어져서 믿음과 순종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순식간에 깨어졌습니다. 멋도 모르고 아버지와 제사 지내러 갔다가 자기가 제물이 되어야되는 것을 알고 아버지가 그를 묶어서 제단에 얹어서 칼로써 잡으려고 할 때 그는 벌써 그 마음속에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일생동안 하나님 앞에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했습니다. 야곱은 20여년의 나그네 생활 동안 수없이 많이 부딪쳐서 상처투성이의 인물이 되었고 결국에 그는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고통 속에서 완전히 깨어지고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셉같이 깨끗한 청년도 깨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에게 모함을 당했습니다. 종으로 팔렸습니다. 귀한 가정의 귀공자가 종이 되어서 처참하게 짓밟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기약 없는 감방 생활을 하면서 그는 깨어졌습니다. 가루와 같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창대한 청년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이 사용하려고 할 때 모함을 당하여 추방을 당하게 되고 아라비아 광야에서 40년 동안 태양과 바람과 모래 들판과 양떼들을 친구로 삼아서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버림받은 심정으로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80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 앞에 사용되는 지극히 온유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 중에서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아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우리들은 왜 깨어져야 할까요? 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을까요?
우리가 깨어져야 될 첫째 이유는 인본주의가 깨뜨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올 때는 하나님 아닌 자기 중심의 삶을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 지어졌을 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요 인간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 주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형용컨대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집에는 주인이 들어와 있어야 그 집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릇은 그 내용물을 담아 놓아야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자체가 주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셔 놓은 집이요 하나님을 모셔 놓은 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담은 잘못되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중심과 하나님 주체의 삶을 포기하고 자기 중심으로 자기 주체로 살 것을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에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이 생활을 잃어버리고 육체에 살면서 인본주의요 자기 주체 사상을 가지고 삽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께 사용함을 받으려면 그 자기 주체 사상이 깨어지고 인본주의가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빈 그릇이 되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빈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시련에 부딪쳐서 자기 한계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를 발견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찾아 나오지 않습니다. 제 친구 중에 좋은 사람이 있는데 실력 있고 사회에서도 점점 지위가 향상되어 큰 회사 사장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제가 직접, 간접으로 전도했는데 그는 전도할 때마다 비웃습니다. "뭘 예수를 믿나, 이 세상에 다 자기 능력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지 뭐 예수를 믿어서 천당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다 무능력하고 무력한 사람이 하는 짓이지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것 안 한다." 면박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전도하는 것을 그쳤는데 세월이 흘러가고 난 다음 요사이 제가 소문을 들으니까 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고 했습니다. 왜 나가냐고 물으니까 약으로 고치지 못할 병이 들었대요. 그래서 온갖 병원에 다 다니고 온갖 치료를 다 해봐도 그는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자신 만만하던 그 자신이 한계점이 들어가자 인간의 무능력을 느끼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 깨어져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기를 당하여 자기의 무능력을 깨달을수록 깨어져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성하기 위해서는 육의 사람이 깨어지고 영의 사람으로 성장해 올라와야 인간의 장성할 수 잇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든 원치 않든 인간을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고 나오면 벌써 그 육의 사람이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척도에 따라서 적게 깨어지는 사람, 많이 깨어지는 사람의 차이는 있지만 깨어지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주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들은 다 환경에 부딪쳐 어떠한 연유든 간에 깨어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를 탈피하고 신본주의로 돌아오고 자기 주체 사상을 벗어나고 하나님 주체 사상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다 이러한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전혀 나는 깨뜨려지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깨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그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는 이유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가운데 두 번째 계명은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금이나 음이나 보석으로 만든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나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불신자들은 모두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뜻대로 생각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고 그리고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아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제 2계명을 어기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는 이 우상을 박살을 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깨뜨리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다 제 잘난 맛에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 잘난 맛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이 바울이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란 사람은 학문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가장 좋은 가말리엘 대학을 졸업하고 학문이 정통하고 유대교에 심취해 있는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파멸하기로 결정하고 그는 나아가서 교회를 훼파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스데반이 죽을 때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을 총지휘해서 그들의 옷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한 것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 나라인 시리아에 도망가 있는 기독교인들을 다메섹에 가서 모두 잡아와서 죽이거나 감옥에 넣는 사명을 받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시리아로 향했습니다. 시리아의 햇빛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양 빛이 강렬합니다. 그는 말을 타고 다메섹이 보이는 그 근처까지 갔는데 갑자기 대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하늘에서 비췄습니다. 그는 눈이 부셔 견딜 수가 없어서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귀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너는 나를 핍박하느냐 네가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에 너만 괴롭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거기에서 그는 크게 충격을 입었습니다. 머리를 들어보니 눈이 장님이 되었습니다.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는 자기 이름을 사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크다. 사울이라는 말은 크다, 당당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 한 번 만나고 그 음성 한 번 듣고 장님이 되어서 천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이 가던 종자들이 손을 잡고 이끌어서 다메섹에 들어가서 작가라는 조그마한 집에 들어가 그곳에서 사흘 밤 사흘 낮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금식하며 그는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사울을 깨어졌습니다. 나중에 아나니야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안수해 주매 그가 성령을 받고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바울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다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발견하기 전에는 "내가 그래도 굉장한 사람이다. 나는 제일 크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나는 바울이다. 참 작은 사람이다. " 일평생을 바울은 깨어져서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에 부딪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깨어져서 겸손하게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깨어졌나 깨어지지 아니했나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냐 겸손하지 아니하냐 그것을 알아보면 아는 것입니다. 안 깨어진 사람은 그 누구나 사울입니다. "나는 크다. 나는 지식이 있고 실력이 있고 내 청춘이 있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나는 사울이다." 그러나 깨어진 사람은 바울입니다. "나는 적은 사람이다. 나는 인간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오직 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다." 이러한 신앙으로 들어온 바울이 될 때 이 사람을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려서 크다고 생각하는 자기 우상을 없애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게 하기 위해서 시련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시련과 환난을 겪게 되면 얼마나 자기가 보잘 것 없이 보이는지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먼지와 티끌이 되어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 이 사람은 깨어진 사람입니다.

그다움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깨뜨리시는 이유는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깨어지기 전에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과격하고 성내며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짐승들도 보십시오. 온유하지 않은 사나운 짐승들은 사자나 호랑이나 늑대나 이리나 이런 모든 짐승들은 저 험산 준령에서 살고 사람을 떠나서 사람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온유하고 길들여진 가축들은 소나 말이나 개나 이런 짐승들은 사람과 함께 살고 편안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온유하지 못하고 과격하고 성내며 고집이 센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삽니다만 깨어지고 온유하고 길들임을 받은 사람들은 온순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애굽의 바로의 딸의 양자로 들어가서 바로의 궁에서 살았습니다. 온갖 호사를 극치로 누리고 그리고 애굽의 최고 학부를 나와서 학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식이 있고 웅변을 하고 몸도 건강하고 당당했습니다. 나이 40이 되어 자기 민족을 돌보기 위해서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종이 되어서 애굽의 간역자들에게 호되게 고난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한 곳에 가니까 애굽의 간역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붙잡아서 때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동족이 맞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 애굽 사람을 잡아서 쳐서 그 자리에서 죽이고 땅을 파서 묻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해 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또 나가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싸우는지라 가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아 외국에 와서 종살이하는 것도 슬픈데 왜 동족끼리 싸우냐?"니까 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야, 너 어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쳐죽이려느냐?" 그리고 난 다음에 자기 동족이 자기를 고발했습니다. 그는 왕의 진노를 피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미디안 광야에서 추장인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그 집 딸하고 결혼하고 40년 동안 아무 사람도 알아주지 않고 바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모래바람이 일고태양이 작렬하는 곳에 양이나 염소 떼를 거느리고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으로 목동 생활을 하며 평생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수없이 울고 탄식을 하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옛날에 기세 당당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아주 고집이 세던 모세는 죽었습니다. 나이 80이 되어 호렙산 가시덩쿨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네가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할 때 얼마나 깨어졌든지 얼마나 겸손했던지 "주여,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옮길 줄도 모릅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그는 스스로 잘났다는 것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하나님 손에 의지해서 80 노인이 지팡이 하나 짚고 삼백 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서 젖과 꿀이 하라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갈 때 하나님께서 말하기를 "모세는 천하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깨어져서 길들임을 잘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길들임을 잘 받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요셉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기를 자랑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서 채색 옷을 입고 형들은 들에 가서 목축을 해도 아버지 품에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하게 살고 그래서 고집에 세고 이기주의적이고 무례한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하시려고 하실 때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17살에 미디안 대상들에게 종으로 팔려서 애굽의 보디발의 집 몸종이 되어 그곳에서 억울한 누명을 받아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기약이 없는 시위대 감옥에 들어가서 기약 없는 감방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13년 동안의 옥고와 고통 속에 요셉은 깨어졌습니다. 자기가 먼지가 되고 가루기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서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온 천하에 기근이 왔을 때 가나안에 있는 자기 형제들이 먹고 살 수 없어서 아버지와 함께 형들이 모두다 애굽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계실 동안에는 아버지 슬하에서 요셉의 공양을 받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말자 요셉의 배다른 형제들이 이제 요셉이 아버지도 안 계시니까 우리에게 보복할지 모른다. 겁이 나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50장 15절로 21절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이것은 거짓말로 자기들이 지어낸 말입니다.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 어찌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까? 여러분 보통 사람 같으면 "흥, 그래. 네가 나를 잡아서 애굽의 종으로 팔다니. 어디 두고 보자. 이제 내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너희들 모조리 종으로 잡아 가지고서 내가 당한 고통만큼 너희들도 고통을 주겠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깨어진 사람입니다. 완전히 깨어져서 온유하게 되어 그 원한도 가루가 되었습니다. 형들이 겁을 내어서 벌벌 떨 때 그는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공양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야말로 그는 온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험과 환난을 당하여 깨어지면 사람은 온유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깨어진 사람이냐? 그것을 알려면 내가 정말 온유한 사람이 되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사납고 고집 세고 자기 멋대로 하려는 사람이냐 이것을 알아보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깨어져서 부드럽고 온유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지상의 축복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는 이유는 탐욕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깨어지기 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라도 빼앗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동산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 제쳐놓고 하나님의 것인 선악과조차도 빼앗아서 자기 것을 만들려는 탐욕을 가졌습니다. 탐욕은 곧장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이 깨뜨려져야 온유한 사람이 되고 또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모두 그 마음속에 마귀의 꾀임을 통해서 탐욕과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욕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키지요. 남의 나라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고 남의 나라 땅을 빼앗으려는 탐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하게 됩니다. 탐욕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으로 정치 행정을 하지 않고 총칼을 가지고 강제로 권력을 빼앗고 자기 권력대로 정치를 하려는 것도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서로 속이고 사로 속고 서로 고통을 가하는 것도 탐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탐욕이 생기면 모든 사람들이 다 모든 환경을 이용해서 자기 유익만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욕이 깨뜨려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심히 시련 하여서 욥이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통하여 깨어졌을 때 그가 신앙 고백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욥기 1장 21절로 22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고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옛날에 자기가 자기의 집도 자식도 재물도 소유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심한 시련을 겪어서 자식이 다 죽고 재물 다 잃고 빈털털이가 될 때 그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주신 자도 야웨시오 가지고 가신 자도 야웨시니 모든 일에 야웨께서 영광을 받으실 지로다" 결국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욥은 깨달은 것입니다. 삶의 소유주가 아닌 관리자 즉 청지기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들이란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빈 손 들고 울면서 나와서 돌아갈 때도 손목 펴놓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에 살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맡겨진 청지기로서의 우리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자도 하나님께 권력을 맡아서 청지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맡은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재물을 맡아 청지기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시련을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고 시련을 통해서 자기가 깨어질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권력도 행사하고 물질도 행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탐욕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깨뜨리고 난 다음 하나님이 권력도 주시고 재물을 태산같이 주신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침참하지 아니하고 욕심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 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깨뜨리는 이유는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깨어지고 자기 힘의 한계가 확실히 노출되고 인간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사람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고 두 손 번쩍 들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 선생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을 거듭거듭 심히 어려운 환경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거기에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그의 고백을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9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사람은 자기 지혜나 지식이나 능력이나 자기 청춘을 의지하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단 환난과 시련을 보내셔서 깨뜨려 버리면 자기 자신이 의지한 것이 하나도 없이 모래성 같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무너지고 나면 별 도리 없이 천지를 지으신 야웨 하나님께 항복하고 두손들고 나와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은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자기의 무력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일생은 그 차이는 있으나 계속하여 깨어짐의 연속입니다.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더욱 신령한 사람으로 장성하고 더욱 순종과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과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께서 더욱 크게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면 하나님 손에서 무자비할 정도로 인생들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진 만큼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고 또 더 축복을 주시려고 깨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면서 다른 면에는 하나님의 채찍과 고통 속에 깨어지면서 사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이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나는 과연 깨어진 사람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깨어진 사람이면 인본주의로 서지 않고 신본주의로 서며 자기 주체로 살지 않고 하나님 주체로 살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깨어진 사람이란 것을 알려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가 아닌가를 살펴보면 알 것이요 하나님 앞에 온유하여 순복하는가를 살펴보면 알 것입니다. 탐욕이 사라지고 그 무엇이든지 아무런 욕심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깨어진 것을 알게 될 것이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깨어지면 못 살지만 하늘나라에는 깨어지지 않은 사람을 전혀 들어갈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제 일보로부터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깊이 깊이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육으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이성적으로만 살고 세속적으로만 살고 감각적으로만 살고 흙에 부착해서만 삽니다.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 건너편에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깨어진 사람은 흙을 떠나서 영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며 피상적인 세계를 떠나서 깊이 있는 세계를 보게 되며 감각적인 세계를 떠나서 신령한 세계를 들여다보게 됨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깨뜨려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연인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며 자연적으로 비명횡사한 것이 아닌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 당한 것을 알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내 아버지시여,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호세아 선지자가 외쳤는데 오늘날도 영적인 지식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성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깨어져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 더욱 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더욱 깊이 깊이 하나니 주체로 살고 겸허해지고 온유해지고 우리 아버지 더욱 탐욕에서 벗어나게 되고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늘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주님 오실 날이 더욱 가까운 이 시점에 주님 오실 때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오늘 이 시점에 하나님 앞에 들어오는 결단이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자기를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위대한 결단이 오늘 이 아침에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