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물을 바라볼 때 자기의 입장에 서서 그것을 해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나 국가 간에 끊임없이 분쟁과 완력이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눈이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에 기반해서 자기 본의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상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모든 일에 하나님 위치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다면 이것은 참 진리로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에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못 박혀 피 흘리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도 완전히 사람 편에서 바라보는 것과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는 것이 다릅니다. 대제사장이나 바리새 교인, 사두개 교인, 율법사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일생의 종말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으로서 그의 모든 사역은 끝이 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처절한 종말과 실패로 끝났다고 그들은 안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평가한 것은 대 제사장이나 바리새, 사두개나 율법사들 유대인들이 바라보고 평론한 것과는 너무나 엄청나게 차이가 난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평가를 사람의 위치에서 할 것이냐, 하나님의 위치에서 할 것이냐는 이 중대한 것을 결정 내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십자가에 평가는 우리 현실적인 삶뿐 아니라 영원한 운명에 좌우된 문제인 것입니다.
첫째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한 일반 대중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관점에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의 빌라도 총독의 사형 언도를 받고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서 대제사장이나 바리새, 사두개, 율법사나 유대인들이 아우성 치며 비난하는 가운데서 골고다 산정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옷이 벗긴 채 십자가에 대못이 박혀서 우편에 강도 좌편에 강도 사이에 높이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땀을 흘리시고 피를 흘리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괴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예수의 원수들은 그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고개를 흔들고 침을 뱉고 온갖 모욕을 다 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외쳤고 대제사장들조차도 "저가 남은 구원하였어도 자기는 구하지 못하는 도다.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노라." 이와 같이 비난했었습니다. 정오가 되자 해도 빛을 내지 아니하고 천지가 어두워지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예수님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나마사막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잠시 후에 큰 소리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주님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끝으로 보았고 예수님은 이로 말미암아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단정을 내렸습니다. 오늘날도 이단 사설들은 하나님 아버지는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짓밟아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처참한 실패의 사건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수 마귀는 처절하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인류가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볼 수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비난하고 공격할 때 그들이 한가지 사건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할 수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조차도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인정했습니다. 예수께서 남을 구원한 사건은 절대로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그리스도 사역에 대한 증언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삼년 반 동안 행하신 그 역사적인 사건은 아무도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조차도 저가 남은 구원하였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직한 죄인을 짓밟은 적이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도 모든 사람이 돌을 들고 다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은 그 여자를 구출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도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온갖 조심을 다 해서 그를 구원받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을 용서하고 죄를 도말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원수들조차도 저가 남을 죄에서 구원하였다고 증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에 억압된 사람을 가는 곳마다 구출해 주셨습니다. 회당장 집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식사를 하실 때 거기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당장의 딸도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어느 곳에 가나 사람을 살리는데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두로와 시돈 지구에 가는데 스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에 들렸으니 내 딸을 구출해 달라고 간청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이방인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못 박힌 이후에야 이방인의 시대가 왔는데 이방인의 시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하도 와서 간구함으로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들어주셔서 그 소녀를 귀신들린 데서 놓아주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인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그가 처자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공동 묘지에 가서 밤낮으로 고함을 치며 돌로 자기 몸을 상처 입히고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태풍을 뚫고 호수를 건너 제자들과 함께 가서 그 사람 속에서 군대 마귀를 내어쫓았습니다. 로마 당시에 한 군대 편성에는 이천 명이 한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속에 무려 귀신이 이천 마리나 들어있었는데 그걸 다 쫓아내시고 주님께서 이 사람을 구출하시고 정상적인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가장노릇을 하고 자식노릇을 하고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부인할 수가 없고 예수님의 원수들조차도 저가 남은 귀신들린 데서 구원해 주었다고 시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의 장모 집에 들어가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운 것을 보시고 그 손을 만지시고 그 열병을 꾸짖으시매 열병이 떠나가고 제자들에게 수종들기 시작했었습니다.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를 데리고 오매 귀신을 말씀으로 쫓아내시고 그리고, 병든 자를 안수해서 고치셨습니다. 성경에는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해서 말하기를 저는 우리 연약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속에 그가 수많은 병든 자를 고쳤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원수들조차도 시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히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 집에 들어가서 그를 살려준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그 아들 시체를 그 부인이 따라가며 통곡을 하며 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상여를 중지시키고 그 관 뚜껑을 열게 하시고 청년을 보고 말했습니다. "청년아. 깨어 일어나라." 마치 잠에서 깨어 일어나듯이 일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만에 공동묘지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그 무덤의 돌을 옮겨 놓고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매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살아났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이 사역은 예수 믿는 사람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원수들까지라도 그가 남은 구원했다. 남을 죽음에서 건졌다. 이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환경적으로 곤란에 처한 사람을 그대로 두고 가신 적이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먹였으며 또, 남자만 사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예수님이 먹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 절망에 처한 사람의 친구가 되어서 저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위대한 행적은 원수들조차도 시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의 위대성은 이로서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고 있을 때 대제사장들이나 율법사들이나 원수들은 말하기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겠다."고 여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고 그 위대성을 인정해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생애는 끝이 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네가 하나님 아들이면 지금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네가 아무리 위대한 행적을 했다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끝장이 났다. 실패했다. 너는 이제 이로서 모든 것이 종말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을 비웃었습니다. 여러분,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종말 되었을까요?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역사학자들이나 불신자들이나 이단들은 예수의 십자가가 종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로서 끝이 나고 말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둘째로,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과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십자가를 무엇으로 바라보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역사적으로 종말이며 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아무리 십자가 예수를 믿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시기 600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지시를 통해서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 오늘날 뉴스위크나 타임지 기자가 보고 기록한 것보다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을 읽어보면 감격적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태어나기 600년 전에 이처럼도 상세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 편에서 직접 계시하지 않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격적으로 읽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보신 십자가를 우리 한번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가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실패로서 달려 돌아가신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바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작이며 위대한 계획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크나큰 승리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4절에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였노라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고개를 흔들고 침을 뱉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너는 십자가에서 이미 종말을 당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고 있다고.... 여러분,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질병인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에 병이 들고 생활에 병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이 병에서 놓여남을 받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다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의 고통을 면해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올라가서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은 죄악과 허물만 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을 적극적으로 주님께서 짊어지고 질병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고통을 주님께서 제하여 버렸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 편에서 십자가를 해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패라고 생각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는 우리의 질병과 질병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크나큰 슬픔을 예수께서 그 속에 다 청산해 주신 위대한 대속의 사건으로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과 몸에 인간으로서 치료할 수 없는 그 많은 병들을 다 제겼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치료의 위대한 능력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희 병을 치료하는 야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병 고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하나님이시고 우리 구주 예수께서 병 고치는 구주 시고 교회는 병 고치는 교회이고 복음은 바로 병 고치는 복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이 바로 치료의 사건인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명백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은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고 이사야서 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 교인이나, 사두개 교인이나, 율법사들은 십자가는 예수께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매맞으며 죽는 것이라고 그의 사역은 실패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벌써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버림받고 난 다음에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죄의 씨를 받은 사람은 모두다 죄인이요 죄의 혈통을 받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요 우리는 원죄에 속해서 아무 자범죄를 짓지 않아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요 이미 죽은 자인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사람들은 수많은 자범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로 말미암아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헤어나올 수가 없는 처절한 절망에 처하였습니다. 사람은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과를 도말 할 수도 없고 어떠한 다른 사람도 사람을 구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원죄 없이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원수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율법에 완전하게 예수님은 살았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다 담당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다 담당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악의 빚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다 청산하시고 말았습니다. 율법의 정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다 무효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율법은 길게 여러분의 죄를 다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여러분을 정죄 합니다. "너는 이런 죄를 지었다. 이런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너는 멸망을 받아야된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나오면 십자가는 그 율법의 모든 정죄를 다 무효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다 갚아버렸다. 과거의 죄도 현재의 죄도 미래의 죄도 내가 다 청산해 버렸다. 그러므로 이 사람에 대한 율법의 모든 정죄는 무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죄백방 되어서 죄 안 지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무죄백방하기 위해서 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율법의 정죄를 무효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의 모든 부채를 예수님이 갚아주기 위해서 고난 당한 사건이라고 하나님은 인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을 실패라고 보는 사람은 자기의 죄악으로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마는 십자가가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는 사건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나오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구원받아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이사야서 53;5절 하반 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다음 징계를 받아서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세계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세상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세상이요.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이마에 땀을 흘리며 먹고살아야 할 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지금까지 세상은 저주 가운데서 사람은 가시 난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징계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옛날에 아담과 하와가 징계로 내어 쫓겨난 그 징계를 다 청산하시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의 품안에 안길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쫓겨난 에덴에서 우리는 다시 에덴을 찾을 수가 있고 하나님 품안에 들어 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들어갈 수가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품에 품어 주시고 또다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여 주셔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본주의로 인간 주체 사상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나왔었으나 예수를 통해서 회개하고 신본주의로 하나님 주체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나올 때 하나님은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것처럼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여러분과 나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모든 문제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것들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또다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눌 수가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랑의 손길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말합니다. 이사야서 53;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어린양이 목자를 떠나서 자기 고집대로 자기 행방대로 다 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양 같이 우리 목자 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고집대로 자기 생각대로 인본주의로 자기 주체사상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버림받았으나 우리의 목자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도로 다 부르셔서 이제는 신본주의로 돌아오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다 당신이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다 도로 불러서 하나님의 양들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양들이요 주께서 기르시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다윗처럼 노래 할 수 있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청산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대제사장이나 바리새 교인, 사두개 교인, 율법사나 로마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처절한 실패요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종말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의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단 종파에서는 한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패요 종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성공이요. 승리요. 인류 구원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십자가야말로 거기에서 우리의 질병이 다 치료를 받고 우리의 연약이 다 청산된 처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야말로 우리 허물이 제하여지고 우리의 죄악이 영원히 갚아진 처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야말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원수 된 담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다시 예비하는 하나님 되었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야말로 우리 고집대로 살고 우리 마음대로 행한 우리 모든 죄악이 다 청산되고 하나님의 양무리로서 하나님이 우리 목자로서 다시 들어오게 된 처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보다 더 위대한 성공은 없으며 축복이 없으며 축복이 없으며 구원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편에서 십자가를 발보고 하나님이 해석하는 그 의미를 받아 들여서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우리가 범사에 승리하며 강건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는 우리의 승리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기쁨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습니다."로 나아갈 때 오늘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의 열매를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의 생활 속에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사건은 이천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마는 그 당시의 예수님의 원수들은 십자가가 예수님의 종말인줄 알고 예수님 사역의 끝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무신론자들이나 일반 학자들이나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종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지으신 영원 무궁하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는 위대한 구원의 원천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 귀를 기울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해석하시는 십자가의 내용을 우리가 알아들어서 그 십자가의 내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서 우리가 병 고침을 받고 죄사함을 받으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 궁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양무리들이 되어서 살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품에 안아 드립니다. 십자가를 통한 그 위대한 은혜를 믿음으로 오늘 받아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 모여 하나님 품에 안기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양무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