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신령한 사람

by 삶의언어 posted May 04, 2024 Views 4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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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신앙성숙
예배드린 날 1986-11-09
오늘의 성구 요한복음 6장 1절로 1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ws9lK7CsD-0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 신령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보존되길 원하노라고 축원하셨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실 때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영이 마음을 가지고 몸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삼중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이지만 마음을 가지고 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육체적인 인간으로 살수도 있습니다. 감각을 통해서만 살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통해서만 사는 육신의 사람이 마음을 누르고 우리의 영의 누르고 육신으로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의 사람, 즉 혼이 일어나서 이 마음은 이성과 과학과 지식으로만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도 누르고 영적인 세계도 제켜버리고 오직 혼의 사람, 즉 마음의 사람이 되어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고 과학적으로만 생각하고 지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신은 죽었다고 말하고 오직 인본주의에 서서 살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본래의 우리의 본체의 영이 일어나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사모해서 말씀을 따라 살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으로 살고 꿈과 환상을 가지고 살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창조적으로 사는 영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실제로 우리 육신의 사람을 누르고 우리의 혼 즉, 마음의 사람을 누르고 영의 사람이 일어나서 영이 마음으로 도우려 육신을 살수 있는 진실로 신령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행복하고 은혜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분과 아침에 깊이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광야에서 나가서 체험한 사실을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의 광야에 제자들과 함께 쉬러 가셨는데 그곳에 남자만 오천명 부녀자 기만명이 떼를 지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침체 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병자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절룸 발이와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거기에 모여온 무리들이 정신 없이 침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 걸음이었습니다. 이제 베데스다 광야에서 가버나움까지 돌아가려면 상당히 거리가 멀고 시간이 걸리고 밤이 늦어야 들어갈 수 있게 됨으로 그들은 도저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장기에 걸려서 걸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들에 들러 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친근히 여기사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빌립에게 빌립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주님은 이미 어떻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빨리 계산해 보고 난 다음에 지금은 광야에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먹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 사람들을 다 흩어버려서 각자 그들이 동네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게 하소서. 하고 고민하는데 여기 안드레가 백성들 가운데 가서 어린 아이 점심도시락 속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얻어 가지고 주께 나와서 하시는 말이 주여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는데 많은 궁중에게 이것으로 먹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돌 보와 주옵소서. 하고 나왔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오병이어를 받으셔서 축복하시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오병이어를 나주어 주자 그 많은 궁중이 다 배불리 먹고 결국 남은 것을 모아보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인 군중들은 육으로 사는 사람을 표상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 죽고 몸이 지치고 배가 고픕니다. 그리고 그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사람들은 육체적인 요구를 체워 달라고 부르짖기 때문에 육의 속한 사람, 육의 사는 사람으로 표상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자기들 힘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빌립을 보시고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라고 했는데 빌립은 혼의 사람, 마음에 사람을 대표합니다. 빌립은 즉시로 혼의 사람 마음에 사람의 하는 일을 그대로 합니다. 혼 즉 마음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지식적이며 과학적입니다. 빌립은 즉시로 수판을 튀겨봅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이 많은 사람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떡이 필요할 것이요. 또 이곳은 광야이니 떡 살 곳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으로써 불가능하다고 할수 없습니다. 안됩니다. 못 먹입니다. 이것이 결론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음의 사람 즉, 혼의 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인 계산과 과학적인 판단과 지식적으로 생각해 보고 거기에 안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드레는 영으로 사는 사람, 신령한 사람을 대변합니다. 안드레는 감각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혼, 즉 마음으로 계산해 보아도 안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으므로 어떻게 하던지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다 배불리 먹을 것을 꿈꾸고 이러한 기적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백성들에 가서 오병이어를 구해서 예수님께 갔다 받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육신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 혼, 즉 마음의 사람과도 일하지 않았습니다. 영의 사람인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받으셔서 주님께서 그를 축사해서 위대한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세계 속에 오실 때 찾으시는 것은 영으로 사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영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난도질해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신령한 일은 다 신화로써 제켜버리고 오직 인간의 마음으로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상황만 성경을 따라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기적적인 삶과 죽음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도 부인해 버립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다 신화로 취급해 버리고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 그 자비 이것이 위대한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이나 지식으로 받아드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예수의 사랑으로 이 현실사회를 개혁해서 잘사는 세계로 만들어보자고 하므로 기독교가 전락해서 사회적인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과 비슷한 운동으로 떠내려가고 마는 경향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진실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모두다 삼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육의 감각을 가지고 사는 육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러분과 내 마음 중심으로 해서 인간적으로 과학적으로 오직 인간지식을 통하여 사는 마음에 사람, 혼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러분과 내가 회개하고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말씀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을 갖고 꿈과 환상을 가지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적적인 삶을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 속에 거대한 변화가 다가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우리가 이 교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다 영적인 신령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그 교훈을 강제로 가르치려고 생각했습니다. 해 걸음에 사람들을 다 흩어 보내신 다음주님께서는 강제로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가버나움으로 배를 건너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함께 늘 다녔지 제자들만 따로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강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가버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혼자서 산 위에 가서 기도했는데 제자들이 초저녁에 배를 타고 배를 저어서 갔는데 아무리 배를 저어도 풍랑이 거세어서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배에 파도가 쳐들어옵니다. 밤 사경이 되었습니다. 새벽 약 두세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가버나움배는 당도하지 못하고 갈리리 바다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다 육의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소금물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바람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나고 그리고 온 몸이 지치고 허기증이 나고 그리고 찬물이 온몸에 젖어서 찹니다. 이러므로 육신의 감각을 통해서 그들은 공포에 질려서 이러다가 우리가 죽지 아니하냐. 그래서 육신의 감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육신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바다 위에 사람의 형상을 가진 분이 밝은 빛을 내면서 오르락, 내리락 파도를 밟고서 이들을 향하여 다가옵니다. 그러자 일시에 제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육신의 사람에서 혼에 사람, 마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해 보니까 사람이 도저히 물위로 걸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이나 과학적으로 판단해 볼건데 사람이 물 위로 걸을 수 있느냐. 이것은 틀림없이 유령이다. 이것은 사람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이나 지식만의 판단으로서 사람이 물위로 걸어올 수 없으니 이것은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지식적이 경험이 기억이 났습니다. 여러분 배를 다는 사람은 밤바다 위에 유령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든지 유령이 걸어오는 것을 보면 그 배가 반드시 파손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또한 인간은 자기의 지식만 가지고 자기의 경험만 가지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배에 탄 사람들 모두다 혼의 사람 마음에 사람을 전략해서 내중내고 고함을 치는 아비귀환의 처절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말자 열두 제자중에 오직 한 사람 베드로가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을 듣자 말자 그 마음속에 영이 기뻐 뛰어 일어나면서 그는 육신의 감각을 짓누르고 인간의 혼, 즉 마음에 모든 판단을 짓누르고 영적인 사람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말씀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도저히 감각적으로 봐서는 불가능한 일이요.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해 볼 때 과학적으로 지식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드리고 말씀을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영의 사람으로써 그는 물위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럴 때 자기 동녀들이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기면서 "야! 이사람아 돌았느냐, 미쳤느냐 어찌 할려고 이 어두운 갈리리 바다위로 이 풍랑 위를 걸어간다는 말이냐. 이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라.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물위로 걸을 수 있다는 말인가. 결사적으로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랑곳없이 바다의 파도소리와 물보라를 느끼면서도 감각을 제켜버리고 인간의 혼, 즉 마음의 사람을 제켜버리고 그는 영의 사람으로 일어나서 나가길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서 첨벙첨벙 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모든 제자들은 보고서 입을 벌리고 기절을 했습니다. 저럴 수가 있느냐. 제자들은 영의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갑니다. 감각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이나 이성으로 생각할 때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감각의 부르짖음을 눌러버렸습니다. 그 혼의 모든 판단력을 다 눌러버렸습니다. 그는 영의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을 믿고서 나갑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영의 사람은 기적을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영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성령의 의지하면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말씀대로 창조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기적적인 발걸음으로 물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여기 베드로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니다. 베드로는 영의 사람으로 출발해서 이제 베드로는 의기 양양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차고 성령이 그 마음속에 역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물위로 가는 꿈을 꾸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나갔는데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물위로 유유히 걸어 기쁨에 예수님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역사상 인간이 물위로 걸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진 광풍이 불어와서 그 바람이 천둥을 치는 소리같이 그의 깃전을 때렸습니다. 물보라가 일어나서 그를 뒤엎었습니다. 그러자 일시에 베드로의 온 몸 속에 있는 감정이 감각이 일어나서 고함을 쳤습니다. 베드로야 바람소리를 들어라.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느냐.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아니냐. 온몸에 물을 덮었으니 이렇게 짜릿하고 찰 수가 없다. 너의 몸은 물위에 있다. 이럴 수가 있느냐. 감각이 고합을 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갑자기 육의 사람으로 전략되었습니다. 감각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지금 물위로 걸어가고 있다. 이것은 대비행 아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즉시로 베드로는 설상가상으로 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즉 마음에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일어나서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에 사람은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는 이제 죽었다 생각해 봐라. 과학적으로 생각해 봐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라. 지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네가 물보다 더 무거운데 어떻게 물위로 걸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네가 지금 물위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망상이요. 거짓이요. 이것은 절단이다. 미쳤다. 너는 이제 물에 빠져 죽는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마음에 사람이야 있을 수가 없지요.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과학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육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에게 협동을 받은 베드로는 그만 영의 사람이 침몰해 버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성도의 인도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즉시로 그는 물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이 입을 열어서 베드로를 받아드렸습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가면서 절망에 처하여 주여 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빨리 오셔서 손을 붙잡아 일으키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꾸짖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되고 만 것입니다. 똑 같은 베드로인데 갈릴리 바다가 변했습니까. 아닙니다. 밤이 변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바람이 변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파도가 변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똑같은 갈릴리 바다에 밤 시간에 여전히 파도는 치고 바람은 부는데 베드로가 조금 전에 물위로 유유히 걸어가다가 이제는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달라진 것은 베드로 속에 인격적인 변화가 달라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삼중인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도 될 수 있고 혼의 사람. 즉 마음에 사람도 될 수 있고 육의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때 그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영의 사람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함께 교제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과 내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떠한 풍랑이 다가오고 역경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온다고 할찌라도 여러분께서 영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말씀 위에 굳세게 서서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고 성령위로 충만하여 성령의 격려와 위로와 권능가운데 사로잡히며 여러분께서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꿈과 환상을 가지며 믿으며 기적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에 서서 믿습니다. 하고 걸어나갈 때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령한 사람이요. 이러한 사람하고는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바로 바울선생께서 로마서 4장 17절에 말한 것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이 백세가 되고 그 아내의 나이 구십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음으로 알고 그 사라의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믿음에 굳세게 서서 약속한 이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룰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백살된 아브라함과 아흡살이 된 사라에게서 아름다운 아들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라는 육신의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감각적으로 늙고 힘이 없어 어린아이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사람으로써는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지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미 다 어린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이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낳을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하시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인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찬미하고 나가니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출발할 때 그런 영으로 출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말씀에 섰습니다.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 칠흑같이 어두워라. 나는 그런 것 상관없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나갔었습니다. 그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영의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덮었을 때 감각이 부르짖습니다. 춥다. 바다 위에다. 바람이 분다. 너는 지금 바다 위에 있다. 감각의 보고를 듣고 육의 사람으로 떨어진 다음 그 다음에 그 마음속에 급기야 혼의 사람, 마음에 사람의 점령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지식적으로 생각할 때 절대로 물위로 걷지 못한다는 고함을 듣고 영의 사람이 말씀을 포기하자 믿음은 잃어버리고 는 물에 가라앉았습니다. 물이 변화된 것 아닙니다. 밤이 변화된 것 아닙니다. 바람이 변화된 것 아닙니다. 베드로가 갑자기 변화된 것입니다. 그가 영의 사람일 때는 방금전에 물위로 걸었는데 그가 육의 사람 마음의 사람으로 전락하자 즉시로 물에 빠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께서 영의 사람으로 살때는 여러분 하나님 모든 약속을 믿고 또 그 약속대로 순종하고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여러분께서 감각적인 사람이 되거나 혼의 사람이 되어서 그만 영의 사람의 믿음을 포기해 버리면 여러분은 전에까지 기적으로 산 것을 다 포기해 버리고 급전 직하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람들은 그 가슴속에 방송국 안테나 세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이알을 틀면 세 곳에서 방송이 들립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사람이 되어서 방송이 들려옵니다. 여러분 눈으로 듣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감각하는 육신의 사람인 것을 끝임없이 방송이 들려옵니다. 이것은 현실적이고 환경적인 것을 자꾸 말해주면서 현실은 이렇다. 환경은 이렇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라. 언제나 우리에게 방송이 들려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이알을 틀면 또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혼의 방송이 들려옵니다. 무엇이든지 지식적으로 생각하라. 과학적으로 생각하라. 이성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므로 너의 현실적인 이성으로 바라볼 때 지식적으로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주판을 튀겨보니, 끝장이 났다. 너는 광야에 있다. 돈도 없다. 너는 낭패하다. 너는 실패했다. 너는 그러므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 부정적인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영의 사람의 다이알을 틀어놓으면 여러분 영의 사람의 다이알에서 들려오는 것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약속이신 것입니다. 할수 있는데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는 말씀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 영의 음성의 다이알을 틀어놓으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죄사함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성령 충만의 언약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쫓겨나가고 병에서 고침 받은 약속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저주에서 벗어나고 저주와 엉겅퀴가 다 없어지고 여러분의 생활가운데 그리스도의 은총과 아브라함의 축복 가운데 들어갈 음성이 들려옵니다. 또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곳은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여러분이 영생을 얻어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고향을 가졌다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같이 어느 방송국의 다이알에 맞추고 있습니까. 육신의 감각의 방송을 듣고 있습니까. 혼의 방송을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령한 영의 방송을 듣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한 인격 속에 육의 사람, 마음에 사람, 영의 사람, 세 인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호하게 서서 육의 사람을 정복하고 마음에 사람을 지배하고 영의 사람이 일어나서 예수 믿고 거듭나서 영생을 믿고 성령 충만함 받고 말씀 위에 서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영의 사람으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성경의 기록된 모든 기적들이 여러분 생애 속에 나타날 것을 체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의 사람과 동행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사람과 기적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이 생겨나면 오늘날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손길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의 사람으로 지어놓으시고 마음에 사람을 지배하고 육의 장막 집 속에 살게 했는데 타락해서 영이 하나님께 버림당하매 마음의 사람으로 살아서 인본주의자가 되고 오직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과학만 통해서 살게 되고 혹은 타락해서 육의 사람이 되어 감각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걸며 지시고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므로 예수를 통해서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 약속을 믿고 살고 기적을 가지고 살게 됨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가 영의 사람일 때는 물위로 걸어가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감각의 사람 마음에 사람으로 전락했을 때는 그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똑같이 광야에 있었지만 육의 사람들은 배가 고파 허덕였고 혼의 사람, 즉 마음에 사람 빌립은 불가능하고 먹일 수 없다고 절망했지만 영의 사람 안드레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인간의 최선을 다한 결과에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광야 같은 세상에 우리가 살아갈 때 육의 사람으로 전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사람으로 인간적인 계산으로 불가능하니 절망하지 말게 하옵시고 하나님 말씀에 서서 영의 사람이 되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무를 유로 창조하는 기적을 믿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여 기적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