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7절
심은 것 온전히 거둠도 하나님의 축복
자연과 사람 농사 모두 수고와 노력 필요
삶의 용기, 희망과 꿈을 주는 믿음 씨앗 심어야
한국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아무것도 심지않으면 가시넝쿨 잡초만 무성하게 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됩니다. 좁은 텃밭에 심은 것을 가지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누어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넓은 논이나 들에 심어야 온 동네 사람들하고 나누어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심은 것과 거두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1. 자연에서 본 심고 거두기
먼저 우리는 자연에서 본 심고 거두기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옥토에 잘 심고 잘 가꾸어야 거둘 것이 많다는 것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어떤 씨는 돌 밭에 떨어지매 싹이 났으니 뿌리가 내리지 못하므로 햇빛에 말라 죽어버리고 어떤 씨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나 가시가 우거져서 기운을 빼앗으므로 죽어버리고 그 다음 옥토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보면 좋은 씨가 좋은 옥토에 뿌려지는 것은 4분의 1의 요건만 충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씨를 뿌려 놓았다해도 잘 가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김을 매고, 비료를 주고, 병충해를 방지하고, 가뭄과 홍수를 잘 다스리는 수리 시설을 잘해야 씨가 잘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기록했고, 고린도전서 3장 6절로 7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계적인 교회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씨는 제가 뿌렸고 물은 저도 주고 천국가신 최자실 목사님과 존 허스톤 목사님도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는 것은 주님이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열심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는 것은 주님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려 드려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을 원하실까요? 감사는 굉장히 긍정적인 힘이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길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햇빛이 비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많이 드리는 개인이나 가정, 교회나 사회나 국가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8절로 13절에 보면 “야훼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야훼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야훼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야훼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바로 이 축복이 우리나라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아래 거한다 했는데 지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있기 위해서는 그 은밀한 곳에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은밀한 곳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 날개로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개로 덮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비와같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우리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바로 이와 같은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개인도 국가도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면 번영과 축복을 거둡니다. 그러나 잘못된 씨앗을 심으면 낭패와 실망을 거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인간 농사
자연의 농사뿐 아니라 인간농사도 한가지입니다. 국가의 미래인 인간농사는 교육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혼탁했던 마지막에 어린 사무엘을 자라게 하시며 제사장에게 배우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자라고 제사장을 섬기면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배우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 반동안 예수님의 사역가운데 대다수가 열두제자들 데리고 함께 먹고 함께 여행하시고 함께 주무시고 열두제자를 가르치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쓰고 오셔서 하신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셔서 승천하고 난 다음에 그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이와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제자양성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자라 밖에 나간 제자들이 모두다 큰 교회를 세우고 훌륭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복음화하고 있는 것은 제자양성에 힘을 썼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가 제자양성에 힘을 써야 앞날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 제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이 지은 「관자(管子)」라는 책에 “일년 계획을 할 때는 농사짓는 것 계획하고, 10년은 나무를 10년 동안 심어야 베어서 재목으로 쓸 수가 있고 사람은 100년을 목표를 하고 키워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는 인간 농사인 교육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잿더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우리 부모들의 마음속에 교육에 열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쳐야 되는데 그때 이후로 제가 장성한 오늘날에 뒤를 돌아보면 우리 한국사회가 변화됐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한국의 가정과 사회, 교육열을 퍼부어 주셔서 배워야 산다 가르쳐야 산다 그 열심히 집에서 내복을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빚을 지더라도 자식을 가르치려고 해서 중고등학교 대학은 필연적으로 보내야 되는줄 알고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 교육이 어떤 면에서 보면은 너무 무리한 것 같지만 한국을 오늘날 잘살게 만든 기본이 된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릴 때 배운 것은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단골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3월 교육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연설에서 한국 교육에 대해 언급한 이후, 얼마 전에 또 다시 한국의 교육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잿더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적인 부모와 사회적 분위기로 심은 씨앗의 결실을 맺어 오늘날 우리가 잘사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도 신학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올바른 신학교육이 있어야 미래 한국교회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예수 십자가 중심, 성령 중심으로 돼야 되는데 잘못가고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신신학이나 자유주의신학 교육은 장차 교회를 묘지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로 5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의 말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총명하고 교육을 더 많이 받고 하나님의 율법의 지식에는 따를 자가 없는 사람이지만 자기의 지혜와 지식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십자가 이외에는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육이 잘된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가 많습니다. 자기 교육에 의지하고 말씀을 말씀대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서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게 될 위험성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3. 50년 동안 심은 믿음의 씨앗
제가 50년 동안 심은 믿음의 씨앗을 종종 뒤돌아 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았고, 10대에는 폐병에 걸려 학교를 중퇴했으며, 청년 시절에는 먹고 살기가 곤란하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좌절과 절망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금식할 때는 희망도 있고 배도 덜 고픕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 굶으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객지에서 앞길이 캄캄해서 정말 서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를 시작할 때에도 가마니를 깔고 찢어진 천막을 걸머지고 나가자니 사회의 최하, 저소득층 사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막촌에 들어가서 그들 가운데 같이 살았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입고 살 수밖에 없는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 경쟁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처럼 생존으로 절박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용서와 화해, 성결과 성령충만의 복음을 전했고 치료와 축복, 영생의 소망과 꿈을 전하자 그들은 피부에 닿는 은혜를 받게 되었고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에 처할 때 용기와 희망을 줘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절대 절망에 처한 우리가 오직 나아갈 곳은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려서 대속해 주신 예수님께로 가는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원통한 마음, 섭섭한 마음, 답답한 마음을 예수님 십자가 앞에 와서 가슴을 치고 울고 통곡하고 내려놓으면 오늘 양식을 주실 것이며 오늘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살아서 지금 당신과 같이 계신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붙잡고서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살아나도록 간구해 주신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복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고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대속한 은혜 다섯가지 축복을 우리가 조목조목 알아서 그를 깨닫고 그를 감사하고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능력이 우리 속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오중복음을 믿게 되면 우리의 생활 속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전인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육 전체 즉 전인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구체적으로 자기 생활 속에 적용해서 이루어지게 할지를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과 내가 함께 손을 잡고 일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만 두지 말고 내 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할 때 주님께서 저에게 4차원의 영성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말씀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소원을 꿈꾸므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과 꿈을 가지고 행하게 하십니다. 꿈을 통해서 말씀을 구체적으로 내 생애 속에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다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술의 고백을 통해 우리 삶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함으로 그 말씀이 우리 주위에 기적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 되시며 말씀은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 되는 길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4차원 영성의 위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생각 속에 구체적인 내일에 대한 꿈을 갖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어떠한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갖고 있는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50년 세월 동안 희망의 복음의 씨앗을 전했었습니다. 오늘날 저보고 너무 일방적으로 희망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사람들마다 하나님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저의 사명은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희망에 대한 복음을 전하라 하면 저는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진리란 너무나 방대하고 크기 때문에 저는 그 큰 진리에 일부분만 증거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저와는 다른 방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그 정도로 방대한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우리는 50년 동안 합쳐서 울어가며 씨를 뿌렸는데 그 결과로 우리 교회가 서게 됐습니다. 전국에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전세계 700여 선교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심은대로 거둔다고 해서 심은대로 거두게 된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을 거기에서 절실히 보았습니다. 우리가 현재 어떤 형편이든 주신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받으시고 영화로움을 느끼시고 하나님께 능력으로 축복하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R. A. 토레이 박사는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있으면 형통하게 된다”고 말했고, 초대교부 요한 크리소스톰도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다. 환난과 슬픔 속에서도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바꿔주실 것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다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속에 모셔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을 가지는 것은 저주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은 저주의 씨를 심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최고의 기도는 찬양과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속에 들어올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은 이 길을 막아 버리고,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감사와 찬송을 생활화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추수를 하게 되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받으시고 영화로움을 느끼십니다.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행위를 옳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최고의 기도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인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마귀의 진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이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직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심고, ‘축복과 은혜’를 거두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채워주옵소서. 그 은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망을 온 세상에 심고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4차원 영성의 신앙을 통해 승리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