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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가난해야 좋은 신자인가

by 삶의언어 posted Nov 27, 2023 Views 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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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축복
예배드린 날 1982-11-07
오늘의 성구 고린도후서 8장 9절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W5WH8WNDjR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가난해야 좋은 신자인가?" 이런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물질적인 부를 죄악시하고 좋은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복음전도를 효과적으로 광범위하게 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부가 필요해서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많은 헌금을 하라고 강요하는 자가 당차게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과연 물질이 죄악입니까? 과연 가난이 찬양받을 만한 미덕이 됩니까? 우리 성도들은 물질과 신앙생활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될까요?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밝히 알고 넘어가야 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 물질이 과연 죄악시된다면 그 물질은 악마가 지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까? 악마가 지은 것이 좋은 것을 지을 수 없고 좋으신 하나님이 악한 것을 지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땅이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주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자말자 하나님이 빛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물 속에 육지가 나고 모든 열매 맺는 나무들이 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지어 궁창을 비취게 하시고 공중의 새와 물 속에 있는 고기를 지으시고 땅위에 기는 짐승과 곤충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좇아 사람을 짓되 남녀를 지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 중에 하나님께서 짓지 아니하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다 우리 하나님이 지으신 바되었으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이 죄악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동방에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고 상하도 해함도 없고 부요와 풍부가 있게 하시고 난 다음에 그곳을 에덴 낙원으로 부르시고 아담과 하와가 거할 집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있는데 그 강 중의 한 강은 비손 강인데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두르고 거기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다고 해서 금과 은과 보석과 진귀한 돌들도 주님께서 모두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셔서 그에게 축복을 해 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그리고 말라서 죽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창세기 1장 28절로 29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므로 주께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뜻은 선이요 악에 있지 아니하고 의요 불의에 있지 아니하고 창성이요 패망에 있지아니하고 부요요 가난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죄와 질병, 가난과 저주, 절망과 죽음은 왜 왔습니까? 그렇게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하고 마귀와 손을 잡음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서 오늘날의 비극을 자초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가난과 곤고한 생활의 유일한 이유가 타락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를 인하여 저주를 받아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물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으리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에덴에서 쫓겨나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질병과 죽음이 그로 말미암아 연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 되시지만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악으로 말미암아 거역한 그것이 오늘 이 세사에 횡행하는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 가난과 슬픔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버림받은 자식들을 모두다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이 마당에야 가난과 굶주림이 정상적인 신자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둘째로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이것을 보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가장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위대한 섭리를 이루신 분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불러내실 때 상상할 수 없을만한 위대한 축복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언약을 부셔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축복의 언약을 주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실 때 그에게 인간으로 형언할 수 없을 만한 위대한 축복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 땅의 온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나왔고 그가 나중에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올라올 때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하기를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그리고 풍부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생활이요 그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생활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나님 사랑을 받고 잘 믿는 사람이었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을 때 축복을 박고 나온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죄악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께로 나아올 때 주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어떻게 하셨는가 살펴봅시다.
창세기 24장 36절에 보면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이삭은 태어날 때부터 거부가 되어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상속을 다 받았으므로 주체할 수 없는 재산을 얻었지만 창세기 26장 12절로 14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이것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삭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서 좋은 신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성경에 사람이 말로써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의 말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십시다. 야곱은 꾀가 많고 사기성이 있었지만 그가 20년 동안 외아저씨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돌아올 때 그는 창세기 32장 10절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20년 전 지팡이만 짚고서 혈연단신으로 형을 피해서 외아저씨께로 피했던 소년이 이젠 잔뼈가 굵어 장년이 되어서 요단을 건너 올 때 한떼 두떼 바다의 모래 같은 짐승들을 거느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칭호를 일러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거부를 만드는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도 부귀를 주시는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도 부를 주는 하나님이 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변역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어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오는 사람에게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야 좋은 신자가 되며 너희가 부를 죄악시하라 이렇게 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냥 나오라고 하셨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
말만 들어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흐뭇하고 마음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 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막이 바람 불고 곡식은 안되고 물은 마르고 가는 사람마다 말라죽는 가나안으로 가자.
그렇게 했더라면 따라나올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 낼 때는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죄악의 애굽 세상에서 예수를 믿어 나올 때 주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의 선민이요 여러분과 나는 영의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은 짐승의 피로써 언약을 맺은 사람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흘린 피로 언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보다 우리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서 여러분과 나에게 그보다 못하게 해 주실 줄 압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왔을 때 주님께서 두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언약을 주셨는데 믿고 순종하면 축복의 언약이 되고 불신앙과 불순종할 때는 저주의 언약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에 보면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순종과 믿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와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창고에서 기르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과 불신앙으로써 반역할 때는 신명기 28장 15절로 19절에 저주의 언약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박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을 때 창대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했을 때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고 저주를 받았던 것처럼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축복과 저주를 함께 두고 계십니다. 주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믿음과 순종으로 나갈 때는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축복이 반드시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축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려서 인간의 존엄성조차 상실하고 남에게 늘 얻어먹겠다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어떻게 축복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약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예수 믿으면 모두다 큰 부자가 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물론 백만 장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만 누구든지 구주를 믿고 죄악의 애굽에서 나온 사람은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한 사람도 가난해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시편 23편 1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했는데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주님을 선한 목자로 모시고 있는 이상 여러분의 생활 속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늘 부족해서 절절매는 생활 이런 생활은 정상적인 예수 믿는 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마태복음 6장 11절처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매일 하루 세끼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 먹고살기 위해서는 옷이 있어야 되고 신발이 있어야 되고 숙식할 집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우리 일을 움직여 나가야할 자본이 있어야 되고 이 모두가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굶주리지 않는 삶, 일용할 양식을 매일 공급받는 삶을 살기 원하셔서 예수님이 이것만은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에 주기도문에서 당당히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필요한 것은 채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영광 가운데 더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만 중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넉넉한 삶을 얻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로 10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넉넉해야 남에게 나누어주는 착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나누어줍니까? 나도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데 누구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어요? 성경에는 "심는 것을 주가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은 모두 거부가 된다는 약속은 없지만 그러나 누구를 불구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 일용할 양식을 얻는 삶, 필요함이 채워지는 삶, 넉넉한 삶을 얻어 가지고서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 그래서 기도를 주고 믿음을 주고, 소망을 주고 사랑을 주고 물질까지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삶에 들어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가난해야 좋은 신자가 된다, 물질은 죄악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준 생각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적이 준 생각인 것 입니다. 성경에 보면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생각 하나 잘못 먹으면 하나님이 축복을 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능히 넘치게 한다고 했는데 우리 생각이 가난해야 잘 믿는 것이다, 물질은 죄악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와 있으면 그만 물질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고 가난에 대해서는 찬미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을 해 주려고 해도 벌써 그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성경 전체를 보아도 어느 성경에서 가난은 미덕이며 물질은 죄악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만들어 놓고 기뻐하시고 물질을 다 빼앗아 버리고 난 다음에 즐거워하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생각이 어디에 서 나왔을까요? 가난이 미덕이며 잘 믿으려면 가난해야 되고 물질은 죄악이란 이런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잘못된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착한 일을 넘치게 할 것이 필요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교회를 지어야 되고 더 많은 성경을 찍어야 하고 더 많은 전도를 해야 되고 다 많은 라디오 TV 방영을 해야 되고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되고 주님 오실 때까지 천하 만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물질적인 자원이 필요합니까?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마귀가 와서 "가난은 미덕이다, 가나해야 잘믿는다, 물질은 죄악이다."그렇게 해서 성도들에게서 물질을 빼앗아 버리고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사업이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이 아니라 이것은 사탄의 일인 것입니다. 마귀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넷째로,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가난을 퇴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착실히 예수 믿는 생활을 하면서 가난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유명한 경제윤리학자요, 독일 부흥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아르 리스트는 말하기를 "정신적인 자원 없이는 물질의 부흥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그 마음에 영적인 정신적인 자원을 얻는 사람은 물질적인 부요가 안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막스 웨버 같은 유명한 경제학자도 구라파나 미국의 물질적인 부흥은 그들 기독교 정신에서 왔다고 말했으며 영국의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요한 웨슬레는 자기의 요한 웨슬레 운동에 참여해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 중에 점점 부자가 많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 너무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신앙을 잃어 버릴까 싶어서 걱정하는 것을 그 수기에 기록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를 가져오는 내적 자원이 예수 믿음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며 절약하고 저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술 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도박하고 세속적으로 살고 게으르게 살던 것 다 청산하고 난 다음에 주님 안에서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절약하고 저축하는 데 그런 사람이 잘 사는 것 보았습니까? 나는 25년 동안 목회 하면서 예수를 믿고 이렇게 근검 절약하면서 성실하게 인생을 살면서 가난해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부에 이르는 내적인 심령의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 잘 살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과 나의 환경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도 들 집이 있고 여우도 들어갈 굴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고 해서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는데 예수 믿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야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진정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적빈하고 뼈에 사무친 가난을 산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난, 여러분의 그 적빈한 가난을 청산해 버리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님이 가난했으니 우리도 가난하자는 것은 예수님의 고생을 무로 돌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을 파괴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졌으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축복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 세계에 나타내도록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같이 하나님의 복 받은 아들이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당신 자기의 저주 아닙니다. 신명기 28장의 저주 보셨지요.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받아 개인이 실패하고 가정이 실패하고 사업이 실패하고 생활에 실패하는 저주, 이 저주는 여러분 예수께서 저주를 받은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했습니다. 값 주고 사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했는데 아브라함의 복은 무엇입니까? 우양과 은금이 풍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면 영원히 구원받아 죄사함을 받고 천당 가는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현실적인 삶 속에서 가난과 저주가 속량되고 청산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예수 믿으면 가난해진다, 가난해야 좋은 신자가 된다, 물질은 죄악시하라, 물질은 던져버려라, 그러나 물질은 자체가 나쁘지 않습니다. 물질은 사용하는 사람이 나쁘면 그 물질
이 나쁘게 사용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물질이 좋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명하게 가난과 저주를 그 몸에 걸머지고 속량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예수를 위해서라도 여러분의 몸에서 가난과 저주를 벗어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에 꺼져도 하나님 말씀은 절대적으로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 흘려서 청산하고 성경에 그렇게 선언해 놓은 것을 누가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우리가 대속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이것이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몸이 깨어지고 날 위하여 피 흘리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증거요 그것은 바로 거기에서 우리의 가난을 제하고 우리의 저주를 속량해버렸다는 확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예수를 정말 잘 믿고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하면 가난해질 권리가 없고 저주 아래서 실패할 권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의무적으로라도 가난을 벗어나고 저주를 벗어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착실한 신앙 생활은 가난을 퇴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십일조의 언약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로 1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라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는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놓고 말씀하시기를 "나를 시험하라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를 시험해 보라 내가 너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어서 곡식을 심으면 황충을 금하게 하고 포도원을 만들면 기한 내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병들지 않게 한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애를 써도 우리 손으로 하는 것이 자꾸 가시 채에 말려 들어가고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키면 안됩니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해 주시면 우리가 손대는 것마다 자꾸 부흥하고 발전하여 열방이 우리를 복되다고 말씀하셨으니 십일조의 언약이 있는 이상 예수 믿는 사람이 가난해질 염려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난이 미덕이라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물질이 죄악이라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우리 모든 것을 하나님 발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은 주인이요 나는 그 관리자로서 겸허하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물질을 탐욕으로 추구하고 물질이 우상이되면 이것이 여러분에게 올무가 되어서 오히려 물질이 영혼을 잃어버리게 하는 저주가 될 수 있지만 그렇기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내가 관리자로서 겸허한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시간 내어 몸 드려 물질드려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주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여러분과 나에게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부요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은 창대케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한떼 두떼 모래사장같이 많은 짐승을 주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신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두 손을 활짝 내밀고 여러분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살동안 잘못 생각한 것, 예수 믿고 들어와서도 잘못믿은 것 다 청산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나는 가난과 저주를 벗어서 내어 던지고 부족함이 없는 삶, 필요를 채워 주는 삶, 그리고 넉넉한 삶을 하나님께 받아서 주는 자가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 주면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시고 영화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가난을 숙명으로 목에 걸머진 사람들, 또 잘못 알아서 헐벗고 굶주려야 좋은 신자가 되고 물질은 죄악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오늘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을 좇아 잘못된 생각을 다 찢어 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과 생각과 믿음이 새로워져서 참 믿음으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믿는 사람이 특별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유 없이 가난하고 헐벗어 가난과 저주에 몸부림치는 사람 없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부당한 일이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다 잘못 믿은 것 회개하고 불순종한 것 회개하고 그 다음 이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부요와 풍성한 꿈을 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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