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그로써 늙어 죽을 때 까지 수많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일생동안 은혜를 한번도 입어본적이 없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와같은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짓밟아 버리는 나쁜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은혜를 구할자격도 없고 은혜를 입을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의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형제의 은혜를 입고 스승으 은혜를 입고 이웃과 국가의 은혜를 한없이 입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비열한 인간은 남에게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그 은혜가 마음속에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신세를 졌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이것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은혜 받은 것을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악하고 저질적이고 비열한 인생들입니다만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러한 일들 이것은 정말 비극적인 것입니다. 또 일반 대중들은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입을 닦아 버립니다. 내가 언제 은혜 받았나요? 아주 무관심하게 지나갑니다. 은혜 베푼 사람은 잊지 않고 있는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받은것에 대한 조그만한 감사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은혜 베푼 사람들이 .....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더 삭막해지고 살기 어려운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은 것을 결코 잊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받은 은혜에 대해서 늘 감사하고 보답할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들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람은 훌륭하고 인격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사람은 계속하여 은혜를 더 받고 더 축복을 누릴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시간에 우리는 과연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진실로 우리는 감사하며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려고 하는 그런 심정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은혜받고 축복받을수 있는 그런 인격자가 되어 있느냐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것입니다.
첫째로 우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면서 과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루일을 하다가 갑자기 중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태앙을 감사하고 달을 감사하고 별을 감사하고 공기와 물과 땅과 우리 자연환경을 감사해 본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의 환경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를 우리 마음속에 주심으로 말미아아 셍의 경이로움과 환경의 신비를 맞볼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무디고 탁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도 그 생의 경이와 신비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죄를 짓고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한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한 감방에 두사람이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 끊임없이 전도하는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사람은 그 설교말씀을 듣고 마음이 깨어져서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자 그 마음이 거듭나고 그가 그냥 그 마음에 감사가 솟구쳐 올랐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그 마룻바닥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감옥에 들어온 것 감사합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세상 따라 살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 자랑을 따라 살았는데 감옥에 들어와서 비로서 깨닫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보니 이렇게 기쁠수가 없습니다. 이제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되었으니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감사를 합니다. 그 감옥에 들어온것을 감사하고 그 박한 음식이 들어와도 그것을 감사로 눈물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는 창살가로 햇빛이 비춰오면 햐 하나님 햇빛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푸른 하늘에 구름 떠나가는 것이 창살 틈으로 보이면 구름을 보고 감사를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 사람 예수 믿고 난다음 감옥에서 하도 감사를 하니깐 감방이 자기에게는 천당으로 변화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공책을 넣어달라고 그랬습니다. 그 마음에 감격이 생기는대로 시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일 매일 날이 갈수록 그 시집은 두터워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감방에 있는 한사람은 결코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는 매일같이 원망과 불평으로 삽니다. 자기를 감옥에 넣어준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내가 가서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딱딱한 감방을 두들기면서 저주를 하고 박한 음식이 들어온다고 그릇을 내어던지고 그리고 햇빛을 보면 하나님을 욕을하고 구름을 떠가는 것 보고도 하나님을 욕을하고 운명을 비관했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서 항상 감사하는 이사람은 깊은 은혜속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그 눈을 열어 주심으로 삶의 경이로움과 환경의 신비를 께달아 알게되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충만한데 이 다른 사람은 점점 정신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이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고 나중에는 정신 이상증이 나타났었습니다. 둘이 다 형기를 마치고 나올 때 한사람은 기쁨과 영광에 충만해서 자기가 가득히 안고있는 이 원고지를 가지고서 시를 출판하러 출판사로 뛰어가는데 다른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그길로 정신병원으로 입원하기 위해서 엠블란스를 타고 갔다는 것입니다. 두사람이 똑같이 감옥에 살았지만은 그 운명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그 심령이 달라집니다. 그 운명도 달라져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일을 감사하게 볼 때에 하나님이 주신 만물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도 좋은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것도 감사하게 되면 그것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변화돼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아주 우스운 실화를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어느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은 원고를 적어서 하나 하나 읽지 않고는 설교를 못해요. 그렇습니다 까지 다 적어야 돼요. 그래서 목사님이 원고를 적어서 주일날 교인들의 앞에서 원고를 읽는데 가장 목사님에게 걸리는 집사님 한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감사집삽니다. 아 이집사님이 목사님이 원고를 읽는데 정말 은혜만 받으면 온 교회가 떠나가도록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고함을 치니깐 그 소리에 놀란 목사님이 그만 원고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앞을 읽었는지 뒤를 읽었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더듬거리고 진땀을 흘리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감사집사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 있는 도지사와 경찰서장이 주일예배에 참석한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도지사와 경찰서장에게 멋진 설교를 해서 칭찬도 받고 또 감화도 시켜야겠는데 이 감사집사가 오면 또 큰일나겠다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집사를 목사님이 목사님 사무실로 불렀었습니다. 교회 옆에 있는 사무실로 불러서 집사님 오늘은 교회당에 오시지 마시고 내사무실 좀 지키십시오. 목사님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데 왜 지킵니까? 아냐 오늘은 내 사무실을 지키되 여기서도 기도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면 또 감사하고 할렐루야를 할테니까 제일 재미없는 책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것이 지리책 이었습니다. 지리책은 산의 높이가 몇미터고 바다의 깊이가 얼마고 땅의 넒이가 얼마고 그런겁니다. 그걸 읽으면 절대로 감사하고 할렐루야를 안할것이기 때문에 지리책을 주면서 성경도 읽지말고 찬송가도 읽지말고 내 설교 끝마칠때까지 요 지리책만 일고 계십시오. 목사님 왜요? 아 그럴일이 있으니까 요 지리책만 읽고 있으라구요. 그러고 목사님이 나오면서 자기가 아무리 감사집사라도 지리책 읽고 감사해 안하겠지. 그런데 참 도지사가 오시고 경찰서장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가 준비한 원고지를 차근차근 읽어나갑니다. 원고지가 한 3분지쯤 읽어 나가는데 온 사람들이 고개를 다 돌려서 목사님 사무실을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사무실에서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고함소리가 요란스럽습니다. 그러니 모두다 놀라서 그리 쳐다보는 바람에 그만 목사님이 원고줄을 잃어 버리셨습니다. 막 진땀을 흘리고 헛소리를 하고 그날 예배를 완전히 망쳤습니다. 그래서 겨우 예배를 필하고 난다음 목사님이 성이 가득 나서 사무실로 가서 집사님 도대체 지리책을 일고 무슨 할렐루야! 감사합니다가 나옵니까? 도대체 왜이러십니까? 하니깐 목사님 여기한번 와보십시오. 이 지리책 이거한번 보십시오. 필리핀 해변에 바다깊이가 만미터라 그럽니다. 성경에 내 죄를 영원히 바다속에 던졌다 그랬는데 만미터 바다밑에 가라앉았으니 내죄가 다시 떠오르지 못할 것 아닙니까!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너무 감사해서 아예 그냥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감사를 하기로 작정을 하면 그 무엇을 보아도 마음속에 감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에 유명한 성경주석가였던 마티유 헨리 목사님은 저녁예배 설교를 하고 집에 들어가다가 집근처의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서 늘씬 얹어 맞았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졸도를 했습니다. 얼마동안 오래 길거리에 누워 있었는지 모릅니다. 찬 이슬에 몸에 쌓이기 때문에 찬이슬기운에 정신을 차려습니다. 온 몸에 한기가 돌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겨우 몸을 가늠해서 집으로 돌아가니 집은 식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저녁예배를 마친 목사님이 안오시기 때문에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는데 보니 뭐 얹어 맞아서 피를 낭자히 흘리면서 몸에 옷이 다 찢어져서 들어옵니다. 가족들이 와서 놀래 가지고서 얼싸안고 이 울고 하는데 목사님이 그를 다 물리치고 꿇어앉아서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많이 얹어맞았느나 목숨은 건졌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할 것은 나도 예수를 안 믿고 세상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 강도같이 되었을것인데 나는 강도가 안되고 예수 믿는 목사가 되고 선량한 시민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여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강도를 만나서 눈에 보이는 돈은 다 잃었지만은 강도가 아무리 빼앗을래도 빼앗을수 없는 내 속에 예수님과 영생이 있으니 주여 감사힙니다. 그래서 강도를 만나 얹어맞고 상처를 입었지만은 마티유 헨리 목사님은 오직 감사할 것 밖에 없어서 오직 그 제목으로 그다음주일날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감사로 제사로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일에만 감사하는 거야 누가 감사를 못하겠어요. 구러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좋지 않을때도 감사하란 것입니다. 비오는날도 감사하고 햇빛나는 날도 감사하고 바람부는 날도 감사하고 조용할때도 감사하고 사업이 잘될때도 감사하고 안될때도 감사하고 건강할때도 감사하고 병들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받을때도 감사하고 미워할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기 때문에 감사라는 그 열쇠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지만은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 많은 기도가 원망과 탄식이 밑에 깔려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감사가 우리 마음속에 향기롭게 가득히 채워져 있었더라면 우리의 기도가 수없이 응답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끌어댕길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자연환경을 보고 끊임없이 매일매일 생활속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태양을 보고 감사하고 달을 보고 감사하고 별을보고 감사하고 비를보고 감사하고 우리의 모든 환경을 보고 감사할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그곳에 하나님이 더 축복해주시고 우리 영안을 열어주어서 그곳에 하나님이 주신 그 신비함을 깨닫고 더 풍성한 삶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하나 감사하지 아니하고 막연하게 무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되지 말아야 될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된느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이 사납고 거칠 지라도 그 사납고 거친 운명을 가지고 감사를 드리면 그 운명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좋게 변화시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 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십자가 앞에 나와서 무조건 하고 예수를 믿습니다면 하지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고 그를 감사할 때 그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우리속에 계시되고 허락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사함의 은혜를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주님이여 날 위해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창을 받아 물과 피를 다 쏟고 고생당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내죄를 속해준 주님을 감사합니다. 죄속한 주님을 향해서 우리가 계속 감사하면 그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용서와 의가 샘물처럼 솟아 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용서가 넘쳐나고 의로움이 여러분속에 폭포와같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을 때 이와같은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화목케된 은혜를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원수가 돼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 대신 고난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손과 우리 손을 부여잡고 우리를 화목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이지만은 예수님 이름을 의지하고 부끄럼없이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에 나가서 아바 아버지라고 하나님 발을 잡고 부를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바라보고 화목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여러분과 내마음속에 성령이 비와같이 쏟아질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기 원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화목케 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끊임없이 감사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바라보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감사해야 됩니다. 그등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선지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여 날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에 상처를 입고 찢어져서 달리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나의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를 끊임없이 묵상하고 감사하면 거기에서 치료와 건강이 폭포와 같이 쏟아지게 될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치료의 주님을 향해서 많이 감사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체험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힘없이 십자가에 늘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나의 저주를 짊어진 것을 감사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십자가에 힘없이 매달린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여 나의 저주를 짊어지셨으니 감사합니다.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시켜 주셔서 내가 하는 것 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지 않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님이여 감사합니다. 우리가 넘치도록 감사했더라면 그 십자가에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폭포와같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감사해야 됩니다. 날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날 위하여 장사된바 되시고 날 위하여 부활했기 때문에 날 위하여 고난 당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끝없이 감사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진실로 영생을 체험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능력이 가슴속에서 넘쳐나오는 것을 체험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고난도 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종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무한한 마음의 감동과 감격으로 그 십자가 앞에 엎드려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조목조목 감사하고 창양을 드릴 때 그안에 포함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속에 폭포와 같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로서 우리는 참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참으로 믿음이 생깁니다. 원망과 불펼할때는 의심이 꽉 들어차지만은 감사와 찬양을 할 때는 우리 마음속에 넘치는 믿음이 생겨나고 또 그 믿음과 함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길수 있는 힘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감사 찬양하지 아니할때는 진정한 믿음도 생겨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내어 밑길수 있는 힘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여러분 십자가의 오중복음을 믿을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다 맡길수 있는 힘조차 주어지게 죄므로 위대한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여러분 생활속에 체험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우리가 이와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우리가 감사했으면 이제는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될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 받은대로 열매를 맺어야 될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와같은 크나큰 은혜를 입었었으니 우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될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면은 하나님께서는 있는 자에게는 더준다고 하셨으므로 더욱더욱 감사할수 있도록 축복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은혜를 보답하는 삶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섬기면서 삽니다. 자기의 정욕을 섬기고 자기의 욕심을 섬기고 자기의 쾌락을 섬깁니다. 모든 새상사람들은 자기가 우상이 되고 신이 되어서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나왔었으면 자기를 깨뜨리고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서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겁게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또한 때를 내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끊임없이 우리가 매사에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길수가 있느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말씀을 등한히 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것을 등한히 한다면은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중심에서 정말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느냐 섬기지 않느냐를 알려면은 내가 얼마나 말씀을 중요히 여기고 기도를 중요히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내 생활속에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는가 이거을 살펴보게 될 때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수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여러분 힘껏 물질을 드리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과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고 그리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탐욕이 꽉 들어찬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물질은 일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을 줄 때 자기의 일부분을 떼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사랑하지 않고는 물질 주지 않습니다. 물질은 사람과 생명이 일치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 물질 있는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었으니 물질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일치가 돼있다는 것을 보여줄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다 주고도 정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증명하기 위해서 선악과를 두시고 그 선악과는 하나님의 것이니 손대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풍성히 주시되 이 물질 가운데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시험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십분지 구만 주고 십분지 일은 하나님 스스로 미리 떼어 버릴수도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 사랑의 실제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수입중에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십분지일을 내가 떼어서 바친다면은 내 마음과 몸을 떼어서 바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다. 그 거짓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세례 받고 난 다음에 십일조 바치라고 있었습니까? 십일조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담대하게 떼어서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내 자신의 마음을 베어서 드리고 내 몸을 베어서 드리는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고 십일조를 드릴 때 마음에 아까운 생각이 아련히 나지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과 몸을 베어서 드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과 나는 일체이기 때문에 물질을 드리는 것은 나를 드리는것입니다. 물질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자면은 우리의 생활에 착실하게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더 보태어서 내가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여러 가지 헌물을 하는 것은 좋은일이지요. 그러나 다른 것을 하지 못할지라도 십일조만은 하나님 앞에서 도둑질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역하는 삶을 사는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때문에 그때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는 것이 모두다 가증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보고 하나님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가 어찌 나에게 법죄하고도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느냐? 너희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한 것이 나에게 범죄한 것으로서 너희 온 나라와 저주를 받았다고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쌓지않고 하나님앞에 예배드리고 찬미드리는 것은 거짓되고 가증된 위선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남편이 아내를 보고 당신 사랑합니다. 당신 사랑합니다. 내가 목숨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아내가 먹을 양식을 주지않고 옷을 주지않고 쓸돈도 주지않고 자기 혼자 주지육림속에 살면서 말만 그렇게 한다면 그 말은 가증스러운 것이고 추악한 것이고 위선으로 꽉 들어찬 것입니다. 차라리 그 말 안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십일조를 도둑질하면 그 말 자체가 오히려 더 가증스럽고 더러운 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말 안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낳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뼈속까지 깨달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열매맺는 삶이란 전도와 구제의 삶인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불쌍한 사람 있으면 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것이고 하나님앞에 은혜에 보답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의와 거룩한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의로운 삶을 살고 죄악과 떨어진 거룩한 삶을 살아서 그리스도 영광을 드러내는 이와같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비로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삶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고 살면 마음이 기뻐지고 행복해 집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씻어지며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길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믿을수 있게 되고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게되며 하나님께 순종할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딘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지 않고 살았었습니다. 사람들의 은혜도 우리가 무시하고 살았거니와 더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자연환경에서 주신 은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 몸찢고 피흘려 주신 은혜도 무관심하게 받아들였었습니다. 감사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죄를 오늘 회개하고 자복합니다. 우리 다 감사할줄 모르는 무딘 마음을 주님께서 깨뜨려 주시옵시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감사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를 통해서 열매맺지 않는 내 아버지 하나님 잡초가 무성한 가시넝쿨같은 마음이 되었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만들어 주옵소서. 야훼 하나님이여 진실로 우리의 모든 생활환경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스물네시간 우리가 깨어있을 때 호흡있을 때 늘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