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육을 섬기는 것처럼 오늘날 신약의 우리 성도들은 영의 선민이요, 영의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나 젖고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은 오늘날 영의 선민인 영의 이스라엘이 죄악의 세상을 떠나 속세의 광야를 지나 천당을 지향하는 그 모습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사건들은 우리들에게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좋은 모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수를 건너 수르 광야를 걸어가서 사흘 길을 걸어가되 마실 물이 없는지라 그들이 모두 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통곡하고 탄식할 때 연못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물이 써서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한즉 연못가에 한 나무를 지시한지라 그 나무를 꺾어서 그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져서 모두 다 물을 마시고 목마름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심오한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쓴 마라의 물을 달게 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쓴 물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부패한 성품을 상징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어도 우리 마음속에 역시 부패한 성품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패한 성품을 달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나뭇가지는 예수 그리스도 갈보리 십자가 나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갈보리 십자가를 우리의 부패한 마음속에 던져놓으면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이 일어나서 우리의 쓴물이 달아져 버리고 말고 우리는 참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쓴 마라의 물을 나뭇가지를 던져 달게 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부패한 쓴물들을 달게 만들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에 쓴물을 그대로 가지고 쓴물을 마시고 살면 우리의 모든 언어심사에 쓴물이 넘쳐 나옵니다. 내가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어떠한 쓴물들을 달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속에는 불의의 쓴물들이 있습니다. 정의를 짓밟고 불의하게 사는 쓴물이 있습니다. 이 쓴물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속이고 진실을 따라 살지 않는 그런 쓴물이 있습니다. 불성실의 쓴물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속에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그런 행동이 있습니다. 더러운 쓴물이 있어서 음란하고 방탕하고 더러움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미움의 쓴물이 있어 이것을 마시고 우리는 물고 찢고 싸우고 서로 할큅니다. 교만과 포악의 쓴물이 있는가 하면 탐욕의 쓴물이 있어 탐심으로 말미암아 우상을 섬기다가 스스로 파멸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쓴물을 우리의 인간의 수양과 도덕으로 달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더욱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쓴물을 무엇으로 우리가 달게 만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쓴물을 어떻게 달게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를 우리 쓴물이 있는 가슴속에 받아들일 때 역사하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쓴물이 달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의의 쓴물은 정의의 단물로 변화됩니다. 거짓의 쓴물은 진실의 단물로 변화됩니다. 불성실의 쓴물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단물로 변화되고 더러움의 쓴물은 거룩함의 단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미움의 쓴물은 용서와 사랑의 단물로 변화되고 교만과 포악의 쓴물은 온유와 겸손의 단물로 변화됩니다. 탐욕의 쓴물은 믿음과 분수를 아는 단물로 변화되어 놀라운 변화가 우리의 인격 속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마음속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가오는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종교적으로 믿고 교회 왔다갔다하면서도 그들의 삶 속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은 십자가를 그의 생의 속에 깊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깊이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우리의 쓴물을 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한 젊은 성공한 사업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내게 와서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학생시절에 친구들의 꾀임에 빠져 그는 마약에 손을 대었습니다. 입으로 먹다가 나중에는 혈관주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는 마약을 맞기 위해서 마약 장사를 했습니다. 마약 밀 매업을 하고 그것도 만족하지 못해서 물건을 훔쳤습니다. 사람에게 협박 공갈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마약 사업에 돈을 다 날렸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외로운 고통 속에서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떨며 인생을 난파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꿈도 잃어버리고 환상도 잃어버렸습니다. 인생 종말에 될 대로 되라는 그런 상황 속에 있을 때 하루는 마약을 팔러 길거리에 나갔다가 복음 전도자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자기와 같은 젊은 또래의 청년이 나가서 설교하는 말을 듣고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쓰디쓴 절망의 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 십자가를 던졌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교회에 가고 싶었습니다. 말씀이 듣고 싶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한 결과로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그의 마약의 습관은 떨어졌습니다. 그의 마음의 쓴물은 달아 졌습니다. 미움과 불안과 절망은 없어졌습니다. 그의 마음이 달아졌습니다. 언어심사 행동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훌륭한 중직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름다운 자녀를 가지고 사업에 성공해서 오늘날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삽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의 생애가 가장 슬프고 캄캄한 절망에 처했을 때 예수의 십자가를 그의 가슴속에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그는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의 나무를 던져 넣으면 여러분의 심령이 변화 받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기적으로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 단 인격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언어심사 행동에 단물이 넘쳐 나와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길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쓴 연못물이 달아지고 난 다음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주시고 시험하여 가라사대 "하나님 여호와의 말에 청종하고 하나님 야웨 보시기에 의를 청하며 하나님 야웨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야웨의 모든 계명을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쓴물이 달아지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병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곧장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열두 제자에게도 칠십 인의 제자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최후에 승천하실 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교회에게 말씀하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역사에는 질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질병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 천국이 들어올 때 우리의 모든 질병을 우리의 심신에서 퇴치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에게 그렇게 질병이 많고 왜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속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받지만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그대로 구원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값을 지불하지 아니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의 구원의 대가를 다 지불하였으므로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이러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성품에 가까워질수록 주님과 더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이 더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고 말씀하기를 내 마음에 합당한 자라. 내가 그를 통해서 나의 뜻을 이루리라 하신 것처럼 오늘 여러분께서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이후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이 속에 와 계시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려면 다 지킬 수 있습니다. 왜 계명을 지키고 사는 것이 마음에 즐거움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계명은 간단합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섬기기를 즐거워하지 다른 신을 섬기기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것 지키지 못할 사람 없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예수 믿는 사람이 우상에 절하는 사람 있습니까. 우상을 멀리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는 것이 우리는 즐겁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경외하는 하나님 이름을 욕하고 하나님 이름에 모욕된 삶을 살 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는 경외하고 공경하고 아름답게 하려고 우리는 노력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했는데 예수 믿고 성령충만한 사람은 주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주일에 우리가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합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즐겁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 오는 것이 즐거운데 그것을 안 지킬 리가 있겠습니까. 요사이 우리 새벽기도에 참 많이 나옵니다. 본 교회만 해도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새벽 5시에 나와서 30분 동안 찬송하고 30분 동안 말씀 공부하고 30분 동안 우리 기도하는데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새벽에 일찍 나오니까 잠은 모자라서 저도 늘 걸어다니면서 졸고 심방하면서 졸고 의자에 앉으면서 졸아도 그래도 마음이 편하고 기쁩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것을 하는 것이지 싫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새벽에 나오는 것이 즐겁습니다. 왜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즐겁게 해 주시므로 사람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피곤해서 싫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일부러 고의적으로 부모를 대적하는 사람 없습니다.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당연한 것이고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안 믿는 사람도 살인하지 않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 살인을 하겠습니까.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기를 원하는데 이것을 못 지킬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간음하면 나쁜 것인 줄 아는데 예수 믿는 사람, 세상에서 이미 씻음을 받고 나온 사람이 음란하고 방탕하고 간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살게 해주기 때문에 이것도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남의 것을 도둑질하겠습니까. 안 믿어도 남의 것 도둑질하면 양심이 아픈데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도우심이 있는데 어떻게 도둑질하겠습니까. 도둑질 안 하는 것이 즐겁고 도둑질하는 것이 고통스러운데 도둑질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지키는 것이 힘이 들지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두세 사람이 모이면 꼭 남의 이야기 해야하고 남의 흉을 봐야하고 남을 손가락질해야 재미가 있거든. 나는 모여서 말하는데 재미가 없어. 그러니까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이면 자꾸 흉보고 남 할퀴고 남 못난 이야기하고 재미가 고소한데 그러나 그 말을 마치고 일어서면 섭섭하기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입술이 씁쓸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웃을 거짓증거 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탐을 하고 욕을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예수 믿고 천국을 마음속에 소유하고 있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비록 세상에서 남보다 더 잘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물댄 동산 같고 소망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탐욕을 저버리고 탐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도우심이 계시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고 사는 것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사 우리에게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우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모두다 모여서 기도할 때 치료하는 마당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평생 사는 동안 병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택한 백성들을 이끌어서 그 사막 가운데서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엘림에 가보니 그곳에서는 물샘 열 둘이 백옥 같은 물을 토해 내고 있습니다. 종려 칠십 가지 나무가 바람에 날리며 서 있습니다. 그 밑에 천막을 치니 천당에 온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가 막힌 일인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 열두물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천국 새 예루살렘의 열두 진주 문 등 위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이 택한 선민의 수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칠십 수는 이스라엘의 칠십인 장로와 예수님의 칠십 인의 제자들을 의미한 것으로 하나님 백성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림의 오아시스는 물샘 열두 즉 물샘은 말씀과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샘 열둘은 말씀과 성령의 물샘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축복 받은 백성들이 들어가는 곳이요, 종려는 승리를 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승리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꺾어 흔들며 호산나 다윗에 자손이여 하고 환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려 칠십 주가 있다는 것은 우리 선민들의 승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승리했고 더러움에 대해서 승리했고 마귀와 질병에 대해서 승리했고 저주에 대해서 승리했고 사망과 음부에 대한 승리한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영적 선민인 우리가 사막 같은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때 그들 마음 속에 이 엘림의 오아시스를 가지고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택한 백성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열두 샘물처럼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요. 그 다음 칠십 인의 종려나무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는 모두 다승리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승리를, 더러움에 대한 승리를, 마귀와 질병에 대한 승리를, 저주와 가난에 대한 승리를, 음부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승리를 가지고 사는 특권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사막에서 몸부림치고 사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 마음속에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를 가진 엘림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그리스도를 믿고 나가면서도 이 광야에서 목마름과 패배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마음속에 물댄 동산 같고 승리의 종려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가서 십자가를 끌어안고 우리의 마음에 쓴물이 달아지고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서 영육 간에 치료를 받으면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은 반드시 엘림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엘림을 가지고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림을 마음속에 품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고 그리고 승리의 종려나무가 바람에 날리고 승리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남에게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온 천하에 꾸어주고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삶 속에 이 세 가지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모여서 성찬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시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광야를 지나가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여러분에게 하사하시는 위대한 축복입니다. 이 깨어진 몸을 먹고 피를 마실 때 이를 통하여 십자가의 은총이 우리의 마음속에 충만하고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쓴물을 달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쓴물이 다 달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찬을 하면서 이제는 제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께 채찍 맞고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귀로 듣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면서 살아서 우리 아버지의 치료의 역사가 내게 늘 나타나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인도하사 엘림 속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서 종려나무가 바람에 휘날린 것처럼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축복의 종려나무가 바람에 휘날려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성찬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십자가 밑에 초청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아닙니다. 영적인 선민이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오늘 광야를 지나가는 마당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한 그것을 우리가 모두다 영적으로 체험하고 변화를 받아 승리로운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영적인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버지여, 이 세속의 광야를 지나갈 때 모두 다 십자가를 통해 그 마음에 쓴물이 사라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았은즉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규례를 지키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원하오니 이 백성들을 다 인도하사 엘림에 들어가 장막을 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막에 장막을 치고 살지말고 아버지 엘림에 장막을 치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성도들의 가슴 가슴 속에 엘림이 꽉 들어차게 도와 주시옵소서. 열두 샘물이 넘쳐나고 칠십 주의 종려가지가 바람에 나부끼게 도와 주시옵소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종려나무가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