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

인간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믿음

by 삶의언어 posted Apr 17, 2024 Views 3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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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1-12-13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o6dyRBhZqis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인간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믿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의 문제만큼 강단에서 많이 설교되고 또 논쟁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라도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딱 부여잡고 진실로 당신은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당황하지 아니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와서 믿음에 관해서 실망에 꽉들어찬 이런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님 나는 진짜로 믿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었다구요.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에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등을 돌리셨을까요? 실망해 꽉 들어찬 얼굴로 이런 질문들을 하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이와 같은 질문을 해보지 않은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시험해본 결과에 마음에 실망을 체험하고 낙심하지 아니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인간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믿음에 관한 분별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밝히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전제조건으로 하는데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생각과 방법으로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다면 믿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죄악의 문제 우리의 삶의 허무와 무의미의 문제 우리의 죽음의 문제 이와 같은 문제들을 인간의 지식으로 인간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의 의미의 문제 죽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기적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적인 일반생활 속에서도 여러분 우리의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인간의 힘과 지혜를 초월해서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기도응답을 통해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을 때 이것이 믿음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간섭하셔서 기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필요도 없고 믿을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또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뜻에 그 기초를 두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뜻대로 믿는다고 해서 다 이루어진다고 보증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거슬리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행동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서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을 받겠다고 한다는 것은 이건 미신이지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활용할려면은 우리의 마음속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전제조건으로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할 때 믿음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그 믿음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속에 작용하는가?
믿음의 정의를 알아보아야 되겠습 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 가운데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그 의미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바라는 그것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두고서 우리의 마음속에 바라는 열화 같은 소원이 일어나서 그래서 열렬히 이것을 믿고 기도할 때 마음속에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실상이란 것은 헬라원어로 보면 쿠포스타시스라고 말하는데 쿠포스타시스라는 것은 쿠포라는 말과 히스템이란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쿠포라는말은 밑에서 있는 것을 말하고 히스템이란말은 받친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그 실상은 믿음은 그 바라는 것의 받침대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인간적인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즉 하나님의 말씀이 놓여진 인간 편에서 받침대를 만드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와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겨서 주님 앞에 믿고 기도할 때 이것은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받침대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 이것이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인간 편에서 믿는 것은 예비 믿음인 것입니다. 이 예비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여서 그래서 이제는 참 믿음이 되고 그 참 믿음이 들어오게 될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바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계시되 오던지 그렇지 않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응답했다는 말씀이 임하시던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해와야 우리 예비 믿음이 참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은 우리 간절히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받침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아무리 강단의 받침대를 내어놓아도 여기에 성경을 얹어놓아야 진실로 참된 강단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얹어놓지 않은 강단은 교회에서 강단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 이 강단이 없으면 성경을 얹어 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이 강단의 받침대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의 실상 즉 받침대가 되어서 있고 이 받침대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응답했노라 하고서 약속의 말씀을 얹어줄 때 이것이 예비믿음에서 참 믿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서 주여 내가 믿습니다로 발버둥을 치고 부르짖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올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준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믿은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 그 자체가 응답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응답을 해줄 수 있는 받침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받침대를 가지고서 주님께 철야하고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대 언제까지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고집을 부르고 기도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내 마음속에 그저 내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대로 된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믿었으니 잠이나 자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믿은 것은 예비 믿음입니다. 이건 받침대의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임할 수 있는 받침대를 제공한 것입니다. 받침대를 제공해놓고 난 다음에 우리 하나님을 바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임할 때 참 믿음으로 변화되고 이것이 기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이 믿음의 실례를 들어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15장 21절로 28절에 수로보니게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사는 헬라인의 속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마음속에 크나큰 번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정신병에 걸려서 인사불성입니다. 이 딸을 고칠려고 수없이 애를 써봤자 인간의 힘으로는 이 딸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께서는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어떤 귀신도 내어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익히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마음속에 예비적 믿음을 가진 여자였었습니다. 즉 실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의 기적을 믿었으며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고쳐주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예수님의 뜻을 알고 계셨으며 그는 그 딸을 고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열화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간절히 구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그 마음속의 받침대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마음에 인간적인 편에서의 믿음의 받침대에 예비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지나간다는 말을 듣자말자 그는 뛰어나와서 주님께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비참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예수님께서 들은 체 만체 했습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뒤에 따라간 제자들을 붙잡고서 예수님께 부탁해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내 딸을 고쳐 주시옵소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와서 저 여인이 심히 부르짖사오니 주님께서 응답해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 이외에는 보냄을 받지 아니했다. 저 이방 여자에게는 나와 상관이 없다. 단호하게 주님께서 부인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마음속에 인간 편에서 예비적인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또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을 고치시고 자기 딸이 귀신들린 것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인간 편에서의 예비적인 믿음 실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물러가지 않고서 예수님 발앞에 뛰어와서 엎드려서 그 가는 길을 막고서 간청을 했습니다. 주님 내 딸이 귀신들려 죽게되었으니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예수님께서 여인을 내다보시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줄 떡을 취해서 개에게는 줄 수 없다. 그럴 때 여인이 눈물에 젖은 얼굴을 가지고 예수님을 쳐다보고 하는 말이 주여 옳소이다. 물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줄 수 없지요. 유대인은 주님의 선민의 자녀요 우리 이방인은 개요. 그러므로 선민에게 줄 떡을 취해서 이방 개에게는 못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녀들의 상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받아먹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떡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부스러기 하나만이라도 주시면 내 딸이 낳겠나이다. 그는 인간 편에서 *** 놀라운 실상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간편의 받침대의 믿음을 가지고서 첫 번 거부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두 번 거부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세 번째는 개라는 이름까지 들으면서도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님께 내어 부르짖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믿음을 보자 마음에 크게 감동을 해서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은 대로될지어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 여인의 예비적 믿음 위에 척 얹혀지자 말자 그 예비적 믿음은 본 믿음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실상의 믿음은 이제는 본격적인 믿음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이제 받아듣고서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집으로 가보니 그 딸에서 귀신이 나가고 딸은 침상에 드러누워서 건강한 사람이 되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십시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처음부터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열렬하게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기적을 믿었었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한사람도 병들어 있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란 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딸이 병낳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서 열렬히 믿고 구했었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에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었다고 해서 그 딸의 병이 낳았나요? 천만 에요. 열렬히 믿기는 믿었으나 그 딸의 병은 낳지 않았었습니다. 언제 그 딸의 병이 낳았느냐? 그의 믿음 위에 예수님의 말씀이 주어 졌었을 때 그 딸의 병이 낳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인간적인 편에서 주님 앞에 열렬히 믿는 것은 에비 적인 믿음이요 받침대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비적인 믿음도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아예 아무 것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강단이란 받침대가 없으면 아예 성경도 얹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편에서 믿는 그 예비적인 믿음 그 받침대의 믿음 그 자체가 응답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믿었는데 왜 주님께서 역사해 주지 않습니까? 그렇게 탄식을 합니다. 여러분이 믿은 것은 주님의 응답이 올 수 있는 예비적인 믿음이요 받침대의 믿음이기 때문에 이 받침대의 믿음을 가지고는 끝까지 주님께 매달리고 끝가지 참고 기다리며 끝까지 주님에게 외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기도로서 안되면 철야기도하고 그렇해도 안되면 금식하면서 하루를 기다리다 안되면 열흘을 기다리고 열흘을 기다리다가 안되면 백날을 기다리고 예비적인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불퇴전의 기도를 드리면서 물러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 때가 이르매 그 인간의 예비적인 믿음 받침대의 믿음 위에 주의 말씀을 척 얹어 주시면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기적은 이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간 편에서 예비적인 믿음을 진짜의 믿음으로 오해해서 그래서 믿었는데 안 된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병낳기를 위해서 주님께 열렬히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믿고 병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도 알고 내 치료를 분명한 목표로 삼고 믿습니다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기도는 이제 주님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받침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비적인 믿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 그 자체로서 병이 낳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제 네 믿은 대로 낳았다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임해야 그 받침대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 약속을 이렇게 믿었으면 그 다음 이것을 가지고서 끈질기게 주님께 나아와서 주님 나는 인간 편에서 주님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나의 주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의 음성을 주시옵소서. 주의 허락을 얹어 주시옵소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부르짖고 계속해서 기다릴 때 어느 날 어느 시에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저가 채찍에 맞으신 대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 한마디 주시면 그 길로 하나님의 기억 적인 역사가 이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란 것은 끈질긴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네 인간 편에서 믿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반드시 하나님 편에서 내게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혹은 꿈으로 혹은 환상으로 혹은 기적으로 응답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기다리고 외치고 믿고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적인 믿음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면 이것이 참 믿음이 되어버리고 받침대 위에 하나님의 약속이 얹혀지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분명히 우리들은 믿음의 순서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비믿음은 인간의 편에서의 믿음인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참 믿음인줄알고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이 들려오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비믿음을 가지고서 왜 내가 믿었는데 응답을 안 합니까? 왜 믿었는데 치료가 오지 않습니까? 왜 믿었는데 하나님의 기적이 오지 않습니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얻으면은 예비적인 믿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비적인 믿음 즉 받침대의 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기다리고 몸부림을 치고 있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마음속에 확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 마음속에 갑자기 의심이 구름과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예비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기도하면서도 늘 마음속의 의심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제 응답이 우리의 예비믿음위에 임하시면 받침대의 믿음 위에 임하시면 일시에 마음속에 의심의 구름이 전적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음속에 광명한 빛이 꽉 들어차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평안과 확신으로 충만해 집니다. 전에는 늘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리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응답이 우리의 예비적 믿음 위에 임하시면 그만 마음속이 뱃속까지 편안해지고 그리고 확신으로 충만해져서 이제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추호도 요동하지 않는 그와 같은 마음의 상황으로 변화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떠한 것이냐? 애쓰고 힘쓰는 마음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전에는 주님께 애쓰고 힘쓰며 부르짖고 간구했는데 그만 애쓰고 힘씀이 다 사라지고 마음속에 이루어졌다. 이제는 네 믿음대로 되었다. 다 이루었다. 이와 같은 평안이 채워지고 인간의 힘으로서 애쓰고 힘쓰는 것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 또 보태어서 어찌하던지 이제 기도만 하면 이미 받은 것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환상과 꿈으로 보여지고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입에서 담대하게 말하여지고 이미 받아진 것으로 깨달아집니다. 누가 와서 가르친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되면 의심도 사라지고 평안과 확신으로 충만해지고 애쓰는 마음 주께 다 맡겨 내어버리고 그리고 이미 받은 것으로 마음속에 확실히 깨달아지면 그때는 이 마음속에 이제는 진실한 믿음으로 꽉들어차게 되고 이와 같은 믿음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도 요동치 아니하고서 그대로 밀고나가게되고 이러한 믿음 위에 주님께서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인간적인 믿음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셔야만 참 믿음이 된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등한히 하면은 인간적으로 믿고 난 다음에 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말들을 자꾸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번에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계시를 하나 받았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방송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상당히 경제적으로 고통을 많이 그 동안 당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송이란 것이 여러분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뉴욕의 채널라인이나 로스엔젤레스의 채널라인을 통해서 미국 전국에 방송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래서 방송비가 모자라기 때문에 저가 종종 외국에 가서 해외부흥성회에서 얻어지는 헌금을 가지고서 그 방송비용을 메꾸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방송비용 때문에 상당한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고통 중에서 저가 부르짖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확실히 저에게 미국에 복음의 말씀을 방송으로 증거 하라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서 방송을 시작했었습니다. 인간적인 편에서 내가 확실히 믿었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제적으로 축복을 해준다는 이러한 신념이 마음속에 없어요.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늘 답답하고 괴로웠었습니다. 이래서 여러 친한 형제 친구들에게 편지도 하고 간청도 하고 그리고 성회에 가서 헌금도 모으고 이런 애를 썼는데 주님께 계속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 아버지여 이 미국에 방대한 방송비용을 주님께서 조달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조달해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실천했지만은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가 저의 마음속에 임하였었습니다. 달라스에서 저가 잠을 잤는데 너무나 아주 현등하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였었습니다. 그 게시란 우리 교회에서 저가 우물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우물물을 파는데 자꾸 파 내려갑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깊이 깊이 파 내려가는데 이 물이 넘쳐나게 온 세계 사람을 다 마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헤쳐 들어가도 바위만 있지 물이 안나와요. 새까맣게 저 밑에까지 파 내려가도 물이 나지 않습니다. 이래서 저가 괴로워서 어찌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아니하면 우리 교인들 뿐 아니라 세계를 먹여 마실 수가 없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갑자기 내가 서있는 이 오른편 한곳에서 그냥 물이 쏟아져서 아주 맑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물에 손을 씻고 그 물을 마시면서 이 물이 어디서 나오냐고 물으니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 물은 미국에서 넘쳐 나오는 물이다. 네가 애를 쓰고 힘을 써서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미국에서 이렇게 넘치게 물이 나오도록 너를 축복해 준다. 그래서 그 물이 넘쳐 나와서 우리가 파논 우물물에 물이 가득해집니다. 가득해 지니깐 여기에 더러운 검불들을 우리 재직들이 와서 걸러내고 그 우물물을 청소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 천지에 물이 가득해요. 우리 한국에는 하늘이 맑고 구름이 없는데 그래서 내가 또 물었습니다. 구름 한 점이 없는데 어디에서 이렇게 물이 천지에 가득하게 모여옵니까? 하니깐 한국 위에는 물이 없지만은 부지런히 네가 복음증거해서 저 온 세계에서 하늘에서 성령의 비가 쏟아지고 그 물이 이리로 넘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물 걱정을 하지 말고 담대하게 마시우라.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잠에서 탁 깨어났는데 저가 여러분 많은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계시로서 이 꿈을 봤지만은 이것이 너무나 내 영혼 속에 꽉들어차게 계시로서 다가옵니다. 내 마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늘 마음에 의심이 있고 평안하지 아니하고 확신이 없고 마음이 늘 애쓰고 그리고 아무리 하나님이여 이것을 주님께서 받은 것처럼 해주시옵서해도 그렇게 되지 않던 마음이 네 믿음의 받침대위에 하나님의 응답의 계시가 오지 말자 일** 사라지고 평안과 확신으로 충만해지고 애쓰는 마음이 사라지고 이미 받은 것으로 되어서 머리 속에 믿음이 아니라 뱃속에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저가 체험했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평안해지는지 이제는 의심의 구름이 없고 조금도 마음에 고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권능으로 말미암아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는 참 믿음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믿음이 오면은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갈수가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다가오기 전에 인간 편에서의 믿음만 가지고 모험을 했다가는 그는 나중에 뒷감당을 하지 못하고 믿었는데 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습니까? 이런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만 믿었지 하나님의 계시적 응답을 성경으로나 꿈으로나 환상이로나 음성으로 받아서 이것이 예비믿음이 참 믿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었으면 그 믿음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예비믿음이 본믿음인줄알고 오해한 결과 왜 믿었는데 이루어지지 않냐고 탄식합니다. 예비믿음은 인간 편에서 믿는 받침대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야 본 믿음이 되고 그때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보고 말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비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허락이 임하도록 열렬히 기도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임할 때 그때만이 참 믿음으로 변화되지 그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끝까지 받침대로 남아있고 예비믿음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며 끈질기게 인간편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게 되어서 하나님의 믿음이 임하시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은 바로 실상 받침대에 불과한 것이 오므로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주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레마가 주어져서 그 레마를 통해서 참믿음 능력 있는 믿음 권세 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