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축복으로 가는 길목에서

by 삶의언어 posted Apr 19, 2024 Views 5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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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7-12-27
오늘의 성구 출애굽기 15장 22절로 2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22ket9M9e00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축복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와 같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이라는 기나 긴 세월동안 애굽에서 더불살이,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 속에 그들이 야훼 하나님께 주야로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그 강한 손과 편 팔로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고 수르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광야로 들어와서 사흘동안 여행을 해도 물을 발견하지 못한지라, 목이 타고 입술이 터지고 기갈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물을 발견했는데 백성들이 가서 물을 마셔보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진맥진한 백성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울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매 한 나뭇가지를 지시하시는 지라,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백성들이 물을 다 마시고 기갈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례를 주시면서 '이 계명과 율례에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실천하면 애굽에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 병을 치료하는 야훼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사 엘림 오아시스로 이끌어 준 것입니다. 그 곳에는 열두 샘물이 아주 맑은 수정 같은 물을 뿜어내고 70그루의 우람한 종려나무가 자라서 그늘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그들은 장막을 쳤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죄악의 애굽 세상에서 나와서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우리는 천성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면서 수 없는 영적인 갈증을 느끼며 몸부림 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이 광야를 지나면서 우리의 가슴속에 엘림 동산을 가지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열두 샘물이 솟아오르고 70그루 종려나무가 서 있으며 하나님께서 치료자로 하나님 자신을 제시하신 엘림 동산을 마음속에 가지고 산다면 이 광야를 지날 때도 우리는 상쾌하게 승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야 가운데서 엘림 동산을 마음 속에 가지고 살아가는데는 여기에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쓴 물을 달게 해야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계명과 율법대로 살아야 된다는 조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을 우리가 이루면 우리들의 가슴속에 엘림 동산을 가지고 이 광야를 지나 천국까지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낡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새해가 진실로 축복이 되고 엘림 동산을 우리가 가지고 그 엘림의 오아시스에서 장막을 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오늘 몇 가지 사항을 여러분과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의 마음의 쓴 물이 달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 길을 살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들의 가슴속에 쓴 물이 생겨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사는 세상인데 어찌 미워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들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쓴 물을 달게 하고 살지 아니하면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쓴 물을 달게 할까요? 심리학을 통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과학을 통해서도 되지 않고 철학을 통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특정 종교를 통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의 쓴 물은 오직 갈보리산 십자가의 그 나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쓴 물이 달아집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지시하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진 것처럼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갈보리 십자가 나무를 던져 넣을 때 비로소 쓴 물이 달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미움의 쓴 물이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한번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는데, 인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성품이 서로 엇갈려서 미워할 때가 종종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미움을 우리는 언제나 해소하고 달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약한 미움은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깊은 원한에 사무치게 되면 그 원한의 쓴 물은 쉽게 달아지지 않습니다. 오직 이 미운 쓴 물을 달게 하려면 갈보리 십자가 밑에 와서 엎드리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같이 하나님을 거역해서 죄를 짓고 거역하고 반역한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게 하시고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용서하도록 사랑해 준 그 큰 용서와 사랑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속에 큰 부담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이처럼 용서받고 사랑 받았으므로 나도 나에게 죄 지은 자, 내가 미워하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해야만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예수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 죄 지은 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진실로 예수의 십자가를 던져서 미움의 쓴 물이 달아졌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마음속에 용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될 부담과 책임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외에는 미움의 쓴 물을 달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최근에 기적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 둘째 아들 사무엘의 친구인데 학교에 갔다가 상급생이 경례를 잘 안 한다고 잡아서 때려서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자랐는데 그 아들이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학교에 가서 그 날로 시체가 되어서 집에 돌아오니 그 아들을 본 부모의 감정이 어떻겠습니까? 도대체 요새 학교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인지, 사람잡는 도살장인지 이런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인생이 살벌해 집니다. 그래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집에 가져다 놓고 그 아버지가 장사로 뉴욕에 가 있는데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연락을 받고 급히 모든 일을 다 취소하고 KAL비행기를 탔는데 열 다섯 시간 동안 태평양을 지나서 집에 오는 동안 그 아버지의 마음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 비행기를 탈 때는 "내가 한국에 가면 당장 총으로 이 교장과 교감을 쏴 죽여버리고 내 아들을 죽인 그 가족들에게 내가 복수하겠다.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금지옥엽으로 길러 인제 다 키워놓은 자식을 공부하라고 학교 보냈지 죽으라고 보냈냐. 나 가만 안 두겠다." 그러다가 그 비행기가 태평양 위를 날라 오니 그는 다른데 갈 수도 없고 자리에 앉아서 또 기도를 합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이 일이 어떻게 제 가정에 생겼습니까? 도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일이 생깁니까?" 그러자 그는 십자가 밑에 엎드리는 환상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 외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여간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내가 내 자식을 잃고 나니까 내 마음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그 아들을 못 박았으니 그 하나님의 고통이 어떻겠는가. 그 하나님의 용서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하나님, 나도 이 십자가를 의지하고 내 원수를 용서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다가는 또 일어나서는 "흥, 용서 좋아하네. 내가 가면 원수 안 갚는가 봐라. 어떤 자식인데 내 자식을 죽이고... 내가 용서를 해? 어림도 없어." 그러다가 또 앉아서는 "주여, 내 마음을 살펴주시옵소서. 내 마음도 내가 알 수 없습니다." 15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몇 번을 죽이고 몇 번을 살리고... 그래서 그가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는 마음속에 십자가를 던졌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교감은 이제 아버지가 돌아오면 멱살이 잡히고 얻어맞고 큰 비극이 연출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오자마자 벌벌 떨고 있는 교장, 교감을 손잡고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아들이 죽은 것은 하나님이 부른 것입니다. ,,,,,(테잎 앞, 뒷면 바뀐 부분) ,,,,, 죽었지 않겠습니까. 병들어 죽을 수도 있고, 자동차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또 이와 같이 불행하게 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지요. 사람의 생명이 어떻게 사람 마음 데로 왔다 갔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다 하신 것입니다. 내가 제일 처음 감정으론 와서 학교도 다 때려 부숴 버리고 교장, 교감도 가만두지 않고 때려죽인 그 상대방 가족들도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지마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예수 십자가의 그 고통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용서하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불 같이 쳐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다 용서해 드립니다." 그 길로 그는 종이를 내어서 감옥에 갇혀있는 자기 아들을 죽인 그 학생을 무죄 석방시켜 달라고 탄원서를 써내고 자기 재산 3,000여 만원을 학교 장학금으로 내놓고 문제를 사랑 속에 해결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쉽지, 정말 내 자식, 다 키운 자식이 학교 갔다 얻어맞아 죽었으면 그 쓰디쓴 원한의 미움을 어떻게 달게 만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질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가슴속에 미움의 쓴 물이 있으면 십자가를 던져 달게 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공포의 쓴 물도 생겨납니다. 오늘날 세계는 공포의 정글입니다.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그 어느 곳을 보아도 불신과 공포가 꽉 차있습니다. 세계는 전쟁 준비로 쓰는 그 무수한 돈을 만일 가난하고 불쌍한 후진국들을 도와 주었다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원을 주시지 않아서 후진국이 생기고 굶주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풍성한 자원을 주셨음에도 각 나라마다 공포심 때문에 이 자원으로 막대한 돈을 사용해서 군비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남북이 대치해서 군비 경쟁을 하지 않고 GNP의 6%를 우리 산업 발전에 사용했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급속히 선진국화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불신이 꽉 들어차고 그로 말미암아 공포 속에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에도 내일에 대한 보장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확실한 평안의 처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그러한 신념을 어떻게 가질 수가 있습니까? 마음이 공포에 몸부림치는 사람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져 넣으십시오. 하나님께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몸 찢고 피를 흘려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말과 글로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목숨을 바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사랑해 준 증명된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내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부은 바 되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입니다. 십자가를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 뼛속까지 사무치면 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손에는 아무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와 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믿고 나는 운명을 내어 던진다.' 이러한 신념이 마음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믿음은 공포를 내어쫓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쓴 물을 달게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그 사랑의 세례를 받는 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거대한 믿음을 산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은 좌절의 쓴 물을 마시고 삽니다. 실패는 일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고 좌절은 실패에 대한 마음의 반응입니다. 마음이 좌절로써 반응하면 그 다음 우울감이 생겨나고 살 희망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실패했을 때 깊은 좌절을 맛봅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끝없는 좌절을 맛볼 때가 있고 가정에 실패했을 때도 마음에 큰 충격과 좌절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실패해서 좌절하면 우울증이 다가오고 그 결과로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좌절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이 좌절된 마음의 쓴 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져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계 역사 가운데 십자가보다 갚은 좌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병 고쳐주고, 귀신 쫓아내 주고, 먹여주고, 위로해주고, 살려줬는데, 이 예수를 로마 사람과 유대인들이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서 12제자는 모든 부모, 친척, 가정을 다 버리고 따라왔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복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는 것을 보았었을 때 그들의 좌절은 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그 고통 속에 얼마나 좌절되는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통곡하고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고, 수제자인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깊은 좌절이요, 절망입니까? 그러나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킴으로 말미암아 흑암은 광명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빛나고 좌절은 승리의 개선가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인생의 가장 깊은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 속에 십자가를 던지면, 십자가는 좌절과 승리의 상징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깊은 좌절에 있는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좌절된 사람의 가슴속에 십자가를 던져 넣으십시오. 그 좌절의 쓴 물은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한 죄책의 쓴 물을 마시고 삽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오늘날 같이 죄책이 없는 시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마음속이 뻔뻔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기주의적이고 자기 만족만 있으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적놈들도 4인조, 5인조를 짜서 다니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을 칼로써 난도질 쳐 놓고 난 다음에 물건을 빼앗아 갑니다. 나는 요사이 신문지상에 도적들이 들어가서 생명을 벌레같이 죽이고 물건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볼 때 분노에 떨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살려둘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생명을 벌레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생명도 벌레같이 취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성경에도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불복했을 때 그 자리에서 사형시키시고 만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강도들이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회개하면 용서해 줄 수 있다고 하지마는 남의 생명을 벌레같이 생각하고 칼로써 난도질 쳐서 죽이는 이런 사람들은 공개 처형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우리 민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동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공개 처형해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죄책의 쓴 물을 마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비춰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비추시면 우리는 참담한 죄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의 죄책의 쓴 물을 달게 할 방법은 갈보리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죄책으로 몸부림 칠 때 이것을 선행 행위나 아무리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죄책의 쓴 물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쓴 물은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죄책에서 용서함을 받고 의로움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그러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쓴 물을 달게 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달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가 되고 사랑과 신념과 기대와 담대함으로 마음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쓴 물을 달게 해서 영혼의 기갈을 채우면 이제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율례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선물로 받지만 축복은 계명을 지켜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신을 두지 않아도 인본주의적으로 살면 그것도 인본주의적인 신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다른 신은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하나님 대신에 갖다 앉혀놓은 것입니다. 이 인본주의적인 신을 내어쫓고 우리는 전적으로 야훼 하나님만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무나 돌이나 쇠로써 만든 우상에 절하지는 않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이것은 당연히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상에 절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우상을 다 내어쫓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천지와 만물을 지은 이름이니 우리가 그 이름을 경외하고 예배해야지, 하나님의 이름을 장난삼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개인의 오락을 취하지 말아야 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쾌락과 오락을 취하는 안식일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부모를 공경하지는 못할지언정 마음속에 부모를 미워하고 욕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원망과 대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것을 우리는 회개하고 그리고 우리 있는 힘을 다해서 부모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공경하고 봉양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살인이 너무나 흥행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싸움하면 쳐서 죽여버리고, 도적들도 물건만 훔치면 좋은데 사람을 살인합니다. 여러분 1년에 우리 한국에 낙태를 통해서 죽는 아기의 수가 약 150만 명이나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150만 이나 되는 어린 아기가 이 세상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자기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의지에 따라서 칼을 받아서 난도질을 쳐서 죽임을 당합니다. 오늘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 세상에 임하실 것입니다. 낙태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것은 공인된 살인인 것입니다. 이런 살인을 하고도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이 낙태가 흥행한 나라마다 하나님의 불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1년에 150만의 생명이 낙태로 죽어서 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낙태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만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죄는 회개하면 용서받지만, 그러나 죄의 값은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암에 걸리거나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이 낙태의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낙태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인죄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을 했습니다. 다른 주인이 있는 여자를 취해서 내 것으로 삼으면 이것은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아가 방금 일선에 나가서 전쟁터에 가 있는데 그 아내의 아름다움에 도치된 다윗이 그 아내를 취해서 간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아내가 잉태되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아를 불러서 집에 데리고 갔으나 아내하고 동침하지 않습니다. '내 동료들이 일선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나 혼자 어찌하여 동침하리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서 적군의 화살에 맞아서 죽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 사람은 전쟁에 나가서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그렇게 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로부터 다윗의 집안을 심판하셨습니다. 다윗의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아니하고 칼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모반을 일으켜서 다윗이 머리가 백발이 성성할 때 그는 구사일생으로 아들과 싸워서 아들을 죽이고 환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극적인 체험까지 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십일조도 도둑질하고 또 내 분수에 맞지 않은 것, 내 노력하지 않은 것을 손에 넣으려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마음의 감정입니다. 선악과를 도둑질한 아담과 하와의 속성이 오늘날도 남아 있어서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손에 넣으려는 감정이 있습니다. 도둑질한 것은 회개하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웃의 흉을 보고 이웃을 거짓 증거해서 상처를 입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웃을 거짓증거 하는 이 죄는 모든 사람이 짓고 있는 죄입니다. 이 죄를 우리는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웃이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고 우리가 탐을 내어서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해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정상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 나보다 잘 되는 것을 내가 시기하고 질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 분수대로, 내 노력대로 하나님께 감사히 살고 또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 생활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살려면 이와 같은 계명을 항상 앍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이 계명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와 같이 쓴 물이 달아지고 계명을 보고, 듣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의 엘림 세계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하십니까? '나는 병을 고치는 야훼니,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살면서 병을 앓지 안고 산다면 그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오늘 시킨 이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세상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엘림 동산으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엘림에 가니 물샘 열 둘이 수정같은 맑은 물을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열 둘 이라는 수는 하나님이 택하신 가장 기뻐하시는 수인 것입니다. 열 두 지파로서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만들었으며, 열두 제자를 통해서 지상에 천국을 주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둘 이라는 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열 두 샘물, 이 샘물은 영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것은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고 성령이 충만해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열 두 지파와 열 두 제자처럼 하나님의 택하시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쓴 물을 달게 하고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이 잘 되도록 여러분의 영혼 속에 열 두 샘물을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샘물이 솟아나면 그 주의에 모든 만물이 살아납니다. 오곡 백과가 무르익고 우람한 종려나무 70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려는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꺾어서 '할렐루야! 호산나!' 찬양을 드렸습니다. 승리를 말합니다. 열 두 샘물이 솟아 오른 곳에는 축복과 승리가 생겨납니다. 칠십이라는 것은 열 둘 보다는 못하지만 역시 하나님의 택한 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 칠십 인의 장로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다음에는 칠십 인의 제자들이 둘씩 나가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열 둘 보다는 못하나 그래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열 두 샘물은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요, 그 다음에 칠십은 하나님이 그 다음으로 택해서 기뻐하신 것으로써 범사에 잘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샘물이 솟아오르는 곳에 만물이 소생하고 살아나지 않습니까? 승리가 생겨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승리를 상징하는 칠십 주의 종려나무가 심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범사에 잘 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되며, 치료함을 받아 강건함을 얻는 엘림 동산의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슴속에 엘림을 가지고, 여기에 장막을 치고,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엘림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 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범사가 잘 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강건함을 입는 삼박자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쓴 마음을 십자가를 통해서 달게 변화시키고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십계명을 보고, 듣고, 힘차게 실천해 나가면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서 엘림 동산에 장막을 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엘림에 장막을 치면 우리의 속에서 영혼을 잘 되게 하는 열 두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택하신 영적인 축복이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축복과 함께 그 다음 하나님이 두 번째로 택하시고 기뻐하시는 칠십의 종려나무. 승리의 생활, 축복의 생활이 따라옵니다. 범사가 잘 됩니다. 가정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치료하는 야훼가 되셔서 애굽에 내린 모든 질병을 제하시고, 또 병들었으면 하나님이 손 내어서 고쳐주어서 건강을 가지고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승리로 살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낡은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서 정비하고 새해에는 우리 마음속에 진실로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 주를 가지고 치료하는 하나님을 모시고 그 곳에 장막을 치고 살아나가는 여러분 각자가 되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기갈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목마르지만 쓴 물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줄은 알지만 어떻게 축복의 동산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방황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아버지께 간구 하오니 우리 마음의 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달게 만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엘림 동산으로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사막 같은 광야 세상에서도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의 엘림 동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고 그것에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