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분과 함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생명을 말살해 버리려는 죽음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70에서 80여 년을 살아가면서 일시도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주해서 아무리 이팔청춘 젊은이라도 결국에는 죽음의 발걸음에 잡혀버리고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는 이와 같은 비극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인간 역사 가운데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고, 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많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여러분과 나에게 어떠한 생명을 주시는지 이것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 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지만,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다 그 속사람이 죄와 허물로 죽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을 받고 그들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서로 대화했었습니다. 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현재 부모를 모시고 우리 부모님과 같이 대화하듯이, 이와 같이 분명히 대화를 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은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에덴 동산을 거닐었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깊은 마음의 교제를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아버지가 되고,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였었습니다. 이와 같은 친한 교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동산에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사탄의 꾀임을 받아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권위를 짓밟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은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죽었다는 것은 이제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지만은 그 속의 영이 그만 죽어서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는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불안과 공포에 꽉 들어 쌓였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 몸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되고 나무 뒤에 숨었었습니다. 갑자기 에덴 동산에 죽음이 꽉 들어찼습니다. 새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며 죽어가고 나무들은 마르고 그리고 꽃은 시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온 천하에 만물이 죽음의 세력으로 꽉 들어차게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여러분과 저는 모두다 영혼이 죽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죄 중에 어머니에게 잉태되었으며 죄악 중에 출생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벌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아담은 그 영혼이 죽어서 우리를 생산했기 때문에 아담의 씨를 받은 사람은 육체의 생명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죽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무리 애써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를 얻고 지식을 얻고 총명을 얻고 공학을 발전시켜도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그와 같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 사람이 죽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여러분과 저는 인간의 힘으로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에베소서 2장 4절에서 6절에 보면『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원래 원죄로써 죽었고 또 이 세상에서 스스로 자범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철저히 영혼이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을 반역하여 지은 죄를 그 아들에게 전부 책임을 지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그 아들 예수께 책임 지우셔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인류를 대표한 제물이 되어서 그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었습니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우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진노를 그 아들에게 퍼부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 달았었을 때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탄식하고 통탄했었습니다. 무자비하게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래서 그 영혼이 죽임을 당하고 그 육체가 죽임을 당하고 그는 음부에까지 내려가서 사흘 낮, 사흘 밤을 고생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의 빚을 다 청산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해서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의 죄를 다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내게 나오라 내가 구원해 주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서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를 구주로 모셔들이자마자 여러분은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일생의 죄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청산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의 속에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영생이란 말은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습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이렇게 되어서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여러분과 저는 우리 속사람이 아버지께로부터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아버지의 영을 받지 않고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영적 세계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되고, 감사를 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이 이제는 귀에 들어올 때 깨달아지고 눈에 들어와 읽을 때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과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열렸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만져보는 육신의 환경, 이 물질적인 세계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우리가 물질 세계를 초월해서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소리 안 들리는 것,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지만 우리 속사람이 누리는 성령 안에서의 하늘의 신령한 세계가 우리에게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허물로 죽은 우리가 영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적인 이해력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이제 여러분과 제가, 영적으로 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다 살아나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제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 신랑 되시고 우리형님 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돌봐주는 보혜사가 되시고, 그리고 우리 예수 안에서 우리는 만민이 한 형제가 되어서 이제는 도저히 육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제 1차로 우리를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역사인 것입니다.
둘째로 또 주님께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는 것은 우리의 아집을 죽이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혼이 아주 고집이 셉니다. 아집이 꽉 들어있어서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꾸 자기 고집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동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아집을 죽이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왜 나의 주변에 시험과 환란이 다가오며 수많은 고통과 죽음을 체험하게 됩니까? 도대체 왜 이렇습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은 사람의 그 아집을 죽이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에 참으로 여러분과 저는 또한 죽음의 체험을 하고 죽음에서 부활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아집이 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너를 창대케 하리니 너에게 복을 주는 자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받았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 마음속에 아집이 깨뜨려지지 않았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는 본토에서 난 것 다 살림을 모으고 그 종들 다 데리고 그 친척과 아비 집의 그 혈통인 조카를 데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가나안 땅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은 순종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자기 아집대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이 아집을 가진 아브라함을 그대로 축복할 수가 없어서 아브라함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집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가나안에 들어오자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은 온통 가뭄이 들어서 산천 초목이 다 불타고 물 한 방울 없고 온 천지가 먼지 투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많은 짐승들을 데리고, 그 종들을 데리고 와보니 짐승들이 먹을 풀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종들을 먹일 것도 없었으므로 짐승 떼는 다 굶어죽고, 종들은 다 뿔뿔이 헤어져서 도망쳐 버리고, 나중에 남은 것은 자기의 아내와 우는 조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또다시 그의 아집을 가지고서 애굽으로 자기 마음대로 내려갔었습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지만 출발 때 보면 자기 멋대로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그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의 아집을 죽여야 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자 그는 처참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는 벌써 가나안에 올 때부터 자기의 계획이 다 깨어져서 종들이 다 흩어지고 짐승이 다 죽고 자기의 아집이 깨어졌지만은 그러나 저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빼앗겨서 바로에게 시집을 보내고 그리고 자기는 거기에서 얻어먹고 사는 비참한 팔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일같이 앉아서 자기 신세타령을 하고 자기를 살펴봤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 나온다고 했지만, 그가 당한 것은 가뭄과 고통과 굶주림과 그리고 이제는 최후의 애굽의 나라에서 자기 아내까지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자 그의 아집이 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그는 참담한 심령 속에서 아집이 깨어졌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구나,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고 해도 안 되는구나' 그래서 그는 깨어져서 "하나님이여, 이젠 내 힘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수단과 방법으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의 뜻대로만 살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의 고집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의 아집이 죽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집이 죽자마자 하나님께서 다시 부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 믿음과 순종의 부활을 주셔서 이 부활의 생명을 받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바로에게서 그 아내를 도로 빼앗아서 돌려 받았으며, 그 아내를 데리고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는 얼마나 그가 믿음과 순종으로 완전히 살아갔던지, 100세에 나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잡아서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라고 말할 때 한마디 불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의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대로 자기의 아들, 100세에 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삭을 그대로 데리고서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에 가서 그를 잡아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죽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인본주의, 여러분과 저의 아집을 깨뜨려서 죽입니다. 사람이 죽는데 보통 편하게 죽습니까? 십자가에 매달려야 죽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여러분과 저의 가정에서, 생활에서,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급작스럽게, 어떠한 사람은 서서히, 아집이 깨뜨려지는 체험을 합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마음에 고통이 다가와서 자아가 깨어지고 자아가 무너지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사용한 사람들 중에서 아집이 깨어지지 않고서 사용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야곱은 깨어지는데 20여 년이 걸렸고 얍복강에서 환도 뼈가 어그러지고 절름발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어져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요셉이 깨어지는데는 13년 동안 종살이, 감옥살이가 필요했으며, 그리고 모세가 깨어지는데는 40년 미디안 광야의 생활이 필요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생을 당해서 깨어지고 깨어진 사람, 그래서 아집이 죽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으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지식이 많고 인간적인 열심으로 떠들어대도 하나님께서는 아집을 죽이지 않고는 사람을 절대로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여러분, 아집이 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집이 죽어야 그 다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복음을 증거하면서 그 체험을 했습니다. 바울은 아집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도 먼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고집 센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을 계속해서 한 머리에 축복을 주면서 다른 특별한 것은 사자처럼 달려들어서 바울 선생을 깨뜨렸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러 가는 곳마다 그는 거세고 어려운 환경에 부딪혔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보면『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 선생은 자기가 복음 증거할 때 얼마나 시련을 많이 당했던지 그는 살 희망조차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나는 살 소망도 이제는 없다, 이제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한가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날 때가옵니까? 이때는 자기를 의뢰하는 인본주의가 죽을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본주의가 살아날 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죽은 자를 살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아집이 죽은 자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리시지요, 아집이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리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그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자기가 깨어지고 죽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부활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기 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육체적인 죽음에서 부활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퍽 길어졌으나 그러나 대개 100년 안쪽에 반드시 죽습니다. 이팔청춘 젊은 남녀라도 100세가 되기 전에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체로 죽은 자를 부활로 살리시겠다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육체로 죽으면 그로써 종말이요, 그로써 처절한 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이 그 인생의 종말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부활시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부활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신실한 실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로 19절에 보면『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고 다시 부활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까짓 것, 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 육신적인 향락이나 실컷 누리고 죽자" 그렇게 했을 것 아닙니까?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절제하며 살고 고통을 감내하고 살았다면 우리만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환락을 쫓아 사는 사람들은 육으로 심고 사망으로 거두게 되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영생과 부활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오늘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처럼 우리는 그 부활의 씨앗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것입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부활할까?" 이렇게 물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할렐루야! 여러분과 제가 오늘 이목구비를 가지고, 육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육의 몸을 벗어버려도 하나님이 신령한 몸으로 여러분과 저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이 되고 약한 몸이 강한 몸이 되고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몇 일전에 우리 사업가 한 사람의 부인이 천당을 갔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이제 두 분의 친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하나님 보좌에 간 내 아내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말을 고쳤습니다. "올라간 분은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 당신의 친구요"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육신으로 이 지상에 살 동안은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지만은 이제 우리가 부활해서 천당에 갈 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제는 아내도 없고 남편도 없고 모두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앞에서 형제요, 친구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사랑하고 친하고 친밀한 친구지, 이젠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부활하고서 천당 가고 난 다음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 동안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많이 얻기 위해서,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을 채우라고 했지, 하늘에 올라가면 생육하고 번성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과 저는 이 육신의 몸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이루어서 모두다 하늘나라에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들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으로 부활의 몸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때가 언제 올 것이냐? 고린도전서 15장 55절 이하에 보면 부활의 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때는 주께서 재림할 때인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변화되어 다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그때로부터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는 이제 부활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강림하실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 환경을 바라보더라도 여러분, 옛날에 상상할 수 없을만한 그러한 자연적인 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40도의 추위가 저 남부 더운 지역까지 휩쓸고 있지요, 구라파는 이 추운 겨울에 너무 더워 가지고서 수영을 하고 있지요, 눈이라고 오지 않는 일본의 오사카까지도 눈이 와서 수많은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안 왔기 때문에 눈 위로 걷는 법을 몰라서, 눈이 오자 모두 미끄러 자빠져서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구급차가 정신이 없이 바쁘답니다. 눈이 없다는 나라에 눈이 옵니다. 홍수가 내리지요, 아프리카 지역에는 그냥 한발이 다가오지요, 이거 뭐 도저히 기상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이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일어나는데, 오늘 보십시오, 어느 나라든지 민족이 분열되어 있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미국과 소련의 슈퍼파워가 서로 대결이 나서 오늘날 원자탄, 수소탄, 무슨 SS20이니 크로우즈 미사일이니 해서 온 지구가 그냥 일시에 잿더미가 될 수 있는 그러한 무기들을 잔뜩 갖다놓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조금만 실수를 하고 단추를 눌러버려도 세계는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마는 이런 위험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집니다. 사랑이 식어짐으로 말미암아 서로 물고 찢고 서로 도둑질하고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하나님께서 말세에 우리에게 주실 징조가 있습니다.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하나님께서 준비하기 위해서 성령이 부어집니다. 성령께서 부어주심으로 여러분과 저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비웃지만 그와 반면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교회가 부흥되고 성도들의 신앙이 살아나고 기도 소리가 요란하게 되고 그리고 온 세계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갑자기 주님께서 재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의 역사는 카톨릭이나 개신교를 불문하고 주를 부르짖는 사람에게 모두다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기도할 수 있는 이러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여 주님께서 오십니다. 이 세계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오래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인간은 스스로 살육하고 살생하고 자멸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예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때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열렬한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의로움이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혼을 살려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잘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집을 혼이 나게 해서 혼을 깨뜨려서 우리 속에 참된 믿음과 순종을 살려 부활시켜서 범사에 잘되게 축복해 주시며, 또 죽을 육체를 치료하실 뿐 아니라 주안에서 죽은 자를 재림의 날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리셔서 영원 무궁하고 또 신천 신지에 함께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생명의 대왕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우리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부활해져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영원한 승리로 살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르심을 받고 이 은혜 속에 들어온 사람들이니 이 얼마나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영혼의 생명이요, 우리 마음의 생명이요, 우리 육체의 부활이요,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되시는 것입니다.
[기도]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생각할 때, 만 입이 있은들 무엇으로 다 감사하고 찬송하오리까.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아 주시옵시고 영광 받아주시고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주의 부르시고 주께서 살리신 사람들이니 이 추운 날, 이른 아침에 주의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모두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악한 원수 마귀에서 놓여남을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