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삶의 밤을 지날 때

by 삶의언어 posted May 22,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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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1990-01-21
오늘의 성구 시편 90편 1절로 1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TYe6Vj4LZEI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삶의 밤을 지날 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그의 선교계획 중 큰 충격을 받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크나큰 포부와 꿈을 가지고 아시아로 출발했습니다. 바울 선생과 그 일행은 아시아로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하는데 가는 곳마다 성령이 그들을 막았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복음 증거는 처참하게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바울 선생같이 유능한 주의 종이 선교에 실패하다니 생각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서 그러면 이대로 우리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자. 돌아서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비두니아로, 비두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선교 사역을 시작했는데 여기에서는 또 예수의 영이 하지 못하게 막는지라. 그는 비두니아에서 아주 큰 좌절을 갖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연속해서 두 번 그들은 목회에 실패를 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마음이 좌절됐습니다. 성경은 보니 바울은 그 이후로 도로야?로 내려오니 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데 올라갈 때는 좋지만 내리막길을 갈 때는 대단히 힘듭니다. 밝은 대낮에 사는 것은 좋지만 캄캄한 인생의 밤을 맞이할 때는 그 때의 안타까움과 절망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바울은 두 번 크나큰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그의 선교 사역에 두 번 실제로 큰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로야로 내려왔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떠났다. 그는 아시아도 실패하고 비두니아에도 실패한 사람이다. 보아라. 지금 도로야에 내려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지 않냐. 바울 선생의 생애는 밤중과 같이 캄캄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그는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마게도냐에 있는 환상이 나타나서 바다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는 실패하고 실망하고 좌절되고 그리고 내리막길을 내려가서 밤중에 처했을 때 새로운 환상을 얻는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일행이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이 전 유럽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동기와 기회가 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증거의 성공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바울 선생과 같이 여러 가지 실패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한번 실패하고 좌절하고 또 자른 일에 손을 대었다가 또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그렇게 되면 좌우간 우리는 어찌 할 수 없이 인생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마음도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생활도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주위사람들도 모두다 실패자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캄캄한 인생의 밤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알 것은 이 밤을 맞이할 때 우리가 그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방황하기 시작하면 파멸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바울처럼 그 밤중에서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면 그 밤을 통하여 하나니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환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밤중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희망찬 길을 하나님은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한 두 번의 인생의 실패가 우리 인생에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그 좌절과 절망과 밤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개척해 주고 새로운 내일의 꿈을 펼쳐주는 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망을 하고 좌절되고 밤에 처했을 때 어떠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될까요.

첫째로, 우리가 인생에 좌절하고 밤에 처할 때는 회개하는 기회를 삼아야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되었던 간에 우리를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내리막길을 걸어가게 하고 환난에 처하게 하고 밤에 처하게 할 때는 우리에게 그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하고 그 잘못된 길을 깨우치게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옛길을 버리는 회개를 해야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만의 딱딱한 껍질이 내 몸에 붙을 수가 있습니다. 또 불순종이 내 몸에 붙을 수 있고 세속이 나를 덮어 씌울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껍질을 개고 이러한 천을 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기회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캄캄한 밤에 부딪칠 때는 자기의 죄와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하고 깨어지는 그러한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 환난 당할 때 회개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으면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같이 멸망을 자초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와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할 뿐 아니라 조상의 죄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상이 잘못하면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자손 3-4대까지 하나님께서 심판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잘못한 죄까지라도 우리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회와 민족의 죄도 회개해야되는 것입니다. 사회와 민족이 잘못한 것이 그 사회와 민족 가운데서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크나큰 타격과 충격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회와 민족을 위해서 대신해서 회개하는 기도라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과 환을 통하고 좌절되고 밤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될 것은 자아를 깨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13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다가올 때 낙심하지 말고 피곤해서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무릎이 흔들려서 그만 이젠 못 걸어가겠다고 주저앉지 말고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 밤이 어두울수록 맑은 낮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좌절하고 실망하고 캄캄한 밤에 처한 그때가 새로운 인생의 태양이 떠오르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러한 밤을 맞이한 사람에게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크나큰 희망을 주는 동기로 삼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 모두다 인생에 좌절하고 밤을 맞이한 사람들이 그 밤중에서 부르짖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고 삶의 새로운 태양을 발견하게 된 사실들을 다 간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밤을 지날 때는 그 무엇보다도 첫째로 해야 될 것이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성경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저와 같이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의 캄캄한 밤중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간구 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사는 길을 주님께서 고쳐 주셔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의 생활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이 세상살이에 너무 바빠서 세상 출세하기 위해서 부귀를 얻고 영화를 얻기 위해서 세상 삶의 너무 치중해서 그만 십자가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치를 전도시킵니다. 중요한 거 하지 않고 먼저 할 것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몸이 의복보다 중하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이 추운 날 맵시내려고 스타일 내려고 패션 옷을 속옷도 입지 않고 입고 아주 멋있게 패션을 내는 것은 좋지만 그로 말미암아 감기가 걸려서 나중에 집에 가서 몸살로 들어 누우면 그 패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몸이 의복보다 중합니다. 그러므로 몸을 위해서 옷을 입어야지 패션을 위해서만 옷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또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않으냐. 여러분 미식가가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배탈이 날줄 모르고 여기저기 먹어댑니다. 그래서 몸무게가 뚱뚱하게 늘어지고 온갖 병이 옵니다. 술 먹는 사람은 제1차를 마치고 또 어깨동무해서 2차 마시고 또 3차 마시고 어허라 좋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 위장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합니다. 인생에 우리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가치를 전도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며 깊은 밤에 취하게 되면 인생을 살펴보게 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가며 무엇 때문에 사는가 지금 내사 무얼 하며 살고 있는가 살펴보게 될 때 아 내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의 삶을 떠났구나 예수만이 가장 중요하고 십자가 못 박힌 예수를 믿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중심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방황했구나. 기도할 때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것을 깨닫지 못해요. 예수 중심을 찾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중심에 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간절히 구할 때, 우리 마음의 잘못된 삶의 가치 전도를 주님께서 바로 잡아주시고 그와 함께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도움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무엇인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응답하리니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캄캄한 밤중에 우리가 할 일은 우리는 간절히 우리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캄캄한 밤에 처해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춥고 어두울수록 여러분 찾아갈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흥청망청 살고 우리가 잘될 때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가 고난에 처하면 그런 사람들 다 떠나가고 맙니다. 내가 가까이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왜 이러한 일을 당하는가 깨닫게 하는 교훈을 해줍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더 좋은 교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와서 교훈하면 섭섭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하나님 말씀이 내게 가르칠 때 이 말씀이 내게 주는 교훈은 두 날 가진 검보다 예리합니다. 내 속에 들어와서 나의 잘못된 인생을 수술해 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을 지날 때는 하나님 성경을 찾아갈 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찾아갈 때인 것입니다. 말씀이 주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가 없습니다. 여러분 고통 당할 때 고난 당할 때 하나님 말씀 읽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주는 위로는 우리의 영혼을 정말 물댄 동산같이 만들어줍니다. 옛날에 세상에 취해서 허덕일 때는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건성으로만 들려오고 뼛속에 사무쳐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 크나큰 계시로서 임하시고 말씀이 그렇게도 우리 마음속을 위로할 수 가 없습니다. 꿀보다 달고 송이꿀 보다 더 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열어주시고 용기를 넣어주시고 희망을 넣어주시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거 없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용기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나는 나갈 것이다. 나는 피하지 않는다는 그런 긍정적인 삶의 힘의 근원을 우리는 말씀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고 밤을 지날 때는 하나님 말씀에서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찾을 때인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시험과 환난 당하고 캄캄한 밤을 지날 때는 믿음의 선배나 동지들과 대화를 할 때인 것입니다. 세상 친구들은 좋을 때는 대문이 미어져라 다가와도 내가 약해지면 다 떠나가고 없어집니다. 우리 한국의 옛말에 정승의 개가 죽으면 집이 미어지도록 사람이 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안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30년 목회하면서 많이 보았습니다. 권세 있고 세도 있는 사람들 집에 문제가 생기면 꽃다발이 온 집안을 뒤덮을 만큼 들어오고 사람들이 돌보지만 그 권세 있고 세도 있는 사람이 가버리니까 그가 장례식을 갈 때 얼마나 쓸쓸한지 몰라요. 세상 친구들은 좋을 때 좋은 친구들이지만 여러분 고난 당할 때는 떠나갑니다. 잠언서에도 그 말이 있어요. 친구는 좋은날에 있고 형제는 환난 날을 위해 있나니라. 고통과 환난을 당할 때는 여러분 그래도 자기의 형제들이 제일 가깝습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는 말이 그 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 형제와 친구들은 고난 당할 때 떠나가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떠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믿음의 선배나 동기들과 대화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나 혼자서 고독하게 기도하고 울고 있지 마십시오. 그 때문에 구역장이 필요하고 조장이 필요하고 주의 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당할 때 나 혼자 있지 말고 구역장을 찾아가십시오. 조장을 찾아가십시오. 주의 종을 부르십시오. 주의 종을 찾아오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의 계신 아버지가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 혼자 기도할 때 힘이 없어서 안될 때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도와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에는 홀로 걸어가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니 이는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거니와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추울 때 혼자 누워서 자면 춥거니와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자면 체온 때문에 따뜻해지고 세 개의 실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이상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내 기도는 약하나 환난과 시련을 이겨낸 나의 선배의 기도, 동료의 기도는 강하기 때문에 이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십시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축제를 주셔서 온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다 모여서 혹은 한 주일씩 혹은 두 주일씩 축제를 가지곤 합니다. 저는 구약성경을 읽을 때마다 왠 축제가 이렇게 많으냐 축제일 무슨 장막절 이니 무슨 추수절 이니 무슨 77절이니 무슨 절이니 하고 절기를 지킨다고 온 백성들이 와서 다 모여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왜 하나님은 축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이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난 나 혼자입니다. 저 엉터리 신자들 저 사기꾼들 저 시시한 신자들 나보다 레벨이 낮은 사람들과 나는 같이 안 해. 나같이 고고한 사람은 나 혼자만 하나님만 따라가면 돼. 나 혼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사람보고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야. 이 개똥상놈아. 너 혼자 잘 믿어라." 왜 하나님은 축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이면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이면 의견이 불일치 되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 물고 찢기도 하고 그리고 또 화해하고 또 용서하고 또 서로 손을 합쳐서 밀고 가기도 하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 세 사람 함께 모여 축제의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일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수요일 날 와서 함께 성경책을 펼쳐놓고 해석을 하고 기도하고 듣고 아멘을 하고 그리고 또 구역예배에 구역끼리 모여서 찬미하고 성경보고 감사 드리고 혹은 철야기도하고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이것 모두다 축제입니다. 하나님은 축제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인 곳에 같이 계시겠다고 한 것이지 외로운 길을 혼자 걸어가는데 하나님이 같이 계시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환난과 고난 당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와서 그 환난과 고난 시에 축제의 하나님을 모셔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를 하고 함께 외치면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셔서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삶으로 실패는 성공으로 가난은 축복으로 변화시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선배나 동지들과 함께 항상 모여야 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여야 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하고 함께 찬송을 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외로울 때는 약해져요. 그 마음도 약해지고 신앙도 약해지고 생활이 약해져요. 그럴 때는 믿음과 격려의 말씀 동정의 말씀이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이 89년도 지나고 90년도 초 너무 계속된 격무가 시달리고 또 작년 한해동안 너무 무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프레쇼를 받아 가지고서 소화가 안돼요. 도저히 밥을 먹을 수 가 없었습니다. 한 주일 전부터 그래서 거의 아무것도 못 먹고 죽지 않을 만큼 요만큼만 먹고서 그저 기도하고 그러나 일은 해야되니까 계속 일을 했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 제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야 됩니다. 그런데 도저히 죽만 먹고는 기운이 없어서 갈 수가 없어서 미국 가는 것을 cancel 했습니다. 오늘도 사실은 죽 요만큼 먹고 내가 여러분 앞에 지금 2번째 서있는데 그러니깐 약해져요. 사람이 몸이 허약해지니까 마음도 허약해집니다. 신앙도 허약해집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이 ?? 했더니 장로님들 사모님이나 그런 분들이 급히 나에게 무슨 잣죽을 끓여온다 혹은 대추를 인삼에 갈아서 죽을 끓여온다. 그런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와요. 그런데 제가 좀처럼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그 죽을 먹으면서 눈물을 펑펑펑 쏟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사람이 약해지니깐 사람의 몸이 약해지니까 마음이 약해져 가지고 그런 사랑을 베푸는데 너무너무 마음의 위로가 되고 사랑이 감사해서 그 죽을 먹으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사랑이 좋구나 나도 다시 한번 건강을 회복하고 난 다음에는 병들고 외롭고 소외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가 더욱 찾아가야 되겠다. 저는 오랜 세월동안에 목회하면서 많은 어려운 사람을 방문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입원해있는 사람을 찾아가면 저는 모 건강하니까 당당히 찾아가서 찬송 부르고 성경 읽어주고 손잡고 기도하면 그 병상에서 일어나서 눈물을 줄줄줄 흐르는데 난 속으로 '왜 우냐 울 필요 없는데' 또 고난 당한 집에 가서 방문을 해서 기도해주면 온 가족이 낭누를 하고 통곡을 하고 웁니다. '왜 울까 저렇게' 그러한 실제 자기가 약해지고 자기가 무능력해질 때 그 신앙의 선배나 동료나 목사님이 오셔서 위로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평소에 자기가 다 아는 말이지만 그 말이 굉장한 마음의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혼자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줘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고난 당할 때는 믿음의 선배나 동지들과 반드시 대화를 하십시오. 그 대화를 통해서 여러분은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고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여러분 고난 당할 때는 그 고난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난과 고난은 신앙 인격을 성숙시키고 인생을 새롭고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환난과 고난을 한번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밤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자기가 배가 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 남 배고픈 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전쟁과 환난을 통해보지 않은 사람이 전쟁과 환난이 무엇인지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일정시대에 태어나서 일본사람의 압제를 당한 것을 알고 6.25사변 때 그 생활의 고난과 슬픔과 괴로움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을 당하거나 배고픈 사람이나 피난민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찡 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봐도 재미있게 봅니다. 왜냐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우리가 말씀만 읽고 성령 충만하고 기도만 한다고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건성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 가운데 시련과 환난과 고난을 통하게 되면 그를 통해서 그는 신앙이 깊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말미암아 신앙의 인격이 성숙되고 인생을 더 깊은 눈으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고난을 깊게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면으로 햇빛 쨍쨍 나는 찬란한 축복도 주시거니와 또 천둥 번개 치고 비가 쏟아지는 고난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격이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또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깊이 깊이 인생을 알고 신앙을 아는 사람으로 성숙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 당하지 않는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반드시 축복과 함께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이 반드시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연속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깊어지고 하나님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고난의 길이 바로 희망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얼마나 신앙이 좋고 올바른 사람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에 가 있는 형들에게 아버지 심부름으로 음식을 갖다 주는데 형들은 요셉을 잡아서 옷을 벗기고 아라비아 대 상인에게 종으로 팔아 넘겼습니다. 그가 갑자기 사랑 받던 아버지의 품을 떠나 형들에게 배반을 당하여 팔렸습니다. 묶여서 아라비아 대상인의 종으로 끌려갈 때 그 길은 어마어마한 고난의 길입니다. 그의 앞길은 칠흑같이 어두웠었습니다. 절망은 마치 깊은 대양의 파도처럼 그를 엄습해왔습니다. 끌려가는 요셉에게는 이제는 희망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도 요셉이 가는 길은 절망의 길입니다. 그 당시에 종으로 팔리면 종은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었습니다. 그는 애굽에 끌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었습니다. 그는 종으로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억세게, 억세게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다시 인정을 받아서 종의 들의 총무가 되었습니다만 그만 보디발의 아내의 참소를 받고 난 다음에 무참하게 버림을 당하고 수없이 시위대장에게 짓밟히고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시위대 감방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절망입니까. 거기는 어두운 밤도 그런 밤이 없습니다. 어떻게 운명이 그렇게 변해갑니까. 요셉이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그는 죄를 짖지 않았습니다. 그 17살의 나이에 그는 이제는 30살이 될 때까지 그 기나긴 세월동안 13년 동안 종으로 죄수로 그는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요셉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술 장관과 떡 장관이 모의를 하다가 잘못돼 잡히어서 동일한 감옥에 들어왔으나 요셉이 그들에게 꿈을 잘 해석해 주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훗날에 바로가 어려운 문제를 당해서 해결하지 못할 때 그것이 소문이 나서 요셉은 순식간에 감옥에서 인도해 나와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7년 가난을 환난을 면하게 해주시고 그 온 식구들을 다 구원하는 위대한 희망의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고난의 길이 바로 희망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당해서 드로아의 캄캄한 밤에 맞아주신 그 때 새로운 희망의 환상의 별이 떠오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결코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절망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적인 하나님이지만 시험과 환난을 통하고 난 다음 체험하는 하나님은 내 뼛속에 하나님이 되고 내 살 속에 하나님이 되고 내 핏속에 체험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 성?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한쪽의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할 가치가 없다. 오늘날 신앙도 한가지입니다. 고난을 당해보고 인생에 좌절을 당해보고 캄캄한 밤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과 신앙을 논할 가치가 없다. 신앙이란 단지 와서 성경 일고 찬송하고 기도함으로만 신앙의 도란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깊은 고난의 골짜기를 통하고 인생의 깊은 좌절을 맛보고 깊은 밤에서 하나님을 찾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새로운 소망의 길이 열리고 황량한 빛을 안고 나온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위대한 신앙인이 되고 그는 살아있는 하나님을 알게되고 이러한 사람의 신앙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바로 그 신앙의 우리의 모범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사람인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버림당하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는 매맞고 그는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고 창을 받아 심장이 터져 물과 피를 다 쏟고 처참한 고난 중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몸부림쳤습니다. 그의 몸부림과 그 고통과 그 눈물과 그의 흘리신 피와 그의 흘리신 땀과 그 모든 것이 ?같이 닫혀진 저 심판의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천당 길을 밝게 비춰놓고 만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희망의 길입니다. 고난의 길은 바로 천국의 길인 것입니다. 고난의 길은 바로 하나님과 손을 잡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너희 중에 환난 당한 자가 있느냐 고난 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여러분을 멸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밤을 지날 때는 새로운 소망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신앙의 한 단계 깊은 세계로 연단한 길이란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고난 당하면 쉽게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저버리고 버림을 받고 말았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고난 다가올 때는 회개할 때요 , 깨어질 때요, 부르짖어 기도할 때요, 우리가 한 두 사람 합쳐서 함께 주님께 부르짖을 때요, 고난 당할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히려 찬송할 때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때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소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는 하나님. 죽음의 골짜기를 통해서 소망의 문을 열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내 아버지 여러 가지 고난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고난은 바로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