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하나님 중심의 삶

by 삶의언어 posted Jun 07, 2024 Views 3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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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신앙성숙
예배드린 날 2004-09-12
오늘의 성구 시편 127편 1절로 2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O7YT-vEWIqE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몸의 중심이 흔들리면 실패합니다. 더구나 체조 경기는 말할 필요 없이 몸의 중심이 잘 잡혀야 됩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미국 선수가 뜀틀경기에서 착지 때 중심을 잃고 옆으로 뒹구는 모습을 우리는 TV에서 잘 보았습니다.
삶에도 동일합니다. 중심이 잡히지 않고 방황하는 삶은 패배와 절망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큰 배가 파도가 산더미처럼 치는데 전우 좌우로 요동하면서도 중심을 잡는 이유는 그 배속에 자이로스코프라는 선박의 평형을 잡는 기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본론]
1. 개인의 삶의 중심이신 하나님
첫째로, 개인의 삶의 중심이 잡혀야 됩니다.
개인의 삶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만드시고 우리의 중심이 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섬기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환경을 친히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생의 큰 착각인 것입니다. 인생은 사람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하나님이 인생의 중심이지 인간이 스스로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큰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을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자기중심으로 돌아서자 그 삶은 평형을 잃어버리고 그냥 기우뚱거리다가 나동그라지고 만 것입니다. 마귀와 죄, 세속과 질병, 저주와 죽음 속에 뒹굴게 된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중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에 섬기지 아니한 그것이 악이요, 고통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기우뚱거리는 사람이나 사물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로 2절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돌봐주기 때문에 평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주님 중심의 삶을 버리면 삶의 집을 세우는 것이 헛됩니다. 하나님 없이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로 행복한 집을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3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명예롭게 살 수도 없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고, 영광스럽게 살 수도 없습니다. 야웨를 버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서 15장 25절에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집을 세워도 하나님이 허시면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성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한국 속담에도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열흘 넘게 피어있는 꽃이 없고 십 년 넘게 가지는 권세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 자신의 힘으로 세운 세상의 권세와 부귀와 영화는 헛된 것입니다.
10세기 초 세계 최대의 나라였던 사라센 제국의 왕인 압둘라 라만 3세는 49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그의 1년 수입은 약 3억 3천 6만 달러 우리 한국 돈으로 약 4천억 원에 달했고 그의 부인 수만 해도 3,321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들만 616명을 낳았습니다. 아마 찾아와도 누군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한 말은 “오랜 세월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한 행복을 누린 날은 다만 14일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마누라를 3,321명이나 두고 아들을 616명이나 두고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며 호화찬란한 삶을 살아도 그에게 행복은 없던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물질과 환경으로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아도 내용이 없습니다. 야웨 없이 집을 세우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은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부호였던 카우센 역시 15,000개의 콘도와 수십 개의 빌딩을 소유했고 그 재산이 4억 4천만 달러 약 5,280억 원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그는 많은 재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에는 낙심하고 자살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5,280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재산관리에 너무 스트레스에 걸려서 자살해 버렸다. 무슨 내용이 있습니까?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도 자살할 수밖에 없는 그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가수 엔디 깁슨은 처음 음반을 냈을 때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얻었고 22살이란 어린 나이에 그레미상을 2번이나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불과 10년 후인 32살에 빚을 태산같이 진 채 쓸쓸하게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권세와 부귀와 명예로 치장된 인생이 아름답고 찬란해 보이지만 하나님 없이 세운 집은 허무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찬란해도 속이 없습니다.
허수아비 보십시오. 허수아비가 도리구찌 모자를 쓰고 멋있는 옷을 입고 밭이나 논에 이렇게 서 있지 않습니까? 보면 굉장하지요. 속에 들어가 보면 지푸라기밖에 없습니다. 내용이 없습니다.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은 그 속에 있어야 될 행복과 기쁨이란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입니다. ‘야웨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성을 지키는 일이 헛수고’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자기의 사업, 자기의 권력, 명예, 지위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없이 아무리 성을 지키려고 해도 성은 무너집니다.
시편 39편 6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45장 4절에 “또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이러하거늘”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 없는 인생이 교만하고 자랑할 것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와서 뽑아 버릴 수가 있고 작살을 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라는 것은 우리 한국의 역사를 보아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개최하고 국민소득이 만 불을 넘어 갑자기 큰 부자가 되어 잘사는 줄 알고 흥청망청했습니다. 그런데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어 올림픽 이후 과도하게 증가 된 소비와 거품경제, 안일한 한국 교회 이런 것들이 경제를 힘없이 무너지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IMF 당시 1997년 한해에만 도산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가 53,000개에 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 주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헛됩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애써봤자 무너지는 눈더미 같습니다. 인간의 힘쓰고 애써 세워 놓은 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 경제는 70년대 이후 가장 긴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됨으로 인해 하루에 평균 30개 내지 40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가구당 빚이 3,000만 원에 육박하고 체감경기는 최악에 다다랐습니다. 그 외에도 실업률의 증가, 실질소득의 감소 등으로 서민들은 IMF의 졸업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위기감에 쌓여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 이와 같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우리 믿는 자들이 부르짖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국가경영은 무너져 내리는 토성과 같습니다. 소리만 요란하게 냅니다. 성과가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오늘 우리 민족에게 주신 경고는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만과 교만을 떠나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됩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자국 군인들이 프랑스의 던커크에서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30만 대군이 독일에 포위되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을 때 전 국가와 국민이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로 그 30만 대군이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철수해서 영국을 구할 수 있는 큰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그들이 나고 난 다음 그때야 정신 차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장의 기반이 다 무너지고 모든 기업이 망하고 난 다음 그때 정신을 차리면 늦은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소 잃고 난 다음 외양간을 고쳐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잠에서 깨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국민을 두고 새로운 정치 시험을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경제가 가라앉고 삶이 고통스러운데 이것은 제켜 놓고 정치인들이 모여서 미래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 문제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내내 지나간 과거에 “네가 잘못했다. 너 잡아내겠다. 너 심판하겠다.” 이런 말만 하고 국민들은 현재 생활에 고통과 괴로움에 처해 있는데 내일의 희망을 주는 일을 안 하고 있으니 우리가 볼 때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세워 놓은 나라입니까? 우리 형제들이 눈물과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 가면서 건설한 나라가 오늘 우리 눈앞에서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 사이에 나라는 점점 터전이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정말 마음에 결심을 하고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언제까지나 침묵하고 요행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게 된 처지인 것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이어야만 하나님이 돌봐주시는 삶이 되고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개인과 민족에게 평강은 없습니다.
시편 16편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왜 요동을 합니까?
시편 128편 1절로 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이 같이 계셔야 복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난 다음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아무리 몸부림쳐도 형통과 복은 다 날아가 버리고 없는 것입니다.
한 학생이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 노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학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노교수가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선생님! 첫째 건강이고, 둘째 사랑이고, 셋째 물질입니다. 물론 그 외에 재능과 권력, 명예가 중요합니다.” 그 말은 들은 노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네. 내가 만일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누릴 수 없네. 마음이 평안해야 몸도 건강하고 사랑도 할 수 있고 물질도 쓸 수 있고 권력도 사용하고 명예도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평안이 없는 인생 속에 아무 성취도 이룰 수가 없네.”
개인뿐 아닙니다. 가정도 사회도 한가지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가정에서 하는 모든 일이 성취가 되고, 사회와 국가가 평안해야 일이 잘됩니다.
현재 우리는 평안합니까? 가는 곳마다 분열입니다. 어떻게 해서 가는 곳마다 정치인들이 우리 국민을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분열시킵니까? 남북이 분열되고 동서가 분열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분열되고 사상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분열되고 평안이 우리에게서 사라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염려와 근심을 하고 불안과 초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에 희망을 둘 수 없습니다. 내일이 아득합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이민가야 되겠다. 해외에 가서 살아야 되는데’ 하는 이러한 불안한 처지가 되니까 우리에게 무슨 성공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평안이 없는 곳에 아무런 성취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뒹굴게 됩니다. 우리가 왜 뒹굽니까? 오늘날, 경제적으로 뒹굴고 정치적으로 뒹굴고 사회적으로 왜 뒹굽니까? 왜 흑판에 뒹굴어 집니까? 그것은 중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뒹굴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중심이 잡혀야 되는데 중심이 흔들리면 뒹굴어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역사의 중심이신 하나님
둘째로, 역사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지으시고 그 역사의 중심이 되십니다. 역사를 다스립니다.
인간은 오만해서 인간이 역사의 중심이고, 역사를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의 내용이 뭡니까?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주체사상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교만과 오만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이 역사를 만듭니까? 그런 오만과 교만한 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중심으로 역사를 이끌어 나가면 반드시 패망하고 맙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 바벨탑의 교훈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광야에 와서 “우리가 탑을 쌓아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고 다시는 홍수를 면하고 흩어짐을 면하자.” 그래서 그들은 열심을 다하고 힘을 합쳐서 탑을 쌓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도 하나고 민족도 하나이니 거대한 능력이 나타나서 하늘 끝까지 쌓아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고 이 사람들이 민족도 하나고 언어도 하나니 이 하는 일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시니 그들은 협동이 안 되어 결국 탑 쌓는 것을 그치고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탑은 무너지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서서 하나님보다 높아진 탑을 쌓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어떠한 기업도 어떠한 국가도 하나님보다 높아진 탑을 쌓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의 역사는 바벨탑입니다. 사람이 역사를 주장하고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이 바로 바벨탑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50장 31절로 32절에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놓으리니 그 사면에 있는 것이 다 살라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세운 역사적 바벨탑, 인간중심의 역사는 패망했던 사실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를 보십시오. 그는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독일을 손아귀에 넣은 다음 온 구라파를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기가 주축이 된 제5공화국이 적어도 1천 년 동안 왕성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온 유럽을 초토화하고 유대인 6백만과 자국민 5백만을 죽인 비참한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 패전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권총 자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천왕을 신처럼 떠받든 일본 제국주의는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해서 온 동남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품었습니다.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침략하고 만주를 침략하고 온 동남아를 시산혈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대로 역사가 돌아갔습니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고 원자폭탄 폭격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는 막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야웨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인간중심으로 했던 공산주의도 똑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없다’라는 인식 아래 교회를 파괴하고 성직자들을 죽였으며 많은 사람을 배고픔과 고통에 몰아넣었던 공산주의, 그들은 하나님을 제켜 놓아 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으로 세계를 적화통일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70년 만에 비참하게 붕괴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중심의 역사는 실패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 역사에 나타났던 21개의 문명 중에 10국에 9국이 멸망했는데 그 중요한 원인은 무신론과 전체주의라고 말했습니다. 에코논 대학교수인 팅커스는 역사이래 21개의 문명이 있었는데 그 멸망원인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데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독재주의를 행하는 국가는 역사적으로 망했고 문화도 망한 것입니다.
우리 경계선의 북쪽에 있는 북한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교회를 훼파하고 성직자들을 강제 노동소로 보내고 독재 전제주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것은 과거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앉아서 웃고 계십니다. 인간이 어떻게 우주의 중심이 되며 일방적으로 역사를 지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은 그러한 도전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과거 역사 바벨론, 앗수르, 바사, 로마, 헬라등의 강력한 국가들은 그 당시 사람들 보기에는 영원히 지속할 것 같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중심의 역사를 추구한 결과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기억에도 지워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찰스 버자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반드시 모든 악을 완전히 분쇄시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국가나 역사, 인본주의적인 국가의 역사는 반드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국가가 주님 중심에 안 서면 정치, 군사, 교육, 경제, 문화가 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흐트러집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래도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 중 30%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중심추가 지금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추가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이 우리국민의 30% 이들이 흔들리는 우리 한국의 현실과 역사를 중심을 잡고 있는 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28절에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6편 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존귀하게 보고 모든 즐거움이 우리 성도에게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국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즐거움은 한국에 있는 1천 2백만 성도들에게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돌보아 주시고 우리 민족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로 13절 우리 다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 이만큼 잘사는 것은 이 나라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높여 주고 건져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나라와 민족은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웨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저녁에 늦게 누우면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노틀담 사원에서 대관식을 할 때 하나님을 대변하는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자 탁 빼앗아 가지고서 왕관을 자기가 머리 위에 썼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황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한이 아니라 내가 잘해서 황제가 되었다. 그의 아내 조세핀의 왕관도 자기가 씌워 주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황제로 등극하자 모든 권력이 그의 발아래 놓여졌습니다. 주위 나라들도 그 앞에 앞다투어 복종했습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오만이 더욱 극에 도달했습니다. 그가 러시아를 정복하려고 할 때 나폴레옹은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 차서 한 귀족 부인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습니다. 그때 그 부인은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그 일의 성취는 야웨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은 껄껄 걸 웃으면서 “계획도 내가 하고 성취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큰소리하고 소련 정벌에 나갔다가 패전하고 돌아와서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는 왕위를 빼앗기고 쌩떼헤르나섬으로 귀향을 가서 그 결과는 비참하게 죽고 말은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 스스로 역사를 주관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우주의 중심이신 하나님
셋째로,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요, 우주는 하나님이 다스리지 아무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103편 19절에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아름다운 천사장 루시퍼, 그가 우주를 뒤흔들려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아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루시퍼라는 천사장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반역해서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아 오늘날 사탄이 되고 그를 따르던 천사들은 모두 다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좇아 장차 우주를 상속으로 줄 존재를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주실 때 장차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에게 우주를 상속으로 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자 타락한 사탄이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서 우주를 상속으로 주려고 하니 자기가 도모하던 것을 아담과 하와가 가질 것을 생각하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뼈가 쓰리니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 반역시키도록 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자기가 시도해서 못한 것을 이제는 아담과 하와에게 꾀어서 또다시 하나님께 벌 받게 하려고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꾀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마귀가 쫓겨난 것처럼 그들도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사탄과 달리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탄은 스스로 타락했지만, 아담과 하와는 꾀임을 받아서 타락한 것입니다. 스스로 타락한 자는 돌이킬 수 없지만 꾀임을 받은 자는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지만,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게 꾀임을 받아 타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다시 돌이키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을 구하기 위해서 창조주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에 대한 정당한 심판으로서 사형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정의와 사랑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에 하나님이 심판은 심판대로 받고 그다음에는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해서 사랑을 베풀어서 구원을 또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심판받고 살아날 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요,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심판을 받아 죄를 다 갚고 또 살아날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대신 짐을 짊어지시고 심판을 받아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는 심판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의 손길은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판과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당신을 사랑하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을 데리러 곧장 오십니다. 주님 오실 날이 우리 상상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세상에 돌아가는 형편이 그리스도의 오실 날을 암시적으로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8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바울선생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살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주를 상속으로 주실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이 우리가 장차 체험할 하나님이 만드신 새로운 계획인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동안 이 세상에서 염려, 근심할 수밖에 없으나 앞으로 다가올 세계는 너무나 영화롭고 찬란하고 소망 찬 곳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 되시고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누구도 만왕의 왕, 만주도 아니며 우주의 주인도 아니고 우주의 중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 기대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에 반드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주와 만물, 역사와 나라들, 개인과 인생의 중심은 반드시 하나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도 중심이 아니요, 인간도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요, 역사의 중심이요, 인생의 중심인 것입니다. 사탄과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박탈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하나님을 떠난 집짓기, 하나님을 떠나서 성취하려는 것은 다 헛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될 때만 우주도 역사도 인간의 삶도 중심이 잡히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안정되고 평안하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복된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동남풍도 불고 서북풍도 불어옵니다. 가시밭길도 지나가고 험산 준령도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심이 확실히 잡혀서 우리 마음속에 평안과 믿음이 굳건하게 서면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이 잡히지 못하여 내동 그라지면 둥근 곳에서 떨어진 곳에는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의 늪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중심으로 섰으면 아버지 하나님께 절대복종하고 절대 믿고 의지하며 우리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돌보아 주십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중심이 흐트러지면 거꾸러지고 넘어집니다. 뒹굴고 맙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개인도 중심을 바로잡고 사회와 국가도 중심을 바로잡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국가가 중심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고 뒹굴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중심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하루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우리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