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버려야 얻는다

by 삶의언어 posted Jun 08, 2024 Views 21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신앙성숙
예배드린 날 2004-10-03
오늘의 성구 마가복음 10장 28절로 3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TgRStCqK-s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버려야 얻는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세상적인 가르침은 ‘움켜쥐어야 얻는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위하여 버리면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은 마귀의 꾀임에 빠져 탐욕을 버리지 않고 움켜쥔 결과로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에덴동산도 잃어 버렸습니다. 마귀의 가르침대로 탐욕을 움켜쥐면 하나님 자리까지 취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세계 최대의 부호로 꼽히는 록펠러는 중년의 나이에 사업에 쏟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 등에 시달리며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담당 의사로부터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게 되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인생 철학은 오로지 나를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 그것이 그의 인생 철학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었습니다. 욕심중심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돈을 위해서 살았고 그 많은 물질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고 회개한 후 자신의 인생철학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해서 내 자신을 비워버리겠다. 그래서 대학과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선교사업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비우고 물질을 사용하자 사형선고를 받도록 악화되었던 건강이 회복되어 청춘이 되살아나고 무려 98세까지 장수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4,928개의 교회와 24개의 대학을 세웠습니다. 한 사람이 한재벌이 약 5,000여개의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24개의 대학을 세웠다고 하니 어마어마합니다. 수많은 복지센타를 설립했고 자선사업에도 7억 5천만 불 약 9천억 원을 기부해 지금까지 사회사업에 투자한 금액으로는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123만 원을 2천 년 동안 매일 지급한 것과 같은 금액입니다. 록펠러 재단에서는 지금도 매년 1만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그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 중에 무려 6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가 된 것입니다. 그가 물질에 잡히고 욕심에 잡히고 탐욕에 잡혔을 때는 그의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취하고 취하고 취하려고 했지만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살게 될 때 하나님은 생명도 건강도 축복도 행복도 돌려 주셨던 것입니다.


[본론]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버림으로 얻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가 고향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버렸을 때 가나안땅을 주었습니다. 고향 전토 친척 아비집도 가지고 가나안땅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라고 할 때 버려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조카와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왔는데 목초지는 적고 아브라함의 짐승 떼와 조카 롯의 짐승 떼는 많아서 서로 목초지를 많이 점령하고 물을 많이 점령하기 위해서 목자끼리 싸웠습니다. 삼촌의 목자들과 조카의 목자들이 싸워서 애싸움이 어른싸움이 되어서 삼촌과 조카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조카 롯을 친자식같이 애착을 가졌습니다. 자식을 못 낳았으니 조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식처럼 애착을 가졌으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조카를 버리기로 작정하고 삼촌의 특권도 버렸습니다. 조카를 불러서 “야! 이제는 너와 나와 헤어지자. 여태까지는 내가 너를 내 친자식처럼 애착을 가졌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다투지 말고 헤어지자. 내가 삼촌으로 먼저 땅을 점령할 수 있지만 내 특권을 양보한다. 네가 동이라하면 나는 서로 가고 네가 남이라하면 내가 북으로 갈테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 조카가 저 요단 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니 물도 넉넉하고 초지가 많은지라 그곳을 택하고 아브라함은 홀로 산지에 남았습니다. 그때에 버림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6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라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출발할 때부터 조카를 버리라고 했는데 그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잡고 있을 때는 논쟁밖에 없었습니다만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100살에 낳았으니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이제 이삭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자고 일어나고 먹고 마시고 같이 일하고 같이 여행하며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려와 잡아서 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려라.” 친 아들에 대한 애착심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려라! 기가막힌 일입니다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100살 나이에 낳은 아들을 그것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잡아서 ‘각을 떠서 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려라’는 말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올라가 장작을 피워놓고 그 아들을 묶어서 얹어 놓고 머리를 발로 밟고 칼을 들어서 경동맥을 자르려고 했습니다. 예컨대 이미 아들을 버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그리고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에 말씀하기를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아들을 버림으로 도로 그 아들을 얻고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말하기를 “헌신은 자기에 대한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의 소유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로 보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버리지 않고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비워 버리고 떠날 때 하나님은 새로운 축복과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버림으로 얻으셨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버림으로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도 다 소유하고 그 영광도 다 소유하면서 세상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버려야 얻습니다.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보좌를 버려야 했습니다. 영광을 버려야 했습니다. 하늘을 떠나서 이땅에 천하디 천한 종의 모습으로 와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목숨을 버림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로 2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때 마귀가 와서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라도 구복을 먼저 채워라. 그때 예수님은 식욕을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위해서 식욕을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구복을 채우는 것을 버리고 말씀을 택했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얻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로 4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주님은 가장 근본적인 육체의 요구인 식욕을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택했습니다.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히 그리스도를 하나님 말씀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는 마귀의 시험을 당했을 때 명예욕을 버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취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귀가 그를 높은 성전의 꼭대기 위에 세우고 뛰어 내려라!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서 너 발을 받들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 네가 뛰어 내리면 성전에 예배드리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고 박수갈채를 하고 너를 받들고 명예를 줄것이 아닌가! 사람은 다 명예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보면 예수믿는다고 하면서도 명예를 얻기 위해서 우상의 정각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우상에 절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명예를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태복음 4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그는 명예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마귀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높은 산꼭대기에 데리고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다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 했습니다. 요사이 오늘날 사람들이 부귀, 영화, 공명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하나님도 등 뒤로 제켜 놓고 세상을 따라 절하는 사람 많잖아요. 예수님은 단호하게 부귀, 영화, 권세욕을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의 권능을 얻은 것입니다. 버려야 취할 수 있습니다. 버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버리지 아니하고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심으로 인간에게 주실 위대한 축복을 획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안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헬라로 도망칠 수도 있었고 타협할 수도 있었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열두영도 더되는 천사를 보내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생명을 버리지 못합니다. 버려야만 얻습니다. 버리지 않고는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것처럼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버려야 우리 인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심으로 우리에게 용서와 의와 평화를 얻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제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게 된 것은 예수님이 목숨을 십자가에서 버렸기 때문에 그 대가로 우리에게 구원을 얻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목숨을 버려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하게 되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같이 버림받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영이 와서 거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생명을 십자가에서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얻어 맞으셨습니까? 로마 빌라도의 뜰에서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얻어맞고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건강을 버렸습니다. 평안을 버렸습니다. 온갖 고통과 질병을 모두 짊어졌습니다. 자기를 버려 고통을 짊어지므로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을 선물로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런 은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그분이 벌거벗고 매달렸으니 얼마나 수치와 곤욕입니까? 하나님 앞과 천사 앞과 마귀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했습니다. 저주 받은 자가 나무에 매달리지 왜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를 받았습니까? 왜 자기를 저주에 내주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버려야 남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저주에 매달아야 저주받은 사람에게 복을 줄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에서 해방되고 복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당신을 저주에 내던져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지내어 사흘 동안 무덤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으면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당신을 버림으로 우리를 획득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버렸기 때문에 우리를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 보좌를 떠났기 때문에 우리를 하늘보좌까지 데려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신 것은 주님이 보좌를 버리고 땅에 왔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보좌까지 데리고 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버리지 않고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의 자리를 얻으셨는데 자기를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좌 우편의 높은 자리에까지 예수님을 높여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11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여서 영광의 보좌에 위대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버려야 얻습니다. 떠나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버려야 얻는다
우리도 얻으려면 버려야 합니다. 다 취하고 끌어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얻으려면 버려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28절로 31절에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이지 나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복음을 반대하여 가정에서 쫓아냅니다. 부모를 잃고 처자를 잃고 형제를 잃고 혹은 전토를 잃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백배나 보답해 주며 핍박을 겸하여 받고 천국에 못 올라 갈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내가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백배나 갚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세상과 마귀를 버려야 합니다. 세상과 마귀도 끌어안고 천국도 끌어안겠다. 불가능합니다. 세상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를 버려야 합니다. 세상을 버리라고 하니까 종로를 버리고 강남을 버리라 그 말은 아닙니다. 이 세상 정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정신이란 하나님 없는 것이 세상 정신이요, 이 세상 정신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 욕심과 탐욕을 따라가는 것이 이 세상의 정신이요, 음란과 부정과 부패와 사리사욕 이러한 세상적인 풍습과 풍토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천국을 함께 갖지 못합니다. 세상을 버려야 천국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마귀를 동시에 섬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마귀와 하나님을 동시에 섬깁니까? 나는 일본에 가서 가끔 너무나 놀란 것은 성도의 집에 갔는데 마당에는 탑이 있고 방안에는 대청마루에 가미다나가 있고 안방 문갑 위에는 성경이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믿으면서 저 탑을 세워놓고 가미다나를 붙여 놓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가지냐니까 “목사님 요즘에는 UN총회에 가면 온 세상 사람이 다 함께 모여 가지고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데 영의 나라에도 UN총회같이 하면 되잖아요. 부처도 오고 신도도 오고 주님도 와서 함께 의논해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것은 절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마귀를 동시에 절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버려야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하나님과 같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6장 14절로 18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마귀와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없고 성전과 우상이 같이 하지 못하고 어두움과 빛이 같이하지 못하고 안믿는 사람이 사는 방식과 믿는 사람이 사는 방식이 일치되어 같이 멍에를 메고 함께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 세상을 버려야 하나님과 천국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 황해도에서 금광을 하던 한 부자가 금괴를 잔뜩 싣고 서울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배가 인천부두에 도착할 무렵 그만 풍랑을 만나서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 부자도 바다에 뛰어 들려고 했는데 도저히 싣고 온 금괴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주섬주섬 금괴를 모두 다 허리에 찼습니다. 한 짐 허리에 차고서 물속에 뛰어 들어간 이후로 다시 솟아오르는 것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금과 함께 영원히 가라앉고 만 것입니다. 탐욕은 이와 같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물질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도 얻지 못하고 멸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탐심과 욕심을 버려야 하나님도 얻고 축복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마귀의 하는 일과 정반대인 것입니다. 마귀는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탐심을 버리고 있는 것도 빼앗고 사기 치고 부정부패하고 해서 움켜쥐면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되어 흔들어 눌러 넘치게 하여 안겨 주리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비워 버릴 때 하나님은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만고불변의 원리인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버려야 주님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에 서서 주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중심에 서서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데 주님이 손님으로 와서 ‘이것 도와주세요. 저것 도와주세요. 마당 소재하는데 도와주세요. 설거지 하는데 도와주세요. 살림하는데 도와주세요 합니다.’ 무슨 주님이 종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자기중심에 서서 자기의 생활에 자기가 주인 노릇하면서 주님을 손님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주님이 와서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와서 도와주려면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주님이 주인이 되면 주인이 내 생애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내 집안에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면 내 집안 대소사를 주님이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내 사업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주님이 사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라. 그러면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 노릇하며 주님을 손님으로 모시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야웨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고 손님으로 모셔 놓으면 야웨께서 집 짓는데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야웨께서 주인이 되지 아니하면 성을 지키는데 손님으로 와서 성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집도 주님이 지으시고 성도 주님이 지키시고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이 주인이고 나는 주님을 섬기는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입니다. 종이 주인이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봄 같이 주님을 섬기고 바라보면 주님께서 일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짐을 짊어져 주시고 주님께서 채워 주시고 주님께서 열매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주인이되시면 그 주인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주인은 여러분을 기르는 목자인데 그 주인의 손에 지팡이도 있고 막대기도 있습니다. 지팡이는 인도하는 것이고 막대기는 원수를 쳐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지 우리가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인도를 하고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인이 그 손에 지팡이 들고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막대기 들고 원수를 쳐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인 목자가 될 때 그렇게 하시지 손님으로 있으면 지팡이와 막대기를 쓰지는 않습니다. 주인이 아닌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주여, 주여 하면서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결코 그의 생애 속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노릇하고 주님을 손님으로 모셔 놓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험을 당하고 고통 속에 괴로움을 당하고 깨어지고 난 다음에야 이 진리를 깨닫고 ‘주여 나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고통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좋을 때는 언제나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서 자기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는 것도 내가 주인이 되어 사업을 하면서 ‘주여 와서 도와주옵소서’ 하는데 주님이 심부름꾼입니까? 종입니까? 주여 이 사업이 주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사업을 하시는데 ‘주님이시여 나는 주님의 심부름꾼입니다’고 하면 주님이 책임지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지난 3월 28일 순복음가족신문에 실린 강동석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30년 전에 한 호텔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이사가 될 때까지 올라갔지만 IMF때 호텔이 토지공사에 매각되는 바람에 실업급여를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후 토지공사 측에서 그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해왔습니다. 호텔 지분의 절반을 주는 대신 다른 어떤 후원도 없는 조건으로 파산한 호텔을 운영해 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만년 적자에 후원도 없는 호텔을 경영할 자신이 없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호텔을 경영할 때 내 호텔이 아니고 하나님 호텔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써 호텔을 경영할테니 이 호텔을 맡아도 괜찮습니까?”
주님이 마음속에 ‘Okay. 맡아라.’ 그래서 막상 호텔에 가보니 두 달간 영업이 정지되었던 호텔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운동복을 입고 나가서 호텔을 손수 소재하고 정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실을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호텔경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도 오지 않고 호텔은 텅텅비고 경영은 엉망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결단하고 매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소나무 숲에 들어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호텔 내에 신우회를 조직해서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전 종업원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이 호텔은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기업을 하나님이 운행하십니다.” 하고 전부 고백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주말에는 모든 객실이 동이 났고 평일 투숙객이 배로 늘어서 매출이 늘면서 적자경영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경영을 하시는데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후로 벌어들인 수익금은 선교사업에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니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호텔을 경영하면서 기독교적인 색채를 그렇게 드러내면 영업이 안 될 것이라고 해서 그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호텔을 경영하게 된 것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주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종이니까 주인이 시키는 대로 나는 합니다.” 지난 9월 한반도에 많은 피해를 주었던 태풍 매미가 지나갔을 때도 호텔 주변 일대가 정전이 되어 암흑으로 변했지만 집사님의 호텔은 30년 된 낡은 발전기라도 있어서 환하게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태풍의 피해로 주변 숙박시설의 영업이 불가능했지만 그의 호텔은 안전하게 주님이 지켜 주셔서 해를 받지 아니하고 인양작업을 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숙소에 들어와서 더 많은 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안 되는 것이 되는 것이요,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호텔은 흑자에 아름답게 운영되어 간다고 그는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 놓으면 하나님이 우리 일을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짐을 짊어지십니다. 손님이 우리 일하고 손님이 우리 짐을 짊어져 주지 않습니다. 주인이 합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때 그다음부터 주인인 주님이 나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됩니다. 부모도 처자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가증한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말했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눈에 보이는 우상만 우상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로 39절 우리 다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자기 목숨에 애착을 가지고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내 것이다. 나는 양보 못한다’고 하는 이 사람은 종국적으로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나의 것을 다 비워 버리고 나의 것을 주고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오히려 살려 주시고 내가 잃으면 오히려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놀라운 법칙입니다. 움켜쥐면 하늘나라는 잃어버립니다. 놓아 버리면 하나님께서 돌려주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물질을 얻습니다. 물질을 얻고 싶은 사람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물질을 버리라는 말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데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 욕심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다같이 유럽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간 사람은 하나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유럽에서 핍박을 피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건너간 미국 사람들은 미국에 건너가서 하나님도 찾고 돈도 찾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똑같은 유럽인이 남미로 갈 때에 그들은 황금을 찾으러 갔습니다. 황금도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남미는 오늘날 지극히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먼저 찾으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섬긴다고 말했습니다. 소유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재물을 안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지가 동전 하나 가지고도 동전을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우리가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린 증거가 뭡니까?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 헌물을 드리라는 것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십일조 안 드리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물질에 대한 욕심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을 소유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는 것을 하나님께 증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물질을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로 10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질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물질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질이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 때 하나님이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쓰면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일을 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스탠리 템이라고 하는 플라스틱 회사 사장이 있었는데 이분은 1970년도 후반에 부도를 맞아서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원래 어릴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나갔고 장성해서는 교회 집사까지 되어서 교회를 다녔으나 그가 파산하고 회개할 때 하는 말이 “나는 여태까지 교회 다녀도 형식으로 다녔다. 돈이 나의 하나님이고 돈이 나의 주인이었고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나가면서 십일조도 드리지 아니하고 헌물도 드리지 않고 선교 헌금도 내지 않고 그저 교회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을 자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회개하고 새벽기도회 나가서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일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제 수입의 50%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다시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10분의 1만 드리라고 했는데 10분의 5를 주님께 드리겠다고 그는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 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재기할 수 있었고 약속대로 10분의 5를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는데 온 가족들도 반대하고 사원들과 친구들이 “너 이래서 사업 못한다. 수입의 10분의 5를 하나님께 드리고 네가 어떻게 사업을 하겠는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나는 돈을 사랑하다가 망한 사람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기 때문에 다시 돈에 탐욕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10분의 5를 하나님께 드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는 일마다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사업가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실업인들 모아놓고 이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신다는 간증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릴 때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서 탐욕을 쫓아내어 버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물질을 맡겨 주는 놀라운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타락한 인간에게 마귀가 뼛속에 사무치도록 심어놓은 것은 탐욕입니다. “움켜쥐어라. 빼앗아라. 소유하라. 무엇이든지 욕심을 내어 움켜쥐면 네 것이 된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 전쟁이 끝나지 아니하고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좇아서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날 것은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등지고 마귀를 등지고 욕심을 버리고 탐심을 버려라. 그리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이 너의 일을 해주시고 너의 짐을 짊어져 주시고 하나님이 친히 너를 돌보아 주신다. 붙잡아 주시고, 채워 주시고 열매 맺게 해주시겠다. 우리는 안심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행복하게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마귀의 거짓 가르침에 아담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고 빼앗으려고 하다가 영원히 버림받은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어떠한 꾀임도 다 물리치고 버리고 세상과 마귀를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하늘보좌까지 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마귀의 말을 듣지 말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버리라는 세상과 마귀를 버리고 떠나라는 욕심과 탐심을 떠나고 하나님 섬기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