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의심과 두려움은 항상 생긴다

by 삶의언어 posted Jun 17, 2024 Views 1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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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마음/생각
예배드린 날 2005-02-13
오늘의 성구 여호수아 1장 5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1XSfzW7AxuA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장 5∼9절

“믿으면서 안믿고, 안믿으며 믿는 것이 신앙”
“강하고 담대한 마음에 하나님의 응답 임해”
“태산같은 의심 중 겨자씨만한 믿음 가져야”

어느 전쟁터에서 장군이 두 병사를 불렀습니다. “너희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적의 상황을 정탐하고 오너라” 그런데 두 병사 중에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장대하며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장군의 명령을 듣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왜소하고 얼굴이 창백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그를 보고 웃었습니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적진을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건장한 병사는 늠름하고 담대하게 자기가 본 사실을 장군에게 보고 했지만 나약했던 병사는 겨우 정보보고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웃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오히려 이 연약한 사람에게 가서 등을 두드려 주면서 “너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다. 너는 천성적으로 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허약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이를 극복하고 나가서 의무를 다했으니 너야말로 훌륭한 병사다”라고 칭찬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다룬 책 ‘예수 지하철을 타다’를 쓴 일본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신앙은 본래 99%의 의심과 1%의 희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좀 과장된 표현같지만 사실입니다. 신앙이란 많은 의심 가운데서 조그만 믿음의 불빛을 가진 것입니다.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금을 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돌덩이 가운데서 조금의 금을 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없이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장군되신 예수께서 우리를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역시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면 굉장히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요, 훌륭한 분으로 칭찬하지만 실제로 그 생애를 보면 신앙이 나약하고 의심이 많고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가나안 땅으로 나왔습니다. 큰 기대 속에 가나안에 오면 하나님의 축복이 강물처럼 넘실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나안에 대기근이 다가왔습니다. 물은 없고 풀은 다 마르고 짐승떼들은 굶어죽고 종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조카 롯은 밥 달라고 울고 아내는 당황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가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주고 복주며 창대케 하고 창대케 하리라는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기 생존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는 환경을 바라보고 나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자기 생각대로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으로 부르는 등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의심이 많고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수모를 당하고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매 하나님이 그를 다시 복구시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온 지 10년이 지나 85세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합니다. 자녀가 없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밤하늘의 별들처럼 후손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갈을 첩으로 맞이해 후손을 이으라는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그의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 약속위에 서서 나갔더라면 오늘날 중동지역의 비참함을 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불신앙으로 오늘날 중동이 화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조그만한 믿음을 붙잡았기에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믿음이 흔들릴 때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인생에 비바람이 몰아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시련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 크리스천이 의심의 성에 갇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심의 성의 성주인 절망의 거인이 크리스천을 심하게 괴롭힙니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 가운데서 기도한 크리스천은 하나님께 약속의 열쇠를 받습니다. 비록 의심과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열쇠로 모든 문을 열고 의심의 성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생 가운데 수많은 고난이 닥치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의심하고 두려워한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의심과 두려움으로 떨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밤바다에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담대하게 ‘주시여든 나로 물위로 오라고 명하소서’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렁이는 물결과 바람을 보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게 되자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지신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며 믿음 없음을 질책하셨습니다.
 말씀을 의지할 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의심할 때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위를 걸을 때나 물 속에 빠졌을 때 환경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베드로의 마음만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물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의심할 때 물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불안, 공포, 절망으로 발버둥을 치고 안절부절하면 마귀에게 무너저버립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의지하고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과 안드레를 보십시오. 둘 다 위대한 믿음의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군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빌립은 광야라는 현실만 보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제자인 안드레는 의심을 하면서도 그 마음속에 작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며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믿음에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믿음이란 영적 전쟁이다.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일입니다. 금요철야기도 때 모 대학교 한 학생이 기도받으러 왔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심한 위궤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치료도 받을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듣고 병자를 위한 기도 시간에 ‘믿습니다’하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곧 ‘목사님, 지금 기도를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안믿어지네’라고 통곡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청년의 절규가 귀에 울립니다. 입술로는 믿지만 마음으로 안믿어집니다. 이것이 인간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믿으면서 안믿고 안믿으면서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끊임없이 두가지 속에서 갈등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절에는“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의심과 불안이 공격해 올 때 우리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단호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5절로 9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의심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첫째, 말씀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 폭풍우가 오더라도 말씀을 의지하면 떠내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92절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했으며, 예레미야 23장 29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의심이 없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서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억하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이기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와 성령 충만입니다.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절대로 거짓이 없습니다. 주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기도해야 그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 마음을 굳세게 하고 담대히하라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수록 마음을 굳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1장 8절에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것은 여러분 마음의 결심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흔들려서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해외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수만명 혹은 수십만명 혹은 백만명이 모이곤 합니다. 말씀을 증거하고 결신기도를 한 후에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마다 언제나 저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했을 때 한 사람도 병고침 받았다는 간증이 없으면 하나님 망신, 조용기 목사 망신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성령께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을 듣고 눈에는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들려도 담대하게 나갈 때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넷째 의심과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수앞에서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왔을 때 사울과 그 역전의 용사들은 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혼비백산했습니다. 골리앗이 와서 이스라엘에 대항할 사람 보내라고 할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40일 동안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공갈하는데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들은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때에 초립동 다윗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분노로 가득해서 사울 왕에게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어떻게 할례받지 않은 저 이방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까?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울 왕은 다윗의 행동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골리앗이라는 환경을 보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가면 입에서 빼앗고 달려들면 주먹을 쳐서 죽였으며 사자와 곰도 내 주먹에서 죽었는데 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사자와 곰 중에 하나같이 되리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 사람이 어린 소년이든 장년이든 강하고 담대함이 없으면 하나님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마귀가 언제나 우리에게 빼앗는 것은 강하고 담대함을 빼앗고 불안과 의심과 공포와 좌절감을 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하여 나가겠다고 하니까 사울왕도 장군들도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목자의 옷을 입고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갔는데 무엇으로써 싸워서 이기겠습니까. 입심으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의심과 불안과 공포와 싸울 때 입심으로 싸워야 됩니다. 입심이 약하면 집니다. 입술의 고백이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 열사람 중 여덟사람이 기도하고 믿습니다로 나갔다가 다 넘어지는 것은 마귀와의 입씨름에서 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망했다’라고 말하면 항복하므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기도하고 믿었으면 강하고 담대하게 입으로 고백하고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가면서 골리앗과 입씨름에서 이겼습니다. 다윗의 입심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들어보십시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담이 서늘한 말을 했습니다. 다윗의 입술의 고백이 벌써 골리앗의 마음을 쥐어 흔들었습니다. 마귀의 싸움에는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입심이 약하면 안됩니다. 내 말로 네가 묶였으며 내 말로 네가 사로잡혔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의심과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려면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담대한 말씀을 고백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입심이 약하면 밤낮 마귀에게 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전쟁에 입심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야 되고 기도와 성령을 의지해야 되고 그리고 강하고 담대해야 되고 마지막으로 입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같이 담대하게 입씨름에서 이기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가서 물맷돌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대승리를 가져오게 했지 않습니까?
 오스틴 딥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그의 꿈에 마귀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딥! 너는 평생 동안 내 일을 방해한 나의 원수다. 너는 지금 병이 들고 힘도 없고 죽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내가 너를 복수할 것이다. 너를 끌고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딥 목사님은 오히려 마귀에 호통을 쳤습니다. “마귀야! 네가 한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 너는 나에게 손가락 하나도 댈수 없다”
 그러자 마귀가 돌아서더니만 바로 사라지더랍니다. 입심으로 이겼습니다. 죽는 자리에 마귀가 다가왔을 때 입씨름으로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매고 풀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입술의 고백으로 매고 푸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 외에는 그 영혼 속에 의심과 두려움과 괴로운 싸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과연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돌보실까?” 끊임없는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과 초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주여. 믿나이다. 아이고 안믿어지네” 그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께 온 아버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 가서 기도하고 난 다음 제자들하고 내려오니까 그 아버지가 뛰어나와서 “주님이여, 내 아들이 흉하게 귀신들려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던져집니다. 내 아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무엇을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그때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니 그 아버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아이고 안믿어지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 금새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가 하면 또 없고 없는가 하면 또 있습니다. 믿는다하면 또 안믿고 안믿는가 하면 또 믿는 것입니다.
 채광하는 곳에 가보십시오. 금이 있는 곳을 파헤쳐서 수많은 바위덩어리를 깹니다. 그 가운데 조그마한 금덩어리 하나가 있습니다. 금덩어리 하나를 귀하게 여겨서 그 많은 바위를 파헤쳐 내어 놓는 것입니다. 바위 때문에 채광하는 사람이 불평하지 않습니다. 금을 발견한 것을 기뻐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산더미만한 불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그마한 금덩어리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앙의 그 바윗덩어리를 보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조그마한 금같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크면 좋지요. 믿음이 사과만하다. 수박만하다. 혹은 오렌지만하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의심이 태산같아도 조그만한 믿음만 있어도 즐거워하십니다. 내 마음속에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지라고해도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것은 여러분의 의심이 아니라 의심 가운데 있는 반짝하는 조그마한 믿음 그것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그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안믿으면서도 마음속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안믿으면서도 믿고, 믿으면서도 안믿는게 인간의 참 모습이지만 작은 믿음이라도 고백하면 하나님이 이를 귀하게 들어서 여러분의 생애 속에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의심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의심이나 불안이나 공포나 좌절이나 절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조그마한 불빛인 믿음이 있는 것을 주님은 보고 즐거워 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태산을 옮기는 기적을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믿음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있는 것을 찾아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적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서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께 굳세게 기도하고 성령께 의지하게 도와주시옵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도와주시옵시고 말씀의 고백으로 이기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삶 속에 마귀를 이기고 믿음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을 붙잡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