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by 삶의언어 posted Feb 23, 2024 Views 9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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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신앙성숙
예배드린 날 2005-07-03
오늘의 성구 요한복음 15장 1절로 8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2THebeTdNr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장 1∼8절


그리스도는 포도나무, 우리는 그에 접붙임 받은 가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잎과 꽃 열매 맺을 수 있어
주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은혜 쏟아져


 포도 밭에 가면 농부가 포도나무 줄기에 붙은 가지를 길게 나무나 철사로 만든 줄 받침대에 묶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포도열매는 포도나무가 맺는 것이 아니고 줄기에 붙은 가지에서 맺습니다. 그 때문에 농부는 가지를 잘 손질하여 받침나무에 묶어 놓아 열매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주렁주렁 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포도밭의 농부시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시요 우리는 그 줄기에 붙은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가지에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지만 잎과 꽃이 피고 열매맺는 곳은 바로 가지입니다. 즉 우리 성도들이 바로 그 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 포도의 열매를 맺는 곳이 바로 성도들의 삶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잎도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영존하시지만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1.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려면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포도나무인 교회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증거로 몸인 교회에 등록을 하고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가 되고 물로 침례 받고 성찬예식에 참여하고 십일조 드리고, 성수주일하고 신앙생활을 함으로 몸 된 교회 내에서 교통이 있을 때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가지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혼자서 예배드리고 천당 간다고 그러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청년 한 사람이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떠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교회 출석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예배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이 저녁에 그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앉아서 가만히 불이 타는 석탄불 화로를 바라보고 계시다가 불집게로 석탄 하나를 드러내어서 밖에 내놓았습니다. 청년은 의아하게 목사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꺼내논 석탄이 하얗게 되고 곧 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화로 안에 있는 석탄은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청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청년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알았습니다. 목사님! 나 혼자 교회밖에 나오면 신앙이 꺼져 버리지만 교회에 들어가 있으면 함께 성령의 불꽃 가운데 신앙이 활활 타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이 함께 계신 곳입니다. 이곳에 있어야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가 들어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몸만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예수님 안에 있어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불순종하면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들어가 있고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종과 순종을 통해서 주님의 몸 안에 들어와 있고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하여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더 빨리 금을 캘 욕심에 그들은 서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자 말들이 지쳐 쓰러졌고 사람들도 하나 둘 쓰러져갔습니다. 운 좋게 목적지에 닿은 사람들 역시 그동안 쌓인 피로로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좇아서 복음을 전하러 온 청교도들 중에는 한 사람도 병들거나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달려오다가도 주일이면 마차를 멈추고 주님께 예배드리며 주일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육적으로는 쉼을 얻고 영적으로는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생명을 공급받아 영육 간에 강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일 하루를 쉬면서 주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지로서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야 예수님 안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순종할 뿐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불신앙을 가지면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만만하여 지위도 명예도 돈도 권세도 있고 청춘이 있으면 자기를 믿고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붙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게 하기도 하고 낙심하게도 하고 병들게도 합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그 몸에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늘 괴로웠습니다. 바울선생은 연약했으나 주님께서 그 연약을 옮겨 주지 아니하시고 연약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늘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서 예수님 안에 있게 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섬기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섬김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나를 섬겨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앞뒤가 바뀌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주님이요,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인이 종을 섬기지 아니하고 종이 주인을 섬기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영적으로 예수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도는 영적인 호흡과 같습니다. 사람은 4분 정도 숨 쉬지 못하면 죽습니다. 영적으로도 기도하지 아니하면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오고 난 다음 한주일 내내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신앙은 형식화되고 의식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우리 영이 살아서 몸 된 교회에 소속하고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로서 포도나무 대신 주님께 붙어 있으려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파이프는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령충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하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꺾이는 이유

 

 많은 사람이 꺾어진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말라가고 있고 개인의 신앙생활이 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라 비틀어진 성도가 된 이유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꺾어지는 이유는 탐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음에 탐욕이 들어와서 주님 중심에 서지 않고 자기 중심에 서면 포도나무 원줄기에서 꺾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면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개화초기 중국 교회들의 잘못중 하나는 아편장사로 돈을 모은 사람들이 교회의 중요한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중국에서 돈을 모은 것은 대개 아편과 관련된 사업을 해서 돈을 번 것입니다. 중국 부자 태반이 아편사업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장로였습니다. 뒤로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아편을 팔아 돈을 벌면서 겉으로는 거룩한 척 교회에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 결과 중국교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공산주의라는 파도에 휩쓸려 질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시대에 러시아 교회는 국가 재산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 탐욕에 빠져서 타락하는 것이 그 당시에 성직자들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 교회도 공산주의라는 회오리에 말려 무려 70년 동안이나 교회의 문이 닫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교회가 탐욕에 빠지자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꺾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로서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탐욕을 멀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탐욕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면 가지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꺾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가지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꺾어진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사야 13장 11절에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섬기고 자기를 찬양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이 앞서면 패망하고 맙니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교만하고 영존한 존재는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교만해져서 자기의 지위를 가지고서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하고 말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넘쳐나는 것이지 교만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높아지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서 흘러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낮아져서 하나님께 엎드리면 은혜가 자꾸 채워지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불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꺾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0절로 21절에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요, 내가 동의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요, 내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따라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믿어야지 불신하면 주님께로부터 떨어지고 꺾어진 가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 때문에 우리는 주님에게서 꺾어질 때가 많습니다.
 천사장 루시퍼나 아담과 하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이와 같은 죄 때문에 쫓겨나고 망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로 19절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지 않거나 불순종하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꺾어진 가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할 때에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수준에서 하나님의 수준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 하겠다’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고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꺾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알지 못해도 무조건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고 믿고 보면 나중에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고 믿겠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으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믿고 순종하면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알고 믿고 순종하겠다면 벌써 때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하고 믿고 순종하면 뒤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나중에 보여 주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하지 못합니다.

 

 3.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우리가 교회에 와서 등록하고 세례받고 성찬떼고 십일조 드리고 성수주일하고 몸 된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영적으로 기도하고 성령충만해집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붙어 있으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생깁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꽉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단 주님 손에 들어오면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주의 손에서 빼앗아갈 힘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절망에서 절대희망을 가져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종국에 가서 좋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주시니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포도나무에 꽉 붙어 있으면 포도나무로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은혜가 쏟아져 내려와서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어 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주님의 은혜는 오직 포도나무를 통해서만 가지인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밖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은혜를 주신다고 해도 포도나무인 예수님을 통해서 가지인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를 통해서 부어 주시는 것이지 교회 밖에서 절대 부어주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께 붙어있고 내 영이 예수님께 붙어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주님 밖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예비된 은혜가 용서와 의와 영광 아닙니까?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용서를 주시고 의로움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마귀와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늘 부어 주십니다. 항상 주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으면 주님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고 치료하는 은혜를 부어 주셔서 치료와 건강을 심신에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주시는 은혜가 늘 위에서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은혜가 우리 속에 늘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은혜를 제조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 은혜의 공장입니다. 주님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은혜를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만들어낸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가 은혜 속에서 잎 피고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열매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열매가 억지로 맺어집니까? 은혜 받아야 열매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서 우리 영혼이 살아 있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퍼부어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부어지면 열매를 맺으므로 하나님은 주일날도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수요일 날도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구역예배 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개인적으로 성경 읽고 기도할 때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고 있으면 은혜를 부어 주셔서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면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의지하고 잘 붙어 있어야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셔서 형통한 삶을 살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는 누구의 도우심도 필요치 않으시며 언제나 영원토록 자존하시는 포도나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항상 붙어 있어야지 한시라도 떨어지면 말라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끊어지면 우리는 한시도 살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그 은혜에 항상 붙어 있어야 우리는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늘 주님께 복종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붙잡아 주시고 은혜를 퍼부어 주시고 풍성히 열매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열매를 맺고 더 맺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열매 없는 성도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충실한 가지로서 많은 열매를 맺고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아버지의 은혜로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가지가 되었으니 충실하게 순종하고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열매 맺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고 아버지가 기쁨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