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8절
기도할때는 목표를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기도
열정적이고 결단하며 기도해야
우리 속담에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절대 절망에 처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각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고 그 재판장에게 자기의 소원을 간청하는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 재판장은 교만하고 안하무인의 불의한 재판장이고 과부는 치명적인 고통과 파탄을 가져온 강한 원수로 말미암아 원한에 사무친 여자였습니다. 그는 원한을 품고 가슴에 사무치는 한을 가지고 이 재판장에게 나와서 늘 번거롭고 괴롭게 할 정도로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6절로 8절에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한 여인의 끊임없는 간청과 부르짖음에 재판장도 할 수 없어서 그 원한을 풀어주었다 하는 내용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할 때도 하나님 앞에 이와같이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1. 목표가 분명한 기도
우리는 기도할 때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산만한 목표는 방향을 잃게 할 따름입니다. 과부가 분명한 목표를 세웠던 것처럼 우리도 목표가 분명해야 됩니다. 이 여인이 재판장에게 나와서 오직 원수에 대한 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 한것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 6장 7절로 8절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막대한 돈과 무기, 철저한 군사조직을 가졌던 영국정부와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싸움에서 간디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간디에게는 국가를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영국을 이겨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승리를 거둔 후에 “목표의 힘은 군사력보다 강합니다. 조직적인 정신력은 조직적인 군사력보다 위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황제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이미 우리가 장악했다. 치밀한 목표달성 계획을 이미 텐트 안에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텐트 안에서 이미 승리를 맛보았다. 이제 나는 목표만을 바라볼 뿐이다. 만일 전진하다가 장애물이 생기면 생기는대로 제거하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는 그 목표가 분명해야 믿음이 역사합니다. 바라는 목표가 희미하면 믿음도 희미하고 바라는 목표가 산만하면 믿음도 산만해져서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 잡지 석세스는 예일대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가운데 목표에 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세워둔 목표가 있는가? 목표를 기록해 두었는가?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을 세웠는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질문에 당시 응답자의 3%만이 목표를 세워 기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실천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목표가 있지만 기록을 하지 않는다든지 별다른 목표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응답자의 수입을 조사해봤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목표를 세우고 기록해 두었다고 응답한 3% 사람들의 수입이 나머지 97%의 수입보다 평균 10배나 높았습니다.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는 그 어떤 것도 이룰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갔을 때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한다고 분주하고 마리아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식 준비를 하던 마르다가 마음에 시험이 들어 뛰어 들어오더니 “주여, 나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한다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동생 마리아는 주님 발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으니 이렇게 불공평 할 수가 있습니까? 마리아를 명령해서 부엌에 와서 밥짓는 나를 좀 돕게 하소서”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예수님이 가만히 쳐다보시고 난 다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고생하고 번민하고 있구나. 한두가지만 하든지 한가지만 하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2절에서도 예수님께서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분명한 목표를 적고 늘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목표를 수첩에 적는 것입니다. 수첩에 적어 놓고 늘 그것을 펼쳐서 하루에도 수십번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그 지글러는 그의 책 ‘목표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에서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방향키가 없는 배와 마찬가지다. 각자 표류하거나 그냥 멈추어 떠있거나 절망과 패배와 낙담의 해변에 도착하거나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펠프스는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는 뚜렷한 목적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 목소리와 옷차림, 외모와 동작 하나까지 변화하기 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보홀러 박사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 200명을 조사한 결과 그들이 성공한 것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향해 매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머리가 좋다고 인생을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서 그 목표를 향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기도하고 달려가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믿을수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나가는 사람은 구체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아는 기도
약속을 모르고 기도하는 것은 허공을 치는 주먹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으면 약속위에 서서 강력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낙심이 다가와도 실망이 다가와도 역경이 다가와도 그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마음속 저항력은 말씀을 마음속에 끊임없이 보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을 고백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박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의심의 파도가 아무리 다가와도 말씀의 반석이 있으면 그 말씀을 자꾸 주장하고 말씀을 통해서 의심의 파도를 산산조각 내버릴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몇차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생애 속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년에는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 말씀 위에 서기로 작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100세가 되고 아내의 나이 90세가 되어도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추호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나이가 100세가 되고 아내의 나이 90세가 되어도 그에게 다가오는 여러 감각과 환경, 의심의 파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의 피로 값주고 사주신 은혜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값을 주고 사준 것이 뭡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죄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고 영광을 주신 것을 믿을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셨다는 말씀을 우리는 믿을수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망과 음부에서 부활시켜 천국 보좌 우편에 앉게 해주신다는 그 약속은 변함이 없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대속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흔들릴수 없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 위에 서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는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말고 보지도 말고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만세 반석이요, 말씀이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에 서서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기도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약속이 없으면 우리가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3. 한 맺힌 마음과 열정적 소원의 기도
미지근한 기도는 안됩니다. 뜨겁거나 차거나 양자택일을 요구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뜨거운 열정의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가서 그 원한을 갚아 달라고 부르짖을 때 밤낮으로 부르짖었다고 말씀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부르짖는다는 것은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가 아기를 못낳을 때에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야훼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줄로 생각한지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기도가 간절했는지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말이 안나올 정도였습니다. 한나가 입술만 움직이며 눈물가운데 간청하며 기도하니까 제사장 엘리는 그가 술이 취한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기도 삼매경에 빠져버렸습니다.
사무엘상 1장 14절에서 16절 사이에 보면“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야훼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고 한나가 대답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결국 기도에 한 맺힌 마음을 실었던 한나는 아기를 갖게되었고 그 아기가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라고 말합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에 전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걸어다녔습니다. 서대문에서 불광동까지 고개를 넘어가며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걷다 보면 큰 극장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속으로 ‘우리나라에 큰 극장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큰 교회는 없는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극장으로 모여 가는데 왜 교회에는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가? 나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될것이다’라고 마음에 뜨거운 소원을 갖고 그 모습을 그리며 걸어다녔습니다. 가장 큰 교회를 마음속에 그려보고 뜨거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늘 기도하면서 다녔습니다. 교회 성장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성장하기를 원하는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옛말같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모친 한나도 아들을 낳고자 하는 한 맺힌 마음으로 열정적인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해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뜨거운 소원이 있어 집중적으로 마음이 혼란하지 않고 그 중심에 서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적인 교회가 된 것은 우리 모두가 48년간 마음에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뜨거운 소원으로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부르짖은 결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대문에 우리 교회가 있을 때에 최자실 목사님하고 아현동에 사는 어느 가난한 성도 집에 심방을 가게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 폐병에 걸려서 피를 많이 토하는 산모가 해산을 하는데 의사도 없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던 지라 할수 없이 최 목사님하고 제가 아기를 받아야 되었습니다. 몸이 약하고 불안해 하는 산모를 위해 제가 정성스럽게 기도해주고 최자실 목사님이 어린 아기를 받으려 하는데 산모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힘을 더 주라”는 최 목사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온 힘을 다하는 산모는 결국 예쁜 아기를 순산하게 되었습니다. 산모도 건강하고 아기도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기도도 어린아기를 낳는 심정으로 전심전력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않은 기도, 그냥 오다가다 한마디씩 하는 기도는 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비오기를 기도한 엘리야를 보시기 바랍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이스라엘에 비가 오도록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기도할 때 얼마나 전심전력으로 기도했던지 그의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는 간절해야 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골방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을 한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세계 속의 한국인 박지성은 평발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 도전해 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피나는 훈련과 연습이 있었다는 것을 상처 투성이인 발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루 19시간의 연습과 1년에 1000여 켤레의 토슈즈가 닳도록 발레 연습을 해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된 강수진의 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초 동양인 단원으로 입단하였고 1997년부터 수석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여성무용수로 선정되었고 그해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씨의 손가락을 한번 보십시오. 수많은 연습으로 인해 손가락 끝에 아예 바이올린 줄 자국이 났습니다. 한국의 이름을 빛낸 세계적인 스포츠맨과 문화 예술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한 맺힌 마음을 가지고 전심전력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불퇴전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와서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했다고 했습니다. 한번 기도를 시작했으면 환경을 바라보고 뒤로 물러가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기도를 포기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열정적인 소원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전심전력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4. 결단적인 믿음의 기도
흔들리거나 우유부단한 믿음은 힘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합니다.
1997년 12월 미국 라이프지에는 세계 역사에 공헌한 100명을 선정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토마스 에디슨을 꼽았습니다. 그는 전구를 발명할 때 1년 넘게 하루에 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천번의 실험 끝에 전구를 발명해 낸 것입니다. 그가 발명한 축전지 역시 5만번 이상의 실험 끝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믿기로 결단했으면 번복하거나 뒤돌아 보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실패하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괴로움을 당해도 또 일어나고 계속해서 목표를 향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결정하지 아니한 사람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다닌다. 그는 가장 편한 길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이와 반대로 결정한 사람은 가장 험한 길도 뚫고 나간다. 그리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한번 결심하면 번복하거나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62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서 10장 38절에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응답을 뚜렷이 바라보고 믿음의 선언을 해야 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구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기도할 때 응답이 이미 온 것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 두번 선언해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이 마르고 혀가 닳도록 계속해서 믿음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선언이 위대한 능력을 나타냅니다.
응답받기 위한 기도는 전쟁입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마귀를 이겨야 하고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시는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교제의 기도나 감사와 찬미의 기도나 중보의 기도보다 문제해결의 기도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에는 우연이나 설마가 없습니다. 오직 이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도전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만 그 기도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마음속에 확실한 응답에 대한 꿈이 있어야 하고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하고 집요한 간청이 있어야 하고 불퇴전의 결심이 있어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폭풍우처럼 돌진해 들어가면 모든 안개구름이 걷히고 하나님의 응답이 해와 달과 별처럼 우리 생활속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은 이미 하늘에서 우리가 기도할 것을 알고 계시고 응답해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입을 넓게 열고 나가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가 목표없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꿈을 분명히 가지고 확실한 믿음으로 기도하게 도와주옵소서. 열정으로, 집중적으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들이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