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나의 목자 예수님

by 삶의언어 posted Jun 27, 2024 Views 7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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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2006-11-05
오늘의 성구 시편 23편 4절로 6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XX82fANInZ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4∼6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인생
목자되신 주님 함께 하시면 형통
예수님 동행하면 영생의 복 누려


 유대 광야에서 양은 목자가 없이는 도저히 생존불가능 합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목자가 인도하고 또 사나운 짐승들에게서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굶어 죽거나 찢겨 죽을지 모르는 험악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는 다윗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생의 목자가 되심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목자

 성경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때 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은 주님이 목자가 되어서 나와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시기 때문에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크고 작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지는 체험을 하게됩니다. 또한 영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막히고 찬양이 나오지 않고 말씀이 읽기 싫어지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싫어지는 경우입니다. 영혼이 답답하고 캄캄합니다. 절박한 영적인 밤이요 영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혹은 정신적으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때가 있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울증에 짓눌려 온 세상이 캄캄하고 살 희망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그러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갖 질병의 선고가 내려질 때 육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부부간에 갈등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파괴 일보직전에 있을 때, 혹은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죄를 지어서 부모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 버리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도 사망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자금이 고갈되고 빚투성이가 되는 어려움 또한 힘든 골짜기입니다. 인생을 살아가자면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4절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라고 했으며 예레미야애가 1장 20절에 “야훼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두려움’에 대한 연구를 한 뉴 미실린 박사가 말하기를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세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높은데서 떨어지는 두려움, 큰 소리가 날 때 느끼는 두려움,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나가는 두려움 이 세가지 두려움은 우리와 평생을 같이 합니다. 높은데서 떨어지는 두려움은 직장을 잃는다든지 명예를 실추한다든지 가난하게 된다든지 사회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될 때 그 두려움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비난과 공격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소리를 듣는 두려움으로 연속되고 어머니에게서 떨어지는 두려움이라는 것은 세상에 버림당하고 소외되고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천시당하고 늙어지고 외로워지고 나중에 혼자 죽어야 하는 그런 두려움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통해서 해를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를 당해 고통과 낭패와 파탄을 당할 것을 상상할 때 마음이 얼어붙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상상의 둥지를 트는 악마의 계략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갖게되고 자꾸 생각하면 두려움이 눈사람처럼 커져서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앉아 온갖 고문을 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훌륭하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10명이요, 가축도 많고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안절부절하는 가운데 마귀의 촉수에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적군들이 쳐들어와서 자기 짐승떼를 다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했습니다. 또 어떤때는 열자식이 다 비명횡사할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또 몸이 불치의 병에 걸리고 부인이 자기를 버리고 외롭게 혼자 살게 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두려움이 다가올 불행의 전주곡인 것입니다. 종이 뛰어와서 양떼와 소떼와 약대들을 다 잃어버렸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종이 뛰어와서 자녀들이 형의 집에서 잔치하는데 집이 무너져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몸에 병이 걸려 기왓장으로 긁고 잿더미에 올라 앉아있게 되는 비극이 다가오고 부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욕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라고 욥은 고백했습니다. 두려움이 전주곡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그 뒤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손이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는 두려워하는 것과 동등하게 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때 우리가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두려움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피난처요, 요새가 되십니다.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미’ 하면 주님이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천국 하늘 보좌에 가면 천사들이 보좌를 둘러 진치고 늘 하는 말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라는 말입니다. ‘주를 찬미합니다. 주를 찬미합니다’라는 최고의 기도를 드리게 되면 두려움이 내쫓기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3절에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길 때 주님을 찾고 주님을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려움도 오고 주님도 오십니다. 두려움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면서 주님은 목자로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언제나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길을 여는 것이고 막대기는 원수를 치는 도구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도 지팡이로 길을 열어 주시고 막대기로 원수를 물리쳐 주시고 우리가 평안히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의 한 남자가 회사에 출근해 보니 책상위에 해고 통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이 마흔에 회사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충격과 함께 직장 상사에 대한 원한과 불평이 가득찼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여기저기 직장을 구하러 다녔으나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부인을 보자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나는 모든 노력을 다 해 봤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소”라고 탄식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당신이 시도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주님이 계신데 왜 낙심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마음속에 직장과 상사를 향한 복수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결과 5년 후에는 안정된 기업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업을 위해 여행을 하면서 늘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숙소 문제였습니다. 좋은 호텔은 너무 비싸고, 싼 곳은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호텔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호텔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세계적인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홀리데이인 호텔의 창업주 케몬스 윌슨입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한 결과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인생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 사망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시편 23편 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구절을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종류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지만 그 두려움에 지지 않고 어디든지 목자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자기에게 다가올 모든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자의 지팡이 끝에 시야를 고정시키고 따라간다. 여기서 다윗은 위험과 시험으로부터 유일한 승리의 길은 오직 자신을 던져서 목자를 따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아니 그 외의 길은 없다. 그 외의 길은 위험의 길이요, 사망의 길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위험과 사망은 예수님을 떠나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지팡이를 따라가고 그 막대기를 의지하면 두려움을 이기고 마음속에 평안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이 다가오거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목자

 우리 목자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의 침략을 받고 큰 불안과 공포에 떠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호사밧 왕은 문무백관을 다 거느리고 백성과 함께 성전에 가서 부르짖었습니다. 역대하 20장 3절로 4절에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야훼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야훼께 간구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능력과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진수성찬을 주셨습니다.

 역대하 20장 14절로 17절에 “야훼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야훼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야훼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야훼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두려움을 맡아서 ‘전쟁은 내가 한다. 너희는 와서 구경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사밧이 군대를 거느리고 언덕위에 서서 성가대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서 야훼를 찬송했습니다. 적군 앞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적군들에게 혼선이 일어나서 서로 죽여 전멸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가져온 모든 보화를 다 취하는 진수성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고 그들에게 승리와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어서 잔이 넘치게 되어서 찬양을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오기 전에 마귀는 먼저와서 우리에게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므로 축복을 못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원수를 물리치시고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5절에 “내가 고통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32장 41절에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평생토록 선하시고 인자하신 목자

 

 목자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보거나 동물들의 세계를 보더라도 자식에 대해서는 선함과 인자함을 베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선교활동차 캄보디아에 가셨을 때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장관이 자기 동물원에 가보자고 해서 프놈펜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한차 가득 싣고 동물원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랑이와 사자 우리앞에 가자 인도한 장관이 목사님께 직접 먹이를 줘보시라고 권유를 하더랍니다. 맹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목사님은 용기있게 가져간 먹이를 호랑이에게 던져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먹이를 호랑이 어미가 잽싸게 낚아채어 정작 자신은 먹지 않고 새끼 네 마리에게 먼저 주더라는 것입니다. 새끼들이 배불리 먹고 찌꺼기가 남자 그제서야 어미는 고기에 입을 대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은 감동을 받았고, 문득 가난했던 어린시절 자식을 먼저 먹이시던 어머니의 사랑이 떠올라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짐승들도 새끼들에게 좋은 것을 먼저 주려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인자하심과 긍휼함으로 베풀지 않겠습니까?

 시편 103편 12절로 13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사야 54장 10절에는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야훼께서 말씀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에 대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극치는 단연코 ‘십자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해서 버림을 당하여 지옥에 갈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은 절대절망의 처소요, 절대슬픔의 곳이요, 절대 우울의 곳이요, 절대 고통의 곳입니다. 그 고통 가운데 놓임을 받게하려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되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망가운데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통곡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은 다 도망을 쳤고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그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온갖 모욕을 주고 육체는 피와 땀이 흐르고 매달려 있으니 고통스럽고 괴롭기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는 절대로 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그 혹독하고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 대한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것을 참아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은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도 예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한분 만으로 우리는 온 천하를 다 얻은 것입니다. 돈, 명예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칭찬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과 사랑은 세세무궁토록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더라도 예수님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성공인생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짧은 성공은 그 후에 영원한 적막강산이 다가오지만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성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육신의 장막집을 벗고 주님이 예비한 곳으로 갈때에 요한계시록 7장 15절로 17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목자없이 자기혼자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굶어죽고 상처입어 죽고 짐승에 찢겨 죽습니다. 우리는 목자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험한 길을 걸어가도 목자와 같이 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합니다. 어떠한 두려움이 다가와도 두려움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같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평안과 기쁨과 승리를 가지고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온 세상이 다 원수가 되어 온다 하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셔서 오히려 원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받게 하시고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잔이 넘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 의지하고 일어나서 이 땅에서 살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