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장 1∼11절
영생하기를 원하는 인간 세상
모든 노력이 헛되고 헛되지만
주님안에서 진정한 영원 누려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을 타고 삶의 여행을 떠납니다. 인간은 시간열차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지나고 결국에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고 현재를 붙잡아 놓을수도 없으며 미래를 벗어날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 14절에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시작과 종말이 있으며 그 후에는 사라져 버리는 적막이 따를 따름입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생은 절망적인 존재’라고 했고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죽음의 병을 앓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1. 인간의 역사 속에 영원한 것은 없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이집트 왕조 때에 140여 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습니다.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 80개가 넘습니다. 이 중에서 쿠푸 왕(Khufu)의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33미터, 높이가 148미터로 가장 큽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를 미이라로 보관하면 그 영혼이 돌아와 부활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처럼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서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피라미드 안에 있는 미이라가 살아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메말라 빠진 미이라로 남아있고 영원히 살겠다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전설에 보면 삼신산(三神山)이라는 산이 나옵니다. 이 삼신산에는 주옥으로 된 나무가 있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 누구나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많은 제왕들이 이 삼신산의 열매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시황은 도사 서불에게 많은 금은보화와 동남동녀(童男童女) 수백 명을 보내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 온갖 애를 썼지만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으니 일반 사람보다 더 짧게 산 것입니다.
1964년 미국의 에팅거 교수는 인간을 냉동 보존했다가 해동시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냉동 보존시켰다가 과학이 발달된 이후 해동시키면 병도 고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에팅거 교수의 의견에 회의적입니다. 일단 냉동을 하게 되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부피가 약 10% 증가하기 때문에 세포의 구조가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세포는 탈수 현상으로 쭈그러듭니다. 이에 대해 냉동보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냉동 중 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글리세롤 용액을 넣고 영하 193℃로 급냉시키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뇌세포 문제가 또 있습니다. 뇌세포가 산소공급을 받지 못하면 즉시로 뇌신경은 죽어 버리고 치명적인 손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영원한 삶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 14장 10절로 12절에도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고 탄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이 국제연맹 창설 실패로 인해 절망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1차세계대전 종전 무렵 미국이 주장을 해서 다시는 전쟁을 없게 하자고 국제연맹을 조직하고 미국 상원에 그것을 인준해 달라고 윌슨 대통령이 제의를 했지만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부결되자 윌슨 대통령은 너무나 낙심하고 절망해서 그만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그 결과로 병상에 드러눕게 된 것입니다. 마침 홍보담당 비서관 나폴레온 힐이 문병을 와서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백년만 지나면 국제연맹이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아무 흔적도 없습니다. 지금 국제연맹이 중요하지 백년만 지나면 국제연맹은 역사 속에 문자로 몇 개 남아있는 것밖에 없으니 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심려하지 마시고 평안히 눈을 감으소서”라고 권면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국제연맹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와같이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은 다 잊혀지는 것입니다.
한번은 코카콜라 회장이 마음에 걱정과 고민이 가득하여 잠을 못이루던 때의 일입니다. 그는 국가가 많은 세금을 징수해서 자기의 사업을 망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온 힐을 청했습니다. “내가 마음에 걱정과 고민이 꽉 들어차서 잠을 잘수가 없고 고통스러워 견딜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나폴레온 힐은 다시 묻습니다.“회장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코카콜라 회장은 아흔살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나폴레온 힐은 정색을 하며 권면하기를 “회장님, 코카콜라 회사의 모든 서류를 여기로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화로에 던져서 다 태워 버리십시오. 그 문서와 재산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고통받는 것 보단 다 태워 버리고 웃으면서 몇 년 더 살다가 천당가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영원히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의 그 많은 죽음과 참상도, 한국전쟁의 민족적인 비극도 다 지나간 이야기로 기억속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 민족의 거대한 참상이었던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이 요즘 세대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 기억속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0편 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전도자 솔로몬 왕의 탄식
전도서의 전도자는 인생허무를 개탄했습니다. 그는 영원한 가치나 삶의 유익이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장 1절로 7절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이 없고 헛되고 헛된 것 밖에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원한 새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전도서 1장 8절로 11절에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전 세대를 누가 기억합니까? 옛날 불광동에서 저와 함께 목회하던 사람들 대다수가 세상을 떴습니다. 서대문 시절을 누가 기억합니까? 우리가 전 세대들을 기억하지 못함같이 우리 세대도 후세대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사에 영원한 만족이 없다고 또한 전도자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쾌락을 구하고 만족을 구하지만 인생사에 영원한 만족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1절로 11절에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 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라고 전도자는 고백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건설은 거대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지었던 진시황도 가고 그 시대의 사람들도 가고 그는 오직 무너져 가는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모든 것은 망각의 무덤으로 사라집니다. 전도서 1장 11절에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잘난 자, 못난 자가 다 함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영웅호걸, 열사도 죽어 무덤에 들어가고 노숙자, 거지들도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고 하나도 예외없이 사람은 한번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 고로 다 죽음으로 끝이나고 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13절로 17절에 보니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 시대에 가장 심한 노이로제는 허무다”라고 말했습니다. 니이체는 철학자로써 초인(超人)을 이야기하며 허무감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이 허무주의의 늪을 벗어나지 못해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세계적인 문학가로 이름이 났던 헤밍웨이도 그 명성과 부귀와 영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삶이 너무 허무해서 사냥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자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괴로움, 허무를 이기지 못해 지위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살을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에는 영원한 가치나 삶의 유익이 없이 어디를 보아도 허무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 시간에서 영원으로
어떻게 하여 우리가 시간에서 영원으로 갑니까? 시간 속에 태어나서 시간 속에 늙어서 죽어버리는 우리가 어떻게 영원으로 건너갈수 있는 것입니까? 시간에서 영원으로 뛰어 넘어갈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그 징검다리입니다. 시간에서 영원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철학이나 종교가 징검다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에서 시간으로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간속에 있는 사람들의 죄와 허물, 불의와 추악, 저주와 절망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심으로 영원으로 들어가신 분입니다. 영원에서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가 시간 안에서 33년을 사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시간을 극복하시고 우리를 끌어안고 영원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는 시간을 이긴 분입니다. 그는 사망을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우리의 시간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의 죽음을 극복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함께 죽고 함께 장례지낸바 되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 우편에 앉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는 그 첩경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없이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시간을 극복하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세계에 영생으로 들어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처럼 영생 무궁토록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안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우리는 시간 속에 살면서 이미 영원을 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시간 속에 있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벌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과 영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후폐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지고 그 사람의 장막이 무너져도 우리 속사람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영원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의로운 옷을 받아 입은 것입니다. 우리 행위의 낡은 옷은 시간이 가면 다 찢어지고 냄새나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은 영원한 의로운 옷으로 우리의 부끄러움을 감춰 주시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모시므로 영원한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이 주는 기쁨은 잠시있다 사라지는 안개지만 우리 속에는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쁨의 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의 샘이 된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벌써 영원한 기쁨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영원한 평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평안이란 잠시있다 깨어집니다. 가정적인 평안, 사회적인 평안, 세계평화가 끊임없이 도전을 당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속에 평강의 왕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영원한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은 무지개와 같습니다.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가도 그 행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행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오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로 7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어서 생명강수를 넘치게 마시고 마음에 눈물과 근심, 탄식, 이별,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이 행복을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를 소유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늘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변함이 없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권자가 되신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3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는 영원한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과 기쁨 평안 등을 결코 가질수 없습니다. 죄와 세속과 마귀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과 슬픔과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혼돈한 삶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인 것입니다. 이 절망의 시간속에 사는 인생을 영원한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시간속에 살며 눈물과 고통과 괴로움을 체험하시고 이를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이를 극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 시간을 이기고 영원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그분을 모셔 들일 때 우리는 그분과 하나되어 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시간의 흐름을 중지시킬수 없습니다. 부귀도 권세도 영광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놓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시간을 초월해 버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속에 나는 영원을 품고 살기 때문에 시간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흘러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영원이 내 마음속에 출렁거리고 있고 우리는 이 영원속에 앞서가니 뒤서가니 다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예비한 영원의 세계속에 우리는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감사와 찬양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간속에 태어난 우리들이 시간의 노예를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시간속에는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속에는 참된 의도 평강도 기쁨도 행복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간을 극복하고 역사를 초월해서 영원 속에 들어갈수 있음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영생을 가진 우리들이 모였습니다. 영원한 속에서 우리는 벌써 시간을 이긴 사람들로 영원한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을 소유하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