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믿음 속에 사는 삶

by 삶의언어 posted Aug 13, 2024 Views 4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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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07-12-30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11장 1절로 2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yFqliCFen6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2절


믿음의 생활화 단계를 거쳐야
간절한 소원·꿈·기도로 고백하면
축복의 내일 창조할 수 있어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살아라. 믿음으로 살아라. 오직 믿음만 가지고 살아라”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믿음으로 사는지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울선생을 통해 믿음에 대한 법칙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믿음은 바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므로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원이 없는 사람은 믿음을 가질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소원도 있어야 되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도 있어야 되고 성령 충만하고 싶은 간절한 간구가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지 소원이 없는데 믿음이 생겨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위해서 밥을 짓듯이 믿음이 있어야 되겠다고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엘가나가 두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한나는 첫째 부인이고, 둘째 부인은 브닌나였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브닌나는 아들을 쑥쑥 낳으니 브닌나가 한나를 조롱하고 시기하고 못살게 함으로 한나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매년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때 한나는 울고 먹지도 아니하고 성전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너무나 절박하고 간절한 소원의 기도에 한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무엘상 1장 10절로 11절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간절히 소원했기에 마음에 고통을 가지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때 문곁에 앉아있던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술이 취한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1장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술이 취해서 하나님 성전에 와서 부르짖느뇨. 술을 끊어라!”고 하자 그말에 한나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것이 아니요, 야훼 앞에 내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는 그 말에 한나는 평안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는 증거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착잡하고 불안하면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 아닙니다. 파도가 이는 바다가 잠잠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처럼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요동치고 파도치다가 조용해지면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응답할 때까지 기도해야 된다는 것은 마음에 평안이 올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는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엘리 제사장이 “일어나 가라! 네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고 마음에 놀라운 평안이 왔기 때문에 눈물을 닦고 슬픔을 그치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후 한나는 1년 만에 잉태해서 아들 사무엘을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저는 물에 빠진 진주를 찾는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진주를 떨어 뜨렸습니다. 해변에 도착하자 당장 바가지를 가지고 물을 퍼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고 물을 퍼고 있습니다. 자라 한 마리가 기어나와서 “당신 뭘하는 거요?”라고 물었습니다. “바닷물을 펀다” “왜요?” “진주를 찾으려고 한다” “언제까지 퍼겠어요?”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퍼겠다” 그러자 자라가 놀라 물속으로 도로 돌아가서 진주를 찾아서 입에 물고 나왔습니다. 내버려 두었다가는 바닷물이 다 없어져 자기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동화지만 그러나 진주를 찾기 위해서 바닷물을 다 퍼겠다는 그러한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에 진주를 찾을 수가 있었다는 예화와 같이 우리도 그런 간절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 결단이 있어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2. 믿음은 바라는 것이다

 막연한 소원은 백일몽이나 망상이 되지만 확실하고 구체적인 소원은 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자리에 엎드려서 팔로 머리 베게하고 난 다음에 ‘아∼ 나도 궁궐 같은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큰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양귀비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데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백일몽입니다. 그런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져오는 꿈이라는 것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분명한 꿈을 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꿈은 구체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백성만 아니라 개인도 꿈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확실한 꿈을 마음속에 품고서 기도해야지 꿈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한 푯대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분명히 그려보고 종이에 연필로 그려보고 적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확실한 꿈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것을 벽에다 붙여 놓고, 경대 앞에 붙여 놓고, 부엌에 붙여 놓고, 화장실에 붙여 놓고, 내가 자주보는 곳에 붙여 놓고 그것을 늘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때도 하나님은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 그냥 주시면 주시지 바라보기는 뭘 바라보라고 합니까?” 그러나 “아니다. 바라보아야 네가 꿈을 가질수가 있다” 꿈이란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목적을 두고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바라보는 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85세에 자식이 없어 탄식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자식을 준것이 아니라 밤에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보고 별들을 헤아려 보라. 별들을 헤아려 보라 네 앞에 보이는 별들처럼 많은 자식을 네게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바라보아야 그다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동차 자전거를 만들고 고치는 점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는 하늘로 날지 못한다는 물리학의 정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 사람 무식하기 짝이없다. 공부를 안해서 물리학의 법칙도 모른다. 공기보다 무거운 것은 날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열심히 꿈을 꾸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틀을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날 보잉 747기가 되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수백명을 태우고 날아갔다가 날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형제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체적인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지 아니하면 아무일도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3. 믿음 자체는 응답이 아니다

 ‘아, 나는 믿었는데 왜 안 이루어지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믿었는데 왜 병이 안낫느냐. 믿었는데 왜 축복을 못받느냐. 믿었는데 왜 가족들이 아직 예수께로 나오지 않느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이란 그 자체가 응답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 실상이란 헬라어는 ‘휘포스타시스’로 ‘휘포’라는 말과 ‘히스템’이라는 말이 보태어진 것인데 휘포는 밑이고 히스템은 받침대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받침대다. 물건이나 화분을 얹어 놓는 받침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 강단은 받침대지 이 강단 자체가 설교는 아닙니다. 강단이 받침대가 되어서 성경을 그 위에 얹어 놓는 것처럼 믿음은 받침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85살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데 15년 걸려서 100살에 응답이 온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17살에 하나님의 꿈을 받았으나 그것이 이루어지는데 13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40살에 그 꿈을 이루려고 했으나 안되어서 80살에 그 꿈이 이루어져서 40년 동안 기다렸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받침대를 만들어 놓고 포기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받침대가 오래 응답이 안된다고 치워버리면 얹어 놓을 물건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받침대를 꼭 준비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을 가지고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겼으면 인내로써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뜨거운 소원이 있으면 그것을 꿈꿔보고 그려보고 종이에 적어서 벽에 붙여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이미 하나님이 응답할 수 있다는 조건을 준비한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열고 있는 것입니다. 받침대를 준비한 것입니다.

 

 4.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봐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안보이는 것을 먼저 믿고 난 그 다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봐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나 믿음은 아직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없을 때 이미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입으로 “못한다. 없다. 안된다”라고 하면 만사가 다 무(無)가 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믿는 것처럼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마지막 증거인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말을 들어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 사람 말을 들어보면 믿는지 안믿는지 알수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일어나서 “나는 안돼요. 모든 것이 절망이에요. 슬퍼요. 괴로워요” 그러면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안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나는 믿습니다. 나는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복 받았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꿈이나 믿음은 이미 있는 것처럼 증거하는 입술의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마지막 단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소원을 가지고 목표가 뚜렷한 꿈을 가지고 그 다음 꿈이 나중에 믿음으로 변해서 마음에 믿음이 가득할지라도 입으로 고백해야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으로 부정하면 아무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서 알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100세가 되고 사래가 90세가 되었을때 그들의 이름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사래는 사라, 여주인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15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 왔는데 마지막 단계에 오기 전에는 입술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라. 아브람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 아기가 있는 여주인 같이 사래를 사라라고 부르라’고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15절로 16절에는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엔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는 자신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자신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말하며 자괴감을 줄 때 우리는 실제로 가진 능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넌 할 수 있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 저 사람도 하는데 너라고 못해!”라며 자신감을 가질때는 우리가 가진 능력의 150%까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에 가면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벤츠는 300킬로미터를 달리게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겁이나서 50킬로미터 혹은 100, 150, 200, 250킬로미터 정도 달리다가 움츠려 더 이상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못합니다. 그러나 차는 300킬로미터 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겁이 나서 그보다 못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300킬로미터로 달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믿지 않고 입으로 시인하지 아니하므로 50킬로미터밖에 못달립니다. 혹은 100킬로미터 밖에 못달립니다. 자기의 능력껏 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들의 능력의 150%를 달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100%에다가 50%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소원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없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뜨거운 소원과 목표있는 꿈을 확실히 가지고 그리고 기도해서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면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생활화 하려면 반드시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과 꿈, 기도와 마음에 실상인 믿음을 가지고 입술의 고백을 하면 그 믿음은 역사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에 믿음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첫째, 뜨거운 소원을 갖자. 둘째, 구체적인 꿈을 갖자. 셋째, 마음에 평안과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하자. 넷째, 믿음이 오고 평안이 오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자. 낙심하지 말고 계속 고백하자’ 그러면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내일을 창조할 수 있고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영광을 창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마음속에 소원과 목표있는 꿈과 기도와 믿음과 평안과 입술의 고백만 있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내일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운명에 내어 맡기는데 운명은 바로 우리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마음속에 심지 아니하면 잡초가 나고 우리가 소원과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꿈과 믿음을 심어 놓고 입술로 고백하면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실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