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말씀]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꺾임은 받은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송아지가 자라서 어미 소가 될 때 코를 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을 것입니다. 장정들이 와서 이제 어미 소가 된 송아지를 잡고서 코를 꾀려고 하면 그냥 발버둥을 칩니다. 저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보고 얼마나 아플까? 참 무자비하구나! 코를 꾀지 않으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여러분 사실 농부들이 코를 안 꾄 소를 가지고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코를 꾀지 않은 소는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게 되지 않습니다. 또 미국에는 목동들이 양을 치면서 혹은 또 소몰이를 하면서 말을 탑니다. 그런데 말을 그 기를 꺾지 않으면 그 말 탈수 없고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망아지가 자라서 말이 되면 목동들이 그 말의 기를 꺾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쓰이는 사람마다 하나님은 대속 안에 꺾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꺾지 않고서 우리 사람을 쓸 수 없는 것은 사람은 타락한 이후로 무서운 외고집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뜻대로 하는 고집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도저히 쓸 수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고 받으신 사람마다 대속 안에 꺾은 것입니다. 이 사실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꺾으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구약의 인물 중에서 하나님께 꺾임을 받은 사람들을 우리 살펴보십시다.
말할 필요 없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나이 75세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네게 명하노니 네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아브라함이 순종을 할 때 자기 고집대로 순종을 한 것입니다. 전토를 떠나라고 했는데 전토에서 얻은 모든 재산과 노비들을 다 데리고 갔으며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카를 데리고 갔었습니다. 이러므로 순종하는 체했지만은 실제로는 자기 속에 계산해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은 다하고 갔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꺾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기양양해서 가나안 땅에 와보니 축복은커녕 완전히 가뭄이 들어서 천지가 불타고 있습니다. 마실 물 한 방울 없고 먹을 목초 하나도 없습니다. 종들은 배가고파 다 달아나고 가지고 온 짐승들 다 굶어 죽었습니다. 밥 달라고 우는 조카와 허기에 허덕이는 아내를 데리고 하나님이 가라고도 안한 애굽 땅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가 이쁜 것을 보고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매몰시켜 버리고 아내를 빼앗아갈까 싶어서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왕에게 자기 아내를 시집보냈습니다. 이게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 것입니까? 사람이 여러분 어지간히 답답해야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해서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거기에서 그는 치욕적으로 꺾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견딜 수 없는 모욕가운데서 그는 그의 고집이 꺾이고 자기 자랑이 꺾이고 자기 자신이 꺾이고 이제는 자기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으로도 안 되며 능으로도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꺾인 아브라함을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그 아내를 돌려주시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상속으로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삭을 또 보십시오. 이삭은 단번에 꺾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약 아브라함의 나이가 120여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한 귀하고 아름다운 자기의 아들 이삭이 집안일을 돌보는데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청천벽력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네 외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서 잡아서 내게 번제로 드려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깨어진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이로 인한 논리를 내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예’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꺾인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장작을 어깨에 짊어지게 하고 불과 칼을 들고서 모리아 산에 갔습니다.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가서 단을 쌓아 놓고 난 다음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잡아 재물로 드리라한다.” 여기에서 여러분 이삭은 치명적으로 꺾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치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잡아 재물을 드리라고 한다면서 아브라함이 자기를 묶기 시작하는데 20대 청년기에 만일 자기가 꺾이지 않았으면 아버지를 밀쳐 버리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깊은 고민 속에서 이삭은 꺾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면 죽어야지요.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어야 돼요. 하나님이 번제로 드려야하면 번제로 내가 드려짐을 받아야 될 것 아닌 것입니까? 그러므로 즉시로 이삭은 꺾였기 때문에 여러분 이삭의 생애를 보십시오. 이삭은 별로 환난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축복만 받았지 이삭은 환난을 많이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아들 야곱은 고집불통의 나쁜 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형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아버지 눈이 어두운 것을 기회로 장자의 축복을 다 받고 그 다음에 형이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을 쳐서 20여 년 동안 외삼촌 집에 머슴살이 하고 있으면서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아주 악한 꾀를 가진 이기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집에서 야간도주를 해서 처자를 데리고 재산을 데리고 오다가 외삼촌의 습격을 받아서 잡혔습니다만 꿈에 하나님이 외삼촌에게 나타나서 ‘그 사람에게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하는 말이 “만일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너에게 손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너는 내 손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다시는 국경을 넘어 오지 말라. 넘어오는 날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고향산천 돌아가니 형이 겁이 나서 사람을 미리 보내어서 자기 온다는 것을 보고하니까 형이 절지부심하고 칼을 갈고 기다렸다가 4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생을 치러 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뼈가 녹고 간담이 녹습니다. 뒤에는 외삼촌이 죽이려고 하지 앞에는 형이 4백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지 자기는 설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자와 모든 짐승 떼를 얍복강을 다 건너가게 하고 자기는 이쪽 벽 나루터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덤벼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항복 시키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야곱이 기가 강했던지 항복을 안당하고 자기 고집 데로 하려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아침에 천사가 손을 들어 환도 뼈를 치매 환도 뼈가 어그러져서 절름발이가 되고만 것입니다. 자기가 절름발이가 되어서 달아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자 거기에서 야곱은 꺾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지 않으면 내가 놓지 않겠나이다’라고 그럴 때 하나님의 사자가 ‘네 이름이 뭐냐?’고 하니까 ‘야곱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나님과 다투어서 이긴 자라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꺾임을 받고 난 다음 그가 일어나서 얍복 나루터를 건너니 태양이 떠오르고 있듯이 사람이 꺾이고 나면은 하나님의 축복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꺾이기 전에 끝없는 시련이 오지만 꺾이고 나면은 하나님의 축복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그가 나와서 자기의 처자들 앞에 서서 성을 향해서 올 때 동생을 죽이러 오던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변화를 받아서 말에서 뛰어내려 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통곡을 하고 환영을 하고 죽이러 온 군대들을 호위병으로 만들어서 고향땅으로 인도해 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나 모세도 꺾인 사람인 것입니다. 요셉같이 사람이 마음이 맑고 좋은 사람도 종살이, 감옥살이로 13년 동안 꺾였으며 모세는 40청년에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려고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청춘과 웅변을 의지하고 나갔지만 실패해서 나머지 40년을 인적이 끊어진 미디안 광야에서 울며, 울며 목동의 신세로 사는 동안에 그는 꺾일 데로 꺾이고 상처 입을 데로 상처 입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허리가 휘어지도록 꺾였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자기의 청춘도, 지혜도, 총명도, 웅변도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80이 되어서 꺾였을 때 주님이 호렙산 가시떨기나무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 부르셔서 40청춘에 못하던 일을 80 노인을 보내 가지고서 이스라엘 3백만을 이끌어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구약의 인물 중에 꺾이지 않고 하나님께 사용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둘째로, 신약의 인물들을 볼까요? 신약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베드로 아닌 것입니까?
베드로는 정말 자신이 넘치는 사람으로 자기는 열 두 제자 중에서 제일 수제자라는 것을 스스로 자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찬을 떼시고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리라. 그때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다 당신을 버리고 떠날지라도 나는 감옥에도 죽는데도 주님과 같이 가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유다를 중심으로 한 대제사장들의 하숙들에게 잡힐 때 예수님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도망을 쳤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재판을 가야바의 뜰에서 받을 때 베드로가 들어와서 하숙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다가 너도 예수당이라고 하니까 그는 부인하되 한번 부인하고 두 번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나는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닭이 울고 예수님이 그를 쳐다보매 그는 밖에 나가서 통곡을 하고 울었었습니다. 자신이 저주스럽고 미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들어간 지 사흘이 된 동안에 어둡고 캄캄한 날에 베드로는 산산조각으로 꺾이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되도록 그냥 완전히 꺾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중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셨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 주위에 섰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목숨을 바쳐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아가페 못합니다. 나는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 친구로서 사랑하지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네 양을 먹이라.” 그 다음 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감옥에도 같이 가고 죽는 길도 같이 가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지금도 그러느냐?” “주님 나는 필레오 합니다. 친구로 사랑하지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 말했습니다. “베드로야 그러면 너는 나를 필레오 하느냐? 친구로 사랑하느냐?” 간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언제는 아가페해서 목숨 바치고 사랑한다고 했다가 세 번 부인했는데 또 주님께서 “너 진짜 나를 필레오 하느냐? 친구로 사랑하느냐?” 하니까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친구로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나는 이제 몰라요. 이제는 자신이 없어요. 나는 두 손 들었어요. 난 자신 없어요.” “됐다.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없을 때 주님을 따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책임져 주마. 너는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 그래서 베드로는 꺾인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상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위대한 제자가 바울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요, 가말리엘의 졸업생이요. 그는 철학과 문학과 불꽃같은 종교심을 가진 사람이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극렬하게 바울을 꺾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탄의 사자가 끊임없이 따라와서 바울 가는 곳마다 바울에게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사탄의 사자가 따라다니니 어느 곳에 간들 한시가 편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주님께 나와서 세 번 이 사탄의 사자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말하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가 약할 때 네가 강해진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바울선생은 꺾였고 그는 한평생을 꺾여야 했습니다. 한번만 꺾인 게 아니라 바울이 너무 위대한 인물이고 너무 하나님의 큰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바울을 완전히 꺾어놓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그릇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무자비하게 꺾여야했지만 꺾이면 꺾일수록 그는 더 위대하게 하나님께로 사용당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나는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꺾으시는가?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나 바울처럼은 안 꺾일지 몰라도 오늘날 주님께서 사용하는 사람마다 안 꺾은 사람은 없습니다. 농부가 사용하는 소에 코를 안 꾀는 것 보았습니까? 카우보이가 말을 기를 꺾지 않고 타는 것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꺾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오늘날 누구를 불구하고 죄인이 예수 믿고 나올 때 하나님이 일단 꺾어야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 믿고 나와서 주님을 위해서 크게 일하면 일할수록 하나님은 거듭거듭 허리가 휘어지도록 꺽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생들이 위대한 주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데 위대한 주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위대하게 꺾여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처참하게 꺾여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꺾으실까요? 그것은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꽤나 잘난 줄 알고 있습니다. 자기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미모가 괜찮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매를 맞아 꺾이고 보면 자기 존재가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꺾이는 사람이 비로소 겸손하게 되고 교만을 내어 던져 버리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달려들어서 우리를 꺾은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꺾여야 순종함을 배웁니다. 히브리서 5: 8~ 9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받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말했는데 하물며 여러분과 나 외고집의 인생이 고난당해서 꺾이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것 보았어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 키울 때라도 자식에게 채찍을 때려야 부모에게 순종하고 올바른 길로 가지 그냥 망나니로 키워 놓고 난 다음에 순종하는 자식을 보았습니까? 어느 집이고 망나니로 자식을 키우면 나중에 그 자식이 자라서 부모에게 무서운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자식을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멸망에서 구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서구나 일본에서까지라도 이제 어린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종아리를 못 때리게 나라 국법으로 막는데 이것은 바로 망조의 교육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머릿속 에는 어리석음이 꽉 들어차 있는데 이것을 순종으로 교훈하기 위해서는 종아리를 선생이 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때리라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는 종아리가 맞아야 깨어져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식이고 부모가 키울 때 엄하게 꾸중하고 채찍질해서 키우면 그 당시에는 슬퍼하나 자라고 난 다음 그 부모에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종아리를 때리지 않고서 망나니로 키워 놓으면 그때는 좋아하나 나중에 커서는 그 부모에게 크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참 감사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중학교 때 우리 선생님인데 영어 선생님으로 콩코드라는 선생님 계셨는데, 저는 원래 공부가 하기 싫었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콩코드라는 영어 선생이 들어오시면 이만한 왕대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요. 벌써 교실에 들어오면 그것을 질질 끌고 들어와서 영어 문장을 안 외우든지, 문법을 틀리든지 숙제를 안 하면, 볼기가 터지도록 때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에 와서 제가 고맙게 여기는 것은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런 주의 종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꺾여서 순종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 꺾여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 9에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꺾여서 내가 약해져야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러 약한 것을 자랑한다. 그것은 왜냐 내가 꺾여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받으려면 더 크게 꺾일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서 하나님 능력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능력 받기를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손을 내밀어 여러분을 꺾고 또 꺾고 또 깊이 꺾으십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약한 것을 알고 자기 지혜와 총명과 자기의 학문과 지식과 자기의 잘난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내 어디 가리까. 주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주님께서 그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꺾여야 되는 것은 꺾여야 어리석음이 떠나가고 또 성급함이 떠나가고 지혜롭고 신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났다고 할 때는 인간 지혜를 의지해서 맘대로 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많이 하고 어리석은 말을 많이 하고 일을 신중하게 안합니다. 그러나 대단히 시험을 겪고 꺾이고 매를 맞고 나면은 그때부터 지혜롭고 신중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를 보십시오. 지금은 그런 일 없지만 우리 자랄 때는 시골에 등불 아니면 촛불을 켭니다. 영낙 없이 어린아이가 거기 가서 촛불 손으로 잡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촛불 잡지 말라고 해도 잡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버려 둬야 돼요. 자기가 가서 촛불 한번 잡아보고 손이 타서 놀라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리석음이 떠나가고 지혜가 들어옵니다. 촛불 아무리 잡으라고 해도 안 잡습니다. 그리고 신중해지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꺾이고 시험을 겪고 나면은 그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떠나가고 신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꺾여야 되는 것은 꺾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2: 5~ 6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기가 받으시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징계를 받고 채찍을 맞으며 꺾일 때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뼈 속까지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든지 자기 자식을 사랑해서 잘 키우려면 그 자식이 울고, 불고 반항하더라도 채찍을 때리고 꺾습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말에도 미운자식 떡 한개 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밥이나 많이 먹고 죽으라고. 밥만 자꾸 많이 먹으면 그것 소화 안 되가지고 씩씩 잠이나 자고 공부 안합니다. 그것 사랑해서 주는 것 아닙니다. 미운 놈 떡 한개 더 주라. 이러므로 사랑하는 자식은 부모가 언제나 그를 경계하고 꾸짖고 채찍질하는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꺾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저는 저의 과거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은혜를 받은 것보다는 과거에 하나님께 매를 맞고 꾸중을 듣고 채찍을 맞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왜냐하면 불을 받고 은혜를 받은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버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매를 맞고 채찍을 맞고 꺾인 그것은 내 뼈가 되고 내 살이 되고 내 신앙이 성장하고 장성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다정한 사람과 축복을 받을 때만 좋아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매 맞고 꾸중 듣고 꺾일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주님께서 꺾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꺾여서 여러분께서 겸비하게 되고 순종함을 배우고 하나님 능력에만 의지하게 되고 지혜롭고 신중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자기가 받으시는 자녀마다 채찍질 해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0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따라서 말씀하세요. “내가 약할 때 그때 곧 강함이니라.” 내가 환난을 당해서 능욕을 당하고 궁핍을 당하고 핍박과 곤란을 당해서 꺾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므로 그때는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떠한 사람도 대결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꺾이지 않은 인생은 사용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작게 꺾는 자는 작은 그릇으로 크게 꺾는 자는 큰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사람이 꺾일 당시는 고통스러워서 원망스럽지만 꺾이고 나면 그 후에 장성해지는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오히려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 과정에서 여러분께서 은총과 축복을 받을 때가 언제냐면 하나님께 꺾일 때가 있는데 꺾일 그때가 여러분이 더 위대한 신앙의 생활로 성장하고 자랄 때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품에 품어서 귀하게 사랑해 주실 뿐 아니라 엄하게 꾸짖으시고 채찍으로 때리시고 꺽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 감사하옵나이다. 우리가 꺾임으로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 머리에서 떠나가고 경솔함이 우리의 생활에서 떠나가고 지혜롭고 신중하게 되며 겸손하게 되며 순종하게 되며 깨닫게 되며 하나님께 헌신하게 됨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꺾어 주시옵소서. 이래서 꺾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생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