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10절
누구든지 예수님 만나면 긍정적 변화 일어나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 문 열고 주님 영접해야
치료받고 부요케 되며 영생 얻는 은혜 누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로 부활주일 전 주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고 나귀의 발아래 깔고 온갖 환영을 다 했습니다. 군중들의 환영은 실로 어마어마 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서서 외쳐 말하기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습니다.
여리고의 길목에서 늘 구걸하던 바디매오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간절한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수많은 군중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예수님께서 지나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하고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야! 장님! 거지! 바디매오야 주님이 너 같은 것한테 관심을 가질 것 같느냐? 잠잠하라! 시끄럽다!”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디매오는 뛰고 구르면서 고함을 치고 예수님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에게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으로 나갈 때 그는 옷도 벗어버리고 돈주머니도 벗어 버리고 빈손 들고 그리스도에게 뛰어 나갔습니다. 예수님 앞에선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지체없이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소원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순간 그는 눈을 떠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옛사람은 달라지고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을 얻은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은 신분도 다르고 각기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예수님을 만나자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비록 여러 가지 어두움에 처해 살았더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빛의 세계로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사람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1. 성령의 감동에 순종함으로 주님을 만남
우리는 아름답고 조용한 중에 미풍 같이 스치며 지나가는 은혜의 성령으로 깊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깨닫고 믿고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나라를 제대로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에 하늘나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그 보혈로 죄를 용서받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마음문을 열어 주시고 새사람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그냥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면 그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도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문의 문고리가 안에만 있지 밖에는 없습니다. 안에서 우리가 열어야 예수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어주지 않으면 바깥에는 고리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 문 앞에서 문을 자꾸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겠다고 결단하고 스스로 마음 문을 열어야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계속해서 그 두드리는 소리를 외면하면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시고 또 두드리시다가 떠나가시고 맙니다.
변증법 철학자 헤겔(G. W. F. Hegel)도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에는 밖에는 손잡이가 없고 안에만 있기 때문에 안에서만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 순간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 성령은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어서 문을 열어라! 빨리 열어라!”하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성령의 감동으로 열면 예수님께서 마음에 들어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기적적인 변화가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열어놓은 마음 문으로 들어와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도 주님과 더불어 먹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깊은 교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구만리 장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 마음 문 앞에 서서 노크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그 문만 열면 모두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 중요한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2. 믿음의 가정에서 주님을 만남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전통을 가진 집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가정에서 주님을 만나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믿음의 전통에 싸여 어려움 없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보면 저처럼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고통스러운 체험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먼저 예수님을 믿고 나니 제 안에 들어온 예수님께서 제 마음만 점령하신 것이 아니라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와 자매들의 마음을 모두 노크하셔서 성령의 감동으로 온 식구를 다 전도해서 믿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뤄집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 바로 전까지도 예수님을 구주로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는 길을 복잡하지 않게 열어 놓은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혈통이 좋아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결단으로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생각으로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이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가정예배를 드리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서 교회에 나가며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를 만나 운명이 평탄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했던 디모데는 그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 태어난 디모데는 믿음의 전통에서 성장하면서 주님을 믿어 굉장히 좋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어머니 유니게가 디모데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외할머니 로이스의 신앙이 좋아 그 어머니와 함께 늘 가정예배를 드리고 교회에 나오고 하니 디모데는 어려움 없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 귀한 사람이 되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교개혁가 루터(M. Luther)는 “가정은 최초의 학교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인생을 배우는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고 ‘부모는 최초의 선생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서양 속담에는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것은 예수님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태어난 것과 같으며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의 슬하에 태어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좋은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평탄한 인생 가운데서 주님을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성령께서 그 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인생의 고난과 환난을 통해 자기가 깨어져 주님을 믿게 되는 경우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서로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죄책과 정죄 그리고 허무와 무의미 그리고 저주와 죽음과 같은 절망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다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여 문제가 해결돼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찾아와 그 마음 문을 두드리시고 만나주십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냥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꿈과 환상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오셨다가 그냥 떠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성령께서 마음을 점령하시고 함께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진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3. 극한 고난 중에 주님을 만남
로마서 3장 23절로 25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을 우리가 알아보고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와 하나님을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됐을지라도 예수님을 의지하면 그 보혈로 말미암아 화목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 주시고 하늘나라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한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뤄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명까지도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비해 주신 밥상에서 거룩한 음식을 먹고 새롭게 변화되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허물에 찌들어도 우리 주님께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그 감사와 감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술주정뱅이나 마약중독자 혹은 이 세상 흉악한 악행을 많이 저지른 자들처럼 칭찬할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고 깨끗이 씻게 되면 새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새롭게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각, 새로운 건강, 새로운 생활, 새로운 세계를 허락해 주십니다. 이제 지금 이 순간부터 낡고, 어지럽고, 오래된 것은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서 새 것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성령의 은혜로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치료를 받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하였으며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은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바로 “다 고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한두 사람이나 두세 사람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련을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기를 소원하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부요하신 이로서 가난하고 굶주린 우리에게 부요하게 하시고 이 땅에 살게 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은 가난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사는 것으로 주님이 이미 결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것이 바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는 바로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 변화를 요구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변화를 주려고 오셨지만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 문 앞에서 노크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 드리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도 않고 버림받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의 슬픔과 고통도 같이 걸머지고 기쁘고 즐거움도 함께 나눌 터이니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가 함께 동참하고 걸머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얻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어두움에서 밝은 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면 밝은 빛으로 나타나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을 물리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추운 인생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춥고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러 오셨기 때문에 배고플 때 부르짖으십시오. 이처럼 우리는 항상 고통과 문제에 둘러싸여 짓눌려 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모든 고통의 문제들이 전부 해결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죄와 허물, 저주와 절망 그리고 질병과 죽음을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제 우리의 모든 결박이 풀어져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진정한 보배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간절한 소망과 넘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