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도전해야 산다

by 삶의언어 posted Oct 23, 2024 Views 4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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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신앙성숙
예배드린 날 2007-02-25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oKSokhMH4t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7∼11절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범죄하고 하나님 떠나
회개하고 순종하며 꿈을 갖고 인내하면
예비된 축복의 가나안 땅 받아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른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불가능을 믿음으로 도전하여 삶을 승리로 이끈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뿐 아니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1.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는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침노라는 말이나 빼앗는다는 말은 전투적인 용어인 것입니다. 이것은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침노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침노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노하는 정신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불가능에 도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꿈꿀 수 없는 것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짖는 것이 도전입니다. 우리가 침노하고 빼앗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도전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CCC(Campus Crusade for Christ)의 창립자인 빌 브라이트 박사는 CCC를 통해 일을 시작할 당시 485달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는데 고향에서 예수 믿는 어떤 사람이 500달러 수표를 보내왔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그 다음엔 1만 달러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성도 한 분이 찾아와 사정 얘기를 듣더니 우선은 빌려주는 것으로 하고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의 사업이 번창하자 기부금으로 돌렸습니다. 박사님은 기도마다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한편으로 신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전도집회를 위해 110만 달러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또 누군가가 찾아와서 “최근에 사업체를 정리했는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다”고 하며 돈을 주더랍니다. 빌 브라이트 박사님은 이러한 기도 경험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얻고, 한 번 얻으면 재미가 나서 다음엔 좀 더 큰 것을 구하고, 그 다음은 더 큰 믿음으로 기도하여 더 큰 것을 얻는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자꾸 쌓게 되면 신앙생활만큼 재미있고,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누가 나에게 지렛대 하나만 들려 달라. 그러면 나는 그것으로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이러한 지렛대와 같아서 인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구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렛대로 올리면 불가능이 들려 올려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지렛대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할 수가 없는 것도 기도의 지렛대를 통해서 누르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돌아서게 되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놀라운 결심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목표를 두고 맹렬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침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노한다는 것은 ‘찾으라’고 하는 것 입니다.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줄 믿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일으켜 세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신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보고 무덤문을 옮겨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이루어지게 됩니다. 구했으면 찾아야 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서 그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아야 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해야 하나님도 하나님 하실 일을 해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할 일도 하나님께 다 해달라고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걸어 나왔을 때 온몸이 수의에 칭칭 매어 있는 나사로를 주님이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보고 “풀어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맹렬히 구했으면 또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50대 목사님이 자기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보내는 곳마다 거부를 당했습니다. 목사님이 화가 나 그 원고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사님이 주무시는 동안에 사모님이 쓰레기통에서 원고를 주워 남편 몰래 한 출판사에 의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출판사 사장이 원고라는 것은 찍어봐야 알지 찍기 전에는 모른다고 한번 찍어나 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이 3000만부나 팔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먼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책입니다. 끝까지 출판사를 찾고 또 찾는 노력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직장을 허락해 주시면 혼신의 힘을 다해 직장에서 일을 해야지 희미하게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갈수록 사람들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국민들이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열심히 두드리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일확 천금을 얻으려는 사행심리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로또 열풍이나 주식 열풍, 부동산 투기, 도박 등 한탕주의를 통해서 한번에 큰돈을 손에 잡아 보겠다는 것이 유행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하고 열심히 찾고 온 힘을 다해서 두드리는 수고를 하지 아니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2.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회사원으로 가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돌봐야 합니다. 만약 청소를 하러 들어갔으면 그 회사가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고 아주 정성을 다하여 청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소유라 하면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돌보지만 남의 소유에 내가 고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 눈앞에서나 열심히 할까 온 정성을 다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보크라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6학년밖에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의 성공적인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저널리즘에 큰 공로를 세우고 위대한 회사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서 일을 했지만 손자를 초등학교 밖에 공부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내가 더 너를 도와줄 수 없으니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가라!”고 차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주며 “어느 곳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네가 그곳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하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내가 네게 줄 재산이란 이 말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미국 뉴욕에 갔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문배달이었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늘 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길거리에 서서 신문을 팔면서 자기가 그 길거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주위에 있는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다 깨끗이 치웠습니다. 신문 파는 자리 근처를 빗자루로 깨끗이 쓸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그가 신문만 파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아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호감을 가지게 되어서 ‘기왕 신문을 살 바에야 이 사람에게 사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에드워드는 신문을 많이 팔았습니다. 돈을 꽤 모았습니다. 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그는 출판사에 하급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처럼 출판사의 모든 일을 돌보고 청결하게 청소하며 열심히 배달하고 애를 쓴 결과 인정받아 점점 직급이 올라가 출판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는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점점 미국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미국이 아는 유명한 저널리즘의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주인이다’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는 말씀대로 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노력을 기울이면 그 다음에 보응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살면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잘살아 보겠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는 사람은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19절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의 토지를 가지고 있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생각하고 잘 살겠다고 꿈꾸고 믿고 일하면 이 사람은 궁핍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붙들어 주시므로 전력을 기울여 일하는 사람에게 성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구해야 넘치도록 도와 주시고 생각해야 넘치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넘치도록 능히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만히 있어 게을러서 베개 베고 뒹구는 사람에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으른 자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심고, 김매고, 비료주고, 돌보아야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인생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주면 인생도 돌려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힘을 다해서 열심히 심으면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게 살면 가난과 고통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안하고 쉽고 깨끗하고 편안한 일만 하겠다고 하면 망하게 됩니다. 산업 발전의 기초를 이룬 우리의 선대들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자초해서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서 오늘날 한국이 이 정도로 잘살게 만든 것입니다. 시편 126편 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러 나갈 때 울면서 나간다고 했습니다. 왜 웁니까? 힘이 드니까 웁니다. 위험한 일을 하니까 웁니다. 씨를 뿌리러 나갈 때 울고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곡식단을 안고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울면서 각오를 하고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기쁨으로 단을 안고 돌아올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런 자는 패배한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실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광명을 찾지 않는 마음, 그의 말에는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 떠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생애에 쓰레기통을 꼭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집집마다 쓰레기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쓰레기통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쓰레기를 안고 다니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 탄식, 고통, 괴로움, 슬픔, 어려움 당했던 모든 쓰라린 부정적인 경험을 쓰레기통에 잔뜩 담아서 안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 쓰레기통을 그냥 안고만 다니면 좋은데 또 자꾸 뒤져보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쓰레기 같은 마음이 꽉 들어차서 항상 마음에 울분을 가지고 원망 불평 탄식하고 부정적인 삶을 살기에 인생은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쓰레기통을 치워 버려야 합니다. 마음의 쓰레기통을 치워야 합니다. 쓰레기는 쓰레기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쓰레기를 지금 안고 있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쓰레기통을 비워 버리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보배함을 갖고 다니십시오. 보배함은 하나님께 은혜받은 것, 축복받은 것, 이웃에서 사랑받은 것, 도움 받은 것들을 생각하고 기억함으로 마음이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야 가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생활 습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패하는 사람들은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네 탓이다’라면서 안되면 부모 원망하고, 이웃 원망하고, 나라 원망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실패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왜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었느냐”하니까 “하나님이 지어주신 그 여자가 먹으라”고 하므로 먹었다고 아담은 대답했습니다. 실패를 하나님께 돌리고 여자에게 돌린 것입니다. 여자에게 “하와여, 네가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하니까 하와는 “내가 먹은 것이 아니라 뱀이 꼬임으로 먹었나이다”고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실패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 실패의 책임을 짊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과도한 자기 과시욕에 끌려 판단을 잘 하지 못하고 이에 따라 인간관계나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올바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고 남과 잘 다투며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매사를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신중합니다. 이 사람 말도 듣고, 저 사람 말도 듣고 언제나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과 결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항상 변명하다 실패하지만 발전하는 사람은 늘 자기를 개선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못 했으면 스스로 “내가 잘못했으니 이 교훈에서 훌륭한 것을 배우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자기 잘못을 자꾸 변명하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버림받고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은 변명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하된 자기 자화상을 가지고 불가능을 과대평가하고 자기를 과소평가합니다. 이것을 두고 사람이 스스로 자화상을 잘못 가지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맴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하고 축복받고 승리하는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새로운 피조물의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늘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용서받은 의인의 자화상을 가져야 되며,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성령이 같이하는 거룩한 자화상을 가져야 됩니다. 병이 낫고 치료받는 건강한 자화상을 가져야 되며,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자화상을 가져야 되며, 부활 영생 천국이 된 자화상을 가지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불안증에 잡혀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경에 말씀한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니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 왕과 역전의 용사들도 다 겁을 내서 뒤로 물러가는데 다윗은 담대하게 나갔습니다. 다윗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군사 기술력이 아닙니다. 전쟁의 경험도 없습니다. 오직 야훼를 의지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서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 이름으로 나가노라. 내가 오늘날 너를 죽여 너의 살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고기를 만들고 온 세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려 주겠다” 용기와 담력이 없이는 하늘나라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볼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담대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하지 않는 말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없다’는 말과 ‘잃어버렸다’는 말과 ‘한계가 있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없다’는 말 대신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잃어버렸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능력은 이것 밖에 안 된다’고 한계를 설정하기보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패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패배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은 승리자요,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패배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다시 옛날을 회복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죽음이나 칼이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삶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이처럼 가시밭 험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도전하고 꿈을 갖고 믿음과 인내로 열심히 일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복을 받고 성공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으로 축복의 가나안 땅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침노하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그리하면 반드시 네가 빼앗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 밑의 가나안 땅에 침노해 들어가서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패배해서 뒤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서 주의 성령님을 의지하고 전진 또 전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원망, 불평, 탄식하고 뒤로 물러가는 사람이 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영광으로 믿음으로 채워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넘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