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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야훼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라

by 삶의언어 posted Apr 19,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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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절기
예배드린 날 1986-11-23
오늘의 성구 하박국 3장 17절로 1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x8zzHgu7fgM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중에 가장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말이 감사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원방이나 불평은 부정적인 세력을 가져옵니다. 부조화를 가져오고 불화를 가져오고 슬픔을 가져오고 파괴를 가져오고 종극적으로 불행을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있는 곳에는 조화가 있고 화평이 있고 그리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물론 그 근원이 구약성경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서 하나님 성전에 나와서 감사의 대제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선교를 받아서 예수를 믿게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감사절의 영향력을 받아서 이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원래 영국의 국교에 반항해서 자유롭게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청교도들이 1620년에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향해서 메이플라워호라는 범선을 타고 출발했었습니다. 오늘날은 비행기로 가면은 10시간 이내로 건너가는 대서양인데 그때는 이 범선을 타고 돛을달고 무려 석달을 천신만고를 겪어가면서 대서양을 건넜었습니다. 그래서 미국동부해안의 플리머스룩에 도착해 가지고서 그들은 곧장 통나무를 베어서 교회당을 짓고 거할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서 농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륙에 와서 물이 다르고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풍토병에 걸리고 또 인디안들이 습격을 받아서 1년이 지나서 120명의 첫 이민들중에 60여명이 죽고 말았었습니다. 남은 60여명이 추수한 곡식을 거두어서 하나님앞에서 큰 감사의 제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끼리 즐거워하며 또 친밀한 인디안들까지 물러서 대축제를 벌였었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탄식가운데서 원망하고 불평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길을 택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거대한 번영이 처음 청교도들이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 미국을 개척할 때 그들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 대신에 감사와 찬미로 국기를 삼았기 때문에 오늘 미국 같은 나라가 된줄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50편 23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시는데 오늘 다른 제사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실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손을 내밀어 구원을 베풀고 도와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성경말씀 가운데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나는 무화과 나무의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양이 없을지라도 야훼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좋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인하여 어떠한 환경에도 감사를 할줄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에서 첫째로 언제 감사해야 될것이냐?
극한 고난의 때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사업이 번창하고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수입이 좋고 모든 것이 아름다울 때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가장 쉬운일이고 또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조그만한 시련과 환란이 다가오더라도 고난과 괴로움이 다가오면 곧장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자기 운명을 원망합니다. 인간은 그렇게도 쉽게 원망을 잘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가장 흉악한 성격입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눈에는 연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개인이나 가정 그 사회나 집단을 절대로 축복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성경말씀 가운데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탁월한 점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극한 환란과 역경에 처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린 바울과 실라의 예를 들어서 잘 알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마게도냐의 빌립보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그곳에 점치는 처녀 한사람이 매일같이 바울과 실라를 타라다니면서 괴롭혔습니다. 큰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이 두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자로서 여러분에게 구원의 도를 전파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세상이 다아는 점쟁이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그들이 점쟁이의 증거를 받기를 원치 않았었습니다. 하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 때문에 하루는 바울이 뒤를 돌아보면서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원수마귀야 이 소녀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즉시로 마귀가 나와서 떠나가 버리고 그만 그 소녀가 점을 치지 못하게 되었었습니다. 그 주인은 소녀가 점치므로 말미암아 이익을 많이 봤는데 이제 귀신이 쫓겨나가 버리고 점을 칠수 없으므로 거기에서 분해서 일어나서 온 도시를 소란케하고 이 사람들이 로마 사람인 우리들이 받을수 없는 종교와 습관을 가져 왔다고 했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관에 고발을 했고 관에서는 그들의 등을 벗기고 몹시 매를 때려서 피투성이가 된 그들을 빌립보의 ** 깊은 옥중에 가두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들은 옥에 갇혔습니다. 발도 차고에 차이고 손도 쇠사슬에 묶이고 온몸은 얻어 맞아 터지고 쓰라리고 습기찬 곳에 벌레는 기어올라오고 배는 고팠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었었습니다. 그 쓰라림이 극도에 달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와같은 상황에 도착했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할 수 있으며 불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능히 택할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바울과 실라는 오히려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고난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특권으로 생각하고 그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매맞고 멸시당하고 천대받고 감옥에 갇힌 것을 감사히 생각해서 둘이가 하나님앞에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성령이 충만해서 찬미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찬미가가 얼마나 하나님 성령이 충만해서 영광스러운 노래를 불렀던지 그 흉악한 죄수들이 밤중에 자가 깨서 그 찬송을 가만히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감사의 찬미가 하늘의 보좌에 상달되자 하나님께서 감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주의 사자들이 내려와서 빌립보 옥터를 잡고 뒤 흔들어 버렸었습니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온 빌립보 시가 흔들리고 옥터가 흔들렸었습니다. 그러자 일시에 감옥문이 다 열리고 그들의 발에 차인 차고나 손에 묶인 쇠사슬이 다 풀렸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었습니다. 단순한 지진 같으면 어떻게 발에 차인 차고와 손에 있는 쇠사슬이 다 풀린단 말인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감사와 찬미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옥토를 다 뒤흔들어 버리고 감옥문을 열어버리고 차고를 끌러버리고 쇠사슬을 끊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수들의 차고와 쇠사슬이 다 풀린지라 간수가 자닥 놀라서 보니 감옥분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수갑이 다 풀린 것을 보자 그는 칼을 뽑아서 자살할려고 했었습니다. 이럴 때 바울이 두려워말라 우리가 다 이곳에 있다 그러자 그가 뛰어들어와서 바울에게 선생들이여 우리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으리이까? 외쳤고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날 저녁으로 그 간수와 가족들이 모두 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경우가 기록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보면 그들이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는 대신에 그 극한 상황 어려움 가운데서 야훼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서 주이 사자를 보내서 그 감사와 찬송의 결과로 빌립보 옥터를 흔들고 모든 감옥에서 해방을 얻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슬픔의 감옥 절망의 감옥 고난의 감옥 염려와 근심이 감옥 여러 가지 감옥에 갖히고 여러 가지 문제로 쇠사슬에 묶였을 때 우리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 믿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믿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원망 불평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사람의 행하는 것인 것입니다. 원망 불평은 오히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더 깊은 흑암속으로 떨어지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나 가운데 오히려 무릎을 꿇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것을 알고 하박국처럼 비록 무화과나무에 열매가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양과 염소가 없을지라도 야훼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찬미하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감사와 찬미는 하나님을 감동하여 여러분과 나를 자유케하는 위대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범사란 좋을때도 범사고 나쁠때도 범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때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천지가 흑암속에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십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보니 세상에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힌 은혜부다 더 큰 은혜가 없고 그 비극보다 더 큰 승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충만함받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오니 인류가 죄에서 놓여남 받은 큰 축복이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도 그와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슬프고 어렵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절망인 것 같지만은 주님께 내어 맡기고 세월이 지나고 보면은 나중에 그 사건이 얼마나 좋고 훌륭한 축복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눈앞에 있는 현실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주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께서 좋게 해줄 것을 믿고 우리가 기뻐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린 극한 시험과 환란과 고통 중에서 그것을 바라보지 말고 그것을 변하여 유익되게하는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평범한 생활 중에서 감사를 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젊을 때 고생은 금 주고도 못산다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나중에 나이 먹어서 평범한 생활 중에서도 조그마한 일을 당해도 굉장히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본 사람은 밥을 감사하고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건강을 감사합니다. 헐벗어 본 사람은 옷이 감사하고 집없는 설움 당해 본 사람은 조그만한 오두막집이라도 내집이 감사합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포식의 시댑니다. 부모들이 6.25사변 난 이후로 고생을 하도 했기 때문에 어찌하던지 젊은 세대는 잘먹고 잘입고 잘살려 보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젊은이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오늘날은 포식의 세대라 젊은 세대들이 감사함을 잊어버렸었습니다. 밥 먹는 것 감사하지 않습니다. 옷입는 것 감사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집에 사는 것 감사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세대는 우리의 자랄 때 고난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밥먹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옷입는 것이 감사하고 내 집에서 따뜻하게 사는 것이 감사하고 이 세상에 건강가지고 편안히 사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여러분과 나의 마음속에 행복을 갖다주고 기쁨을 갖다주고 뜨거운 믿음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을 파괴할려면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은 틀림없이 믿음이 파괴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지극히 적은일 하나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은 믿음이 자랍니다. 밥먹는 것 감사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 감사하고 가족들 다 함께 모여 사는 것 감사하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것 감사하고 감사로 일일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스번 목사님이 이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나는 들어보았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부흥산데 아프리카에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거기에 조그만한 손수레 다 죽어가는 여자 한사람을 집회에 싣고 왔었습니다. 한 스물여섯살 먹는 여잔데 벌써 노인과 같이 보였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데 암이 걸려서 복수가 차여 배가 이렇게 남산처럼 불렀었습니다. 그는 이미 운명이 결정된 사람 이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스번 목사님이 설교할 때 예수님에 대한 것을 말씀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올라갔었습니다.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올라갔었습니다. 간음한 자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올라갔었습니다. 창녀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올라갔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벌을 받아 그 죄악을 다 청산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안에서 모두다 용서를 받고 말았었습니다. 사람은 두 번 심판받을 필요가 없나니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간음한 자도 심판받지 않고 살수가 있습니다. 사라인자도 심판받지 않을수 있습니다. 창녀들도 심판받지 않고 살수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께만 나오면 주님이 흘리신 피로 다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설교를 할 때 이 여자는 귀를 기울여 들었었습니다. 그는 나이 어릴 때부터 몸을 팔고 사는 창녀였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열등의식과 죄절감과 절망감과 죄책으로 꽉들어차 있어서 그는 암이 걸려 죽어가면서도 숨조차 크게 쉴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스번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난 다음 그 영혼속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예수님께선 나같은 창녀를 위해서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벌을 받았었습니다. 이제 나는 벌받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한가지 죄에 대해서 두 번 달아 벌을 받을수 없지 않느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지 않았는가? 갑자기 용서받은 기쁨이 마음속에 파도처렴 쳐들어 왔습니다. 그는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나는 용서받았다. 나는 거듭났다. 나는 이제는 새사람이 되었다. 너무 좋아서 기뻐서 용서받은 것을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다가 보니깐 어느 순간에 남산만한 배가 탁 꺼져서 암이 나아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감사하자말자 하나님이 감동해서 그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암이라는 감옥에서 그를 해방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겠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은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이 건강주신것과 치료해주실 것을 알고 감사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감사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있는자에게는 더주어 풍족하게 하고 없는자에게는 있는것까지 빼앗아 버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만 하는 사람은 있는것도 빼앗아 버리지만은 있는 것을 받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는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주어 풍족하게 만들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녀를 기를 때라도 자녀가 사사 건건히 부모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날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나에게 무슨 잘된 것을 해 주었습니까? 하고 말한다면 부모는 있는 힘을 다해서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교육시켜주고 온갖 것 다 해주었는데 해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말하면 그다음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생겨서 해주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고 도와주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자식중에서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일일이 생각해서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나 잘먹고 잘입고 공부 잘하고 이렇게 살게 부모님이 도와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만해도 만족해요.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그러면 부모의 마음이 영화로움을 얻고 뜨거워져서 야 좀더 아 입을 넓게 열려무나! 내가 채워 줄테니깐 좀더 도와줄테니깐 걱정마라! 자원해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성경말씀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롭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것조차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평범한 생활 중에서 승리롭게 사는 위대한 원리는 감사를 하고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감사하는 자와 감사못하는자의 운명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주인이 먼 외국으로 가셨는데 종들을 불러다가 한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겐 두달란트를 주었습니다. 또 다른사람에겐 한달란트를 주었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것을 받고 난다음 주인의 호의에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마음에 즐거움이 충만했었습니다. 감사하자 일할수 있는 마음에 열심히 생겨나서 그들은 곧장 나가서 열심히 장사했었습니다.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달란트를 만들고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네달란트를 만들었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그들은 주인앞에 와서 기쁨으로 주인이여! 주인이 주신 다섯달란트를 열달란트 만들었습니다. 두달란트를 네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보자 기뻐하시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종아 잘했다. 너희가 적은일에 충성했으니 더 크게 축복을 받아라. 그리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이 달란트를 받아서 그들이 감사히 생각하고 감사 가운데서 일하므로 이런 큰 축복의 열매를 맺었었습니다. 그러나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 앞에서 입이 부루퉁 했습니다. 에게게! 나를 누구로 보고 한달란트를 주느냐? 저사람은 다섯달란트 주고 저사람은 두달란트 주는데 그래 나는 무시하고 멸시해서 한달란트 밖에 주지 않아? 이 사람은 굳은 주인이다. 이 사람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착취자다. 그는 불평이 꽉 들어찼습니다. 원망이 꽉 들어찼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남의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가지고 집에 가서 삽으로 흙을 파서 그 속에 금화 한달란트를 파묻어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나중에 주인이 오게되자 그거를 도로 파서 가지고와서 주인이여! 주인은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기 때문에 당신의 돈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본전을 받으십시오. 여러분 하늘나라는 본전치기가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그 무엇을 하든지 배로 넘치게 하든지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하는 것이지 본전치기는 없습니다. 주인은 그 한달란트를 받아서 대 노 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만일 내가 완악한 사람이고 심지 않은데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 거두는 사람 나쁜 착취잔줄 알았더라면 너는 이것을 가지고 은행에 맡겨서 이잣돈이라도 받아서 내게 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난 다음 하신 말씀이 이 사람의 한달란트를 빼앗아서 열달란트 있는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니깐 종들이 주인이여 이미 저 사람은 열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라 있는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겠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으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에 내어 쫓아 어두운데서 이를 갈며 고통하게 하라. 여러분 보십시오. 이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꾸중을 듣고 자기 있는것도 빼앗기고 거기에 더 증가해서 어둡고 깜깜한 절망의 마음을 가지고 이제는 고통과 눈물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했습니까? 원망과 불평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한달란트 적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준 것은 그것이 한달란트든 두달란트든 다섯달란트든 감사하게 받아서 이것을 감사하고 감격하여 열심히 일하면 착하고 충성스럽게 일하면 이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칭찬해 주시고 더 주시고 그리고 큰 기쁨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없는 것을 바라보고 원망하면 이 한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나중에 절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할 때마다 스펄젼 목사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주시고 감사하면 달을 주시고 달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촛불도 전등불도 달도 태양도 필요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가진 것을 가지고서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 가진 것조차도 누릴 자격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이야말로 확실한 믿음의 씨앗인 것입니다. 감사로 우리가 심어놓으면 그 결과로 형통과 기쁨과 행복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심으면 부정적인 상과 저주와 슬픔을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우리 한국은 농사도 평년작 이상이 되었었습니다. 채소도 잘되었었습니다. 비로서 한국 역사에 처음으로 우리는 무역에서 사십억불에서 오십억불 가까운 흑자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있는 중에도 큰 축복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우리의 정치가 누란의 위기에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백척간두에 있지만은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만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신 사건도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할 것인 것입니다. 1986년을 보내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년을 감사해야 될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역흑자를 감사해야 될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것과 입을것과 마실 것을 주신 것을 우리가 감사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이로 말미암아 마음이 감동되어 주의 사자들을 보내서 정치적인 문제도 공산당의 문제도 모두다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놓으면 닫을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 놓으면 열자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적인 능력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감사절을 맞이해서 오늘 이 하루뿐 아니라 우리가 마음에 결심해서 극한 환란을 당할때나 평범한 생활에나 우린 모두다 감사의 제사를 드려서 운명을 해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 정말입니다. 우리도 부모되고 자식들 길러보면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는 자식들에게는 부모가 영화로움을 느끼고 아무리 해줘도 원망 불평하는 자식 앞에서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께 그 많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줄 모르므로 하나님을 분노케 한 일이 한두번이 아닌 것을 회개하고 자백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한달란트 받았다고 해서 원망하고 불평하여 아버님의 분노를 사서 오히려 한달란트조차 빼앗겨 버리고 어두운데 쫓겨나서 탄식하며 이를 갈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큰 것보다도 지극히 적은 것 받을 때 더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큰 것만 감사하지 말고 적은것도 감사하고 좋을때만 감사하지 말고 십자가 걸머질때도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비가오나 날이 맑으나 조용한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이나 우린 감사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과 함께 나가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영원히 더 잘되고 범사가 더 잘되고 더 강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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