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말씀 위에 선 믿음

by 삶의언어 posted May 17, 2024 Views 2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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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06-06-11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8장 22절로 2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sAmfO4ABux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8장 22∼25절


광풍이 내리치는 인생항로
말씀 안에서 주님 찾을 때
시련과 고난의 역경 이겨내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 이편에 서서 저 건너편을 바라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신속히 배를 준비해서 예수님과 함께 배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배는 순풍의 돛을 달고 미끄러지듯이 갈릴리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중에 광풍이 몰아쳐 배가 위태하게 되자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1. 주님과 거리를 둔 제자들

 제자들의 마음속에 세상 사랑이 들어오자 제자들은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중심의 삶으로 바뀌면서 그때부터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천국 관심사에서 세상 관심사로 옮겨져 버리고 만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삶에 중대한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 때에 세상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이 들어오면 음란을 가져오고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탐욕과 악한 것을 함께 가지고 들어와서 하늘나라 관심에서 우리를 멀리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 마음속에 세상이 들어오자 세상을 품은 제자들끼리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부류끼리 모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가 늘 세상을 생각하면 세상에 속한 영이 우리에게 와서 같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란한 생각을 하면 음란한 영이 오고 미워하면 미움의 영이 오고 방탕하면 방탕한 영이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왜 세상 마귀가 나를 따라오는가?” 라고 말하기 전에 마귀가 좋아하는 요소가 내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파리가 자꾸 날라온다고 말하지 말고 파리가 찾아오게 하는 쓰레기더미를 치우면 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늘 죄지을 생각을 하면 죄있는 환경을 찾아가 죄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 ‘나는 못산다. 안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못살고, 안되고 할 수 없는 환경이 우리에게 거하여 떠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각, 곧 우리 마음의 자세가 우리 환경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에 따라 자신의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말씀의 토대위에서 지혜롭게 생각해야 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잠언 23장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운명과 환경이 결정되어 따라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한 배를 탔음에도 세상이 그 마음속에 들어오자 세상과 벗이 되어 그들만 모이고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두리에 홀로 있게 되면 주무시고 우리를 향하여 침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깨뜨리고 우리 자신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깨뜨리고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망망한 대해인 세상을 살아가는데 주님은 결코 우리 혼자 배를 타고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신 것처럼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시지만 우리가 거리를 두면 우리 인생의 배 속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먼저할 것과 나중할 것이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보다 세상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면  예수님은 주무실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예수님을 먼저 구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삶을 돌보아 주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9절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는 말씀처럼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말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중심에 모시고 섬길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2. 삶과 풍랑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멀리하자 홀로 계신 예수님은 주무셨고 이때에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이처럼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육식동물들은 먼저 초식동물들의 어미와 새끼를 분리시켜 놓습니다. 어미곁에 있는 새끼를 공격하다가 어미의 습격을 당해서 부상을 입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몰아쳐서 새끼를 어미에서 떼어 놓으면 그때는 그 새끼를 공격해서 잡아먹습니다. 마귀도 한가지입니다. 우리를 예수님께 떼어 놓아야 공격할 수 있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를 절대로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항상 우리를 유혹하여 세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게 하므로 예수님과의 분리를 조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있으면 마귀는 그때 우리를 공격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로 8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원수인 마귀를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능히 서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하고 깨어서 주님 곁을 떠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풍파가 다가오는 것입니까? 개인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사업과 직장 생활에서 풍랑이 다가오는 것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마귀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갖가지 환경의 풍랑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므로 예수님이 주무실 때에 마귀는 그 틈을 타고 풍랑을 보내어서 일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수장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거리를 둘 때 마귀는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님이 함께 계실 때에는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91편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는 말씀은 진실로 야훼 샬롬이 우리의 평안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그 천사들을 명하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넣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면 우리의 관심사가 예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하늘나라 관심에서 세상 관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에서 나를 섬기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할 때 마귀는 이때를 틈타 환경 가운데 풍랑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3. 환난 당했을 때 주님을 깨우라

 제자들은 풍랑을 만났을 때에 파도가 일어 배에 물이 가득하므로 좌절과 절망에 처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리 노력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자 이와같은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기 중심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다가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자기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철저히 회개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주님께 나오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5절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1장 9절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회개하고 두손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모른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이사야 55장 6절로 7절에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세상으로 나아가 창기와 재산을 전부 탕진한 탕자와 같은 인생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품에 품어 주시고 받아주셔서 다시 새로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사람들은 탕자와 같은 우리 인생을 비평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심판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을 만났을 때 먼저 회개하고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게 속삭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묵상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게 부르짖어 외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970년 4월, 미국의 아폴로 13호가 달나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2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아폴로 13호는 산소통이 깨지는 사고로 더 이상 비행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본부인 휴스턴을 향해 긴급하게 연락을 했고, 지휘 본부에서는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 돌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미국 국민들은 고장난 캡슐을 몰고 오는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오전 9시를 기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전국민이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도 우주선 안에서 힘껏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장 난 아폴로 13호는 태평양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 해군 군함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이들이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감사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해군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당시 이들의 모습은 타임지 표지에 실려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인간 과학의 최고 산물이라는 우주선이 고장났을 때, 인간이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만능도 기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부르짖음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면 모든 환경의 풍랑을 잠잠케 해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잠케 하신 후 제자들을 둘러보시고 “네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과 같이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잊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세상 사람들은 육신을 위한 떡으로만 살지만 우리는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에는 떡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40년동안의 광야생활을 할 때에는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았습니다. 광막한 사막에는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병원도 없고 의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전하고 그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을 통해서 만나도 오고 메추라기도 오고 물도 생겨나고 병도 낫고 의복도 낡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 속에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3차원의 세계 속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의지해서 살지만 우리는 3차원의 세계를 초월한 성령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와서 오늘날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좌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 알고 말씀 위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 광야와 같은 삶 가운데에서도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배에 가득한 것은 3차원의 세계 속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말씀을 주시는데 너희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이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29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아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읽고 믿음으로 나아올 때 어떠한 거친 파도도 잠잠케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떠나서 인간의 감정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인생의 결과는 좌절과 고통뿐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안에 거하고 말씀 위에 서게 되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모든 부요함의 근원이 되십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영적으로 사는 세계도 있고 범사에 축복받는 세계도 있고 치료받는 세계도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아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아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발견하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요,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오일을 공급하는 회사로 그 기름을 이집트에서 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미국의 석유회사입니다. 어떻게 미국인이 이집트에서 기름을 퍼내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의 중역 가운데에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져 이집트의 나일강 하수에 버려지는 내용을 읽다가 눈이 번쩍 띠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는 말씀에서 그는 ‘역청’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발견하였습니다. ‘역청’은 영어로 피치(Pitch)인데, 피치는 바로 석유라는 말로서 모세의 어미니가 역청을 구할 수 있었다면 그곳에 기름이 날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그는 찰스 휫샤트라하는 지질학자를 이집트로 보내어 현지 답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떠내려 보냈다고 하는 바로 그곳에서 커다란 유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언제나 말씀 위에 서서 의심없이 이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환경을 통해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려고 동서남북으로 뛰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말씀을 품에 앉고 부르짖는 것이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씀하고 있고 3절에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셀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의 인생항로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자기를 섬기는 삶을 버리고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생활로 돌아오고 부르짖어 외치면 오늘날도 주님은 잠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또한 마귀가 가져다주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주님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므로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에 흔들리지 않고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인생항로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가십니다. 우리의 인생항로중에 주님을 멀리할 때 우리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주님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마귀로 인해 오는 모든 풍랑은 잠잠해질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배를 같이 타고 인생을 항해할 때에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과 친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다 쫓아내고 주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과 축복과 기적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