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

홍수를 만났을 때

by 삶의언어 posted Oct 30, 2024 Views 34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1981-04-05
오늘의 성구 시편 29편 10절로 1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1Hbd59FVLUM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행복한 사람"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지만 간단히 두 종류 -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이 두 종류 이외로 달리 더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지위, 명예, 권세를 얻고 부귀, 영화가 있으면 행복하고 환경적으로 그런 것이 없고 가난하고 괴로움이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질적 환경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지위, 권세,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극도의 불행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사람, 그는 문학가로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지만 그는 쓸쓸하게 사냥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습니다. 그가 자살할 때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너무 외로와 살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은막의 여왕이라 했던 마릴린 몬로 같은 여자, 명예도 있고 돈도 있고 모든 사람이 흠모했던 여인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부귀, 공명, 권세가 있다고 환경이 좋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주 어렵고 고통스런 환경에 있으면서 극도로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 같은 사람, 채찍에 맞아 등에 피가 흐르고 배는 굶주리고 발은 착고에 채이고 벌래가 기어오르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도 실라와 함께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 찬양 소리가 얼마나 은혜로웠던지 모든 죄수들이 다 그 노래 소리에 감동하여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주 기쁨이 충만한 그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므로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은 반드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체험입니다. 내가 행복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지 환경이 좋아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죄를 짓고 난 다음 감옥에 동시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다 창살을 잡고 밖을 내다봅니다. 한사람은 시간만 있으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비 오는 하늘,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 구름이 떠가는 하늘, 그리고 푸른 하늘도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는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래와 시를 지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가 쓴 원고는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매일 철창을 잡고 머리를 숙이고 진흙창만 바라보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하고 울었습니다. 똑같은 감옥에서 같은 형기를 살고 그 둘은 감옥을 나왔는데 한 사람은 나갈 때 시인이 되어 원고지를 가지고 출판사로 갔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정신 분열증이 걸려 정신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 때 자신이 주관적으로 모든 생활과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누리는가가 그 사람이 행복을 누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합니다. 이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모두 다 행복할 수 있는 후보자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행복해지려면 행복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도 없고 생수의 강 되신 성령님도 계시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만 꽉 들어차고 분노, 시기, 미움, 질투만 가득한 마음속에는 행복이 아무리 와서 자리를 차지하려 해도 행복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을 쫓아 보낼 수 있는 바탕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날 때만이 마음에 천국이 옵니다.
예수께선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나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늘 나라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마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들어옵니다. 변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에스겔서 36장 26절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두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완악하고 굳어진 마음을 주의 성령께서 오셔서 제해 버리고 마음속에 새 영을 주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면 우리의 생애가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구원을 의지하고 보혜사 성령의 생명의 강이 마음속에 넘쳐나면 기쁨과 위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역경이 지나가도 행복합니다. 기쁨이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 때 무거운 짐이 그를 짓눌러서 그 짐을 이길 수 없어 눌릴 때 사람은 대개 우울증에 걸리고 불행해집니다.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을 느끼고 삶이 두려워지고 세상에 나가 일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분노합니다. 자신의 이웃과 가족에게 그리고 자신과 회사와 동료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 결과 그는 이 세상에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자살하고 싶어서 술을 마셔 혼몽 상태에 빠지거나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여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 마음의 바탕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과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경에 주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수고롭고 짐스러운 것을 주님 앞에 와서 모두 기도로서 내려놓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질 때 행복이 옵니다. 평안이 없는 곳에 행복은 절대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평안에서 자랍니다. 하나님께 짐을 다 맡길 때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평안이 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있으면 주일, 수요일, 금요일에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바쁩니다. 이 말씀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다리고 공부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아침에는 말씀을 준비해야 하고 저녁이 되면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 공부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 목사 되십시오. 한 평생을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도 시험 볼 때 잠시 점수 잘 따려고 하는 공부를 해선 안됩니다. 제가 말씀과 모든 깊은 것을 공부하지 않고 15만 성도를 이끌어 나간다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되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지독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간지나, 소설, 자서전은 읽지 않지만 몇 일 전 아내가 가져온 김준호 라는 분의 '그대에게 비추어 주는 횃불'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좀처럼 자서전을 보지 않는데 이것을 읽으며 울고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글은 아주 뼈저린 인생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김준호 라는 사람은 인하공대 2학년 때 기술병으로 군대에 자원해 갔다가 탱크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습니다. 이 세상의 부상 중 가장 끔찍한 부상이 목 부상입니다.
목을 통해 신경이 온 몸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목을 다치면 전신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부산 육군 병원에 있다가 옮겨 서울 수도 육군 병원에서 치료하는데 이 부상으로 온 신경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몸에 욕창이 나도 아픔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얼굴만 살아있어 용변도 세면도 다른 사람이 다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인생으로선 가장 처절한 절망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치료 불가능으로 나가라 할 때 온 몸은 썩어 20대로서 인간의 가장 처절한 절망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원망한 후 죽기를 간구하나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럴 때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2명의 여전도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을 열면 예수님께서 평안을 주신다고 하며 전도를 해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나를 이렇게 만들겠냐고 고함을 쳐도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데 고통과 번뇌가운데 사는 것보다 평안 가운데 사는 것이 더 좋지 않느냐고 계속 간절히 전도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간구에 그는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을 하고 어느 날 새벽에 영접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화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 왔습니다. 그때까지는 세상이 저주스럽고 목에만 붙어있던 생명이 저주스럽던 그가 마음에 기쁨이 들어오고 행복이 들어왔습니다. 뭔지 모를 기대와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젓가락을 입에 물고 그것으로 책장을 넘기며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고 감사하고 성경을 읽으며 신앙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을 즐거워 하니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간호학교 실습생이 실습하러 나왔다가 이 분을 간호하며 동정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하여 살며 남편을 격려하여 그 부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작년 12월에 세종문화 회관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입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간으로서는 행복할 수 없음에도 그 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며 그 자서전 끝에는 기쁨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인에게 감사하다고, 그리고 목만 살았지만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기대 가운데 행복을 가지고 산다며 인생이란 참 즐거운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것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분이 저를 보면 저는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있고 먹고싶은 것을 먹고 자다가도 왼편, 오른편으로 돌아누울 수도 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행복 투성이 입니다. 사지백체가 멀쩡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불평을 해선 안됩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의 선택에 달린 주관적인 체험이라 생각합니다. 목만 살아 있는 사람도 사지백체가 성한 사람보다 얼마나 더 행복하고 감격하고 기쁨으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지가 성한저는 회개하고 그 후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로 불평하지 않겠다.' 제가 만일 이런 사람 앞에서 불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은총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여러분의 마음의 자세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고 거듭난 마음의 바탕은 새로운 영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긴 후 진주잡이가 진주를 찾듯 주위의 행복을 찾을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보고 그것을 음미하고 그것을 감사하면 이 보다 더 넘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행복이란 내가 그것을 찾아 누릴 때 오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행복을 소유하려면 불행을 처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불행이 안다가온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불행이 어느 정도 다가와야 합니다. 낭패, 실망,고통, 괴로움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다가옵니다. 이것을 처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주어도 청소를 잘 안하면 쓰레기장이 됩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환경이 정말 좋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눈보라 치고 폭풍이 밀려오고 실망되는 일과 파탄이 몰려와도 이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불행이 다가오면 그것을 보고 말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불행에 관해 말하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커져 불행에 짓눌려 파괴되고 맙니다. 불행을 처치할 수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고 그 분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내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과 불행은 나는 해석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임지신 이상 여러분이 그에게 인생을 맡긴 이상 우리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여러 불행한 사건과 풍파는 일시적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느 한 도시로 가려하는데 그곳으로 통하는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은 캄캄하고 침침합니다. 터널을 통과한다고 원망하고 불평할까요? 터널은 그 도시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면 밝고 광명한 내가 원하는 도시에 가게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늪을 지나기도 하고 벼랑을 오르기도 하고 가시밭길을 가기도 하고 슬픔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축복에 달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지 그것이 우리의 인생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과정을 지날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좋은 일만 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온다고 그곳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을 감사함으로 지나가서 나중에 세월이 흘러 종국적으로 합쳐놓고 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과정을 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슬픔, 낭패와 실망, 고통, 괴로움의 불과 물의 과정을 통하고 보니 광활한 대지 위에 있게 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이 강단에 서서 저의 과거에 있어서 가장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었던 일을 말하라 한다면 고생스러웠던 그 과정만이 제게 가장 축복이 되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제게 가장 큰 축복은 폐병 3기에 피를 쏟고 쓰러진 것입니다. 이것은 제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폐병을 앓고 피를 토하지 않았다면 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들어가 배를 가르고 가사상태가 되지 않았다면 순복음 중앙교회의 목사가 되지 않고 미국으로 갔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당한 모든 고통을 종국적으로 제가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행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주님께서 사용하신 것을 볼 때 다시 과거로 가서 그것을 체험하라 하면 안 하겠지만 그것만이 저의 생애 속에 위대한 축복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좋은 일만 좋다 하지 말고 우리 생활이 어렵다하여 원망, 탄식하지 말고 불행이 다가올 때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게 불행을 주시니감사합니다.' 하며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원래 감사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성격이 가장 예민해서 잘 울고 웃고 변덕스러 웠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여자가 될 것을 잘못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만 그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걱정을 잘합니다. 조그만 걱정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걱정을 주면 밤새도록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 다툼을 하면 몇일 동안 '그럴 수가 있나, 그럴 수가 있나'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키신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조 목사,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알면 제가 그렇게 살지요.' '네가 아는 분명한 뜻이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네가 이 뜻은 너무나 훤히 안다. 이 뜻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하나님의 뜻을 행하느냐? 그러므로 네가 너의 생애 가운데 항상 기뻐하느냐? 염려, 근심이 있으면 쉬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께 다 맡기느냐? 범사에 감사하느냐?' 저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시험삼아 그렇게 하기로 작정을 하고 제게 상당한 고통이 다가오면 하나님앞에 나가 물어보며 '하나님, 고통이 다가옴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왜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감사하라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이 낭패와 실망과 배반, 고통을 당한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니, 그 끝이 어떻든 간에 속마음이 편안해져 잠도 잘 오고 소화도 잘 되고 기뻐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무슨 일이든지 일이 안되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안 되어서 감사합니다. 낭패를 당해서 감사합니다. 이를 통해서 저의 잘못을 배우게 도와 주시옵소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시고 더 좋은 신자, 목사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것이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그러게 불행을 감사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마음속에 한없는 평안이 다가옵니다.
행복은 평안이 기초입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일에만 감사하고 궂은 일에는 원망하면 어린 아이 신자입니다. 그러나 큰 역경과 환란이 다가오고 내게 큰 손해가 오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요, 연단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요, 성장하고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므로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길 수 있는 기초가 서 있습니다.
항상 어린 아이 같은 신앙으로 남아있지 말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때 눈을 들어 감사하고 불행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평안을 갖고 그런 믿음 바탕 위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를 하시도록 하는, 또 마음의 행복을 쟁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그 사람이 불행을 처치하고 행복을 가져오는 위대한 지략을 가져오는 사람인 것입니다.

셋째로, 행복을 파괴하는 요소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인생에서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것은 탐욕입니다. 한 자매님이 와서 이런 신앙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저는 예수님 믿고 참 행복했습니다. 저와 제 남편이 구원을 받고 가정은 서로 사랑합니다. 좋은 부모님이 계시고 직장에서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일용할 양식을 얻어서 먹고 입고 마시고 조그만 집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교회오는 것이 즐거워 주일, 수요일, 금요일을 기다려 예배드리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동창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너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겨우 이렇게 사니? 우리는 성공해서 이러 저러하게 산다.'고 말하기에 처음에는 '없어도 좋다.
행복하다 하였으나 동창들이 가고 자식들이 사는 것을 보니 너무 비참했습니다. 남편도 못나 보이고 집도 안 좋아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탐욕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행복했고 불평도 없었으며 찬송이 흘러 넘쳤는데 저의 분수에 넘치는 탐욕이 들어오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마음에 불행이 차자 그 불행을 상담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님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착실하고 성실한 남편과 이 정도로 살고 건강하고 교회 다니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 때는 행복했는데 분수를 넘어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가 당신은 불행해졌습니다. 탐욕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러므로 탐욕을 저버리고 깨어져 자신의 분수에 합한 인생을 받아들여서 감사하면 행복이 다가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이란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데서 다가옵니다. 사업가들이 망하는 이유는 사업이 잘 될 때 탐욕을 가지고 힘에 못 미치는 이자를 얻어 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정치가들이 처음부터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정치가가 국민이 자신을 신뢰하여 투표해 주면 분수에 맞게 그것을 가지고 정치하면 되는데 탐욕을 가지고 헌법을 고치고 하여 결국에는 자신과 나라를 망쳐 놓게 된 것입니다. 탐욕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이러므로 자신의 분수를 알아 분수대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날갯죽지가 부러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템플 대학의 총장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란 북부에는 굉장한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습니다. 그 광산은 강의 백사장 옆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기름진 농장이 있었습니다. 그 곳의 농부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인도에서 수도승 한 명이 와서 다이아몬드를 캐내어 가지면 당신의 아이들을 일류 대학에 보내고 제왕의 자리에까지 앉힐 수 있다. 부귀, 영화, 공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 밤, 그 농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활에 한탄을 하며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팔고 가족을 다른 곳에 맡기고 다이아몬드를 찾아 떠났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찾아 떠돌다가 여비가 다떨어졌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로 지쳤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탐욕이 그를 죽였습니다. 그 인도의 수도승이 일년 후 와보니 그 집에 다이아몬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수도승이 집주인에게 다이아몬드를 찾아 떠난 사람이 돌아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새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는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수도승이 다이아몬드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새 집주인은 자신의 밭에 그러한 것이 많더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밭이 다이아몬드의 원광이었습니다.
템플 대학의 총장은 그 일화를 예로 들어 '인생이란 다이아몬드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곳에는 더 큰 행복이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의 분수에는 나의 생활, 나의 집이 다이아몬드 광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행복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힘든 것입니다. 군대에 있으면 졸병들의 식사량이 고참들에게 빼앗겨 참 적습니다. 그러니 항상 밥생각뿐입니다. 사람은 별수 없고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훈련소에서 식판을 보며 저는 항상 옆 사람의 밥이 제것보다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늘 불평했습니다. 옆의 사람은 도리어 저의 밥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항상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실은 밥은 많고 적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주어진 탐심 때문인 것입니다.
탐심이 들어오면 낙원인 에덴 동산도 어둡게 보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지으신 진선미인 에덴 동산을 주셨는데 탐욕이 들어오니 에덴조차 마음에 족하지 않아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 달려들었습니다. 이 시간부터 행복한 삶을 사시려면 초가삼간이라도 제 분수를 지켜서 감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넷째로, 인간은 위대한 내일에 대한 꿈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사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살지 않습니다. 몸은 현재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자포자기합니다. 희망이란 오늘의 현실 생활을 다스리고 준비하는 위대한 힘이 됩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말하기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정치가는 다름아니라 내일에 대한 꿈을 그 나라와 백성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비젼을 심고 그 꿈을 따라서 착실하게 정치와 행정을 하여 성취해 나가면 그 국민들이 정부를 지지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 때문에 오늘 더 근검 절약하고 성실히 삽니다. 그러나 정치가들이 권력다툼이나 하고 혼돈과 무질서를 가지고 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사람들은 부정,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 가정의 행복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영원히 지속될 희망을 주실 분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었으며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라 이 하나님만이 내일에 대한 약속을 지켜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놓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시겠느냐?
좋은 하나님은 내일에 대한 좋은 소망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와 우리의 생애를 맡기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붙잡고 내일에 대한 좋은 환상과 꿈을 가지고 나갈 때 주님께서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수 있는 소망과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줄기찬 내일에 대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죽음 자체도 우리 앞에서는 소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질 때 세상 사람들은 그로써 소망이 끝이 나지만 주님께서는 "마음에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이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내가 안즉 차라리 육신의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소망을 가진 것이더 좋다"고 바울 선생은 말했습니다.
명절을 기다리던 어릴 때의 심정을 아실 것입니다. 명절을 하루하루 기다리며 때때옷을 꺼내보며 마음에 즐거움을 갖지 않습니까? 소망이란 이렇게 즐거움을 줍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이 세상이 다 끝날 때 영원한 아름다운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변화됩니다. 이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늙은 몸은 젊은 33세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어 우리 모두가 주께로 올라가서 주님께서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이별하는 것이 다시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되는 위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빼앗아갈 자가 없고 불타 없어질 수도 없고 훔쳐갈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 소망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불타오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만이 지고하게 내일에 대한 소망과 구원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늘 행복합니다.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늘 극단적으로 불행해지고 맙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자세에 있습니다. 행복은 환경 적인 객관적인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체험입니다. 이 주관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자꾸 내일을 바라봅니다. '산 너머 행복이 있다 산 너머 가니 또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한다.'라는 옛 시인의 말과 같이 행복이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자세가 변화되어서 굳은 마음에 부드러운 마음과 새 영을 얻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우리 환경 가운데 행복할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또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 불행이 다가올 때 감사로서 적극적으로 대해서 이 불행의 환경 속에 마음의 평화를 얻고 불행을 오히려 변화시켜 오히려 위대한 행복의 자원으로 변화시키고 탐욕을 버려 내 분수를 알고 밑을 내려다보며 감사하며 생활하고 내일의 소망을 기대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내
일을, 다음 달을, 내년을, 그리고 영원을 하나님 속에서 기대하며 살아갈 때 행복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누리는 즐거움,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울어도 웃어도 한 평생입니다. 한 평생을 울며 사는 것은 손해나는 삶입니다. 그러나 웃으며 살면 세상을 떠나갈 때도 '나는 후회 없이 살았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한 평생을 멋있게 후회 없이 즐겁게 살았다. 하나님감사합니다. 이제 더 나은 세계로 저는 들어갑니다.' 하고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행복과 웃음과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면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70 혹은 80 주어진 기간을 삽니다. 우리는 양으로 보다 짙은 행복과 기쁨을 가진 질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행복한 삶에 대한 조건을 알아보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마음, 불행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탐욕을 저버린 마음, 기대를 던져버리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의 자세 속에 행복은 와서 깃 든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 모두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