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by 삶의언어 posted May 11, 2024 Views 4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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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1-10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27장 41절로 4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j7Cr_bEKrZ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수없도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당장이라도 폭풍우가 휘몰아쳐올것같은 그런 음산한 기분이었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손과 발에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편 강도는 고함 고함 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있고 또 좌편 강도도 그와 같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고다 십자가 밑에서는 로마 군인들은 추호도 죽음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고 있었습니다. 멀리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 찾아온 여인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그 울음도 이제는 목이 쉬어서 잘나오지 않을 그럴 지경인 것입니다. 그러한 장면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목쉰 소리를 고함 고함 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에서 말하기를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당장 열두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서 그리스도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왜 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이처럼 모욕을 하는데도 주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고 묵묵히 십자가에 매달리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 내려올 수 없었습니까? 여러분 비록 원수들이 그리스도를 조롱해서 저가 남은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하지 못하는 도다라고 외쳤지만은 이 말은 기독교의 진수를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남은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과 죽음과 절망에서 찾으시는 간절한 소원이 그리스도에게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첫째로 오늘 이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었던 이유를 우리가 알려면은 왜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낼 수밖에 없었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해서 상함도 없고 해악도 없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 두어서 에덴을 관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는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너희가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으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면 하나님께선 이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가 뱀을 통해서 다가와서 꾈 때 그 음성에 그만 넘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음성을 들었었습니다. 너희 과연 하나님께서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아니라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죽을까 하노라 하시더라. 뱀이 말하기를 아니라 절대로 죽지 않는다. 너가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 이 유혹에 그만 견디지 못해서 하와가 손을 내밀어 그 선악과를 따먹고 그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 주어 먹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었습니다. 그러자 말자 즉시로 그 영이 죽고말은 것입니다. 영의 영광스러움이 그를 떠나자마자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즉시로 벌거벗은 수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어 도망쳐서 수풀 뒤에 숨었습니다. 무화과나무로서 앞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을 찾고있었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 것을 몰라서 찾았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 것을 몰라서 찾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를 도전하고 반역한 아담이 어떻게 처절한 절망에 떨어진 것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으시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은 말했습니다. 내가 벌거벗어서 수치스럽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 숨었나이다. 그는 과연 하나님을 반역하자마자 영이 그 자리에서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자 그가 나무 뒤에 숨었으나 그가 어디에 와있는지를 당장 알게되었었습니다. 그는 죄가 운데 있는 것을 알게되었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주여 나는 죄가운데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주님 나는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갑자기 새들이 울다가 가지에서 떨어져 죽기 시작하는군요. 갑자기 꽃이 시들고 갑자기 짐승들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 나는 저주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잃은 것이 없었는데 에덴에서 갑자기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기 시작하는군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여 나는 버림받은 자리에 있습니다. 나는 쫓겨났습니다. 내 양심이 벌거벗었습니다. 내 육체가 벌거벗었습니다. 나는 피할 곳이 없어서 이와 같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해 입고 나는 나무 뒤에 수풀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할 때 아담이 자기가 처한 그 타락의 비극적인 정황을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함이여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서 보게될 때 아담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찾지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름없이 여러분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한없는 자비와 긍휼로서 손을 내밀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오늘날도 찾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꼭같이 성령을 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오늘 여러분이 어디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면은 여러분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는 죄가운데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저주 가운데 있습니다. 버림받은 자리에 있습니다. 나는 실존의 절망에 처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고백할수만 있다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건져줄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물으면 오늘날 사람들은 타락해서 네. 나는 내 마음대로 삽니다.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도웁는 손길을 베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 자기의 벌거벗은 것을 느꼈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벌거벗은 수치를 고백했었습니다. 죄로 벌거벗고 사망으로 벌거벗고 저주로 벌거벗고 버림받은 벌거벗은 자리에 숨을 곳이 없는곳을 고백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 비참한 정황을 보시고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선 그 자리에서 뱀을 저주해서 말씀하기를 "너가 이렇게 하였은즉 종신토록 너는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라 그리고 여인의 후손이 너 머리를 깨뜨리고 너는 여인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물 것이라" 했었습니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데 바로 여인의 후손이 와서 이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버리고 그 사탄은 그 여인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물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로 탄생하셔서 아버지 없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서 뱀의 머리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벌써 에덴동산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짐승 한 마리를 죽였습니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그 에덴에서 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짐승을 죽여서 피를 쏟고 그 가죽을 벗겨서 그래서 아담을 위해서 친히 하나님이 손수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엮어서 만든 앞치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수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아담에게 입히고 하와에게 입혀서 수치를 가리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윤리의 옷을 지어서 입고 도덕의 앞치마를 해 입고 인간이 과학이나 지식이나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앞치마를 둘러입을려고 하지만은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옷을 우리에게 입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담의 무화과 앞치마는 하나님 앞에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짐승을 잡아서 직접 피를 흘리시고 직접 가죽을 벗기셔서 친히 손으로 옷을 해 입힌 것은 하나님께서 훗날에 직접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를 죽이시고 그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다 청산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벗겨 가지고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한사람 한사람 입혀줄 것을 예시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간절히 찾으셔서 그 음성에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여인의 후손을 보내어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고 그리고 그 여인의 후손을 십자가에 죽여서 피를 흘리고 그 의로운 옷을 벗겨서 하나님이 직접 의의 옷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입혀줄 것을 주님께서 예언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난 다음 그때로부터 시작한 구약 사천년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준비를 하는 사천년 이었었습니다. 이 여인의 후손을 보낼 준비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 어린양을 보내기 위한 준비과정 이었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 이땅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한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족보가 없는 여인의 후손이었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모두 다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럼 예수님 혼자만이 인류에서 여자의 후손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피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럼으로 그의 속에는 죄도 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와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피웠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손길을 내밀었었습니다. 주님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뜻으로 한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영생의 길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놓고 난 다음 그들이 외친 것처럼 보라 그가 남은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렇게 외친 것처럼 예수님은 진실로 남을 구원했었습니다. 예수님이 남을 구원했다는 사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조차도 예수님께서 남을 구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남의 죄를 용서하고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주께서 용서하시고 구출해 주셨던 것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은 사마리아 여인도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 사흘만에 불러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남을 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한번도 주님께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가는 곳마다 남을 구했었습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에 잘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사람으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친구들도 예수님이 남을 구원했다는 것을 인정했었습니다. 원수들도 예수님께서 남을 구원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오늘도 남을 구원하신 예수님은 주님을 믿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주를 비난하는 원수들 보는 앞에서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에서 자유를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망과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서 영생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마귀는 악한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은 예수님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을 해주기 위해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와서 계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그곳에서 네 스스로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 앞치마를 만들어서 너 운명을 가릴려고 하느냐? 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잠시 있다 태양 빛이 비취면 다 말라서 쭈글쭈글해서 사라져 버리는 앞치마와 같습니다. 인간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과학 어느 하나라도 영원히 인간을 보호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합니다. 너의 그 어리석은 앞치마로서 인간의 운명을 가리울려고 하느냐? 다가오는 폭풍우에서 너 자신을 지킬려고 하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만드신 그 가죽옷 이외에는 여러분과 나를 보호하거나 지켜줄곳이 없습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 아래서 어느 곳이나 우리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그 의로운 옷 이외에는 우리를 지켜줄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기다리고 구원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들은 예수님을 쳐다보고 말했었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할 수 없도다. 왜 예수님께서 자기를 구할 수 없었을까요? 여러분 성경 이사야서 53장 7절로 8절에 보면 여기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예수께서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진 이유는 마땅히 형벌 받을 주의 백성들의 허물을 대신하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바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하나님께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기에 여인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기 위해서 와있다 여기에 어린양 예수가 피를 흘리고 그 의로운 가죽을 벗겨서 너에게 입힐려고 와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간절한 사랑의 부르짖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려 올 수가 없습니다. 왜? 그것은 우리 대신하여 형벌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고함을 치며 하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한번 내려와보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할수없도다. 그렇게 외치는데 진실로 그는 자기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는 남을 구하러 왔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 형틀을 걸머지고 피를 흘려 죽어야만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속할수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아무리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내려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내려오지 않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이 죽어야 당신의 의로운 옷을 가죽을 벗겨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입혀줄수있기 때문에 여러분 산짐승의 가죽을 어떻게 벗깁니까? 짐승을 죽여야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그 의로운 행동으로서 그 의로움을 벗겨서 그래서 우리에게 입혀줄수 있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한 그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청산하고 그 가죽옷을 벗겨서 우리에게 입혀줄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야 하므로 살아서 내려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남은 구원했으나 자기를 구원할 수 없은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는 것은 뱀의 머리를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을 꿰어서 그래서 사망으로 완전히 휘어잡은 그 뱀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직접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세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리고 우리를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를 시켜주어서 그래서 영원한 영광을 상속으로 받게 하기 위해서는 주께서 진실로 죽었다가 부활하셔야만 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남은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데 이마에 피가 흐르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힌 곳이 쓰리고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다리에도 못 박힌 곳이 쓰리고 쇠독이 온 몸에 들어가고 해는 비치고 목은 마르고 혀는 입천장에 붙고 그래서 그는 몸부림을 쳤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은 다 도망치고 원수들은 조소하고 하나님도 예수님을 버려버리고 갑자기 공중에 해조차 빛을 발하지 아니하고 산천초목이 다 진동하고 떨고 울고 바다소리조차 흉용 하여 통곡하는 소리로 변하고 예수님은 견디다 못하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주님은 극치의 고통 속에 빠졌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 주님께서 열두영되는 천사를 불러서 자기를 그 고통에서 내려올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아니하시고 내려오셨더라면 오늘 여러분과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우리 죄를 인하여 영원히 멸망 받고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인간의 앞치마를 무화과로 엮었다가 말라죽어 엮었다가 말라죽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휘어잡은 원수마귀 뱀은 영원히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고 입을 딱 벌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삼켜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나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반역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을 위해서 대신하여 십자가에 그 형벌과 그 고난을 주님께서 견디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수가 말한 것처럼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할수없도다. 이 말씀대로 주님은 자기를 구할 수가 없었고 자기를 구할려고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 막중한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과 나를 구하기 위해서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었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이제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이사야서 55장 1절로 3절에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착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제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제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위대한 샘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는 말씀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돈 없는 자가 값을 주고 사라고 말합니다. 돈 없는데 무슨 값을 주고 삽니까? 값은 여러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값없는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한없이 비싼 대가를 지불해 놓았으므로 값비싼 구원이지만은 이제 돈 없이 값없이 이제는 주에게 와서 생수를 마시고 포도주와 젖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 행복과 쾌락을 얻기 위해서 은을 달아주고 금을 달아주지만은 그러나 그 결과로 얻는 것은 허무와 공허와 절망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께서는 내게 와서 목마른 자는 마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에 여인보고 말씀한 것처럼 이 물을 마시면 너희가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한 것처럼 오늘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마시면 여러분과 내 영혼 속에 목마름이 없는 영원한 생수의 근원 강이 흐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수가 되시고 영생수가 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망에서 해방을 얻고 죄악에서 자유를 얻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얻는 자리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와서 포도주를 사먹으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이 번뇌로운 사람에게 포도주를 주라고 말했는데 여기 포도주는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내게 오면 내가 참으로 즐거움을 주겠다 세상 포도주는 마시면 돈 들어가고 나중에는 인격적으로 방탕하게 되고 그리고 파탄에 이르지만은 예수님께 나오면 주님께서 세상 포도주로서 상상할수없을만한 마음의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 기도하면 슬픔 사라지고 그 다음 찬송하면 기쁨이 넘쳐 나서 포도주 먹은 것보다 더 좋은 즐거움이 마음에 충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와서 내게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영양분 중에 여러분 젖보다 더좋은 영양분이 없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젖속에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영양분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다른 것 아무 것 안 먹어도 엄마 젖만 먹고도 그의 온 전신에 조금도 영양실조가 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젖보다도 더 영양분이 풍성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와서 젖을 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삶에 참으로 예수님께서 젖이 되어서 우리 인생에 아무 영양실조가 되지 아니하는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 즐거움의 포도주의 근원이 되시고 여러분과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조금도 영양실조가 되지 아니하는 젖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들어오면 이 생수를 마음대로 마시고 이 포도주를 마시고 이 젖을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여러분과 나에게 모자람이 없는 영광스럽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구원하시되 자기를 구원하지 않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혹심한 고난을 통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과 나를 값주고 사셨기 때문에 이제 오늘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맹렬한 기세로 이 가운데 와서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쓰디쓴 잔을 자원해서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전 세상에 척도로 볼 때는 헤아릴 수 없는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 결과로 여러분과 나를 오늘 이 시간에 항상 결단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을 찾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할수없도다. 자기를 버리고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맹렬한 능력으로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나를 찾고계신 것입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반역하고 버림 받아야 마땅한 우리 인생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에덴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간절한 절규를 우리 마음속에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 아버지 죄악의 벼랑 가에 서있고 저주의 벼랑에 서있으며 죽음의 벼랑에 서있으며 버림받은 벼랑에 서서 어느 순간에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보내 시셔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그 가죽을 벗겨서 우리를 입혀서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진실로 예수님은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구원할 수 없었고 구원하지 않았었사오니 원수들이 증언한 것이 사실이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를 버리기 까지 해서 우리를 사랑해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맹렬한 기세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를 구하고 치료하시고 자유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이 예수님앞에 겸비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오니 하나님이여 우리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 한사람도 주님 그대로 보내지 말아주시옵시고 주께서 영혼이 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범사에 문제가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함 받게 도와주시옵시고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불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